꽤 많이 홍보를 하던 영화 스타 이즈 본. 음악 영화라고 해서 보게 되었다.
- 음악이나 춤이 나오는 영화라면 평이 좋지 않더라도 보러 간다.

사실 스타 이즈 본을 보고 나서 후회되었다.
좋은 음악이 나오기는 했지만 심장을 사로잡는 음악은 없었다. 레이디 가가와 브래들리 쿠퍼가 노래를 잘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무엇보다 내용이 너무 예스러웠다.
예전에 나왔던 영화가 히트를 쳤고 몇 번이나 리메이크 되었다는 기사(혹은 포스트)를 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고 보더라고 너무 구식이었다.
굳이 극에서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성과 여성이 사랑에 빠지는 설정부터 둘이 결혼하고 나오는 이런저런 내용이 2018년과는 맞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뭐. 물론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 결혼을 할 수도 있지만 딱히 공감이 되지 않았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CGV에서 알바를 하던 분이 영화 감상을 물어봤다.
좋았던 점이나 나빴던 점을 이야기 해달라는데, 바로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상 깊은 장면이 없었다.
겨우 생각났던 것은 '레이디 가가가 노래를 잘한다.' 정도.

마음에 드는 음악영화를 찾는 것은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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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서스가 이 영화의 로튼토마토 지수를 알려주면서 보지 말라고 하였다.
흐음... 사실 고민을 많이 했었다.
평소에 마블 영화를 많이 보지도 않고, 덕후는 전혀 아니며, 15세 관람가인 이 영화를 봐야 하는가?
나의 선택은 보는 것이었고, 보고 난 직후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1. 기대를 하지 않고 보면 재미는 있다. 2. 나는 영화 할인권을 사용했다. 이 두 가지였다.
주말, 영화 할인가로 싸게 본다면 그리고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가격 대비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의문은 있다.

첫 번째로 심비오트 베놈이 마음을 바꾼 이유.
베놈은 에디 때문에 지구인을 살리는 데에 동참을 한다. 근데 그 이유가 상당히 많이 생략되어 있다.
에디의 감정과 생각을 공유했기 때문에, 그 공유한 내용에 공감했고 동의했기에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데에 힘을 쓰기로 한 베놈. 근데 그 구체적인 이유가 나오지 않았다.
에디가 사회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정의감에 반비례하여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감정(굳이 한 명만 대자면 애인이 앤 웨잉)에는 공감을 좀 덜하는 사람 같던데 말입니다.
베놈이 지구인을 살리는데 동참하고 싶은 이유로 에디 때문이라는 말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두 번째. 라이프 어쩌고 하는 회사의 수장인 칼튼 드레이크.
물론 이 사람 나쁜 사람이다. 문제는 이 사람이 중간에 했던 말인 '사람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라는 내용. 이 대사가 핵심이다. '사람이 지구환경을 파괴하고 있고 계속 사용하기만 한다. 대책이 필요하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거고, 그 대책을 '과하게 극단적으로' 지구에 있는 사람을 모두 죽이는 것으로 설정했다. 물론 모든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기는 하나 칼튼 드레이크의 입장도 있을 텐데 그 내용이 너무 적게 나온 것은 아닌가 싶다.

세 번째는 베놈이 그래서 왜 빌런이 되는가?
베놈이 스파이더 맨에서의 빌런이라고 하던데, 왜 빌런이 되는 거지? 이거는 1편이니까 그 내용까지 모두 담을 수는 없는 건가? 그다음 편에서 빌런이 되는 이유가 나오는 건가?

네 번째는 관람 연령.
15세이기는 한데 15세가 아닌 이 느낌은 뭘까? 흐음. 차라리 관람 연령을 더 낮춰서 12세로 만드는 것을 어땠을까? 초등학교 3학년이 내 조카가 보고 재미있다고 했다. 대략 10세인 내 조카가 보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수준이라면... 차라리 12세로 만들어.

내가 마블 덕후도 뭣도 아니라서, 영화에 담긴 모든 내용을 모를 수도 있다.
마블 덕후가 이 영화를 본다면 뭐라고 할 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즐겁게볼 마음가짐으로 간다면 재미있게는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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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백치

2018. 10. 3. - 7.

2018-2019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출연
뮈시킨 이필모, 나스타샤 황선화, 로고진 김수현, 아글라야 손성윤 외 다수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극으로 만들어진 백치를 처음 본 것은 2010년 날이 쌀쌀하던 가을. 지금은 대학로 예술극장으로 아름을 바꾼 원더스페이스의 동그라미극장이었다. 매우 작은 소극장에서 20명 가량의 배우가 등장했던 <백치, 백지>라는 이름으로.
모두 검은 옷을 입고 나왔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던 분위기. 나스타샤의 절망과 뮈시킨의 슬픔. 그리고 악에 바쳤던 로고진의 모습이 뇌리에 남았다.
그 다음 해,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가수 리아가 나오는 비슷하지만 좀 더 가벼워진 <백치, 백지>의 공연 이후 몇 년만에 국립극장의 <백치>가 무대화되었다.

공연 <백치, 백지>를 볼 때마다 도스도예프스키의 책 <백치>를 읽을 때마다 더 이상 밝음이 없는 어두움의 무게 때문에 절망에 휩싸였었다. 난 참을 수 없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던 무거움이 좋았다.

2018년, 국립극단의 <백치>는 훨씬 더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흩날리는 돈과 공기 때문에 공연을 보기에는 더 편안해졌지만, 극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지루했고 가벼웠다. 전체적인 배우의 앙상블이 어우러지지 못 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공연을 보고 여전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뮈시킨이 나스타샤에게 했던 대사이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요. 왜 그렇게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거죠?"

백치의 나스타샤는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상처를 입은 채 살아갔고 자신의 상처를 치료받기를 원하면서 치료받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스타샤는 외로웠고 자신의 상처를 알아봐준 뮈시킨을 (아마도) 사랑했지만, 뮈시킨이 자신에게 주는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 '동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십이야에서 "동정도 사랑의 시작이다."라고 하지만, 서투르고 어설픈 동정은 상처만을 남기다는 것을 나스타샤는 알았을 것이다.
뮈시킨은 참 착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그가 결국에 백치라고 불리는 것은 서투르고 어설픈 동정으로 자신의 삶과 다른 사람의 삶 모두를 파멸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공연을 보면서 불편했던 점은 <백치>에 주요하게 등장한 여성 캐릭터 두 명(나스타샤, 아글라야)가 창녀/성녀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 뮈시킨이 '여성'을 구원하려는 모습, 나스타샤와 아글라야의 대화의 주제는 '뮈시킨'으로만 설정된다는 것, '백치'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벡델 테스트(1.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등장한다. 2. 여성들이 서로 대화를 나눈다. 3. 여성들의 이야기가 남자와 관련 없는 것이다.)를 아무데서나 써먹고 싶지 않고, 아무래도 원작에서의 내용을 크게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연출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작을 쓴 표토르 도스도예프스키가 1821년에 태어나 1881년에 죽은 것을 생각하고 극을 보고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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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각본
박찬욱.정서경 지음 / 그책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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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일주일 전이구나.
책방 꼴에서 하는 큐큐퀴어단편선 북토크에 다녀왔다. 상당히 조용한 분위기에서 조용한 말투로 진행되었던 북토크.

북토크가 끝나고 책방 안을 둘러보면서 살 책이 있는지 보았다. 안타깝게도(아니면 아쉽게도) 책방 안에 있는 책 중에서 내가 읽을 것 같은 책은 이미 읽은 책 아니면 집에 있는 책이었다. 심지어 사진집마저도.

크지도 않은 책방의 책장을 이리저리 뒤지다가 [아가씨 각본]을 보았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눈에 띄었다. 다만, 계속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가씨 각본]보다 더 사고 싶은 책이 있을 것만 같았는데, 없었다.

영화 아가씨 개봉일자는 2016년 6월. 책은 영화가 개봉한 해 8월 출간. 지금은 2018년.
영화 아가씨를 보기는 했었지만, 사실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 기억나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 장면이 뇌리에 남았기는 했지만, 그 장면이 인상적이라 기억이 남은 것인지 TV의 자료화면으로 많이 나왔던 장면이라 기억에 남은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잊혔던 장면이 다시 기억이 나기도 했다. 어떤 부분은 이런 대사가 있었는지 몰랐을 정도로 생소했다.

각본집을 읽으면서 다시 느낀 거지만 세라 워터스의 글은 활자일 때보다 영상일 때 그 힘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세라 워터스나 기욤 뮈소 같은 작가는 활자로 표현된 글이 영상으로 만들어졌을 때 더 어울리는 글을 쓴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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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태니컬 셰익스피어
게릿 퀼리 지음, 수미에 하세가와 콜린스 그림, 윤태이 옮김 / 지금이책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botanical. 식물학의.

셰익스피어에 대해 참 많은 책이 있다.
셰익스피어가 직접 썼다는 희곡 작품 말고도 그에 대하여 참 말이 많다.
어떤 책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셰익스피어가 모든 희곡을 쓴 것은 아니라고 한다. 마치 성경에 나온 예수의 행위가 단 한명의 예수가 행하지 않았다는 증언처럼.
셰익스피어가 동성애자라는 이야기도 있다. 소네트를 근거로 하여. 사실 확실하지 않다. 셰익스피어는 이미 죽은 사람이고,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까.

셰익스피어에 언급 되었던 다양한 식물을 그림으로 그리고 주석을 붙이고, 해당 대사를 써둔 책 보태니컬 셰익스피어.
한국에서도 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이런 비슷한 작업을 병행하지 않을까싶다. 한국의 식물을 도감으로 만들 때, 해당 식물의 특징을 잡아 그림으로 그리는 일.
단지 이 책은 셰익스피어에 나왔던 식물 한정 이라는 것만 다를 뿐이다.

책을 보는 것인지 읽는 것인지 사실 구분이 잘 안 되었다. 그림이 많은 책을 볼 때 흔히 있는 일이다. 내가그림을 '보는' 것인지 '읽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식물에 대한 관찰력은 매우 떨어지는 인간이니까. 그저 그림이 예쁘다고 생각했고, 셰익스피어는 희곡에서 다양한 식물을 언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림을 보고 글을 읽으면서 내가 읽거나 보거나 들었던 희곡을 떠올려봤다. 기억이라는 것은 언제나 부정확하지만 식물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는 느낌이 없었다.
- 셰익스피어 희곡에 있는 모든 식물을 책으로 엮어버리니 유독 더 크게 느껴진 것일수 있다.

셰익스피어를 다른 방향으로 볼 수 있었던 책이었지만, 내가 식물학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집중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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