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曰,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예문서원 연구총서 37
안재호 지음 / 예문서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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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님 말씀에 대해서, 적어도 작년 이맘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물론 여태까지 몰랐더라도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공자에 대해 알고 나니, 그가 유명한 철학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일관된 목표와 철학을 일찍이 정립하였으며 그것을 위하여 평생을 살아갔다는 사실이 인상깊었고, 그것이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였다. 역시 나는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에...

 공자에겐 일관된 철학 체계를 통해서 이루고자 한 실천적 목표가 있었다. 그것은 곧, 주(周)나라 대의 문물을 그가 살았던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다시금 펼쳐 놓는 일이었다. 제자백가가 등장해 저마다의 혼란 극복 방안을 내세웠던 당대에, 공자는 ‘예(禮)를 통한 인(仁)의 실천‘이 세상의 혼란을 잠잠케 하며, 사람들이 잘 살아가도록 하는 데 반드시 큰 기여를 할 것을 확신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예를 통한 인의 실천‘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들에게 가진 정성스런 마음을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 마음이 과하거나 혹은 상황에 맞지 않다면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거나, 심하면 오히려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이에 공자는 ‘예‘의 필요성을 내세운다. 예는 형식이나 규범, 절차와 같은 것인데,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로는 전통적으로 ‘관혼상제‘의 네 가지가 있다. 이렇듯, 이미 확립돼 있는 절차는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적절한 정도로 전달하게 하고, 예가 갖추어진 마음을 받는 상대방도 절차의 실행으로부터 정성스러운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을 담지 않고서 오직 ‘예‘만 강조하는 경우다. 이러한 상황은 이제까지 유학이 욕을 먹었던 이유 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자식에게,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학생에게, 군대에서는 선임병이 후임병에게 예의 실행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훌륭한 인품을 드러냄으로써 존경의 마음을 갖게 하기 보다는, 정작 본질과 의도는 오래 전에 이미 잊혀버린 예를 준수하기를 강요하는 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부모를 봉양하는 일이 개돼지를 먹이는 것과 다른 까닭은 바로 공경하는 마음, 즉 ‘인‘이 담겨 있는가의 여부에서 온다. 즉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이성뿐 아니라 감성도 필요하다‘는 것인데...

 한편, 요즘에는 그 반대의 경우가 문제될 소지도 무척 많다는 생각도 든다. 예는 집어치우고 오직 인만 내세우는 경우가 그것이다. 개인주의의 심화에 따라 점차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예가 있는지 의문스러워진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저 사람의 예는 내가 생각하는 예와 크게 다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해서 상대의 마음은 생각도 않은 채, 무작정 상대에게 들이대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공자에 따르면, 이러한 문제 상황들에 있어서 예의 기준은 바로 ‘의(義)‘가 된다. 의는 정당함, 공정함을 뜻한다고 한다. 이를 명심하지 않으면 위와 같은 상황들이 수도 없이 발생할 것 같다. 형식이나 규범은 시대나 사회마다 다르지만, 의로써 분별한다면 바람직한 예를 알고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이상으로 내가 이해한 공자님 말씀을 책을 참고해 대략 정리해 보았다. 공자가 살다 간 시대는 지금보다 대략 이천 오백여 년이 앞선 시기이나, 그 가르침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지혜를 제공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 최근에, 특강 하나를 수강 신청했다. 강의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중간에 알아 뒤늦게 신청했기 때문에, 어제가 나에겐 첫 수강날이었다(강의는 이미 네 차례 진행되었다). 강사분께서 하신 말씀 중 인상 깊은 것이 있다. ˝사람은 살아가는 데 이성만 사용할 게 아니라 감성도 써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5개월 전 즈음에 누군가 내게 했던 말과 내용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수화기 너머로 이 말을 들었을 때부터 줄곧 머릿속에 화두처럼 품고 다녔는데, 비슷한 말을 다시 들으니 약간 신기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의미가 무엇일까를 다시 곱씹어보게 되었다.
 특강 주제는 주역이고, 매주 수요일 저녁에 열린다. 작년 학교 수강신청 때 주역의 세계를 신청했다가, 신청인원 미달로 폐강되어 강의를 듣지 못한 뼈아픈 기억이 있다. 올해에는 주역과 인연을 맺을 수 있어 정말 반갑다.
 이번 주 강의에 따르면, 합리적•이성적 사고로는 현재 당면한 문제의 해결이 도저히 불가능할 때, 주역은 점이라는 비합리적•감성적 수단을 통해 위기 탈출 프레임을 제공함으로써, 합리적 현실 세계로의 복귀를 돕는다고 한다(알다시피 애당초 현실 문명 세계는 모두 이성적 토대 위에서 돌아간다). 다음 주에는 주역점 치는 방법까지 알려준다고 한다. 그냥 원전 강독 강의인줄로만 알았는데, 뭔가 뜻밖의 기회인 듯. 이번 기회에 잘 익혀둬야겠다.


32 성인: 그의 자유와 공부

‘공부’란 한때 우리가 이소룡의 무술영화 속에서 볼 수 있었던 ‘쿵후’,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하는 ‘공부’, 그리고 산속에 들어가 ‘도를 닦는 것’ 등 그 모두를 포함한다. 다시 말해서,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을 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전부 ‘공부’에 속한다. 그러나 공구와 같은 자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주로 도덕적 수양을 공부로 한다. 도덕적 수양이란 무엇인가?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이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내가 먼저 닭살이 일어나게 되는(물론 감동적이어 33 서) 공구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도덕 수양의 대강을 살펴볼 수 있다.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사람을 탓하지 말며, 아래에서 배워 위에 도달하니 나를 아는 이 하늘이로고!

이 이야기는 사실 공구가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한탄하며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평소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좀 더 의역하면 이렇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원망하지 않고 책임이나 결과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않으며, 구체적 현실 속에서 이치를 터득하여 결국에는 전 우주에 두루 통하는 원리를 깨달으니 인격신과 같은 하늘이 있다면 그가 나를 알아줄 것이다. - P32

37 그런데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터득하는 이치는 결과적으로 도덕적인 것이지만, 결코 인간세계의 도덕적인 정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나아가 우주 운행의 원리와 상통하게 된다. 정말 그런가? 확인할 수 없다. 그것은 일종의 철학적 신념이다. 공구와 그의 후학들, 그리고 거의 모든 유학자는 전부 그런 철학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신념은 공구보다 훨씬 앞선 고대 중국의 지식인들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주에서 가장 주요하고 훌륭한 요소들에 의해 구성되었고 그래서 또한 우주의 총체적인 원리가 인간에게 입력되었는데, 그렇게 입력된 원리가 인간의 잠재된 본성(潛在性, 즉 있긴 분명히 있어서 조건만 충족되면 나타나지만 물에 잠겨 있듯 현실적으로는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 본성)을 이루었으며 그 잠재된 본성을 언제 어디서나 온전히 표현해 내는 이가 바로 요순과 같은 성인이다. 그런데 성인은 우리와 다른 어떤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바로 도덕적 완벽을 이루어 자유로운 사람이다. 결국 인간에게 잠재된 본성의 내용이란 바로 도덕이며, 나아가 인간의 잠재성과 우주의 원리는 도덕을 매개로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서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 38 서 공구는 자신이 "전 우주에 두루 통하는 원리를 깨달으니 인격신과 같은 하늘이 있다면 그가 나를 알아줄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 P37

83 이런 문제는 사실 예의 올바른 기준을 묻는 것이다. 공구는 이런 문제를 고려했을까? 당연히 고려했다. 공구는 철학자 아닌가! 철학자는 사상가와 다르다. 사상가는 단지 어떤 특정한 분야에 깊이 있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철학자는 전 우주로부터 구체적인 인생에 이르기까지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와 사상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철학자인 공구가 제시한 기준이란 바로 ‘의義’이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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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언어철학
박병철 지음 / 서광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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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철학 강의 듣다가 도저히 못 따라가겠다는 생각에 빌려 읽은 책. 저자분께서 쉽게 써 주신 덕분에 조금은 이해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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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골든아워 2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13-2018 골든아워 2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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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교수님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기록한 외상외과 현장 이야기가 《골든아워》 2권에 담겼다. 이 교수님의 그동안의 헌신이, 선진적인 중증외상 의료체계가 우리나라에 확고히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간호사나 일반 행정직 역시 승진 여부에 희비가 날카롭게 엇갈렸다. 직급과 직함의 차이일 뿐인데도 모두들 직위 변화에 예민했다. 조직 내에서 승진이나 진급이 갖는 의미는 직위에 따른 처우 차이도 있겠으나 한국 사회 분위기와도 연관돼 있다. 대부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에 걸맞은 직급을 원하고,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 상사가 되는 경우를 꺼린다.
런던에서 근무할 때 병동의 수간호사는 불혹(不惑)을 갓 넘긴 나이였다. 그 아래에서 일하는 말단 간호사들 중 몇몇은 예순에 가까운 나이였으나 누구도 나이에 따른 직급의 수직 서열화를 말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그럴 수 없다. 그나마 의사 쪽은 젊은 교수들이 주임교수가 되면서 실제 일이 가장 많은 연령층으로 보직이 내려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간호와 행정 쪽은 변화가 적어 연공서열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헤어져 돌아와보니 변변한 위로 한마디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짧은 말이라도 건네고 싶어 휴대전화 메신저 창을 열었다. 조현철의 이름 옆에 쓰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고귀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겐 보상이다.’
스스로를 향한 위로였을 테지만 이정엽이 한 말과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국가관이 투철하다고 해도 진급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을 것이다. 조현철은 흔들리는 자신을 부여잡고 있었다. 나는 몇 글자를 적다 말았다. 말 없는 세상이 어울리는 그에게는 그 어떤 말도 불필요할 것 같았다.

시간은 없고 환자는 죽어가고 있었다. 보호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행히 환자는 크게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고 보호자들은 가진 재산을 총동원해서라도 환자를 데려오겠다고 했다. 환자의 자녀들은 부친에게 받은 사랑이 컸다며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고 마음을 모았다. 돈이 많다고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환자가 좋은 아버지였고 좋은 가정을 꾸려왔음을 짐작했다.

수개월이 지났다. 환자는 안정되는 양상을 보였으나 회복되지는 않았다. 보호자들은 모든 심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해 환자에게 쏟아부었다. 종국에는 실험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에까지 나섰다. 그러나 더 이상 호전되지 않았다. 환자는 살아 있으나 다시 살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보호자들의 지치지 않는 노력이 고마웠다. 그 고마움을 전하자 보호자들은 되레 내 처지를 걱정했고, 결국 환자를 재활 전문병원으로 전원시키겠다고 했다. 보호자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결정을 막지 않았다.

전원 간 지 반년이 지나 환자의 딸은 환자가 편히 영면했다고 알려왔다. 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환자의 사고를 둘러싸고 수많은 말들이 떠돌았으나 환자는 끝내 사망했다. 사고 당시의 상황을 유일하게 알고 있던 당사자가 없어졌다. 나는 그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환자는 행복한 마지막을 보냈을 것이다. 혼란 속에서도 그것 하나만은 선명했다. 죽음이 누구에게든 동일하지만 모두에게 같은 모습으로 오지는 않는다. 나는 버려진 죽음을 수없이 보아왔다. 가족이 없고 돈이 없어서 쓸쓸하게 허물어져 가는 목숨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므로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이 이처럼 모든 것을 다 쏟아붓는 상황은 아무나 받는 축복이 아니다. 그 지점에서만큼은 분명히 행복했을 환자였다.

김재근과 저녁 약속이 있던 날, 그의 연구실로 찾아갔다. 함께 직원 식당으로 이동할 참이었다. 그의 연구실 앞에 도착했을 때 살짝 열린 문틈으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손님이 찾아온 듯했다. 이어지는 대화에 나는 복도 벽에 기대어 섰다. 들려오는 이야기로 손님이 학생임을 알았다. 김재근은 의과대학 학생 부장을 맡고 있었으므로 학생들과 면담할 자리가 더 많았을 것이다. 김재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학생은 나도 아는 친구였다. 계속 유급을 당하고 있는 학생이었는데 더는 의과대학 생활을 이어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사회가 의사에게 기대하는 바는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의사가 방대한 의학지식을 갖춰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것이 남의 생사에 깊숙이 관여하는 자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 기본을 다지기 위한 의과대학 시절의 교육 과정은 살인적이다. 학업의 양마저 주어진 시간 안에 마칠 수 있는 것이 아닌 탓에 의과대학 시절은 한계에 부딪치고 깨질 수밖에 없다. 좌절과 실망을 기본 값으로 삼아 겸손해져야 하는 때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까지 늘 잘하는 축에 속했던 학생들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그 지옥을 건너며 많은 학생들이 방황하고 좌절하다 진급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한두 차례의 유급은 극복이 가능하지만 낙오가 거듭되면 정신적으로 의대 학업을 지속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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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3-30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었지만, 베텔게우스 님의 서재에서 다시 읽으니 새롭습니다.
베텔게우스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베텔게우스 2019-03-31 20:5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남은 주말과 새로운 한 주 즐겁게 보내세요^^
 
[전자책] 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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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교수가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외상외과 현장을 담아 써내려간 기록들이 《골든아워》 1권에 담겼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외상외과 의료진들은 ‘생과 사의 경계‘에 놓인 환자들을 다시 삶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해적의 총에 부상당한 석해균 선장을 이송하여 치료하는 과정이 1권의 하이라이트.

봄이 싫었다. 추위가 누그러지면 노동 현장에는 활기가 돌고 활기는 사고를 불러, 떨어지고 부딪혀 찢어지고 으깨진 몸들이 병원으로 실려 왔다. 봄기운에 밖으로 이끌려 나온 사람들이 늘었고, 늘어난 사람만큼 사고도 잦아 붉은 피가 길바닥에 스몄다. 병원 밖이 형형색색 꽃으로 물들 때, 나는 무영등* 아래 진득한 핏물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마취과 기계들이 뿜어내는 기계음이 귓가에서 계속 울려댔다. 비릿한 피 냄새가 폐 속에 깊이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매년 봄마다 중국발 황사가 시작되면 매캐한 바람이 숨을 더 틀어막았다. 봄은 내게 피와 죽음의 바람이 부는 계절이었다.

*  광원(光源)을 집중시켜서 목적하는 부위에 그림자가 생기지 않도록 빛을 비추는 전등 장치. 주로 수술실에서 쓴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통상적인 인간관계와 다르지 않다. 외래 진료와 정규 수술을 근간으로 하는 대부분의 의료 분야에서 환자와 의사의 관계 형성은 중요하다. 관계가 초기에 제대로 형성되어야만 치료를 진행해나갈 수 있다. 환자는 첫 담당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담당의를 바꾸는 편이 낫다. 의사도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는 환자의 몸에는 칼을 대기 어렵다.

수술 시 혈액은 필수적인데 피의 주요 세포 성분은 아직까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인공 혈액에 대한 수많은 연구는 답보 상태로, 의학의 정체구간이다. 결국 중증외상 환자는 수술 시 남의 피를 받아 넣어야만 한다. 물론 타인의 피는 짧으면 수일, 길어야 한 달이면 자신의 골수에서 만들어진 제 피로 갈음되지만, 거의 죽다 살아난 중증외상 환자들이 사고 전과 달리 좋은 방향으로 인성 변화를 보일 때마다 나는 궁금했다. 선한 의지와 함께 기증된 선한 이들의 좋은 피가 수혈받은 사람에게 정서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나는 검사 결과를 설명한 끝에 사회생활로의 복귀를 이야기했다.
― 이제 몸이 허락하는 한 가벼운 일은 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전보다는 아직 많이 힘들 테니 무리는 하지 마세요.
나는 약간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 이제는 어떤 일을 하실 생각이세요?
남자가 여자와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둘은 마주 보며 엷게 웃었다.
― 전에 하던 일들이 좀 그런지라…….
남자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잠시 그렇게 있다가 다시 얼굴을 들고 나를 보았다. 어떤 결의가 느껴졌다.
― 고향에 내려가려고요. 이 친구하고 함께요. 농사라도 작게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이젠 다르게 살아볼 생각입니다.
도시의 밤거리가 익숙하던 두 사람이 흙을 만지는 고된 노동을 감당할 수 있을지 염려되었으나, 나는 그런 우려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 그래요, 처음엔 좀 힘들 수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좋아질 겁니다.
―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외래 진료실을 떠날 때까지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모든 환자가 수술 이후 큰 변화를 겪는 것은 아니다. 치명적이지 않은 상처로 수술을 받고 비교적 쉽게 회복되는 환자들 가운데 불사조라도 된 듯 의기양양해하는 이들도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정말 사선을 넘어온 환자들은 분명 어떤 변화를 보인다. 극심한 신체 변화가 마음에 영향을 주기도 하겠지만 그것만이 변화의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중환자실에 머무는 동안 집중치료 시 사용되는 고농도의 안정제와 진통제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의 영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사선을 넘나든 사람은 변할 수 있다’라는 점은 분명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환자가 어떤 사람이든 적절한 수술적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도시를 떠난 두 사람의 소식은 그 뒤로 전해 듣지 못했다.

윤한덕에게 나는, 그를 수없이 찾아와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는 민원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였고 전공의 수련 기간 중 외과계 중환자들이 응급실에서 죽어나가는 모습을 너무 많이, 지겹게 봐왔다고 했다.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각 임상과목 간의 협진은 고사하고, 생명이 위급한 외과계 응급환자가 병원 문턱을 넘어온 이후에도 적절히 치료받기 어려웠다고도 했다. 윤한덕은 그때의 응급실을 ‘지옥’ 그 자체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밀어 넣었을 것이었다. 지옥을 헤매본 사람은 셋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 화염을 피해 도망치거나 그 나락에 순응하거나, 그 모두가 아니라면 판을 뒤집어 새 판을 짜는 것. 떠나는 것도 익숙해지는 것도 어려운 일일 것이나 세 번째 선택은 황무지에 숲을 일구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윤한덕은 셋 중 마지막을 택했고,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맡아 전국 응급의료 체계를 관리하고 있었다.

육군 보병사단의 대위라고 했다. 선한 인상에 눈빛이 맑았다.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보아온 어떤 사람과도 달랐다. 목소리는 크지 않아도 울림이 있어 그 음성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정경원을 보면서 욕심이 동했다. 이런 사람과 같이 일하면 좋을 것 같았으나 그런 마음을 애써 눌렀다. 좋은 사람은 더 좋은 일을 해야 한다. 정경원에게 그간의 내 경험과 암흑 같은 미래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말해주었다. 그는 조용히 들었다. 내가 두서없는 말들을 끝냈을 때 얼마간 침묵이 흘렀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 교수님, 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거면 됩니다. 큰 욕심 없습니다.

예상 밖의 말이었다. 나는 내 업을 부끄럽지 않게 하고 싶을 뿐 내가 하는 일에 ‘소명’이나 ‘사명’ 같은 단어를 대입해보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게 월급을 주는 것은 신이 아니라 병원이다. 신의 존재는 나에게 멀었고 그리스도적인 삶이 외상외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경원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곧은 심지는 충분히 느껴졌다. 그럴수록 그를 이 사지에 들이고 싶지 않았다. 거듭 설득했으나 그의 답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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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셀러였기에 제목과 표지는 읽기 전부터 친숙했던 책이다. 하지만 내용은 몰랐다. 다만 저자가 ‘곰돌이 푸 원작‘으로 되어 있기에, 곰돌이 푸 애니메이션에 나온 좋은 대사들을 엮은 책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펼쳐 보니 수록되어 있는 원작의 대사는 다섯 개 정도에 불과했다. 에필로그를 보고서야 알았다. ‘그런 푸우가 논어를 만났습니다.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고, 타인에게 정직하며, 현상을 단순하게 인식해야 한다‘라는 점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책이죠.‘ 그러니까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는 내 짐작과는 달리, 곰돌이 푸 원작 명언집이 아니라, 곰돌이 푸 캐릭터와 장면들을 빌려 《논어》의 가르침을 풀어 쓴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런 책이었다니... 미국 캐릭터 곰돌이 푸가 이야기해주는 논어의 가르침이라니... 뭔가 언밸런스하면서도 신선하다. 아무튼 검증된 원전의 지혜에서 끌어낸 것이니 내용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나처럼 원작의 명대사를 접해 보고 싶으셨던 분들은 이 책을 통해서는 기대하는 바를 얻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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