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망경>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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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계온품』 각 경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

(1) 「범망경」(梵網經)
인간은 견해의 동물이다. 인간은 매순간 대상과 조우하면서 수많은 인식을 하게 되고 그런 인식은 항상 견해로 자리잡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가지는 견해는 너무도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견해는 항상 무엇이 바른 견해인가라는 질문을 수반한다. 견해란 무엇인가? 아니 바른 견해란 도대체 무엇인가? 바른 견해란 도대체 가능한 것일까? 인간은 견해 없이 살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계실까?
견해의 문제에 대한 고뇌를 누구보다 많이 하신 분이 바로 부처님이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디가 니까야』의 첫 번째가 되는 「범망경」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견해를 과거에 관한 것 18가지와 미래에 관한 것 44가지로 나누어서 모두 62가지로 분류해서 심도 있게 설명하고 계신다. 이를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 18가지 과거를 모색하는 자들
I-1. 영속론자들 - 4가지
I-2. 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들 - 4가지
I-3.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들 - 4가지
I-4. 애매모호한 자들 - 4가지
I-5. 우연발생론자들 - 2가지

(나) 44가지 미래를 모색하는 자들
II-1. 사후에 자아가 인식과 함께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 - 16가지
II-2. 사후에 자아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 - 8가지
II-3. 사후에 자아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 - 8가지
II-4. 단멸론자들 - 7가지
II-5.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자들 - 5가지

그러나 「범망경」이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견해를 모두 62가지로 정리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범망경」은 오히려 왜 이렇게 다양한 견해가 생길 수밖에 없느냐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연기(緣起)의 관점으로 명쾌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견해란 조건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본경에서 견해는 ‘느껴진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을 복주서는 "체험되고 경험된 것"으로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이 경험된 것은 대상과 감각기능과 알음알이의 세 가지가 서로 조우할 때 일어나는 감각접촉[觸]에 조건 지워진 조건발생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조건 발생을 불교에서는 연기(緣起)라고 말한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견해를 감각기능·감각대상·알음알이[根·境·識]의 삼사화합(三事和合)에서 기인한 감각접촉의 산물이라고 불교의 연기 구조로 명쾌하게 정의하신다. 이렇게 하여 견해의 문제는 마침내 괴로움의 발생 구조[流轉門]와 소멸 구조[還滅門]를 적나라하게 밝힌 연기의 가르침으로 회통이 되고, 이것은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원인[集]과 괴로움의 소멸[滅]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로 정리된 불교 만대의 진리인 사성제(四聖諦)의 가르침으로 귀결이 될 수밖에 없다.
한편 이런 연기의 가르침이야말로 무아의 가르침이요 무아의 가르침은 바로 존재론적인 실체인 자아를 해체하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연기-무아로 존재론적인 실체인 자아가 있다는 견해를 떨쳐버릴 때 그것이 바로 견해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이라고 부처님께서는 설하신다. 그러므로 62견은 연기-무아를 철견할 때 극복된다는 것이 본경의 결론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본경은 팔정도의 첫 번째인 바른 견해[正見]와 바른 견해의 내용인 연기의 가르침을 천명한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4부 니까야의 첫 번째인 『디가 니까야』를 대표하는 첫 번째 경으로 결집이 되었을 것이다. - P59

106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의 주석(72번째 주석)
옛날에는 이처럼 마음의 삼매로 표현되는 정신적인 능력이 과거를 보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삼매의 힘은 주관적인 것이라서 객관성이 없는 것이 흠이지만 수행자들의 권위가 뒷받침되어 그들의 주장은 통용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주관적인 권위는 객관성이 결여되었고 그래서 그들의 권위를 지탱시키기 위해서 힘, 즉 폭력을 수반해온 것이 인류역사다. 세속의 정치적 힘을 능가한 서양 종교의 권위와 힘은 교황을 만들어 내었고 천년 넘게 서양을 지배해 왔다. 이런 주관적 권위를 극복하고자 서양 지성인들은 많은 노력을 하였고 그래서 과학(science)이라는 방법론을 개발하였다. 과학은 무어라 해도 객관적인 자료가 중요하다. 이런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한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서 그들은 과거 즉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하여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 P106

131
2.24.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것은 유익함[善]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不善]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만일 내가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면서도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설명하거나,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설명한다면,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곤혹스러운 것이고, 곤혹스러운 것은 나에게 장애가 된다.‘라고.
이처럼 그는 거짓말을 두려워하고 거짓말을 혐오하여, ‘이것은 유익함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고, ‘이것은 해로움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아서,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첫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 P131

166
62견은 단지 느낀 것이요 동요된 것일 뿐이다

3.32. "비구들이여, 여기서 영속론자인 그 사문·바라문들이 네 가지 경우로 영속하는 자아와 세상을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갈애에 빠져 있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단지 느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느낌이 [견해와 갈애에] 의해 동요된 것일 뿐이다."(160번째 주석)

주석 160) 「범망경」 전체에서 이 문단이 가장 극적이면서도 중요한 구절이라고 역자는 파악한다. 아무리 과거와 미래에 대한 굉장한 견해를 늘어놓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금여기에서의 체험이나 경험의 문제로 귀결되고 만다는 의미이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의 토대로 부처님 당시에는 삼매체험이 중시되었다. 삼매에 들어서 먼 과거를 보고 과거에 대해서 단언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지금여기에서 삼매에 들어서 그렇게 봤기 때문이다. 미래는 예측의 문제인데 이것도 역시 지금 그가 그렇게 예측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거와 미래에 관한 모든 견해는 자기 자신이 바로 지금여기에서 경험하고 체득하고 느낀 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과학적 방법론으로 과거와 미래를 파악한다. 과학적 방법론이 지향하는 것은 객관화이다. 객관화의 방법은 바로 자료이다. 정확한 자료에 근거할 때 우리는 그것을 정설로, 객관적인 것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과학은 신빙성 있는 자료의 확보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처럼 과학이 가설이나 학설(견해)을 주장하는 근거는 자료이다. 그러므로 지금여기에서 실험이나 관측 등을 통한 자료가 없으면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는 있을 수 없다.
관측이나 실험에 의한 자료를 통해서 보면 우주는 팽창한다고 한다. 다른 관측과 실험을 통해서 요즘은 우주는 팽창한 뒤에 다시 수축하고 그래서 팽창·수축을 거듭한다고도 주장한다. 이것은 부처님 당시의 수행자들이 삼매에 들어서 판단하던 것이 자료에 의한 견해로 바뀌었을 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두 현재 바로 지금여기에서 어떤 자료를 어떻게 판독하고 어떤 실험을 어떻게 하고 어떤 관측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이 문제를 부각시켜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vedayita(느껴진 것, 체험한 것)이다. 지금여기에서 그들이 느끼고 체험한 것을 넘어서서는 아무런 견해도 가질 수 없다는 부처님의 명쾌하신 지적이다.
초기불전을 통해서 우리가 반드시 통달해야 하는 가장 큰 인식의 전환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과거를 되새기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 마라.
과거는 제거되었고 미래는 닥치지 않았다.
현재에 [일어나는] 법(dhamma)을 바로 여기서 통찰하라."
(Bhaddekaratta Sutta, M131/iii.187)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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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9-21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텔게우스님, 추석인사 드립니다.
오늘부터 추석연휴입니다.
즐거운 추석명절, 기분 좋은 연휴 보내세요.^^

베텔게우스 2018-09-21 22:12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풍성하고 여유로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