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경_ 요즘 청년들은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뒤늦은 사춘기를 겪는다고 합니다. 소위 명문대라는 곳에서 우울이 심해진다고 하는데요. 제가 아는 한 의대 교수님은 연구실에서 캠퍼스를 내려다보면 ‘폭탄들이 걸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걱정스럽다고 말씀하셨어요. 스스로를 해치고 남도 해칠 수 있는 상태로 내몰리고 있어서요.
최재천_ 예전에 제가 카이스트 총장님에게 뵙고 싶다고 연락한 적이 있습니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였어요. 카이스트는 모든 학생이 장학금을 받으며 들어왔는데 당시에 경쟁 체제를 도입했습니다. 학점이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 학비 일부를 내도록 하면서 그 과정에서 두 명이 목숨을 끊었죠.
하버드대학교에서 기숙사 사감을 맡으며 경험한 제도를 말하고 싶었어요. 하버드대학교의 경우, 1학년생은 하버드 야드Harvard Yard에 있는 1학년 기숙사에서 지내고, 2학년부터 하우스House라고 부르는 고학년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요. 기숙사마다 마스터라고 불리는 책임자가 있어요. 마스터는 덕망 있는 교수님이 맡고, 부교수 정도 되는 사람이 시니어 튜터를 맡아요. 그리고 저와 같은 조교들이 튜터를 맡습니다. 분야별로 열 명 남짓 있어요.
제가 7년 동안 튜터를 맡았는데요. 튜터가 하는 일은 학생들과 함께 밥 먹는 일입니다. 제가 맡은 아이가 열네 명 정도인데, 수시로 같이 밥을 먹으면서 그 아이의 상황을 살폈어요.
안희경_ 온몸으로 아이의 일상을 느끼신 거군요.
최재천_ 별말이 아니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느낌이 오죠. ‘이 아이가 요즘 상당히 시달리고 있구나‘ ‘성적이 잘 안 나오나 보다.‘ 튜터 회의에서 "제 학생 한 명이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면, 시니어 튜터가 그 학생에게 면담을 요청해요. 시니어 튜터는 저보다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죠. 학생들은 ‘실연당했다‘ ‘성적이 떨어졌다‘ ‘가족 문제가 있다‘ 등의 고민을 풀어놓습니다. 그러면 모두가 그 아이를 도와줍니다.
코넬대학교는 목숨을 끊는 학생들이 매우 많습니다. 학교 안에 자살하는 장소가 있을 정도예요. 계곡에 있는 구름다리에서 그렇게들 뛰어내립니다. 아이비리그의 자살률이 상당히 높아요. 하버드대학교는 자살률이 비교적 낮습니다. 물론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도 있지만요. 저는 그 튜터 제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튜터가 부모처럼 열몇 명 학생들을 계속 살피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학교에서 대신 돌봐주니까요.
카이스트는 전국에서 학생들을 뽑아 대전에 묶어 두고 있잖아요. 튜터 시스템을 도입하시라고 권하고 싶었습니다. 학교 옆에 부지를 확보하여 서울에서 오가는 교수들이 머물 게스트 하우스를 짓고, 학생들과 어울리게 하면 서로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만남을 잡기 전에 총장님이 사임하셔서 제 의견을 전하지는 못했어요. 이제라도 여러 학교에서 튜터 제도를 도입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