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서 기분 좋은 희열과 어둡고 깊은 한숨이 함께 공존하기는 쉽지 않다. 영화 위대한 쇼맨을 보면서 그리고 보고 나와서 집으로 오는 길에도 집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고민했다.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지 힘들었다.

영화 위대한 쇼맨을 보면서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1. 영화가 재미있었고, 2. 음악이 좋아서였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한다면 위대한 쇼맨은 '나에게는' 좋은 영화가 아니었다.

어둡고 깊은 한숨의 이면에는 차별의 벽을 없앤다는 미명하여 오히려 차별을 하고 있는 휴 잭맨의 캐릭터 때문이었고, 그 차별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를 보는 시선이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고, 소수자도 당당하게 사회로 나온다는 것을 다수의 시선으로 쓴 폭력적인 영화라고 느껴졌다.

그 이유는 P. T. 바넘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살아있는 신기한 무언가를 찾는데 그 대상이 장애인이나 흑인이었다는 것이다.
노래를 엄청 잘 했던 레티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바넘의 무대 위에 선 사람 중에는 왜소증이나 알비노, 샴 쌍둥이도 있었다. 그 때 당시의 장애인을 보는 시각은 신기한 구경거리 그 이상이 아니었음을 알려주기도 하는 장면이었다. 더 불편했던 것은 그 시각의 일부가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것, 그리고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을 강제로 사회로 끌어내 돈을 벌거나 오히려 극 말미에는 뭔가 스스로 원해서 그 자리에 선다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불편함이 있었다.
바넘이 극장을 잃고 난 후에 술집에서 술을 마실 때 단원들이 그를 찾아가 우리를 사회로 나올 수 있게 해주었고 이 사람들이 우리의 가족이다 이런 소리를 하는데... 그것도 불편했다.
- 도와줘요 장추련...
오히려 This is me를 부르고 난 후에 각자 사회에서 일을 하며 살았다면 비현실적이지만 덜 차별이라고 느꼈을까?

소수자를 무대에 세우는 것과 별개로 '내가 정확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불편함은 바로 동물에 대한 것이었다.
영화 끝에 천막 서커스를 진행할 때 나오는 코끼리를 보고나서 정말 화가 났다.
영화에서 코끼리를 보는 순간 코끼리를 서커스 무대 위에 세우기 위하여 새끼 코끼리가 보는 앞에서 어미 코끼리는 물론 코끼리 무리를 몰살 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코끼리가 어렸을 때부터 쇼를 위해 맞으며 자라는 영상이 떠올랐다.
- 실제로 많은 쇼에 사용되는 코끼리가 이런 식으로 잡혀 고통스러운 훈련을 받는다.

게다가 바넘이 눈이 오는 한겨울에 코끼리를 타고 극장에 가는 장면을 보았을 때는 영화 제작자와 연출가가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코끼리는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살고 열대, 아열대 기후에서 사는 동물인데 한겨울에 코끼리를 타고 다니는 영상이 어린이가 볼 수 있는 전체관람가 영화에 나오면 어린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 한겨울에 코끼리가 나다니게 하는 것은 동물학대란 말이다.

좋은 노래가 나오는 영화에 인권 의식과 동물권 의식은 바닥 그 근처에 있음을 알고 정말 통탄했다.

정말 이 영화를 보고 난 후기에는 영화가 재미있다, 좋다, 용기, 사랑 이런 이야기를 쓰며 좋은 리뷰가 한 가득인데...
난 이 영화가 나쁘다고 생각한다. 매우 좋은 음악이 나오는 영화인 것은 맞지만, 소수자의 인권과 동물권을 생각하지 못 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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