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자들에게



한국의 독자 여러분,

한국은 조상을 공경하는 나라겠지요. 극동 아시아에는 가족 전통이 소중하게 남아 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서양에서는 그 전통이 조금 무너졌고, 나는 그 점을 늘 아쉽게 생각해 왔습니다.

나의 책 『할머니의 비밀』은 남다른 시련을 이겨 내면서 꿋꿋하고 나름으로 아름답게 살아 온 한 노인의 삶을 보여 줍니다.

이 책은 서양의 청소년들에게는 노인의 삶에 귀를 기울여 보는 체험이 되겠지만, 여러분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있겠지요.

혹시 여러분이 모험을 좋아한다면, 여러분은 이 책에서 갱들이 주름잡던 시절의 미국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나는 열세 살 때 이곳 프랑스에서 한국인 사범에게서 태권도를 배웠고, 그때부터 한국을 사랑했습니다. 동양도 내게는 낯선 세계가 아닙니다. 아버지와 숙부가 베트남에서 태어나셨거든요.

한국의 독자 여러분, 멀리 프랑스에서 우정의 인사를 전합니다.



2003년 9월

장 프랑수아 샤바스

페이스 할머니는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았다.

"모든 것은 자연에 있다.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 말이다. 동네 작은 공원의 잔디밭이 아니라 대자연 말이다. 네가 커다란 사슴이나 회색곰과 마주치는 날, 밤이 되고 눈이 허리까지 차 오르는 캄캄한 나무숲을 여러 시간 동안 혼자 걷게 되는 날, 바로 그때 너는 네 자신에 대해 좀더 잘 알게 될 거다." - P65

"이유를 알면 좋으련만."

할머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할머니가 고약하고 심술궂은 미친 노파이기 때문이죠. 할머니가 그러니까 오히려 제가 평소 우리 집안 분위기대로 착하게 변한 거죠. 그게 이유예요. 이제 할머니 마음대로 하세요. 전 상관없어요."

나는 제기랄을 연발하며 복도로 나왔다. - P96

눈이 완전히 녹았다.

흔적도 없이 녹았다. 숲은 이제 긴 겨울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주변의 자연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두려움조차 이따금 받아들일 정도로 이곳의 자연이 좋다. - P99

하지만 일기를 읽지 않은 두 분에게도 할머니는 처음과는 좀 달라졌다. 신랄하게 비꼬는 태도도 누그러졌고 식탁에서 식구들을 싸늘한 시선으로 훑어보지도 않았다. 어느 날은 집에 꽃다발을 가져오기도 했다. 할머니는 이 음산한 도시에서 자연이 그리워 가져왔다고 둘러댔지만 아무도 곧이듣지 않았다. 우리는 할머니가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 P120

사람들은 부모님이나 경찰에 알리는 편이 더 간단하고 현명하다고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의견을 내세울 것이다. 그러면 나는 우리 동네 방식은 좀 다르다고 대답할 것이다. 길게 설명할 것 없이 우리 동네에서는 자기 일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처리한다고만 말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다. 어리석고 위험하며 불법인 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그렇게 한다. - P126

도너번이 이를 부딪치며 덜덜 떠는 소리가 들려서 내가 한 마디 했다.

"제기랄, 품위 좀 지켜라!"

그러면서 제발 도너번이 내 다리가 푸딩처럼 후들거리는 것을 보지 않기를 바랐다. - P127

"네가 나처럼 숲속에서 팔십 년 가까이 살았다면, 자연이 가장 큰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거다. 대자연의 광활한 숲속을 걷다 보면 고통이 사라지지. 여기서는 밤이 돼도 하늘을 볼 수가 없어. 블랙버리에서는 스완 호수 언덕에 오르면 마치 별 아래 앉아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 P135

나는 두 분을 탓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바보 천치 같은 도덕주의자들을 원망했어. 그 멍청이들은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면 사람들의 정신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고 믿은 거야. 하지만 정신을 정화하겠다고 나선 그들이 얻어 낸 것이라고는 온 나라를 총격전으로 몰아넣고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것뿐이었지. - P164

"나도 잘 모르겠구나. 아니, 너희 집에 무얼 찾으러 간 건 아니었어. 이 숲에 떠도는 기억에서 달아나려고 해본 거랄까. 하지만 그 기억은 너무 강했지. 그래서 곧 나를 붙잡아 다시 여기로 데려오고 만 거야." - P172

"시카고에서 아버지는 하얀 셔츠를 입고 에나멜 구두를 신고 다녔지만 그때 이미 도둑이었어."

나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자기 아버지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페이스 할머니가 앙심을 품고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밝혀진 사실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 P176

"지금부터 얘기하는 사실은 내 마음의 짐을 덜거나, 과거 일에 대한 책임을 네 아버지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너한테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야. 모두 얘기하마. 열다섯 살 때부터 나는 도둑질을 했고 사람도 죽였어. 네가 본 대로 난 꼬마 예수와 그 일당을 죽였고 다른 사람도 죽였어. 운명이란 어쩔 수 없더라. 내가 자신을 바로잡고 정직하게 살아 보려고 할 때마다 일이 터져 그럴 수가 없었단다. 내 가족은 화재로 죽었어. 다른 일들도 많이 있었지만, 얘기할 마음도 시간도 없기 때문에 네게 다 들려줄 수가 없구나. … - P176

나는 잠자코 아저씨가 하는 말을 들었고 아저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독이 되어 내 귀에 박혔단다.

"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었어. 그런데 이상도 하지, 나는 그 날 네 아버지가 앉은 탁자로 이끌리듯 가서 앉았단다. … - P178

"왜 아멜리 할머니는 한번도 돌아오지 않으셨나요?"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 아멜리는 아마 돌아올 수 없었을 거다. 악몽 속으로 다시 빠져 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그렇다면 할머니는 왜 남으셨어요?"

"그건 나도 잘 몰라. 어쩌면 우리 부모님의 기억을 돌볼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어쨌든 두 분은 여기 잠들어 계시니까. 그리고 이 숲에 추억이 어려 있기 때문이겠지. 그 추억은 약간 무겁고 역겨운 향기가 나는 꽃과 같다고 할까? 하지만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몸을 굽히고 바라보게 되는 그런 꽃 말이야." - P185

할머니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1940년, 서른의 나이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의 아버지는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떠나 버렸고…… 아들은 열여섯 번째 생일에 집을 나가 장터를 떠돌아다니는 권투 선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오 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외할아버지였다. - P187

(옮긴이의 말)

페이스 할머니의 일기에는 이 혼란한 시대가 어떻게 그려져 있을까? 할머니의 부모나 앙리 르구외 씨는 범법자이지만 결코 흉악한 사람들은 아니다. 정직한 신사이든 잔인한 갱이든 누구도 전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술을 사먹으면 누구나 범죄자가 되는 시대이지만 술에 취한 사람들이 버젓이 블랙버리 거리를 나다닌다. 음주를 금지함으로써 오히려 범죄를 일상의 친근한 일로 느끼게 만들고 결국 더 많은 범죄와 폭력을 낳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작가는 세상을 선과 악이라는 단순 논리로 보지 않는다. 아이들이 선과 악이라는 도식을 넘어 이 세상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의 복합성 속에서 보도록 한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너무 어려울 거라며 지레 아이들을 무시하지 않는데, 그건 아이들이 세상을 진지하게 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P1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편벽된 말을 들으면 그 가려진 것을 알고, 방탕한 말을 들으면 그 함정을 알며, 간사한 말을 들으면 그 도리에 어긋난 바를 알고, 회피하는 말을 들으면 그 논리의 궁함을 안다. - P139

맹자가 말하였다. "물고기도 내가 원하는 것이요,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택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요, 의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택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삶보다 더 원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삶을 구차하게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도 내가 싫어하는 것이지만,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환난도 굳이 피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삶보다 더한 것이 없다면, 삶을 얻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어찌 쓰지 않겠는가? 가령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 죽음보다 더한 것이 없다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어찌 쓰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살 수 있는데도 쓰지 않음이 있으며, 이 때문에 화를 피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음이 있다. 이런 이유로 삶보다 더 원하는 것이 있으며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으니, 오직 현자만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데 현자는 이것을 잃지 않을 뿐이다." - P158

그러므로 ‘하지 않는 바가 있는’ 견자는 인격을 끌어올릴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인생의 원칙은 ‘하지 않는 바’에서부터 세워지는 것이다. - P166

공자가 안연에게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고 가르친 것이나, 맹자가 "예가 아닌 예, 의가 아닌 의를 대인은 하지 않는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고, 하고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자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한 말은 모두 ‘하지 않는 바’를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라도 불의를 행하거나, 한 사람이라도 무고하게 죽여서 천하를 얻는 것은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지 않는 바’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이처럼 견자의 ‘하지 않는 바’는 세속적인 것과 단절하고 도를 확고히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인격을 끌어올리는 첫 번째 관문이다. "사람은 하지 않는 것이 있은 뒤에야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라는 맹자의 말은 정곡을 찌르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사람은 반드시 ‘견자’가 된 후에야 비로소 ‘광자’가 될 수 있다. 이처럼 견과 광은 서로 통한다. - P166

…오늘날에 이르러 유가 윤리 규범의 효용성은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문화적 반성을 통하여 볼 때, 유가 윤리 자체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응용상에 있어서 시대적·사회적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윤리 규범을 표현하는 방법상의 문제이다. 과거의 표현 방식에 대해 전반적인 조정이 필요하며, 반드시 시대적·사회적 상황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 P172

불인에 안주하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인심이고, ‘깜짝 놀라고 측은해 하는 마음’이다. 성왕은 백성과 더불어 좋아하고 싫어하며, 백성과 더불어 즐거워하고 근심한다. 이처럼 성인의 몸에 충만한 것이 ‘측은지심’이다. 그러므로 ‘인심을 미루어 인정을 실행’할 수 있다. ‘헤아리다·추측하다’라는 의미의 ‘추’는 유가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정신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것은 자신을 미루어 남을 생각하는 ‘서’이고, "자신이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며,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면 남도 도달하게 하라"라는 것은 ‘서’의 더욱 적극적인 표현이다. 맹자에 이르러 이러한 도리는 더욱 발휘되었다. - P1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 학파들에게 우선 공통이라 여겨지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이론 측면을 넘어서 실천 측면에 우위성을 두는 태도다. - P28

그리하여 이에 하나의 질문이 뒤따르게 된다. "만일 참됨도 거짓됨도 마지막까지 증명할 수 없는 것이라면, 도대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 이론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받아들이지 말지 하는 문제를 결정하게 하는가?" - P33

즉 ‘도대체 무엇이 실제로 갈릴레이로 하여금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을 뒤따르게 했고, 반대로 프톨레마이오스의 견해를 거부하도록 했기에, 그가 한편에 대해서는 참되다고 하고 다른 편에 대해서는 그릇되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질문은 분명 다음 물음을 먼저 해결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곧 ‘객관적인 판단기준이 부재할 경우, 도대체 무엇이 그 어떤 이론이 참되다거나 그릇되다는 믿음을 결정하는가?’ 하는 물음 말이다. - P33

헬레니즘 시대의 사상가들은 물론 핵심적인 관건을 단연 인간의 실천적인 측면에 두었기에, 모든 이론적인 학문은 그들에게 그 같은 관심에 입각해서만 합당하고 절실하게 요구되었을 것이다. - P42

에피쿠로스학파에게 쾌락이 혹은 스토아학파에게 미덕이 마치 절대적인 목적이듯 생각되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에우다이모니아만이 그 두 학파 혹은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가치로서 그로부터 다른 모든 가치들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이다. - P50

이러한 태도에 상응하여 한 가지 확실한 경향으로서 그 발전도상에서 점차적으로 더 강하게 ‘수동적인 태도’가 부각되었다. 사람들은 가능한 한 자신의 고유한 행복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거나, 그들의 세계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아주 적은 능력만을 행사할 뿐이라고 믿거나, 나아가 행복을 위해 애쓰는 경우가 오히려 행복에서 멀어지도록 만든다는 생각에 길들여졌다. 사람들은 스스로 행위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행해져야 할 여러 다그침에 기껏 순응하는 데 만족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사람들 각자 고유의 능력에 따라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신뢰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 P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관 정신은 도덕 인격의 근거로서 이것을 소홀히 하면 모든 정신이 그 근본을 상실하게 된다. 객관 정신은 도덕 이성이 외부로 펼쳐지는 것으로서 이것을 소홀히 하면 절대·주관 정신 모두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다. 절대 정신은 모든 정신의 귀착점으로서 이것을 소홀히 하면 인류는 안식처를 잃게 된다. - P39

만약 자발성이 있다면 스스로 노력을 쌓아 선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자발성이 없다면 근본적으로 노력을 쌓으려는 의지도 없을 것이며, 또 쌓도록 억지로 시킬 수도 없음은 당연한 이치이다. - P81

맹자는 인의예지란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것’으로 ‘내가 본래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임을 긍정하였다. 인간은 모두 선한 심성을 가지고 있으며, 배우지 않아도 아는 양지와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양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선천적으로 본래 가지고 있는 선한 심성과 양지·양능을 확충해 나가기만 하면 선한 덕행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은 완전히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으며 외부에서 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각적·자주적이며, 도덕적 역량 또한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나온다. - P81

그러므로 맹자는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일시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든지 혹은 ‘물욕에 빠져 있는 것’일 뿐이다. 인간의 양지와 본심은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반드시 불안해하며, ‘물욕에 빠져 있는 것’에 대해 참지 못한다. 이 불안불인한 마음이 언제나 인간에게 경각심을 촉발시키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도덕 법칙에 대해 기뻐하며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함으로써 도덕을 실천하고 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 P81

이로써 볼 때, 순자가 말하는 심에 주재 능력이 있음은 분명하다. 몇몇 논자들 역시 이에 근거하여 순자가 말한 심에는 ‘자유 의지’가 있다고 말한다. 심에 자유 의지가 있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심은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과 심은 스스로 법칙을 세우고 그 법칙에 의거하여 자주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전자는 인지심의 관점에서 말하는 자유 의지이며, 후자는 도덕심으로서 자주적이고 자율이며 창조적인 자유 의지다. 순자가 말하는 인지심의 자유 의지는 전자에 속하며, 맹자와 정통 유가에서 말하는 도덕심의 자유 의지는 후자에 속한다. - P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희경_ 요즘 청년들은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뒤늦은 사춘기를 겪는다고 합니다. 소위 명문대라는 곳에서 우울이 심해진다고 하는데요. 제가 아는 한 의대 교수님은 연구실에서 캠퍼스를 내려다보면 ‘폭탄들이 걸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걱정스럽다고 말씀하셨어요. 스스로를 해치고 남도 해칠 수 있는 상태로 내몰리고 있어서요.

최재천_ 예전에 제가 카이스트 총장님에게 뵙고 싶다고 연락한 적이 있습니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였어요. 카이스트는 모든 학생이 장학금을 받으며 들어왔는데 당시에 경쟁 체제를 도입했습니다. 학점이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 학비 일부를 내도록 하면서 그 과정에서 두 명이 목숨을 끊었죠.
하버드대학교에서 기숙사 사감을 맡으며 경험한 제도를 말하고 싶었어요. 하버드대학교의 경우, 1학년생은 하버드 야드Harvard Yard에 있는 1학년 기숙사에서 지내고, 2학년부터 하우스House라고 부르는 고학년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요. 기숙사마다 마스터라고 불리는 책임자가 있어요. 마스터는 덕망 있는 교수님이 맡고, 부교수 정도 되는 사람이 시니어 튜터를 맡아요. 그리고 저와 같은 조교들이 튜터를 맡습니다. 분야별로 열 명 남짓 있어요.
제가 7년 동안 튜터를 맡았는데요. 튜터가 하는 일은 학생들과 함께 밥 먹는 일입니다. 제가 맡은 아이가 열네 명 정도인데, 수시로 같이 밥을 먹으면서 그 아이의 상황을 살폈어요.

안희경_ 온몸으로 아이의 일상을 느끼신 거군요.

최재천_ 별말이 아니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느낌이 오죠. ‘이 아이가 요즘 상당히 시달리고 있구나‘ ‘성적이 잘 안 나오나 보다.‘ 튜터 회의에서 "제 학생 한 명이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면, 시니어 튜터가 그 학생에게 면담을 요청해요. 시니어 튜터는 저보다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죠. 학생들은 ‘실연당했다‘ ‘성적이 떨어졌다‘ ‘가족 문제가 있다‘ 등의 고민을 풀어놓습니다. 그러면 모두가 그 아이를 도와줍니다.
코넬대학교는 목숨을 끊는 학생들이 매우 많습니다. 학교 안에 자살하는 장소가 있을 정도예요. 계곡에 있는 구름다리에서 그렇게들 뛰어내립니다. 아이비리그의 자살률이 상당히 높아요. 하버드대학교는 자살률이 비교적 낮습니다. 물론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도 있지만요. 저는 그 튜터 제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튜터가 부모처럼 열몇 명 학생들을 계속 살피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학교에서 대신 돌봐주니까요.
카이스트는 전국에서 학생들을 뽑아 대전에 묶어 두고 있잖아요. 튜터 시스템을 도입하시라고 권하고 싶었습니다. 학교 옆에 부지를 확보하여 서울에서 오가는 교수들이 머물 게스트 하우스를 짓고, 학생들과 어울리게 하면 서로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만남을 잡기 전에 총장님이 사임하셔서 제 의견을 전하지는 못했어요. 이제라도 여러 학교에서 튜터 제도를 도입하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