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스럽게도 나는 그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았고, 그가 어디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를 잃는다 해도, 나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를 잃었다 해도, 나는 내 삶에서 행복한 하루를 번 셈이니까. 불행의 연속인 이 세상에서 행복한 하루는 거의 기적에 가까우니까. - P-1

그는 남자다. 그리고 예술가다. 그는 알아야 한다. 인간 존재의 목표는 절대적인 사랑을 이해하는 것이고, 사랑은 타인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속에 있다. 그것을 일깨우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하지만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 우리는 타인을 필요로 한다. 우리 옆에 우리의 감정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을 때에야 우주는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그는 섹스에 지쳐 있는 것일까?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 사람이나 나나 섹스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삶의 가장 본질적인 것들 중 하나를 죽어가게 내버려두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가 나를 구원해주길 원하고 있고, 그는 내가 그를 구원해주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주지 않았다. - P-1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요 며칠 동안 계속 그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운명이 그녀의 길 위에 가져다놓은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 P-1

깊은 욕망, 가장 실제적인 욕망, 그것은 누군가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욕망이다. 거기서부터 반응이 일어나고, 남자와 여자의 게임이 시작된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이끌림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순수 상태의 욕망이다.
욕망이 아직 이 순수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 남자와 여자는 삶에 대해 열광하고, 다음번 축복의 순간을 기다리며 매 순간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들은 경솔한 행동으로 사건을 앞당기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불가피한 것은 반드시 발현되리라는 것, 진실은 늘 자신을 드러낼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매 순간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망설이거나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어떠한 마술적 순간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 P-1

마리아는 사랑이 체위에 좌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경우 체위의 변화는 춤의 스텝처럼 자발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만큼 이미 충분한 경험을 했다. - P-1

저자가 히말라야(그녀는 히말라야라는 곳이 어딘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에서 명상을 했고, 다른 많은 책들을 인용한 것으로 보아 그 문제에 관한 많은 독서를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본질적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섹스는 이론, 향, 접촉점, 복잡한 체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하긴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마리아조차도 잘 모르는 것을 어떻게 한 여자(저자는 여자였다)가 왈가왈부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히말라야에서 뭘 잘못 배웠거나, 단순함과 열정 속에 아름다움이 녹아들어 있는 주제를 복잡하게 서술하다 보니 그렇게 꼬여버렸을 것이다. 이런 한심한 책이 버젓이 출간될 수 있다면, 마리아 역시 자신이 구상한 ‘11분’의 집필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서술할 생각이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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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의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옷만 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삶은 그녀에게 가르쳐주었다. 아무렇게나 차려입은 사람들이 실은 정장에 넥타이를 맨 사람들보다 훨씬 더 부자라는 사실을.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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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이거였나? 이토록 쉬운 것이었나? 어제는 형벌이었던 것이 오늘은 그녀에게 엄청난 해방감을 제공해주었다. 마리아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도시에 있었다.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명할 필요가 없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그녀는 온종일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까지 그녀는 늘 다른 사람들이, 어머니가, 학교 친구들이, 아버지가, 모델 에이전시 직원들이, 프랑스어 선생이, 식당 웨이터가, 도서관 사서가, 길을 다니는 생면부지의 행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먼저 걱정했다. 사실, 불쌍한 외국 여자에 불과한 그녀에 대해 특별히 뭔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그녀가 내일 감쪽같이 사라진다 해도 아무도, 경찰조차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 P-1

그러니까 내가 얼마 동안 창녀가 되기로 결심한다고 해서 잃을 것이 뭐가 있는가?
명예, 긍지, 나 자신에 대한 존중.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가진 적이 없다. 나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사랑받는 데에도 성공하지 못했고, 늘 옳지 않은 결정만 내려왔다. 이제 나는 삶이 나 대신 결정을 내리도록 내버려둘 것이다. - P-1

타는 듯한 갈증, 담배 몇 개비, 점점 더 뚜렷해지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느낌, 라이트모티프처럼 반복되는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 주인과 다른 아가씨들의 무관심 속에 무려 두 시간을 앉아 있었다. 기다림에 화가 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는 마리아에게 한 브라질 아가씨가 다가와 물었다.
"왜 여길 택했어?"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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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도 통역은 그녀를 만나자마자 자기는 따라가지 않을 거라며 말했다.
"언어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아요. 그가 당신과 함께 있는 게 기분 좋으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서로 말을 못 알아듣는데 어떻게요?"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어요. 그래요, 중요한 건 ‘느낌’이니까." - P-1

아무래도 내가 옳지 못한 결정을 내리려는 것 같다. 하지만 실수 역시 앞으로 나아가는 한 방식 아닌가. 세상은 나에게 뭘 원하는 걸까? 위험을 무릅쓰지 말라고? 삶에게 용기 있게 ‘그래’라고 말 한 번 못 해보고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라고? - P-1

꿈꾸는 것은 아주 편한 일이다, 그 꿈을 이루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는 힘든 순간들을 그렇게 꿈을 꾸면서 넘긴다. 꿈을 실현하는 데 따르는 위험과 꿈을 실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욕구불만 사이에서 망설이며 세월을 보낸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을, 특히 부모와 배우자와 자식을 탓한다. 우리의 꿈을, 욕망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게 가로막은 죄인으로 삼는 것이다. - P-1

마리아는 이것이 지극히 남다른 경우라는 걸 은근히 부각시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예외적 존재라는 사실을 친구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기 위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 P-1

"얘야, 가난한 남자와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는 돈 많은 남자와 불행하게 사는 게 더 낫다. 그곳에 가면 돈 많은 불행한 여자가 될 가능성도 높겠지. 하지만 만약 일이 잘 안 풀리면, 차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오너라." - P-1

‘기회를 놓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아주 일찍이 깨달았다. 하지만 ‘난 널 사랑해’라는 말은 그녀가 스물두 해를 살아오면서 수없이 들은 말이었다. 이제 그녀에겐 그 말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말에는,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진지하고 깊은 감정이 한 번도 따라온 적이 없었으니까. - P-1

언젠가는 항공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브라질로 돌아가 직물 가게 주인과 결혼하고, 위험을 무릅쓴 적도 없으면서 남의 실패를 고소해하는 친구들의 험담이나 듣게 되겠지. 아니, 그렇게 돌아갈 수는 없다. 차라리 대양 위를 나는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고 말 것이다.
참, 비행기 창문은 열리지 않지. 그건 정말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그 긴 여행을 하면서 신선한 바람을 쐴 수 없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난 여기서 죽겠다. 하지만 죽기 전에 삶을 위해 싸워보고 싶다. 혼자 걸을 수 있을 때,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것이다. - P-1

브라질에 있을 때, 그녀는 자신의 보물을 찾아 떠나는 양치기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양치기는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하지만 바로 그 어려움 덕분에 마침내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녀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진정한 운명을 만나기 위해, 모델이 되기 위해 해고당했다는 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다. - P-1

하지만 나는 점차 나아질 거라고,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게 될 거라고, 내가 여기 있는 것은 내가 이 운명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해야 한다. 롤러코스터, 그게 내 삶이다. 삶은 격렬하고 정신없는 놀이다. 삶은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것, 위험을 감수하는 것,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도 같다. 자기 자신의 정상에 오르고자 하고, 그곳에 도달하지 못하면 불만과 불안 속에서 허덕이는 것. - P-1

갑자기 마리아는 언젠가 마이우손이 ‘느낌’이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사서는,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보였다. 마리아는 직감적으로 그녀와 친구가 될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러려면 그녀의 환심을 사야 했다. - P-1

결정을 내린 순간을 빼놓고는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신기하게도 전혀 죄의식이 들지 않는다. 예전에 나는 몸을 파는 여자들에 대해, 오죽 선택의 여지가 없으면 그런 짓을 할까 하고 생각했었다. 지금 나는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란 걸 안다. 나는 ‘예’라고도 ‘아니오’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그 둘 중 하나를 나에게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거리를 걸으며 행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선택했을까? 아니면 그들 역시 나처럼 운명에 의해 ‘선택당한’ 것은 아닐까? 모델이 되기를 꿈꾸었던 청소부, 음악가가 되고자 했던 은행간부, 문학에 투신하고 싶었던 치과의사, 연예인이 되고 싶었지만 슈퍼마켓 계산대 일밖에 찾지 못한 아가씨……
나는 나 자신이 전혀 불쌍하지 않다. 나는 희생자가 아니니까. 자존심을 지킬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 남자에게 도덕적인 훈계를 할 수도, 당신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공주이니까 돈으로 사기보다는 마음을 빼앗는 편이 더 나으리라는 포즈를 취할 수도, 수없이 많은 다른 태도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나 대신 운명이 선택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러하듯이.
물론 내 운명이 다른 사람들의 운명에 비해 더럽고 음습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길에서 우리는 모두 동등하다. 음악가가 되고자 했던 은행간부, 작가가 되고 싶었던 치과의사, 연예인이 되고 싶었지만 슈퍼마켓 계산대에 서 있는 아가씨, 모델이 되기를 꿈꾸었던 청소부…… 우리들 중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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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금령이 신성한 것은, 그것들이 징벌의 공포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유발하지 않는 법은 신성으로부터 멀다. 신성은 어디 있는가. 두려움 속에 있다. 아니, 두려움에 대한 예감 속에 있다. 그런데 그것은 왜 두려운가. 금지된 것은 사람을 끈다. 그것이 이유이다. 금령은 권고가 아니라 유혹이다.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금령이 생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금령이 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다. 사람이 에덴의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야훼가 금령을 준 것이 아니다. 야훼가 금령을 주었기 때문에 사람은 그것을 따먹었다. 금령이 없으면 범함도 없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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