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어떻게, 세상에 어떻게 자신을 비하시키는 감정 그 자체에서 쾌락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자신을 존경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지금 어떤 감상적인 후회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보통 나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미안해요 아빠, 앞으론 그러지 않겠어요.>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아마도 바로 내가 이런 말을 너무 쉽게 또한 능숙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떄로 꿈에서든 정신적으로든 내게 잘못이 없을 때에도, 나는 마치 의도적인 것처럼 그런 상황에 처하곤 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비열한 일이다. 그리고 이럴 때도 역시 나는 다시 기분이 감상적으로 변해서 후회하고 눈물을 흘리고는 내 자신을 속인다. 비록 결코 내가 꾸미려고 한 짓은 아니지만 웬일인지 내 마음이 그런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자연의 법칙조차도 비난할 수 없다. 비록 자연의 법칙이 끊임없이 인생 내내 나를 모욕했어도 말이다. 이 모든 것을 회상하기란 혐오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 당시 또한 혐오스러웠다. 흔히 그렇듯이 1분 정도 지난 후에 나는 이미 화가 나서 깨닫곤 했다. 이 모든 것은 거짓말이고, 혐오스럽고, 꾸며낸 거짓말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즉, 그런 모든 후회들, 그런 모든 감동들, 새로 태어나겠다는 모든 맹세들이 단순히 거짓말이란 걸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만일 나에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자신을 일그러뜨리고 괴롭혔느냐고 당신이 물어본다면, 나는 팔짱 끼고 앉아 있기가 매우 지루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보 같은 기행에 몰두하게 되었다. 정말이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당신 자신들을 봐라. 신사 양반들, 그러면 당신은 그렇군, 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삶 비슷한 것을 살기 위해, 나는 모험들을 생각해 냈으며, 나 자신의 삶을 만들어 냈다. 얼마나 많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모욕감을 느끼곤 했는가. (중략) 의식의 직접적이며 당연하고 솔직한 결말은 정말 이 무기력이다. 즉 의식적으로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위에서 이미 언급했다. 반복하지만, 강조해서 반복하지만, 모든 직선적인 사람들과 활동가들은 그들이 멍청하고 편협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 그 답이 있다. 그러한 편협함 때문에, 그들은 근시안적이고 이차적인 원인들을 가장 근본적인 원인들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찬가지 방식으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쉽게 자신들의 행동을 위한 흠잡을 데 없는 기초를 발견했다고 확신하고 안도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결국 행동하기 위해서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미리 완전히 편안하게 만들어야 하고 어떤 의심도 남아 있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당신은 어떻게 내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나를 지탱할 만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들은 어디에 있고, 어디에 기초들이 있을까? 어디에서 그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사색하는 데에 단련이 되어 있고 따라서 하나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끌어내게 마련이다. 이것이 모든 의식과 사고의 정확한 본질이다. 다시 한번, 이때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어떤 결과를 갖게 되는 것인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으로 한없이 계속된다. 얼마 전에 내가 복수에 관해서 말했던 것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당신은 아마도 그것을 깊이 규명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복수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당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과 기초를 발견했다는 것, 즉 정당성을 찾았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그의 마음은 모든 면에서 편안해졌으며, 이제 그는 침착하고 성공적으로 복수를 할 수 있다. 자신이 가장 정직하고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그러나 나는 이것에서 어떤 정의도 볼 수 없고, 어떤 종류의 미덕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만일 내가 복수를 한다면, 나는 그것을 오직 악의 때문에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악의는 나의 모든 의심을 극복할 수도 있고, 성공적으로 나의 근본적인 원인을 대신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안에 어떠한 악의도 없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나는 얼마 전에 바로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러한 빌어먹을 의식의 법칙들 때문에, 나의 악의는 다시 또 화학적으로 분해되어 버린다. 그래서 바로 눈앞에서 악의의 대상이 사라져 버리고, 이성들도 증발해 버리고, 원인 제공자 또한 발견되지 않고, 모욕도 더 이상 모욕이 아닌, 급기야는 치통처럼 운명적인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원망할 수 없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다시 한번 예전과 똑같은 방법만 남게 된다. 즉 벽을 가능한 한 힘껏 아프게 들이받는 일이다. 이렇게 당신을 체념하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의식을 억누르면서 맹목적으로 생각 없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도 없이 당신의 감정에 휩쓸리려고 해보라. 또 증오하거나 사랑하려고 해보라, 단순히 팔짱 끼고 앉아 있지 않기 위해서. 아무리 늦어도 이틀만 지나면 당신은 당신 자신을 경멸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알면서도 자신을 속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결과로 무엇을 얻는가? 비누 거품과 무기력이다. 아, 신사 양반, 내가 자신을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이유는, 내 전생애를 통해 어떤 것도 시작하지 않았고 끝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다, 좋다, 그래 나는 수다쟁이다, 해롭지 않은 화가 난 수다쟁이다. 그러니 이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만일 모든 현명한 사람들의 직접적이고 유일한 목적이 지껄이는 것이라면, 즉 의도적으로 허튼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라면……? - P455

오, 단지 게으름 때문에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주여 그랬더라면,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을 존경했을 것인가. 나는 내가 게으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존경했을 것이다. 그 게으름이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는 단 한 가지의 긍정적인 자질이기만 하다면 말이다.
질문: 그는 누구인가?
대답: 게으름뱅이다.
자신에 관해서 그러한 말을 들었다면 대단히 신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것은 나에 관하여 무엇인가 말할 것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게으름뱅이>, 그것은 신분이자 사명이며 약력이다. 농담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그렇다. - P459

모든 바라는 것과 사유하는 것은, 실제로 미리 계산될 수 있기 때문에 ㅡ 언젠가 우리는 자유 의지라고 부르는 것의 법칙들을 확실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ㅡ 그때에 모든 농담들을 제외하고는 도표 같은 것이 준비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실제로 그 도표에 따라 모든 것을 원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만약에, 언젠가 그들이, 내가 어떤 사람을 조롱하는 손가락질을 했을 때 그것이 내가 그 짓 이외에 다른 짓은 할 수 없다는 정확한 이유 때문이며, 그 짓은 바로 이 손가락으로 행해져야 했다라고 나에게 계산해서 입증한다면, 그때에 내 안에 자유롭게 남아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특히 내가 배운 사람이고 어딘가에서 학업을 마친 상태라면 말이다? 나는 아마 향후 30년의 내 모든 인생을 미리 계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인생이 이런 식으로 준비되어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 순간과 정확히 같은 상황하에서 자연이 우리에게 의견을 물어보지 않음을 쉴새없이 스스로에게 반복하면서 우리가 상상하는 자연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실제로 그 도표와 달력대로 나아가게 된다면, 심지어는 시험관으로라도 가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며 시험관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지어 당사자 없이도, 그것은 계속될…….」 - P471

여기에 항상 만나게 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있다. 당신도 알다시피, 인생에는 그토록 예의 바르고 분별 있는 사람들이 항상 나타나게 마련이다. 자신들의 인생 전체를 통해 가능한 한 예의 바르고 지각 있게 행동하는 것을 자신들의 목표로 삼고 있는, 바로 그런 현인들과 박애주의자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형제들에게 실제로 이 지구상에서 예의 바르면서 동시에 분별 있게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엄격한 목적을 위하여, 빛을 전파하기 위하여 애쓴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예견하건대, 이러한 박애주의자들 중 많은 이들은 조만간, 그들의 인생의 말미에서 무엇인가 바보 같은 일을 함으로써, 때때로 아주 꼴사나운 어떤 짓을 저지르기까지 함으로써, 그들의 목표를 저버릴 것이다. - P474

그러나 그는 언제나 자신의 뜻대로 할 것이다! 세상에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저주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기 때문이다(이것은 그의 특권이기도 하며, 다른 동물들과 가장 현저하게 인간을 구별짓는 것이기도 하다). 장담컨대 그는 저주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할 것이며, 그는 정말로 자신이 인간이며 피아노 건반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에게 확신시킬 것이다! 만일 당신이, 모든 것들이 ㅡ 혼돈, 어둠, 저주 ㅡ 그 도표에 의해 계산될 수 있어서 그 예비 계산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멈추게 하고 이성이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때 인간은 이성을 갖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하기 위해서 일부러 자신을 미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이것을 믿으며, 이것을 책임질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일이란 정말로 매순간마다 그가 톱니바퀴가 아니라 인간임을 자신에게 입증시키는 데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 P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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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8-17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하로부터의 수기, 가 이렇게 페이지 수가 많은 책이었나 의문이 들었는데. 다른 작품과 같이 실린 것이군요. 지하로부터의 수기, 의 팬입니다.
주인공이 꼭 저의 분신처럼 생각하면서 읽었거든요.^^

베텔게우스 2023-08-17 22:24   좋아요 1 | URL
네, 두 작품의 합본이에요. 저도 페크님 댓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정말 놀라운 작품 이더라구요..
 

외양상의 덕이 항상 진정한 덕은 아니다
군주가 앞에서 말한 것들 중에서 좋다고 생각되는 성품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 그야말로 가장 칭송받을 만하며, 모든 사람들이 이를 기꺼이 인정할 것이라는 점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갖추는 것이 가능하지 않고, 게다가 인간의 상황이란 그러한 성품들을 전적으로 발휘하는 미덕의 삶을 영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신중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권력기반을 파괴할 정도의 악덕으로 인해서 악명을 떨치는 것을 피하고, 또 정치적으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악덕일지라도 가급적 피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후자의 악덕은 별다른 불안을 느끼지 않고 즐겨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덕 없이는 권력을 보존하기가 어려운 때에는 그 악덕으로 인해서 악명을 떨치는 것도 개의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고려할 때, 일견 미덕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 P110

칭송과 비난을 받을 만한 덕과 악덕
사람들을, 특히 (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군주들을 논할 때, 그들은 다음과 같은 성품을 가졌다고 칭송받거나 비난받게 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즉 어떤 사람은 인심이 후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인색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베푸는 사람과 탐욕적인 사람, 잔인한 사람과 자비로운 사람, 신의가 없는 사람과 충직한 사람, 여성적이고 유약한 사람과 단호하고 기백이 있는 사람, 붙임성이 있는 사람과 오만한 사람, 호색적인 사람과 절제하는 사람, 강직한 사람과 교활한 사람, 유연한 사람과 완고한 사람, 진지한 사람과 경솔한 사람, 경건한 사람과 신앙심이 없는 사람 등으로 평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 P110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그런데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 중에서 어느 편이 더 나은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제 견해는 사랑도 느끼게 하고 동시에 두려움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둘 다 얻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굳이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저는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인간 일반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즉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려고 하고 이익에 눈이 어둡습니다. 당신이 은혜를 베푸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 당신에게 온갖 충성을 바칩니다. 이미 말한 것처럼, 막상 그럴 필요가 별로 없을 때, 사람들은 당신을 위해서 피를 흘리고, 자신의 소유물, 생명 그리고 자식마저도 바칠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정작 그러한 것들을 필요로 할 때면, 그들은 등을 돌립니다. 따라서 전적으로 그들의 약속을 믿고 다른 대책을 소홀히 한 군주는 몰락을 자초할 뿐입니다. 위대하고 고상한 정신을 통하지 않고, 물질적 대가를 주고 얻은 우정은 소유될 수 없으며, 정작 필요할 때 사용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베푸는 자를 해칠 때에 덜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일종의 감사의 관계에 의해서 유지되는데,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취할 기회가 생기면 언제나 그 감사의 상호관계를 팽개쳐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항상 효과적인 처벌에 대한 공포로써 유지되며, 실패하는 경우가 결코 없습니다. - P118

미움을 피하는 방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명한 군주는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되, 비록 사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미움을 받는 일은 피하도록 해야 합니다. 미움을 받지 않으면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군주가 시민과 신민들의 재산과 그들의 부녀자들에게 손을 대는 일을 삼가면 항상 성취할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의 처형이 필요하더라도, 적절한 명분과 명백한 이유가 있을 때로 국한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타인의 재산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재산을 몰수할 명분은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약탈을 일삼으며 살아가는 군주는 항상 타인의 재산을 빼앗을 핑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목숨을 앗을 이유나 핑계는 훨씬 더 드물고, 또 쉽게 사라져 버립니다. - P119

다수는 외양에 따라서 판단한다
따라서 군주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이 앞에서 이야기한 다섯 가지 성품들로 가득 차 있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를 대면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지극히 자비롭고 신의가 있으며 정직하고 인간적이며 경건한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경건한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손으로 만져보고 판단하기보다는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볼 수는 있지만,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밖으로 드러낸 외양을 볼 수 있는 반면에 당신이 진실로 어떤 사람인가를 직접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수는 군주의 위엄에 의해서 지지되는 대다수의 견해에 감히 도전하지 못합니다. 모든 인간의 행동에 관해서, 특히 직접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는 군주의 행동에 관해서 보통 인간들은 결과에만 주목합니다.
군주가 전쟁에서 이기고 국가를 보존하면, 그 수단은 모든 사람에 의해서 항상 명예롭고 찬양받을 만한 것으로 판단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외양과 결과에 감명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사람들은 대다수가 보통 사람들일 뿐입니다. 대다수와 정부가 하나가 될 때 소수는 고립되기 마련입니다. 이름을 굳이 밝히지는 않겠지만, 우리 시대의 한 군주는 실상 평화와 신의에 적대적이면서도, 입으로는 항상 이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이를 말 그대로 실천에 옮겼더라면, 그는 자신의 명성이나 권력을 잃었을 것이며, 그것도 여러 번 잃었을 것입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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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8-17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흥미롭게 읽은 책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배우게 해 줍니다.^^

베텔게우스 2023-08-17 22:29   좋아요 0 | URL
동감입니다.

몇 년간 틈틈히 메모해 둔 문장들을 올해부터 매일 조금씩 서재에 올리고 있습니다. 군주론이 아마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네요... ㅎㅎ

2023-08-18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8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간의 비밀을 아는 한 가지 방법, 절망적인 방법이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완전히 지배하는 힘으로부터, 다시 말하면 그로 하여금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게 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느끼게 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게 해서 그를 사물, 우리의 사물, 우리의 소유물로 바꿔놓는 힘으로부터 생기는 방법이다. - P52

여론이나 예측하지 못한 몇 가지 사실이 자신의 판단을 무효화하더라도 타인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고수하는 것, 자신의 확신이 인기가 없더라도 자신의 확신을 고수하는 것, 이러한 모든 일에는 신앙과 용기가 필요하다. 곤란과 좌절과 슬픔을 ‘우리‘에게 일어나서는 안 될 부당한 처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극복해야 할 도전으로 받아들이려면 신앙과 용기가 필요하다.
신앙과 용기의 훈련은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된다. 첫 단계는 어디서 언제 신앙을 상실하는가에 주목하고, 신앙의 상실을 은폐하는 데 이용되는 합리화를 간파하고, 어디서 우리가 비겁한 태도로 행동하는가, 또한 어떻게 비겁한 행동을 합리화하는가를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을 배반하는 경우 언제나 약해지며, 우리가 약해지면 점점 더 새로운 배반을 하게 되고,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또한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도, 비록 대체로 무의식적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공포는 사랑하는 것에 대한 공포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P181

칸트는 양심의 소리를 천부적인 것으로 보았지만, 그것은 사회적인 요구가 내면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양심의 지배는 외적 권위의 지배보다 훨씬 더 강력할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이 양심의 명령을 자기 자신의 명령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외적 권위에 거슬리는 행동을 할 경우에 죄책감을 품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양심의 명령을 어긴 사람은 평생에 걸쳐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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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인들이 용병으로부터 겪은 수난
베네치아인들의 발전사를 보더라도 그들이 자신들의 군대로, 곧 귀족과 무장한 인민들이 아주 능숙하고 용맹스럽게 전쟁에 임했을 때에(즉 그들이 이탈리아 본토에서 전쟁을 하기 전에), 그 나라는 안전했고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본토에서 전쟁을 하게 되자마자 그들은 그들의 용맹을 포기하고 이탈리아의 전쟁 관습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처음으로 내륙의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용병대장들을 두려워할 만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병합된 영토가 아직 많지 않았고 베네치아인들의 명성이 아주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카르마뇰라의 통솔하에 영토를 확장함으로써 그들의 과오는 명백해졌습니다. 그들은 (그의 통솔하에 밀라노 공작을 격파했기 때문에) 그가 매우 유능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지만, 반면에 그가 전쟁을 마지못해 수행하고 있다는 점도 깨달았습니다. (그 자신이 승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를 계속 고용해서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병합된 영토를 잃을 각오를 하지 않는 한, 그를 해고할 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를 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P92

원군으로부터 겪은 근래의 위험한 사례들
원군이란 당신이 외부의 강력한 통치자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당신을 돕고 지켜주기 위해서 파견된 군대인데, 이 또한 용병처럼 무익한 군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원군은 최근에 교황 율리우스에 의해서 이용된 적이 있습니다. 교황은 자신의 용병부대가 페라라 전투에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스페인의 페르난도 왕에게 자신을 도울 군대를 파견하게 함으로써 원군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원군은 그 자체로서는 유능하고 효과적이지만, 원군에 의지하는 자에게는 거의 항상 유해한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패배하면 당신은 몰락할 것이고, 그들이 승리하면 당신은 그들의 처분에 맡겨지기 때문입니다. - P97

과거 위인들의 모방
지적인 훈련을 위해서 군주는 역사서를 읽어야 하는데, 특히 위인들의 행적을 조명하기 위해서 읽어야 합니다. 그들이 전쟁을 수행한 방법을 터득하며, 실패를 피하고 정복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들의 승리와 패배의 원인을 고찰하고, 무엇보다도 우선 위대한 인물들을 모방해야 합니다.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 역시 찬양과 영광의 대상이 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그들의 선배들을 모방하려고 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킬레스를 모방했고,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를 모방했으며, 스키피오는 키로스를 모방했다고 이야기되는 것처럼 항상 선배들의 행적을 자신들의 모범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크세노폰이 저술한 키로스의 생애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키피오의 생애와 행적을 고려할 때, 크세노폰의 저작에 기록된 대로 키로스를 모방함으로써 스키피오가 영광을 성취하는 데에 얼마나 커다란 도움을 받았는지, 그리고 스키피오의 성적인 절제, 친절함, 예의바름, 관후함이 얼마나 많이 키로스의 성품을 모방함으로써 얻은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 P107

근면함은 운명의 신을 물리칠 수 있다
현명한 군주라면 항상 이와 같이 행동하며, 평화시에도 결코 나태하지 않고, 그러한 활동을 통해서 부지런히 자신의 입지를 강화함으로써 역경에 처할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 결과 운명이 변하더라도 그는 운명에 맞설 만반의 태세가 되어 있습니다. - P108

윤리적 공상과 엄연한 현실
이제 군주가 자신의 신민들 및 동맹들에게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마땅한가를 고찰하기로 하겠습니다. 저는 많은 논자들이 이 주제를 논해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제가 말하려고 하는 바가 다른 사람들이 제안한 원칙들과 특히 이 문제에 관해서 크게 다르기 때문에, 제가 건방지다고 생각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유용한 것을 쓰려고 하기 때문에,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행하지 않고,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가 십상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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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명이었다고 들었다. 20만 명이 갔다가 해방 후 돌아온 숫자가 고작 2만 명에 불과하다고.
그녀는 자신이 20만 명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보다 2만 명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더 놀랐다. 20만 명 중 2만 명이면 10분의 1이었다. 말하자면 열 명 중 한 명……. 그녀는 자신의 셈이 틀렸지 싶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열 명 중 한 명만 살아서 돌아왔을까 싶다. - P125

열세 살이던 그녀는 어느새 스무 살이 되어 있었다. 7년 동안 그녀의 키는 손가락 두 마디밖에 자라지 않았다. 7년 전 함께 만주 위안소에 왔던 소녀들 중 그곳을 떠나지 않은 소녀는 그녀와 애순, 둘뿐이었다. 분선도 어느 날 오토상을 따라 그곳을 떠났다. 언제까지나 잊지 말자며 실과 바늘과 물감으로 왼손 손목 위에 문신을 새겼던 연순과 해금도 뿔뿔이 흩어졌다.
7년 전 북쪽으로, 북쪽으로 달리던 열차에 타고 있던 소녀들 중 가장 어리던 그녀는 제법 나이가 든 축에 속했다.
오토상은 소녀 둘을 더 데리고 왔다. 그중 하나는 열세 살이었다. 열세 살 먹은 소녀는, 7년 전 대구역에서 열차에 오르던 그녀의 환영도 함께 데리고 왔다. 검정 광목 저고리에 깡똥하고 얄궂은 바지를 입고,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던.
"애기가 어쩌다 이런 델 다 왔을까?" 영순이 소녀에게 말했다. 열여섯 살이 된 영순의 손에서는 담배가 타들고 있었다.
"왔으니 할 수 없지. 팔자려니 하고 사는 수밖에……."
영순은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매운 담배연기가 영순의 얼굴을 지우면서 허공으로 흩어졌다.
하하는 소녀들에게 일본 이름을 지어주었다.
"오늘부터 네 이름은 사다코다."
사다코가 한옥 언니의 이름이라는 걸 깜빡하고는. 606호 주사를 맞고 늘어져 있던 한옥 언니가 트림을 하다 말고 경기하듯 떨었다. - P138

살아 있는 증인이 있는데, 세상에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니까, 눈물이 나고 기가 막히고 감감해서…….
김학순 그 여자는 그래서 자신이 당한 일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신문기사 군데군데 붉은색 펜으로 밑줄이 쳐져 있다. 그녀는 신문지 쪼가리를 집어 들고 붉은색 펜으로 밑줄 친 부분들을 소리 내 읽기 시작한다. 한 문장을 연달아 읽지 못하고, 언 동태를 토막 내듯 끊어가면서 읽는다.

오직 나 홀몸이니

거칠 것도 없고

그 모진 삶 속에서

하느님이 오늘까지 살려둔 것은

이를 위해 살려둔 것.

죽어버리면 그만일 나 같은 여자의 비참한 일생에 무슨 관심이 있으랴…….

왜 나는 남과 같이 떳떳하게 세상을 못 살아왔는지.

내가 피해자요.

그 여자를 따라 위안부였던 여자들이 하나둘 고백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피해자요, 나도 피해자요, 나도 피해자요, 나도 피해자요, 나도 피해자요, 나도 피해자요……. - P143

내가 아는 이는 시집갔다가 남편에게 매독균을 옮기는 바람에 들통이 나 쫓겨났잖아. 얼마 뒤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멀쩡하게 살다가 마흔 안짝에 정신병이 왔잖아. 그런데 글쎄 정신병원에서 어머니를 데리고 오라고 하더래. 그래서 갔더니 의사가 어머니만 남고 다른 가족들은 다 나가라고 하더니 혹시 매독 앓은 적 있냐고 묻더라네.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다가 나왔다지 뭐야. 매독이 그렇게 무서운 거더라구. 그이도 참 안됐지. 본의 아니게 아들 인생까지 망쳐놓은 셈이지 뭐야. 아들이 정신병원에서 나오기는 했는데 가끔 발작을 하는가봐. 의사가 얘기했을 리 없는데 아들이 에미를 죽이겠다고 난리를 치고는 하나봐. 더러운 개구녕에서 나와서 자신이 그렇게 되었다구.
그 심정이 어땠을까? …… 내가 날마다 두통약을 한 알 먹는데 그날은 두 알을 먹었어.
신고하고 더 쓸쓸해졌어. 과거가 알려지면 조카들 시집가는 데 지장 있으니 그냥 조용히 지내라고 큰언니가 그렇게 말리는데도 뿌리치고 신고를 했더니, 언니하고 조카들이 발길을 뚝 끊더라구.
94년 정월부터 보조금 탔어. - P146

신빙성이 없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위안소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리고 다니는 이들을 향해서. 몇 살 때 끌려갔는지, 누구한테 끌려갔는지, 어디로 끌려갔는지 분명히 대지를 못하니까. 고향 지명조차 제대로 모르는 데다, 학교에 다니지를 못해 자기 이름 석 자도 쓸 줄 모르던 소녀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걸 고려도 않고. 수십 년이 흘러 기억들이 토막 나고 뒤죽박죽 뒤섞여버렸다는 걸 모르고.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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