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벽된 말을 들으면 그 가려진 것을 알고, 방탕한 말을 들으면 그 함정을 알며, 간사한 말을 들으면 그 도리에 어긋난 바를 알고, 회피하는 말을 들으면 그 논리의 궁함을 안다. - P139

맹자가 말하였다. "물고기도 내가 원하는 것이요,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택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요, 의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택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삶보다 더 원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삶을 구차하게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도 내가 싫어하는 것이지만,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환난도 굳이 피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삶보다 더한 것이 없다면, 삶을 얻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어찌 쓰지 않겠는가? 가령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 죽음보다 더한 것이 없다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어찌 쓰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살 수 있는데도 쓰지 않음이 있으며, 이 때문에 화를 피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음이 있다. 이런 이유로 삶보다 더 원하는 것이 있으며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으니, 오직 현자만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데 현자는 이것을 잃지 않을 뿐이다." - P158

그러므로 ‘하지 않는 바가 있는’ 견자는 인격을 끌어올릴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인생의 원칙은 ‘하지 않는 바’에서부터 세워지는 것이다. - P166

공자가 안연에게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고 가르친 것이나, 맹자가 "예가 아닌 예, 의가 아닌 의를 대인은 하지 않는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고, 하고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자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한 말은 모두 ‘하지 않는 바’를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라도 불의를 행하거나, 한 사람이라도 무고하게 죽여서 천하를 얻는 것은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지 않는 바’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이처럼 견자의 ‘하지 않는 바’는 세속적인 것과 단절하고 도를 확고히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인격을 끌어올리는 첫 번째 관문이다. "사람은 하지 않는 것이 있은 뒤에야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라는 맹자의 말은 정곡을 찌르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사람은 반드시 ‘견자’가 된 후에야 비로소 ‘광자’가 될 수 있다. 이처럼 견과 광은 서로 통한다. - P166

…오늘날에 이르러 유가 윤리 규범의 효용성은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문화적 반성을 통하여 볼 때, 유가 윤리 자체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응용상에 있어서 시대적·사회적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윤리 규범을 표현하는 방법상의 문제이다. 과거의 표현 방식에 대해 전반적인 조정이 필요하며, 반드시 시대적·사회적 상황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 P172

불인에 안주하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인심이고, ‘깜짝 놀라고 측은해 하는 마음’이다. 성왕은 백성과 더불어 좋아하고 싫어하며, 백성과 더불어 즐거워하고 근심한다. 이처럼 성인의 몸에 충만한 것이 ‘측은지심’이다. 그러므로 ‘인심을 미루어 인정을 실행’할 수 있다. ‘헤아리다·추측하다’라는 의미의 ‘추’는 유가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정신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것은 자신을 미루어 남을 생각하는 ‘서’이고, "자신이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며,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면 남도 도달하게 하라"라는 것은 ‘서’의 더욱 적극적인 표현이다. 맹자에 이르러 이러한 도리는 더욱 발휘되었다. - P1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 학파들에게 우선 공통이라 여겨지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이론 측면을 넘어서 실천 측면에 우위성을 두는 태도다. - P28

그리하여 이에 하나의 질문이 뒤따르게 된다. "만일 참됨도 거짓됨도 마지막까지 증명할 수 없는 것이라면, 도대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 이론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받아들이지 말지 하는 문제를 결정하게 하는가?" - P33

즉 ‘도대체 무엇이 실제로 갈릴레이로 하여금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을 뒤따르게 했고, 반대로 프톨레마이오스의 견해를 거부하도록 했기에, 그가 한편에 대해서는 참되다고 하고 다른 편에 대해서는 그릇되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질문은 분명 다음 물음을 먼저 해결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곧 ‘객관적인 판단기준이 부재할 경우, 도대체 무엇이 그 어떤 이론이 참되다거나 그릇되다는 믿음을 결정하는가?’ 하는 물음 말이다. - P33

헬레니즘 시대의 사상가들은 물론 핵심적인 관건을 단연 인간의 실천적인 측면에 두었기에, 모든 이론적인 학문은 그들에게 그 같은 관심에 입각해서만 합당하고 절실하게 요구되었을 것이다. - P42

에피쿠로스학파에게 쾌락이 혹은 스토아학파에게 미덕이 마치 절대적인 목적이듯 생각되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에우다이모니아만이 그 두 학파 혹은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가치로서 그로부터 다른 모든 가치들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이다. - P50

이러한 태도에 상응하여 한 가지 확실한 경향으로서 그 발전도상에서 점차적으로 더 강하게 ‘수동적인 태도’가 부각되었다. 사람들은 가능한 한 자신의 고유한 행복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거나, 그들의 세계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아주 적은 능력만을 행사할 뿐이라고 믿거나, 나아가 행복을 위해 애쓰는 경우가 오히려 행복에서 멀어지도록 만든다는 생각에 길들여졌다. 사람들은 스스로 행위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행해져야 할 여러 다그침에 기껏 순응하는 데 만족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사람들 각자 고유의 능력에 따라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신뢰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 P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관 정신은 도덕 인격의 근거로서 이것을 소홀히 하면 모든 정신이 그 근본을 상실하게 된다. 객관 정신은 도덕 이성이 외부로 펼쳐지는 것으로서 이것을 소홀히 하면 절대·주관 정신 모두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다. 절대 정신은 모든 정신의 귀착점으로서 이것을 소홀히 하면 인류는 안식처를 잃게 된다. - P39

만약 자발성이 있다면 스스로 노력을 쌓아 선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자발성이 없다면 근본적으로 노력을 쌓으려는 의지도 없을 것이며, 또 쌓도록 억지로 시킬 수도 없음은 당연한 이치이다. - P81

맹자는 인의예지란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것’으로 ‘내가 본래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임을 긍정하였다. 인간은 모두 선한 심성을 가지고 있으며, 배우지 않아도 아는 양지와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양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선천적으로 본래 가지고 있는 선한 심성과 양지·양능을 확충해 나가기만 하면 선한 덕행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은 완전히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으며 외부에서 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각적·자주적이며, 도덕적 역량 또한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나온다. - P81

그러므로 맹자는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일시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든지 혹은 ‘물욕에 빠져 있는 것’일 뿐이다. 인간의 양지와 본심은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반드시 불안해하며, ‘물욕에 빠져 있는 것’에 대해 참지 못한다. 이 불안불인한 마음이 언제나 인간에게 경각심을 촉발시키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도덕 법칙에 대해 기뻐하며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함으로써 도덕을 실천하고 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 P81

이로써 볼 때, 순자가 말하는 심에 주재 능력이 있음은 분명하다. 몇몇 논자들 역시 이에 근거하여 순자가 말한 심에는 ‘자유 의지’가 있다고 말한다. 심에 자유 의지가 있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심은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과 심은 스스로 법칙을 세우고 그 법칙에 의거하여 자주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전자는 인지심의 관점에서 말하는 자유 의지이며, 후자는 도덕심으로서 자주적이고 자율이며 창조적인 자유 의지다. 순자가 말하는 인지심의 자유 의지는 전자에 속하며, 맹자와 정통 유가에서 말하는 도덕심의 자유 의지는 후자에 속한다. - P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희경_ 요즘 청년들은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뒤늦은 사춘기를 겪는다고 합니다. 소위 명문대라는 곳에서 우울이 심해진다고 하는데요. 제가 아는 한 의대 교수님은 연구실에서 캠퍼스를 내려다보면 ‘폭탄들이 걸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걱정스럽다고 말씀하셨어요. 스스로를 해치고 남도 해칠 수 있는 상태로 내몰리고 있어서요.

최재천_ 예전에 제가 카이스트 총장님에게 뵙고 싶다고 연락한 적이 있습니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였어요. 카이스트는 모든 학생이 장학금을 받으며 들어왔는데 당시에 경쟁 체제를 도입했습니다. 학점이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 학비 일부를 내도록 하면서 그 과정에서 두 명이 목숨을 끊었죠.
하버드대학교에서 기숙사 사감을 맡으며 경험한 제도를 말하고 싶었어요. 하버드대학교의 경우, 1학년생은 하버드 야드Harvard Yard에 있는 1학년 기숙사에서 지내고, 2학년부터 하우스House라고 부르는 고학년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요. 기숙사마다 마스터라고 불리는 책임자가 있어요. 마스터는 덕망 있는 교수님이 맡고, 부교수 정도 되는 사람이 시니어 튜터를 맡아요. 그리고 저와 같은 조교들이 튜터를 맡습니다. 분야별로 열 명 남짓 있어요.
제가 7년 동안 튜터를 맡았는데요. 튜터가 하는 일은 학생들과 함께 밥 먹는 일입니다. 제가 맡은 아이가 열네 명 정도인데, 수시로 같이 밥을 먹으면서 그 아이의 상황을 살폈어요.

안희경_ 온몸으로 아이의 일상을 느끼신 거군요.

최재천_ 별말이 아니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느낌이 오죠. ‘이 아이가 요즘 상당히 시달리고 있구나‘ ‘성적이 잘 안 나오나 보다.‘ 튜터 회의에서 "제 학생 한 명이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면, 시니어 튜터가 그 학생에게 면담을 요청해요. 시니어 튜터는 저보다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죠. 학생들은 ‘실연당했다‘ ‘성적이 떨어졌다‘ ‘가족 문제가 있다‘ 등의 고민을 풀어놓습니다. 그러면 모두가 그 아이를 도와줍니다.
코넬대학교는 목숨을 끊는 학생들이 매우 많습니다. 학교 안에 자살하는 장소가 있을 정도예요. 계곡에 있는 구름다리에서 그렇게들 뛰어내립니다. 아이비리그의 자살률이 상당히 높아요. 하버드대학교는 자살률이 비교적 낮습니다. 물론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도 있지만요. 저는 그 튜터 제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튜터가 부모처럼 열몇 명 학생들을 계속 살피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학교에서 대신 돌봐주니까요.
카이스트는 전국에서 학생들을 뽑아 대전에 묶어 두고 있잖아요. 튜터 시스템을 도입하시라고 권하고 싶었습니다. 학교 옆에 부지를 확보하여 서울에서 오가는 교수들이 머물 게스트 하우스를 짓고, 학생들과 어울리게 하면 서로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만남을 잡기 전에 총장님이 사임하셔서 제 의견을 전하지는 못했어요. 이제라도 여러 학교에서 튜터 제도를 도입하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희경_ ‘요즘 젊은이들의 문해력이 떨어졌어‘라고 이야기하는 대다수는 기성세대인데요. 과거의 눈으로 내린 평가라고 봅니다. 요즘은 정보의 파편을 모아서 하나의 상으로 완성할 수 있는데, 예전에는 책처럼 잘 짜인 완성본을 읽어야 제대로 봤다고 여겼잖아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떠오른 생각인데요. 젊은 세대의 접근이 백과사전식이라고 했을 때, 정보를 조각조각 취합하는 중간중간에 생각을 여는 스파크가 튀면서, 자기 생각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 싶어요.
최재천_ 네. 정확한 파악이네요. 동의해요. 문화인류학자 김정운 선생님은 "모든 게 편집이다"라고 말합니다. 상당히 의미 있는 말이에요. 지금 인터넷을 뒤지는 젊은 세대는 스스로 편집합니다. 기성세대는 명저 한 권을 붙들고 흡수했죠. ‘이 대가가 이렇게 이야기하시는구나‘라면서 쭉 읽고, ‘다 이해했어‘ 하며 책을 덮었습니다. 이해했다는 건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거죠. 젊은 세대는 스스로 여러 정보를 검색해 나름대로 취사선택하고, ‘뭐 이래?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라고 판단도 하면서 그 화면은 닫고 다음 걸 읽죠. 자기가 편집을 합니다. 저는 그 방식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