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로기수가 영화 스윙키즈가 되어 영화관에 걸렸다.

한국전쟁 중,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한국인 포로에게 탭댄스를 가르치고 공연을 하는 내용.

영화 스윙키즈는 배우가 아닌 캐릭터가 보이는 영화였고, 과하지 않은 감정선이 좋았던 영화였다.

로기수가 포로수용소 내 감옥에서 풀려날 때, 그리고 영화 내내 로기수의 자신이 아닌 남을 무시하는 말과 행동은 매우 거슬렸다.

시대적 상황에서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을 비하하고, 미군부대를 드나드는 여성을 몸을 파는 사람이라 칭하며, 흑인은 깜둥이로 무시하는 언어가 비일비재 했고, 지금도 그런 언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뱉는 사람이 있다.

그래도 영화를 보면서 로기수가 김병삼에게 샤오팡에게 양판래에게 잭슨에게 내뱉는 단어는 차별이었고 상처였다. 캐릭터설정상 변절자, 깜둥이, 양갈보라는 단어가 '남자다움'을 내세우는 것이고, 자신이 가진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데 더 좋은 언어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군대 내에서 계습이 낮은 '백인'이 '흑인' 하사의 명령에 복종하면서도 끝까지 'Negro'라는 단어를 붙였던 것처럼.

그리고 로기수가 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형 로기진을 대하는 태도였다. 다른 사람이 그리고 로기수가 로기진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유추했을 때, 그는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이었다. 삼식의 대사 중 '5세의 정신연령'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로기진이 분명 형이고 로기수가 동생인데도 일반적인 형과 동생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동생인 로기수가 형과 재회하는 장면부터 2~3번 둘이서 대면 할 때, 동생이 형에게 반말 그리고 가르치는 어투로 이야기 한다. 일반적인 형제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불편했다. 한국에서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을 대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가 몇 살이던지 '어린' 그리고 '무시해도' 되며, '존중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 비춰지고 그렇게 대한다.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의 나이가 몇 이던지 간에 존중받지 못한다. 동생 로기수는 형 로기진을 형으로 대하지 않았기에 불편했다. 로기수에게 로기진은 장애가 있는 혈족이었고, 자신이 지켜야하는 존재로 생각했으며, 로기진을 가족으로서 사랑했겠지만 존중하지 않아서 불편했다. 한국에서 장애인을 보는 시선이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어서 불편했다.

로기수보다는 오히려 양판래, 강병삼, 잭슨이 좋았다.

이념과는 상관없이 춤으로 사람을 대하고, 아내를 찾으려는 그냥 일반 사람 강병삼.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돈을 벌어야했던 양판래.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었던 잭슨.

전쟁 중이고 여성에 대한 존중이 없었던 한국에서 살아야했던 양판래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흑인으로 태어나 인종때문에 무대 위에서 쫒겨난 잭슨이 서로 '어떠한 나라에서 받은 인종차별이 더 힘든가'를 두고 약간의 말싸움을 벌일 때, 그건 의미가 없는 싸움이었지만 사실적이었다. 웃으며 영화를 보고 있어도 머릿 속은 복잡했다.

불편한 것을 일부러 좋게 포장하거나 가리지 않으면서도 춤을 추는 장면과 브라스 밴드의 적절한 합을 잘 그린 좋은 영화였다.

많은 사람이 스윙키즈를 볼 때, 도경수가 아닌 영화를 보기를 바라고 전쟁이 아닌 그 안에 있던 차별을 보기를 바란다.

어차피 우리는 안다. 전쟁은 나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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