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장선기가 한 말은 논리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만 따진다면 자신의 주장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유희진은 확신했다. 박기정이 유인한 것이다. 내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이후부터 따라오기 쉽게 운전했고 나중엔 자신에겐 익숙하겠지만 나에겐 사각인 어딘가로 이끌었다. 장선기의 입장에선 이런 주장이 억측으로 느껴지리라는 것을 안다. 그 느낌을 말이 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건 설명하기 어려울 뿐 분명한 사실의 영역이다. 유희진은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애를 썼다. - P-1

"죄가 있다면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법이 제대로 못 하면 누군가는 해야 해요. 갇혀야 할 사람은 갇혀야 하고 고통을 줬다면 자기도 그만큼의 고통을 받는 건 당연할 뿐 아니라 이치에도 맞습니다. 그런데 안인수 그 자에게는…… 벌이 아닙니다. 자신을 순교자라 생각하고 있거든요. 고문받고 죽음에 이르는 것은 오히려 선물이고 축복이라 믿으니까요. 몸이나 목숨이 아닌 믿음과 신념을 무너뜨려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막혀버렸어요." - P-1

아무튼 작가님은 이해하시리라 믿어요. 사람마다 사정이 있다는 것을요. 때론 해서는 안 될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요. - P-1

기정에게는 걱정하지 말라 했고 유 작가에게는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하지만 장선기에게는 그 어떤 확신도 없었다. - P-1

잘못된 답을 정답으로 믿는 경찰과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기사로 쓰고 싶은 기자 앞에서 몇 번이고 고개를 저었다. 마음을 치유해준다는 상담사는 마음을 다치게 했고 정신을 살펴준다는 의사는 오해했다. 그들은 모두 나를 어리석은 아이로 대했다. - P-1

인정한다. 나는 그가 싫지 않았다. 엄마를 괴롭게 한 사람인데, 그래서 결국 죽게 만든 사람인데도 왜 엄마가 그 사람을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 P-1

"어떤 이에게 죽음은 벌이 아닙니다. 고통을 가했다면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느끼지 못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이에게는, 고통을 원하는 이에게는, 그러니까 안인수 같은 자에게는 다른 방식의 재판이 필요해요. 그는 고문을 고행으로, 죽음을 순교로, 믿고 있거든요.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순 없어요. 그자는 절망하고 후회하고 나중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 능력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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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진은 친절하게 다가오는 간호사의 말이 관심과 애정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안쪽을 까보면 자신을 향한 비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해하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죄책감을 심는 다정한 질문들. 사고 이후 유희진은 많은 이의 시선을 받았다. 위로인지 오지랖인지 알 수 없는 막막하고 답 없는 말들과 답답한 침묵들. 어둡게 있으면 불쌍한 인생이라 동정했고 밝게 있으면 무정하다고 수군댔다. 나중엔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평소에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나?’ ‘사고 당일 엄마는 어떤 상태였나?’ ‘엄마가 자살을 시도했을 때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술 취했을 때 엄마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엄마가 알코올의존증 치료를 중간에 그만둔 이유는 무엇인가?’ ‘평소 엄마와 딸의 관계는 원만했었나.’ 사실대로 말했고 아는 대로 말했다. 모르는 건 모른다 했고 아닌 건 아니라 했다. 그러나 경찰은, 몇몇 기자는, 꼭 들어야 하는 대답이 있는 것처럼, 듣고 싶은 대답이 있는 것처럼, 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엄마가 그렇게 돼서 힘들겠다는 걱정 어린 말을 하는 이들은 반드시 힘들게 하는 말도 덧붙였다는 것을 유희진은 기억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엄마를 들먹이며 다가오는 이들은 다 자신을 힘들게 한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잠잠해졌다고 생각한 몇몇 기억이 눈을 뜨고 입을 벌려 유희진의 마음은 복잡하고 뜨거워졌다. 어떤 엄마는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 어떤 아이는 엄마를 돌본다. 다정한 엄마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걸까? 엄마 역할을 맡은 연기자들은 아닐까? 엄마와의 일화는 동화가 아니다. 동화에 감춰진 저주에 가깝지. 엄마는 자기 상처를 내게 보임으로써 느리고 긴 치료를 받았다. 딸에게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고 딸은 이해할 거라 생각했다. 엄마는 냉대를 받았다, 했다. 되는 일이 없었고 집단에게 배제됐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했다. 목격한 적은 없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달랐다. 엄마는 타인의 눈빛에서 자신을 향한 무시를 읽고 말투에서 멸시를 느꼈다. 마트 캐셔의 건조한 인사에 마음이 상했고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을 때 공무원의 평범한 질문에도 분노를 느꼈다. 성가대원들이 자신을 따돌린다고 생각했고 권사님들이 모일 때마다 자기 흉을 본다고 괴로워했다. 엄마는 삶을 바꾸려고 표정과 행동을 바꿨다. 집 밖에서의 엄마는 필요 이상으로 친절했고 누구든 배려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저자세로 살았다. 엄마를 분노하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에 나는 엄마를 불쌍히 여겼다. 하지만 어린 딸에게 분노를 표현할 땐 잔인하고 비겁했다. 어느 순간부터 우는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 연민도 동정도 들지 않고 화만 났다. 웅크리고 우는 모습이 늙은 개가 짖는 것 같았다. 저 입을 틀어막고 싶었고 그럴 때마다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 P-1

꼬박 사흘 하고 반나절을 침대에 누워 있었다.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설정하고 뒤집어놓았다. 어디냐 묻는 문자엔 휴가 중이고 여행지에 있다고 했다. 암막커튼으로 창과 빛과 시간을 가렸다. 약통을 열었다. 한 알을 삼켰다. 잤고, 자려 했고, 잠에서 깨면 다시 한 알. 한 번씩 완전히 방전시키고 텅 빈 자리를 느리게 채우는 것. 유희진의 회복 방식이었다. - P-1

집에서는 달랐다. 노래하지 않았고 기도하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다면서 죽고 싶다면서 신을 찾지도 않고 울기만 했다. 토요일까지 침대에 누워 있거나 술에 취해 창가에 앉아 있던 엄마는 일요일이 되면 교회에 나가 성가복을 입고 성가를 불렀다. 나는 맨 뒷줄 장의자 끝에 앉아 성가대석에서 말씀을 듣는 엄마의 옆모습을 봤다. 영원한 미소로 조각된 하얀 석상 같았다. - P-1

하나님께 의지했던 밤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무릎을 꿇고 손마디가 저릴 정도로 두 손을 꽉 쥐고 기도했던 새벽이 있었다. 엄마의 마음을 고쳐주세요. 더는 울지 않게 해주세요. 치유해주세요. 위로해주세요.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저에게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주세요. ‘너의 기도를 들어줄게. 걱정하지 말고 잠에 들거라. 사랑하는 내 딸아.’ 이렇게 한마디만 해주세요. 뭘 해야 한다면 하겠어요. 뭘 그만둬야 한다면 그것도 그만두겠어요. 원하시는 대로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눈물이 흘렀다. 멈추지 않았다. 몸이 떨렸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충만감. 속에서부터 뜨겁게 달아오르는 불같은 마음. 아, 이런 게 신의 섭리인가. 이런 게 하나님의 만지심인가. 울다 잠들었다. 무릎 꿇은 모습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하지만 아침이 오면 변한 건 없었다. 더 악화되기만 했다. 그래도 희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기도했다. 어김없이 눈물이 났고 치유와 내적인 충만 속에 안심하고 잠들었다. 하지만 변화는 없었다. 무의미한 반복 속에 깨달았다. 느낌과 감정일 뿐이다. 착각이고 혼란이다. 믿음이라고 생각했던 건 믿고 싶어하는 간절함의 다른 이름이었다. 어느 새벽. 기도 중 눈을 번쩍 떴다. 보이는 건 없었다. 캄캄한 방 안에 더 캄캄한 사물들이 고요히 서 있을 뿐이었다. 다짐했다. 듣는 이가 없는 혼잣말은 더 이상 하기 않겠어. - P-1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다시는 그 깊은 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더는 상처 속으로 파고들고 싶지 않고 피해의식이 모든 생각과 감정을 덮는 것도 싫다. 희진은 끌려가고 싶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인가. - P-1

그럴 때마다 나는 기도했다. 엄마의 마음을 만져주세요. 정말로 엄마를 변화시켜주세요. 아침이 되어도 이 모습 그대로 지켜주세요. 분명 신은 내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은 듣기만 했다. - P-1

대법원은 이례적인 판결을 내렸다. 아동 학대를 적용해 5년을 선고했던 2심을 깨고 아동 학대 살해죄를 적용해 20년을 선고한 것이다. 그동안 학대로 아동이 죽었을 때 살해죄가 적용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의도성의 유무였다. 과정 속에 학대가 있고 그 결과로 아동이 죽음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죽이겠다는 의도와 의지를 갖지는 않았으리라는 판단이 지배적이었다. 법정에서 부모들은 눈물을 쏟으며 ‘죽을 줄 몰랐다’고 주장했고 그 말은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죽이겠다’는 의지는 없었을지라도 ‘죽어도 상관없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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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둑처럼 문 하나를 열고 내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떠나면서 그는 내게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오히려 은은한 장미향을 남겨놓고 갔다. 그는 도둑이 아니라 날 방문한 피앙세였다. - P-1

내 손님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섹스는 아무 때나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내적인 시계가 있어서,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각자의 시곗바늘이 동시에 같은 시각을 가리켜야 한다. 그런 일이 매일 일어나지는 않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성적 행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서로 사랑하고 함께 있는 두 사람은 놀이와 ‘연극’을 통해 그들의 시곗바늘을 맞추어야 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단순한 만남 이상이라는 것을, 생식기의 ‘포옹’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 P-1

모든 것이 중요하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존재는 매 순간 희열을 느낀다. 그에게는 섹스가 전혀 아쉽지 않다. 그가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은 뭔가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의 잔이 다 채워져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삶의 부름에 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만, 오로지 그 순간에만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

저 바깥에는 수백만의 부부들이 매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도마조히즘을 실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매일 일터로 갔고, 돌아와서는 모든 것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남편은 아내를 괴롭히거나 아내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그들은 자신이 비참하다고 느꼈지만 그들 자신의 불행에 깊이 얽매여 있었고, 하나의 몸짓, 한 번의 ‘더는 못 참겠어’로도 충분히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테렌스 역시 유명한 영국 가수인 아내와 그것을 경험했다. 질투에 사로잡혀 있던 그는 걸핏하면 아내에게 시비를 걸었고, 낮에는 진정제에, 밤에는 술에 취해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지만 그런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 역시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그들이 서로에게 주는 고통이 그들 삶에 꼭 필요한 본질적인 것인 듯했다. - P-1

"그럴 리 없어요. 고통받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당신이 고통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걸 이해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큰 진전일 거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고는 생각지 말아요. 고통받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픔을, 희생을 추구하고 있소. 그 덕분에 그들은 스스로 정당하다고, 깨끗하다고, 자식, 배우자, 이웃, 그리고 신으로부터 존중을 받을 만하다고 느끼는 거요. 아, 이 생각은 그만 접어둡시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중요한 모든 것에 대한 포기라는 사실만 알아둬요. 군인이 적을 죽이기 위해 전쟁터로 나간다고 생각하오? 아니, 그는 조국을 위해 죽으러 가는 거요. 아내가 남편에게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보여주고 싶어한다고 생각하오? 아니, 그녀는 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고생하고 있는지 그가 알아주기를 바라오. 남편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직장에 나간다고 생각하오? 아니, 그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피땀을 바치는 거요. 자식들은 부모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또 부모는 자식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꿈을 포기하오. 아픔과 고통이, 오로지 기쁨만을 가져다주어야 마땅한 사랑의 증거가 되는 거요." - P-1

그녀는 함께 일하는 창녀들을 생각한다. 그녀는 어머니와 친구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남자들이 오로지 매일 11분만을 위해 산다고, 남자들은 그것을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남자들 역시 여성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를 만나기를,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를 갈망한다. - P-1

세상의 모든 언어에는 똑같은 속담이 존재합니다.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도 느끼지 못한다는 속담이죠. 그런데 전 전혀 그렇지가 않다고 감히 단정합니다. 우리가 억누르려고, 잊어버리려고 하는 감정들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마음에는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우리가 유배중이라면, 두고 온 집과 고향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려고 애쓸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다면,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 한 명 한 명에게서 그 사람을 떠올릴 겁니다. - P-1

이상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어떤 도시에 거주할 때는 그 도시를 탐험하는 일을 계속 미루다가 결국에는 그 도시를 전혀 모르는 채 그곳을 떠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P-1

그녀는 고향에 돌아가게 됐으니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그녀를 그토록 따뜻하게 맞아준 도시를 떠나게 되어 슬픈 거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그렇게도 되지 않았다.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 모든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도 잘못된 선택을 하곤 하는 한 영리한 아가씨를 위해 눈물 몇 방울을 흘리는 일뿐이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틀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 P-1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예수를 믿고 있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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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나는 그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았고, 그가 어디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를 잃는다 해도, 나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를 잃었다 해도, 나는 내 삶에서 행복한 하루를 번 셈이니까. 불행의 연속인 이 세상에서 행복한 하루는 거의 기적에 가까우니까. - P-1

그는 남자다. 그리고 예술가다. 그는 알아야 한다. 인간 존재의 목표는 절대적인 사랑을 이해하는 것이고, 사랑은 타인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속에 있다. 그것을 일깨우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하지만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 우리는 타인을 필요로 한다. 우리 옆에 우리의 감정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을 때에야 우주는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그는 섹스에 지쳐 있는 것일까?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 사람이나 나나 섹스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삶의 가장 본질적인 것들 중 하나를 죽어가게 내버려두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가 나를 구원해주길 원하고 있고, 그는 내가 그를 구원해주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주지 않았다. - P-1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요 며칠 동안 계속 그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운명이 그녀의 길 위에 가져다놓은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 P-1

깊은 욕망, 가장 실제적인 욕망, 그것은 누군가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욕망이다. 거기서부터 반응이 일어나고, 남자와 여자의 게임이 시작된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이끌림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순수 상태의 욕망이다.
욕망이 아직 이 순수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 남자와 여자는 삶에 대해 열광하고, 다음번 축복의 순간을 기다리며 매 순간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들은 경솔한 행동으로 사건을 앞당기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불가피한 것은 반드시 발현되리라는 것, 진실은 늘 자신을 드러낼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매 순간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망설이거나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어떠한 마술적 순간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 P-1

마리아는 사랑이 체위에 좌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경우 체위의 변화는 춤의 스텝처럼 자발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만큼 이미 충분한 경험을 했다. - P-1

저자가 히말라야(그녀는 히말라야라는 곳이 어딘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에서 명상을 했고, 다른 많은 책들을 인용한 것으로 보아 그 문제에 관한 많은 독서를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본질적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섹스는 이론, 향, 접촉점, 복잡한 체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하긴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마리아조차도 잘 모르는 것을 어떻게 한 여자(저자는 여자였다)가 왈가왈부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히말라야에서 뭘 잘못 배웠거나, 단순함과 열정 속에 아름다움이 녹아들어 있는 주제를 복잡하게 서술하다 보니 그렇게 꼬여버렸을 것이다. 이런 한심한 책이 버젓이 출간될 수 있다면, 마리아 역시 자신이 구상한 ‘11분’의 집필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서술할 생각이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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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의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옷만 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삶은 그녀에게 가르쳐주었다. 아무렇게나 차려입은 사람들이 실은 정장에 넥타이를 맨 사람들보다 훨씬 더 부자라는 사실을.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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