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진은 친절하게 다가오는 간호사의 말이 관심과 애정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안쪽을 까보면 자신을 향한 비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해하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죄책감을 심는 다정한 질문들. 사고 이후 유희진은 많은 이의 시선을 받았다. 위로인지 오지랖인지 알 수 없는 막막하고 답 없는 말들과 답답한 침묵들. 어둡게 있으면 불쌍한 인생이라 동정했고 밝게 있으면 무정하다고 수군댔다. 나중엔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평소에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나?’ ‘사고 당일 엄마는 어떤 상태였나?’ ‘엄마가 자살을 시도했을 때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술 취했을 때 엄마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엄마가 알코올의존증 치료를 중간에 그만둔 이유는 무엇인가?’ ‘평소 엄마와 딸의 관계는 원만했었나.’ 사실대로 말했고 아는 대로 말했다. 모르는 건 모른다 했고 아닌 건 아니라 했다. 그러나 경찰은, 몇몇 기자는, 꼭 들어야 하는 대답이 있는 것처럼, 듣고 싶은 대답이 있는 것처럼, 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엄마가 그렇게 돼서 힘들겠다는 걱정 어린 말을 하는 이들은 반드시 힘들게 하는 말도 덧붙였다는 것을 유희진은 기억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엄마를 들먹이며 다가오는 이들은 다 자신을 힘들게 한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잠잠해졌다고 생각한 몇몇 기억이 눈을 뜨고 입을 벌려 유희진의 마음은 복잡하고 뜨거워졌다. 어떤 엄마는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 어떤 아이는 엄마를 돌본다. 다정한 엄마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걸까? 엄마 역할을 맡은 연기자들은 아닐까? 엄마와의 일화는 동화가 아니다. 동화에 감춰진 저주에 가깝지. 엄마는 자기 상처를 내게 보임으로써 느리고 긴 치료를 받았다. 딸에게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고 딸은 이해할 거라 생각했다. 엄마는 냉대를 받았다, 했다. 되는 일이 없었고 집단에게 배제됐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했다. 목격한 적은 없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달랐다. 엄마는 타인의 눈빛에서 자신을 향한 무시를 읽고 말투에서 멸시를 느꼈다. 마트 캐셔의 건조한 인사에 마음이 상했고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을 때 공무원의 평범한 질문에도 분노를 느꼈다. 성가대원들이 자신을 따돌린다고 생각했고 권사님들이 모일 때마다 자기 흉을 본다고 괴로워했다. 엄마는 삶을 바꾸려고 표정과 행동을 바꿨다. 집 밖에서의 엄마는 필요 이상으로 친절했고 누구든 배려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저자세로 살았다. 엄마를 분노하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에 나는 엄마를 불쌍히 여겼다. 하지만 어린 딸에게 분노를 표현할 땐 잔인하고 비겁했다. 어느 순간부터 우는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 연민도 동정도 들지 않고 화만 났다. 웅크리고 우는 모습이 늙은 개가 짖는 것 같았다. 저 입을 틀어막고 싶었고 그럴 때마다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 P-1

꼬박 사흘 하고 반나절을 침대에 누워 있었다.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설정하고 뒤집어놓았다. 어디냐 묻는 문자엔 휴가 중이고 여행지에 있다고 했다. 암막커튼으로 창과 빛과 시간을 가렸다. 약통을 열었다. 한 알을 삼켰다. 잤고, 자려 했고, 잠에서 깨면 다시 한 알. 한 번씩 완전히 방전시키고 텅 빈 자리를 느리게 채우는 것. 유희진의 회복 방식이었다. - P-1

집에서는 달랐다. 노래하지 않았고 기도하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다면서 죽고 싶다면서 신을 찾지도 않고 울기만 했다. 토요일까지 침대에 누워 있거나 술에 취해 창가에 앉아 있던 엄마는 일요일이 되면 교회에 나가 성가복을 입고 성가를 불렀다. 나는 맨 뒷줄 장의자 끝에 앉아 성가대석에서 말씀을 듣는 엄마의 옆모습을 봤다. 영원한 미소로 조각된 하얀 석상 같았다. - P-1

하나님께 의지했던 밤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무릎을 꿇고 손마디가 저릴 정도로 두 손을 꽉 쥐고 기도했던 새벽이 있었다. 엄마의 마음을 고쳐주세요. 더는 울지 않게 해주세요. 치유해주세요. 위로해주세요.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저에게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주세요. ‘너의 기도를 들어줄게. 걱정하지 말고 잠에 들거라. 사랑하는 내 딸아.’ 이렇게 한마디만 해주세요. 뭘 해야 한다면 하겠어요. 뭘 그만둬야 한다면 그것도 그만두겠어요. 원하시는 대로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눈물이 흘렀다. 멈추지 않았다. 몸이 떨렸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충만감. 속에서부터 뜨겁게 달아오르는 불같은 마음. 아, 이런 게 신의 섭리인가. 이런 게 하나님의 만지심인가. 울다 잠들었다. 무릎 꿇은 모습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하지만 아침이 오면 변한 건 없었다. 더 악화되기만 했다. 그래도 희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기도했다. 어김없이 눈물이 났고 치유와 내적인 충만 속에 안심하고 잠들었다. 하지만 변화는 없었다. 무의미한 반복 속에 깨달았다. 느낌과 감정일 뿐이다. 착각이고 혼란이다. 믿음이라고 생각했던 건 믿고 싶어하는 간절함의 다른 이름이었다. 어느 새벽. 기도 중 눈을 번쩍 떴다. 보이는 건 없었다. 캄캄한 방 안에 더 캄캄한 사물들이 고요히 서 있을 뿐이었다. 다짐했다. 듣는 이가 없는 혼잣말은 더 이상 하기 않겠어. - P-1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다시는 그 깊은 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더는 상처 속으로 파고들고 싶지 않고 피해의식이 모든 생각과 감정을 덮는 것도 싫다. 희진은 끌려가고 싶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인가. - P-1

그럴 때마다 나는 기도했다. 엄마의 마음을 만져주세요. 정말로 엄마를 변화시켜주세요. 아침이 되어도 이 모습 그대로 지켜주세요. 분명 신은 내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은 듣기만 했다. - P-1

대법원은 이례적인 판결을 내렸다. 아동 학대를 적용해 5년을 선고했던 2심을 깨고 아동 학대 살해죄를 적용해 20년을 선고한 것이다. 그동안 학대로 아동이 죽었을 때 살해죄가 적용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의도성의 유무였다. 과정 속에 학대가 있고 그 결과로 아동이 죽음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죽이겠다는 의도와 의지를 갖지는 않았으리라는 판단이 지배적이었다. 법정에서 부모들은 눈물을 쏟으며 ‘죽을 줄 몰랐다’고 주장했고 그 말은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죽이겠다’는 의지는 없었을지라도 ‘죽어도 상관없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