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선언에 대한 내 반론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위대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세연은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무가치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잖아. 우리가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 종으로서 잘 가꿔진 숲길을 걸을 때 거부할 수 없는 작고 소소한 기쁨을 맛본다면, 그 숲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가치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어. 좋은 음악이나 그림, 음식을 즐기는 데서 오는 즐거움은 본능적인 것이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만들거나 만드는 기술을 갈고 닦는 데에는 왜 우리가 그걸 해야 하는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애써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어. 그러니 그런 일을 하면서 보내는 삶에도 가치는 있는 거야.
 ‘인정에 대한 욕구‘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패배나 사회 변혁이 없어도 적절한 수준에서 채워질 수 있을 것 같아. 실제로 평범한 사람들은 승진을 하거나 표창을 받았을 때 그런 욕구가 풀렸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어떤 업적에 대한 욕망이랄까, 자부심을 충족시키는 데에도 그 거래를 내가 성사시켰다, 저 건물을 짓는 데 내가 참여했다, 저 길을 여는 데 내가 힘을 보탰다, 저 정책이 바뀌는 데 나도 일조했다, 이런 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 앞의 세대라고 해서 그 사람 중 어느 누구 한 명이 자기 힘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것은 아니잖아. 그네들이 가진 자부심도 하나하나 쪼개놓고 보면 나도 가방 하나 들고 해외 출장 나가봤다, 밤새워 일해봤다, 거리에서 돌 던져봤다, 그런 일들 아닌가.
 세연이라면 이런 생각을 한심하다고 여기겠지만 오히려 이제 와서 나는 지금의 내 태도가 어른스러운 것이고, 남은 사람들이나 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신경을 쓴 세연의 태도가 어린아이 같은 거라고 봐. - P297

우리 사회에 모순이 쌓이지 않는다는 세연의 주장에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세상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힘은 이제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 시대에 태풍은 곧 몇 번 들이치리라 생각한다. 그때 그 에너지를 이용하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많은 일을. 그건 그 에너지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 P332

나는 20대가 스스로 자신의 과업을 찾아주길 바란다. 내게 20대는 여러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일 뿐이다. 반면 젊은이들에게는 과업을 찾는 일이 바로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길이다.
 이 책에서도 인용한 새뮤얼 헌팅턴의 말처럼, 사람은 적수가 누구인지 알 때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20대를 정의하는 각종 담론이 대체로 공허한 이유는 그 청년 세대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들의 과업을 찾는 것이 바로 지금의 20대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임무인지도 모르겠다.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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