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애자와 게이 및 레즈비언은 커밍아웃 과정에 있어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 원인이 될 수 있는 무성애 발달의 독특한 특성 몇 가지를 살펴보자. 그 중 하나는 ‘무성애‘라는 분류와 정체성이 새로운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무성애 정체성은 매우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다. 무성애 공동체는 그 성격상 두루 흩어져 있다. 그리고 무성애자들은 다양한 집단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이런 특성들로 인해 무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이 늦어질 수 있다. 내가 만난 한 무성애 여성은 20대까지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최근까지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이해할 만하다. 즉 동일시할 집단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 개인이 커밍아웃을 비롯한 정체성 형성 과정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자신이 게이라면 먼저 스스로를 ‘게이‘라고 규정짓는 것이 커밍아웃의 필수적 선행 요건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결국 필요한 것은, 일원으로서 동일시할 수 있고 커밍아웃할 수 있는 인식 가능한 명칭이 있는 집단이다. 아주 최근까지도 조직적이고 사회적으로 인식 가능한 무성애자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게이 혹은 레즈비언은 30년 이상의 오랜 기간에 걸쳐 서구 사회에서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존재감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게이 혹은 레즈비언들이 인생의 후반기까지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모르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동성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성적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무성애자 젊은이들에 비해 게이 혹은 레즈비언의 정체성과 문화에 대해 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 있다. - P162
이런 사례와는 별도로, 섹스의 광기에 관한 나의 입장을 지지하는 과학적인 연구가 있다. 실제 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섹스에 몰두할 때 인간의 인지 기능이 현저히 훼손된다는 증거가 제기되었다. 심지어 성행위에 몰입한 상태가 아닐 때마저도, 섹스를 상상하기만 해도 인간의 인지 기능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옷을 완전히 차려입은 아름다운 여성을 사진을 통해 보기만 해도 성행위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혈기 왕성한 이성애 남성은 미래를 잘 계획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고의 가능성이 줄어든다. 말하자면 그들은 미래를 ‘가볍게 무시한다.‘ 그러므로 성적으로 충만한 순간을 맛본 뒤에는 오히려 미래에 대한 현실성이 더 떨어지게 된다. 남성들은 본능적으로 짝짓기 가능성을 생각하기에, 비록 이상형의 여성과 결코 만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망 없는 비현실적인 소망일지라도, 남자들은 ‘짝짓기 순간‘에 과도하게 집중함으로써 ‘미래는 아무려면 어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연구자들은 매력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실제로 짝짓기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뇌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뇌는 짝짓기와 연결되는 신경 중추를 자극하면서, 보다 더 이성적이고 계획 지향적인 신경 중추를 닫아 버린다. 인간의 뇌는 수 만 년 동안 진화해 왔지만 그에 관한 사진은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눈앞에 놓인 이차원적인 이미지는 석기 시대 인간의 마음을 속임으로써 실제로 아름다운 여성이 자신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것과 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두 가지의 비합리성이 존재한다. 첫째, 사진을 보고 그것이 마치 진짜인 것처럼 반응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남성들이여, 진짜 여성은 눈부신 모습으로 당신의 침실로 들어오지 않는다. 둘째, 섹스의 가능성을 보고 미래를 무시한다. 그러므로 남성들의 반응은 이중적이고 비합리적이다. - P182
이런 분방한 행동은 섹스의 광적인 효과와 관련이 있다기보다 오히려 지위와 타인에 대한 무시가 권력, 신분, 나르시시즘과 손잡은 결과라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일부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를 설명해 줄 수는 없다. 이것은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다른 영역에서 규칙적으로 보여 주는 사려 깊고 떄로는 치밀한 행동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만약 다른 분야에서 경솔하게 행동한다면, 경솔하게 계획된 성관계만큼이나 자신의 커리어가 훼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만약 명사들 혹은 상당한 권력과 지위를 갖춘 유명 인사들의 자유분방한 행동에 대해 ‘섹스‘보다 ‘권력‘으로 설명하는 것을 선호한다면, 특히 남성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섹스와 권력 사이의 교묘한 상호 작용 또한 설명해야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일례로 남성들은 경쟁에서 이겼을 때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급상승한다. 이는 성 충동과 권력 두 가지 모두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친다. 간단히 말해 많은 남성들의 성 충동과 권력욕을 분리하는 것은 극히 힘들다. 그 반대로 권력욕에서 성 충동을 분리하는 것 또한 힘들다. 따라서 이런 스캔들에 이르게 되는 일견 비합리한 행동 이면에 놓여 있는 부분이 섹스가 아니라고는 완전히 잡아뗄 수는 없다. - P186
어떤 한 관점에서 볼 때 무성애는 장애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것은 생명체가 자연스러운 사물의 질서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섹스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타인과 ‘그 짓‘을 하고 싶은 욕망은 모든 성적인 생명체가 다양한 형태로 추구하는 것이다. 무성애를 장애로 간주하는 이런 입장은 진화 생물학이 고안한 렌즈를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성적 매력의 결핍은 중대한 생물학적 요청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섹스는 인간 번식을 위한 수단이기에 삶의 이런 측면을 회피하는 것은 인생의 근본적인 목표인 번식을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유기체는 번식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미래 세대에게 전한다. ‘승자‘ 혹은 가장 잘 적응한 최적의 유기체는 미래 세대에게 최대의 유전자를 전달하는 자이다. 최악의 부적응 유기체는 유전자를 미래 세대에 전달하지 못하거나 최소의 유전자만 전달하는 자이다. 사람들 대다수는 복제 게임을 하거나 성적 재생산을 통해 복제를 시도한다. 따라서 재생산 수단으로서의 이성에 대한 흥미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관심사로 간주되어야 한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보자. 여기 허구적인 인물인 ‘샐리‘가 있다. 그녀는 1920년에 태어나 2000년까지 살았다. 그녀는 결혼을 했고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 중 두 명의 자녀가 또다시 자녀를 낳았다. 이렇게 하여 그녀의 유전자는 전통적인 방식의 이성애 관계를 통해 임신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들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전해졌다. 그녀가 이런 과정을 성취하도록 해 주는 심리적인 메커니즘 또한 상당히 전통적이다. 그녀는 남성에게 성적인 매혹과 낭만적인 매혹을 느꼈다. 그 결과 아이를 원했고 아이들을 양육할 능력이 생겼다. 따라서 전통적인 인성애 관계를 택한 그녀의 경향은 부모로서 자녀 양육 능력과 더불어, 임신과 출산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유전자를 후세대들에게 물려 줄 세 가지 도구인 세 명의 자녀를 양육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래. 잘했어, 샐리!" 혹은 보다 정확히 "잘했어. 샐리의 유전자여!"라는 말을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성적 재생산을 통해 유전자를 복제하려는 경향을 가진 개인은 ‘건강한‘ 사람들이다. 이 추론에 의하면 그들은 성적으로 성공한 모든 인생 형태에 뒤따르는 자연스러운 과정에 순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이 지닌 문제점을 한 번 고려해 보자. 첫째,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이성애 생물학자들을 포함한, 자녀가 없는 많은 성애자들이 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번식 그 자체의 메커니즘인 섹스를 포기하지 않았건만 그들에겐 자녀가 없다. 따라서 이 궁극적인 생물학적 요청을 참담하게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장애자이거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일까? 둘째, 진화론적인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접근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DNA 복제는 수많은 유기체에서 무성 생식으로 발생한다. 그러므로 유성 생식이 유일하게 자연스러운 번식 과정은 아니다. 게다가 보다 단순하거나 계통 발생적인 오래된 종에서 발생하는 무성 생식은 별도로 치더라도, 유성 생식은 복잡한 종이나 최근에 진화된 종의 경우 한 가지 형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인간마저도 그렇다! 인간은 성적 재생산인 유성 생식뿐 아니라 다른 수단을 통해 자신들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혈연 선택 과정을 통해 복제가 가능하다. 혈연 선택 과정에서의 유전자 복제는 친족이나 가까운 친척을 통해 발생한다. 우리 친척을 우리 유전자를 공유하고, 6촌보다는 남동생이나 여동생같이 혈연이 가까울수록 더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게 된다. 따라서 친척들이 우리의 유전자를 성적 재생산을 통해 복제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사실상 친척들의 유전자 중 일부는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혈연 선택 메커니즘은 유전자를 복제하는 대안적인 적응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유성 생식이 인간이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만이 유전자 복제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유전자 복제의 혈연 선택 모델은, 왜 인간 사회에 동성애자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대답을 제공한다. 표면적으로 볼 때 생물학자들과 진화 심리학자들의 입장에서, 동성애자는 진화론적인 전형에 도전하는 것이다.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들처럼 유성 생식으로 성적 번식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동성애는 여러 문화와 여러 시대에 걸쳐서 존재해 왔으며, 적어도 어느 정도는 동성애의 유전적인 토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게이 유전자‘는 어떻게 ‘이성애 유전자‘와 경쟁할 수 있었을까? 이성애 유전자는 성적 번식에 참여하는 종족 번식 집단이 있는 반면, 동성애자는 대체로 그런 집단이 없지 않을까? 다시 위의 질문을 이어가자면, 이에 대한 대답은 동성애자의 혈연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게이 유전자가 동성애자의 친척들에게 나타나면, 게이 유전자는 생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화론적인 역사를 통해 번성까지 하므로, 재생산의 이점을 어느 정도 누리게 된다. 최근의 연구자들은 게이 남성들에게는 유별나게 자녀를 많이 낳는 여자 친척이 많다는 점을 알아냈다. 바로 그렇다! 그래서 게이 남성은 이성애 남성들처럼 아이를 낳지 않는다 해도, 그들의 여자 자매들은 얼마든지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게이 남성의 여자 자매들과 가까운 친척들은 게이 남성의 유전자를 공급받아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이런 현상은 게이 남성의 여자 친척들에게 재생산 이점 유형을 전달하는 게이 유전자가 있음을 암시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남성을 사랑하는‘ 유전자가 남성에게서 발견되면 그들은 게이가 될 수 있지만 그런 유전자가 여성에게서 발견되면, 그런 여성은 특히 남성을 좋아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 그들이 남성과 이성애 관계를 형성하고, 자손을 많이 낳으면, 자손에게 ‘남성을 사랑하는‘ 게이 유전자를 물려주게 된다. 설령 ‘남자를 사랑하는‘ 유전자가 여자 자매에게 없다고 하더라도, ‘게이‘ 유전자는 이런 유전자를 전달하는 개인들을 이용할 수 있다. 게이 남성들은 친척의 아이들이 생존하여 재생산을 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말하자면 여자 자매의 자녀나 혹은 남자 형제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그들의 유전자는 성적 접촉을 통해서 복제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혈연을 통해 복제된다. 이런 메커니즘은 흥미롭게도 동성끼리 매력을 느끼는 사모아 남성들에게서 상당한 증거가 발견되었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모두 가진, 사모아 문화에서 제3의 성을 지칭하는 파아파피네Faafafine는 사모아 남성 집단이다. 그 안에서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사모아 사회는 우리에게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모아 사회는 현대 서구 사회보다 인간이 더 진화할 때 발생할 법한 사회적, 가족적 관계를 훨씬 더 가깝게 밀착되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들이 입증하다시피, 자연은 무수히 많은 방법으로 다양성을 유지하고 창조한다. 유전적으로는 사라진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생물학적으로는 ‘건강하지 못한‘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전통적인 이성애 과정을 거쳐 번식하지 않는다고 하여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부적응자라고 할 수 없다. 그 말은 개인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방법으로써 유성 생식 이외의 또 다른 진화적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 P195
프로이트적인 해석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나는 우리의 성적 욕구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충족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대 서구의 미디어들은 성 중독자들을 사회적으로 정상인 것처럼 보여 주어 우리의 성적 기대치를 엄청나게 높여 놓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실 사회의 섹스 생활은 그대로이지만, 상대적으로 높아진 기대치 때문에 성적인 측면에서 결핍 상태에 이르게 된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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