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애자와 게이 및 레즈비언은 커밍아웃 과정에 있어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 원인이 될 수 있는 무성애 발달의 독특한 특성 몇 가지를 살펴보자. 그 중 하나는 ‘무성애‘라는 분류와 정체성이 새로운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무성애 정체성은 매우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다. 무성애 공동체는 그 성격상 두루 흩어져 있다. 그리고 무성애자들은 다양한 집단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이런 특성들로 인해 무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이 늦어질 수 있다. 내가 만난 한 무성애 여성은 20대까지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최근까지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이해할 만하다. 즉 동일시할 집단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 개인이 커밍아웃을 비롯한 정체성 형성 과정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자신이 게이라면 먼저 스스로를 ‘게이‘라고 규정짓는 것이 커밍아웃의 필수적 선행 요건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결국 필요한 것은, 일원으로서 동일시할 수 있고 커밍아웃할 수 있는 인식 가능한 명칭이 있는 집단이다. 아주 최근까지도 조직적이고 사회적으로 인식 가능한 무성애자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게이 혹은 레즈비언은 30년 이상의 오랜 기간에 걸쳐 서구 사회에서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존재감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게이 혹은 레즈비언들이 인생의 후반기까지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모르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동성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성적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무성애자 젊은이들에 비해 게이 혹은 레즈비언의 정체성과 문화에 대해 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 있다. - P162

이런 사례와는 별도로, 섹스의 광기에 관한 나의 입장을 지지하는 과학적인 연구가 있다. 실제 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섹스에 몰두할 때 인간의 인지 기능이 현저히 훼손된다는 증거가 제기되었다. 심지어 성행위에 몰입한 상태가 아닐 때마저도, 섹스를 상상하기만 해도 인간의 인지 기능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옷을 완전히 차려입은 아름다운 여성을 사진을 통해 보기만 해도 성행위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혈기 왕성한 이성애 남성은 미래를 잘 계획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고의 가능성이 줄어든다. 말하자면 그들은 미래를 ‘가볍게 무시한다.‘ 그러므로 성적으로 충만한 순간을 맛본 뒤에는 오히려 미래에 대한 현실성이 더 떨어지게 된다. 남성들은 본능적으로 짝짓기 가능성을 생각하기에, 비록 이상형의 여성과 결코 만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망 없는 비현실적인 소망일지라도, 남자들은 ‘짝짓기 순간‘에 과도하게 집중함으로써 ‘미래는 아무려면 어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연구자들은 매력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실제로 짝짓기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뇌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뇌는 짝짓기와 연결되는 신경 중추를 자극하면서, 보다 더 이성적이고 계획 지향적인 신경 중추를 닫아 버린다. 인간의 뇌는 수 만 년 동안 진화해 왔지만 그에 관한 사진은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눈앞에 놓인 이차원적인 이미지는 석기 시대 인간의 마음을 속임으로써 실제로 아름다운 여성이 자신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것과 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두 가지의 비합리성이 존재한다. 첫째, 사진을 보고 그것이 마치 진짜인 것처럼 반응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남성들이여, 진짜 여성은 눈부신 모습으로 당신의 침실로 들어오지 않는다. 둘째, 섹스의 가능성을 보고 미래를 무시한다. 그러므로 남성들의 반응은 이중적이고 비합리적이다. - P182

이런 분방한 행동은 섹스의 광적인 효과와 관련이 있다기보다 오히려 지위와 타인에 대한 무시가 권력, 신분, 나르시시즘과 손잡은 결과라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일부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를 설명해 줄 수는 없다. 이것은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다른 영역에서 규칙적으로 보여 주는 사려 깊고 떄로는 치밀한 행동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만약 다른 분야에서 경솔하게 행동한다면, 경솔하게 계획된 성관계만큼이나 자신의 커리어가 훼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만약 명사들 혹은 상당한 권력과 지위를 갖춘 유명 인사들의 자유분방한 행동에 대해 ‘섹스‘보다 ‘권력‘으로 설명하는 것을 선호한다면, 특히 남성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섹스와 권력 사이의 교묘한 상호 작용 또한 설명해야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일례로 남성들은 경쟁에서 이겼을 때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급상승한다. 이는 성 충동과 권력 두 가지 모두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친다. 간단히 말해 많은 남성들의 성 충동과 권력욕을 분리하는 것은 극히 힘들다. 그 반대로 권력욕에서 성 충동을 분리하는 것 또한 힘들다. 따라서 이런 스캔들에 이르게 되는 일견 비합리한 행동 이면에 놓여 있는 부분이 섹스가 아니라고는 완전히 잡아뗄 수는 없다. - P186

어떤 한 관점에서 볼 때 무성애는 장애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것은 생명체가 자연스러운 사물의 질서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섹스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타인과 ‘그 짓‘을 하고 싶은 욕망은 모든 성적인 생명체가 다양한 형태로 추구하는 것이다. 무성애를 장애로 간주하는 이런 입장은 진화 생물학이 고안한 렌즈를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성적 매력의 결핍은 중대한 생물학적 요청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섹스는 인간 번식을 위한 수단이기에 삶의 이런 측면을 회피하는 것은 인생의 근본적인 목표인 번식을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유기체는 번식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미래 세대에게 전한다. ‘승자‘ 혹은 가장 잘 적응한 최적의 유기체는 미래 세대에게 최대의 유전자를 전달하는 자이다. 최악의 부적응 유기체는 유전자를 미래 세대에 전달하지 못하거나 최소의 유전자만 전달하는 자이다. 사람들 대다수는 복제 게임을 하거나 성적 재생산을 통해 복제를 시도한다. 따라서 재생산 수단으로서의 이성에 대한 흥미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관심사로 간주되어야 한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보자. 여기 허구적인 인물인 ‘샐리‘가 있다. 그녀는 1920년에 태어나 2000년까지 살았다. 그녀는 결혼을 했고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 중 두 명의 자녀가 또다시 자녀를 낳았다. 이렇게 하여 그녀의 유전자는 전통적인 방식의 이성애 관계를 통해 임신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들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전해졌다. 그녀가 이런 과정을 성취하도록 해 주는 심리적인 메커니즘 또한 상당히 전통적이다. 그녀는 남성에게 성적인 매혹과 낭만적인 매혹을 느꼈다. 그 결과 아이를 원했고 아이들을 양육할 능력이 생겼다. 따라서 전통적인 인성애 관계를 택한 그녀의 경향은 부모로서 자녀 양육 능력과 더불어, 임신과 출산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유전자를 후세대들에게 물려 줄 세 가지 도구인 세 명의 자녀를 양육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래. 잘했어, 샐리!" 혹은 보다 정확히 "잘했어. 샐리의 유전자여!"라는 말을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성적 재생산을 통해 유전자를 복제하려는 경향을 가진 개인은 ‘건강한‘ 사람들이다. 이 추론에 의하면 그들은 성적으로 성공한 모든 인생 형태에 뒤따르는 자연스러운 과정에 순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이 지닌 문제점을 한 번 고려해 보자. 첫째,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이성애 생물학자들을 포함한, 자녀가 없는 많은 성애자들이 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번식 그 자체의 메커니즘인 섹스를 포기하지 않았건만 그들에겐 자녀가 없다. 따라서 이 궁극적인 생물학적 요청을 참담하게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장애자이거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일까?
둘째, 진화론적인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접근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DNA 복제는 수많은 유기체에서 무성 생식으로 발생한다. 그러므로 유성 생식이 유일하게 자연스러운 번식 과정은 아니다. 게다가 보다 단순하거나 계통 발생적인 오래된 종에서 발생하는 무성 생식은 별도로 치더라도, 유성 생식은 복잡한 종이나 최근에 진화된 종의 경우 한 가지 형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인간마저도 그렇다!
인간은 성적 재생산인 유성 생식뿐 아니라 다른 수단을 통해 자신들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혈연 선택 과정을 통해 복제가 가능하다. 혈연 선택 과정에서의 유전자 복제는 친족이나 가까운 친척을 통해 발생한다. 우리 친척을 우리 유전자를 공유하고, 6촌보다는 남동생이나 여동생같이 혈연이 가까울수록 더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게 된다. 따라서 친척들이 우리의 유전자를 성적 재생산을 통해 복제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사실상 친척들의 유전자 중 일부는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혈연 선택 메커니즘은 유전자를 복제하는 대안적인 적응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유성 생식이 인간이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만이 유전자 복제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유전자 복제의 혈연 선택 모델은, 왜 인간 사회에 동성애자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대답을 제공한다. 표면적으로 볼 때 생물학자들과 진화 심리학자들의 입장에서, 동성애자는 진화론적인 전형에 도전하는 것이다.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들처럼 유성 생식으로 성적 번식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동성애는 여러 문화와 여러 시대에 걸쳐서 존재해 왔으며, 적어도 어느 정도는 동성애의 유전적인 토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게이 유전자‘는 어떻게 ‘이성애 유전자‘와 경쟁할 수 있었을까? 이성애 유전자는 성적 번식에 참여하는 종족 번식 집단이 있는 반면, 동성애자는 대체로 그런 집단이 없지 않을까?
다시 위의 질문을 이어가자면, 이에 대한 대답은 동성애자의 혈연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게이 유전자가 동성애자의 친척들에게 나타나면, 게이 유전자는 생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화론적인 역사를 통해 번성까지 하므로, 재생산의 이점을 어느 정도 누리게 된다. 최근의 연구자들은 게이 남성들에게는 유별나게 자녀를 많이 낳는 여자 친척이 많다는 점을 알아냈다. 바로 그렇다! 그래서 게이 남성은 이성애 남성들처럼 아이를 낳지 않는다 해도, 그들의 여자 자매들은 얼마든지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게이 남성의 여자 자매들과 가까운 친척들은 게이 남성의 유전자를 공급받아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이런 현상은 게이 남성의 여자 친척들에게 재생산 이점 유형을 전달하는 게이 유전자가 있음을 암시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남성을 사랑하는‘ 유전자가 남성에게서 발견되면 그들은 게이가 될 수 있지만 그런 유전자가 여성에게서 발견되면, 그런 여성은 특히 남성을 좋아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 그들이 남성과 이성애 관계를 형성하고, 자손을 많이 낳으면, 자손에게 ‘남성을 사랑하는‘ 게이 유전자를 물려주게 된다. 설령 ‘남자를 사랑하는‘ 유전자가 여자 자매에게 없다고 하더라도, ‘게이‘ 유전자는 이런 유전자를 전달하는 개인들을 이용할 수 있다. 게이 남성들은 친척의 아이들이 생존하여 재생산을 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말하자면 여자 자매의 자녀나 혹은 남자 형제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그들의 유전자는 성적 접촉을 통해서 복제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혈연을 통해 복제된다. 이런 메커니즘은 흥미롭게도 동성끼리 매력을 느끼는 사모아 남성들에게서 상당한 증거가 발견되었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모두 가진, 사모아 문화에서 제3의 성을 지칭하는 파아파피네Faafafine는 사모아 남성 집단이다. 그 안에서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사모아 사회는 우리에게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모아 사회는 현대 서구 사회보다 인간이 더 진화할 때 발생할 법한 사회적, 가족적 관계를 훨씬 더 가깝게 밀착되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들이 입증하다시피, 자연은 무수히 많은 방법으로 다양성을 유지하고 창조한다. 유전적으로는 사라진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생물학적으로는 ‘건강하지 못한‘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전통적인 이성애 과정을 거쳐 번식하지 않는다고 하여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부적응자라고 할 수 없다. 그 말은 개인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방법으로써 유성 생식 이외의 또 다른 진화적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 P195

프로이트적인 해석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나는 우리의 성적 욕구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충족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대 서구의 미디어들은 성 중독자들을 사회적으로 정상인 것처럼 보여 주어 우리의 성적 기대치를 엄청나게 높여 놓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실 사회의 섹스 생활은 그대로이지만, 상대적으로 높아진 기대치 때문에 성적인 측면에서 결핍 상태에 이르게 된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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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호소한다?‘
나는 그런 수단에는 조금도 기대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호소하거나, 어머니에게 호소하거나, 경찰에게 호소하거나, 정부에 호소하거나 해도, 결국은 처세술에 능한 사람의 언변에 휘말리게 될 것이 뻔하지 않을까?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결과가 나타날 게 뻔해. 결국 인간에게 호소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참으며, 익살꾼 노릇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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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살펴본 무성 생식과 유성 생식의 간략한 자연사는 이 책의 주제인 무성애적 인간과 약간의 관계가 있을 뿐이다. 한 종의 유성 혹은 무성의 생식 유형은 인간을 비롯하여 유성 생식만을 하는 종들의 무성애 현상과 다소 차이가 있다. 또한 성과 번식 능력도 별개의 것이다. 대부분의 무성애자들은 그들이 성적 메커니즘을 통한 번식에 관심이 없을지라도 여전히 성을 통해 번식할 수 있다. 즉 이들은 여전히 유성 생식을 하는 인간이라는 종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현대의 인간에게 성이란 번식과 관계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무성애는 무성 생식과는 부분적으로 다른 현상이다. - P66

가장 유명한 현대 수학자 중 한 사람인 폴 에르디쉬Paul Erdos는 무성애자였다. 뉴턴이 그랬듯이 그도 수학에 푹 빠져 있었다. 그의 전기를 쓴 한 작가는 그 책 제목을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The Man Loved Only Numbers』라고 했다. 에르디쉬는 자신이 수학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 미학적으로 더 아름다웠는지 이렇게 이야기했다. "숫자가 아름답지 않다면, 그 어떤 것이 아름답겠는가!" 또한 그는 섹스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성적 쾌락이 정말 싫다." 이것은 성의 모든 양상, 즉 매혹, 욕망, 흥분에 관심이 없다는 뜻인지, 단지 흥분과 쾌락의 요소만 싫다는 것인지 알려진 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에르디쉬가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의 미학적 관심이 수학에만 국한되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는 다른 사람에게 성적인 혹은 로맨틱한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 P75

나는 성애자들에 비해 무성애자들이 대체로 전통적인 성 역할을 따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성적 발달은 여성을 보다 여성스럽게 만들고 남성을 보다 남성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무성애 여성들은 로리 브로토와 내가 말한 ‘욕망의 대상 자의식Object-of-Desire Self-Consciousness‘이라고 명명한 것이 없기 때문에, 복장과 태도와 언어에서 보다 덜 여성적일 수 있다. 우리는 이성애 여성들의 성애는 종종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욕망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는 이런 여성들은 욕망의 대상을 주제로 한, 성적 시나리오를 발전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믿는다. 실제로 이것에 대해서 나의 제자들과 내가 이성애 여성과 이성애 남성의 판타지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증거가 있다. 이성애 여성들은 이성애 남성에 비해, 다른 사람을 매력적으로 보는 것보다는 파트너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매력적이라고 보는 것에 더 흥분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여성들의 언어는 이런 주제들을 반영하는데, 예상대로 이러한 성적 시나리오는 우리의 인식에 스며든다. 결국 언어와 우리의 생각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 P142

댄 새비지는 여기서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앞서 일부 이성애자들이 언급한 게이 혹은 레즈비언들이 게이 퍼레이드를 열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과시‘하는 것에 대한 의문에 일정 부분 대답을 해 주고 있다. 이들은 어쩌면 금지될 수도 있는 행위들을 인정받고 받아들여지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대중에게 정체성을 공표하는 것은 게이 혹은 레즈비언들에게는 중요하지만, 무성애자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이러한 견해는 많은 무성애자들에게 어느 정도는 유지되고 있다. 내 생각에 일부 무성애자들이 퍼레이드를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공표하는 반면, 대다수의 무성애자들은 무성애자 문제를 다루는 웹 사이트에 접속하지도 않고 성 소수자들의 퍼레이드에 참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댄 새비지의 요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가 주장하는 것의 일부는 옳기도 하지만, 나는 더 중요하고 일반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을 갖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의 타당성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금지될 수 있는 행위를 인정받아서 그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자아에 대한 어떤 근본적 질문인 ‘나는 누구일까?‘,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등과 관계가 있다. 또한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고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라고 말이다. 성 정체성을 포함한 정체성 형성은 인간 발달의 근본적인 양상이다. 주변에 아는 청소년들이 있거나 혹은 자신의 10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체성 형성이 얼마나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회, 문화, 종교 단체들이 ‘성년식‘을 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생식과 성의 성숙이라는 맥락에서 발달에 미치는 정체성 형성의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성 정체성 및 기타 정체성 문제는 무성애자들과도 관계가 있다. - P156

나와 카롤린 하퍼는 세상에 대한 신뢰가 커밍아웃 시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게이 남성은 세상이 공정하고 또 사람들이 공평한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을 때, 이런 신뢰가 없는 사람들에 비해 보다 빨리 커밍아웃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믿는 게이 남성들은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들에 비해 인생의 후반기까지 벽장 속에 머물거나 혹은 거기에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우리가 세상의 정의에 대한 믿음이 게이 남성의 커밍아웃 경험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게이 남성들이 종종 차별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 앞에 있는 세상이 불공평함으로 가득 차 있고 이런 불공평이 차별의 모습으로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믿거나 인식한다면, 그 사람은 세상이라는 무대에 멋지게 등장하지 못하고 피하게 될 것이다. "지연된 정의는 부인된 정의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연구에서는 이 금언을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자 한다. "지연된 등장은 부인된 불공평이다." 이는 일부 게이들이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인식할지도 모른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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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권력자와는 다른 선택을 하려는 자신의 의지에 반해 권력자의 선택 또는 결정을 따른다. 이를 통해 권력자는 타자에게서 자신의 의지를 본다. 타자에게서 자아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권력 감정의 핵심이다. 매개가 부족한 권력의 형태는 권력에 복종하는 자에게 부자유의 감정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비대칭적인 자유의 분배는 그 권력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 P91

생명이란 "자신의 형태를 강제하는 것"이다. 에고는 타자에게 자신의 상을 찍거나 강제함으로써 타자를 정복한다. 여기서 타자는 에고의 의지를 견디기만 하는 수동적 질료처럼 행동한다. "자신의 형태를 강제하는 것"으로서 권력 행사는 타자에게 에고의 연속성을 강요한다. 그를 통해 에고는 타자 속에서 자신의 상을, 즉 자기 자신을 본다. 타자가 에고를 반영하기 때문에 에고는 타자 속에서 자신에게로 귀환한다. 권력 덕택에 에고는 타자의 현존에도 불구하고 자유롭다. 다시 말해 [타자에게서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 P91

권력이란 타자에게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권력은 인간 고유의 것이 아니다. 헤겔은 이를 생명의 일반 원리로 내세운다. 권력은 살아 있는 존재를 죽어 있는 존재와 구별하게 해준다. "생명체는 비유기적 자연에 맞서 있다. 생명체는 비유기적 자연에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며, 그것을 자신에게 통합시킨다. 이 과정은 화학적 융합 과정과는 달리, 서로 대립하던 두 측면의 자립성이 모두 지양되는 중성적인 산물로 귀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생명체는 자신의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타자들을 장악하고 있다. [……] 이렇게 해서 생명체는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을 유지한다." 타자 속에서 자신을 상실하는 대신 "타자를 장악하고", 타자를 자신과 함께 점유하며, 타자 속에서 자신을 연속시키는 데에서 생명체의 권력이 드러난다. 타자를 향한 도정이 자기 자신을 향한 도정이 되는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유기체란 "자신에게 외적인 과정", 다시 말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과 함께 가는 것"이다. 타자 속으로 자신을 데리고 가는 권력이 없다면, 생명체는 타자 속에서 몰락한다. 다시 말해 생명체로 침투해오는 타자가 그 속에서 번식시키는 부정적 긴장감에 의해 몰락하게 된다. - P93

권력은 내면성과 주관성의 현상이다. 자신을 내면화/상기하기만 하면 되는 존재, 자신의 내면이나 자기 자신 안에 머무르기만 하면 되는 존재, 아무런 외부도 갖지 않는 존재는 절대적 권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내면화/상기와 경험이 완전히 하나가 된다면, 무력이나, 고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무한한 내면성이란 무한한 자유와 권력을 의미한다. - P99

유한한 존재는 타자에 둘러싸여 있다. 자기주장이란 이 존재자가 타자와 접촉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머문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러한 자아의 연속성이 없다면 존재자는 타자가 불러낸 부정성과 부정적 긴장감에 의해 몰락할 수밖에 없다. 자신 안에서 이 부정성을 견뎌낼 수 없고, 타자를 자신 안에 통합할 능력이 없는 존재자에게는 존재할 수 있는 권력/힘이 없는 것이다. 틸리히 또한 존재의 권력/힘을, 부정성 혹은 그가 말하는 "비존재"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비존재를] 자기주장에 편입시킬 수 있는 능력에서 찾는다. "더 많은 비존재를 극복했거나 극복할 수 있다면 존재의 권력/힘은 더 커진다. 더 이상 이를 견디거나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은 전적인 무력, 모든 존재의 권력/힘의 종말, 패배이다. 이것이 모든 생명체가 갖는 위험이다. 더 많은 비존재를 자신 안에 지니게 되면 그 생명체는 더 큰 위험에 빠지는데, 이 위험에 맞설 수 있다면 그 생명체는 더 큰 권력/힘을 갖게 된다. [……] 스스로 파괴되지 않고서도 더 많은 비존재를 자신의 자기주장에 편입시킬 수 있다면 생명체는 그만큼 더 강해진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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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인생은 ‘자기 예언‘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들로 가득하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이 마치 전쟁터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살아가게 한다. 세상은 경쟁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대개는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 P164

훌륭한 과학자는 가설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실패‘는 진리에 이르는 데 필요한 길을 더 분명하게 입증해 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성공한 하나의 가설보다도 더 많은 사실을 알려 주기도 한다. - P169

세상의 모든 전통적인 지혜의 말씀이 두려움을 언급하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모든 지혜의 말씀이 인간이 이 오래된 적을 이겨내기 위한 싸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지혜의 전통은 엄청난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말씀으로 통합한다.
"두려워 말라."
두려움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자칫 그 뜻이 왜곡되어 ‘완벽‘이라는 기운 빠지는 충고를 만들어 내지 않기 위해, 그 말씀들을 주의 깊게 읽었다. 두려워 말라는 말은 두려움을 가져선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내면에서 리더십을 발견한 사람들은 종종 더 많은 두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이 말에 담긴 뜻은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그 두려움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두려움의 공간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그 때문에 두려움이 증폭되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내부에 두려움의 공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신뢰와 희망, 믿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공간들도 있다. 우리는 그 공간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거기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가 그런 공간들 중 하나에 서 있을 때에도 두려움은 가까이 있고 우리 영혼은 아직도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를 지탱해 줄 단단한 땅 위에 서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시작해서 더 믿을 만하고, 더 희망차고, 더 충실한 존재의 길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다. - P173

"겨울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겨울 때문에 미쳐버릴 겁니다."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두려움 속으로 대담하게 들어서기 전까지는 그 두려움이 우리 인생을 지배한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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