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삶의 네가지 진리
달라이 라마 지음 / 숨 / 2000년 6월
평점 :
품절


불교에 관심이 있다면 또는 평화롭고 자애로운 삶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달라이 라마의 책은 좋은 동반자가 되어줍니다. 달라이 라마의 글은 언제나 평화롭고 솔직하며 명쾌합니다.달라이 라마의 많은 책 중에서 단 한권만을 권할 수 있다면 저는 이 책을 택하렵니다. 불법의 핵심인 사성제에 대해서 이렇게 깊고 넓은 가르침을 정곡을 찔러 이야기할 수 있다니! 전율마저 느끼게 하는,  얇지만 강한 책입니다.

맨 앞부분을 펼쳐보면 달라이 라마가 느껴지실 겁니다.

"행복의 책임은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거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행복을 가져돌 원인과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그것을 가꾸며, 고통을 가져올 원인과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그것을 없애는 것입니다.부처님 자신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선한 행동들을 하고/ 나쁜 행동들을 근절하고/ 마음을 올바로 제어하는 것이/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름다운 파괴 - 깨달음과 사유의 인도 이상의 도서관 50
이거룡 지음 / 거름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EBS에서 인도사상 강의할때 요가선생님 같은 이거룡 선생님을 뵈었다. 약간 어눌하면서도 말솜씨가 좋다는 게 신기했다. 저자의 목소리를 한번 들어보면 책 읽기가 한결 수월해 진다. 졸리면 그 말투와 눈빛 몸짓을 떠올리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강의록인데다가 EBS강의와 똑같기 때문에 한결 편안하게 볼 수 있었던 책이다. 그림도 많고 편안한 대화형식이고-- 인도 사상을 이렇게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책이 있을까?

재미있는 것은 인도사상의 핵심으로 체념을 든다는 거였다. 유학자들이나 서양 종교인들이 불교를 어떻게 욕하던가? 소극적이다. 비관적이다. 현실을 포기하고 대항하지 않는다. 순종적이다. 그래서 요즘의 불교 책은 늘상 '우리는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종교예요.'라고 시작하는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책은 처음부터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욕망을 떨궈내는 포기가 인도사상의 핵심이라고 한다. 그것이 진리를 바라볼수있게하는 인도의 '체념'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문득 부처의 일화가 떠올랐다. 한 어머니가 외동아들이 죽어 슬피울며 호소했다. "제발 내 아들을 살려주세요." 부처는 담담하게 말한다. "아무도 죽지않은 집에서 쌀알을 받아 이 사발에 담아오게. 그럼 그대의  아들을 살릴 수 있을걸세." 그리고 그 어머니는 며칠이 지난 후에야 부처에게 돌아왔다. "부처님. 이제야 알겠습니다. 세상에 죽음의 슬픔을 겪지 않은 집은 없군요. 그리고 사람이란 죽어야하는 존재이고 그것은 당연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슬픔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 여인이 겪었던 과정이 초기 불교가 말하는 깨달음의 과정임을 느끼게 된다. 그 과정은 인도인의 보편적인 체념의 과정이 새롭게 연마된 것임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 이 여인처럼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함에도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으로 점철된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겠는가? 다양한 지식과 더불어 내 삶을 반추할 수 있어서 더 좋은 책-아름다운 파괴!

참고로 인도 좋아해서 인도 몇 번 다녀온 길벗의 추천에 의하면 라다 크리슈난의 <인도인의 인생관>과 이거룡선생의 <아름다운 파괴>가 인도사상의 좋은 인도자라고 한다. 얇으면서도 강한 책!--나도 그 친구가 남겨놓고 간 <인도인의 인생관>을 펼쳐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설의 현상학
조셉 J.코켈만스 지음, 임헌규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을 사다보면 정말 좋은 책이 요절하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이수태 선생의 '논어의 발견'이랄지 임진석 선생의 '추상 한의학'  야마무라 오사무 선생의 '천천히 책읽기를 권함' 등등  어찌 한두권 이겠습니까?  물론 '추상 한의학'같은 책은 다시 부활한 경우에 속하겠지만 대부분 삐까번쩍한 베스트 셀러에 질식되어 기억속에 사라지고 맙니다. .  

오늘 보니 '후설의 현상학'역시 이렇게 6년이 된 지금조차 1쇄를 벗어나지 못하니 곧 구하려고 해도 구할수 없는 책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난해한 현상학의 본령을 50년동안 정진한 석학을 통해 밟아볼 수 있는데도 왜 이런 책을 사지 않는 걸까요? 현상학은 동양과 서양이, 근대와 탈근대가 ,현실과 꿈의 세계가 만날수 있는 절묘한 학문이지요. 엘리아데나 하이데거도 리쾨르도 레비 스트로스도 메를로 퐁티도 우린 현상학을 통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요.그런데 왜 이런 학문의 문을 두드리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런 시시껄렁한 잡담은 그만두고 저자의 집필의도를 인용하면서 이글을 마치렵니다.

" 편집자의 요청에 부응하여, 나는 이 책을 후설의 원전과 그 해설로 구성하였다. 내가 선택한 후설 원전은 후설이 자신의 새로운 현상학의 이념을 일반 독자들에게 제시하기 위해 신중하게 집필했던 대영백과사전 <현상학>의 논문이다. 나는 다소 간략한 이 논문이 후설 현상학의 전모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이 원전을 해설하는 데 있어 나는 후설 자신을 그 해설자로 원용하였다. 왜냐하면 후설 현상학은 체계적으로 구성된 철학적 건축물이 아니라, 저자의 자기 책임 아래 수행된 철학적 탐색이며 작업 수행으로서, 저자와 동일한 탐구정신으로 모색되어야할 철학의 문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소 지난하고 기나긴 사색의 과정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방법이야말로 후설 현상학에 진입하는 첩경임을 50여 년동안의 후설 현상학 연구를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아울러 나는 이 책을 통해 나의 철학사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후설 현상학의 철학적 의의와 그 발생 과정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 끝으로 현상학하시는 선생님들 좋은 서평 좀 써주세요. 후배들 도움되게요.^^ 이런 책이 1쇄에 머무는 한 현상학이란 상아탑에 갇힌 선생님들의 배부른 잡담에 불과합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두레아이들 그림책 6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최숙희 그림, 김은정 옮김 / 두레아이들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톨스토이의 자서전에 있던 이런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생전 처음으로 모스크바에 가기위해 마부가 끄는 마차를 타고 며칠인가를 갔을때 아침에 눈을 뜬 톨스토이가 마부에게 묻습니다. "이보게 저기 땅위에 솟아오른 거대한 것이 무언가? 난 생전 처음 저렇게 큰것을 보네."마부가 답하기를 " 백작님. 저게 산이라는 겁니다."며칠을 가야만 자기 영토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스물이 되어서야 겨우 산을 보게 되는 대평원의 삶이 신기했습니다. 그러나 그 평원보다 더 거대한 사상을 일군 사람이 톨스토이 아닌가요?

전쟁과 평화랄지 안나 카레리나로 일약 국민 문학가이자 거장으로 칭송받던 톨스토이는 중년이 되어 자신의 삶이 거대한 허위로 싸여있다고 고백하고 참회록등 절절한 기록을 남깁니다. 그리고 농노를 해방하고 자기 영토를 흩어버립니다. 그리고 구두방에 취직해서 노인에게 구두짓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러시아 전래민화와 자신의 사상을 압축해서 빚어올린 것이 톨스토이 민화집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보 이반 등등 -그저 재미있는 동화가 아니라 우리를 깊은 성찰로 이끌게 하는 것은 바로 톨스토이의 삶의 진실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동화이지만 사상인 이야기. 그리고 아이와 대중들도 쉽게 웃고 즐기게한 톨스토이가 깨달은 진리! 톨스토이 사상의 정수! 

참고로 이 책은 대표적인 이야기 한 편을 어린이를 위해 아름다운 삽화를 넣어 만든 책이고  톨스토이 민화집 전체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신은 모든 것을 알지만 기다리신다'라는 책이  더 알맞은거 같습니다. 행사기간에 주는 <나무를 심는 사람>도 장 지오노라는 뛰어난 사상가의 동화같은 작품입니다. 개신교나 가톨릭 신앙을 가진 분이라면 더욱 참된 신앙이란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돌이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이 소설은 매우 뛰어난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제작되었는데, 가톨릭 서점쪽에서 구입할 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 기억으로는 <나무를 심는 사람>에 감동한 영화감독이 한컷 한컷 그리다가 눈이 멀었다나 하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너무도 뛰어난 작품입니다.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제 바램은 성당이나 교회에서 이런 작품이 학생들에게 한번쯤 상영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자 현암사 동양고전
오강남 옮기고 해설 / 현암사 / 199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힘겨워도 웃어라 '초인의 힘'으로 토닥토닥

사람들은 때로 초인을 꿈꾼다. '초인적인 힘', '초인적인 능력'같은 말들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선정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래서 대중문화는 이런 식의 내용들을 즐겨 다룬다. 할리우드가 만들어내는 '-맨'부류의 작품들이 전형적인 예이다. 이것은 공상적인, 허깨비 같은 초인 개념이다.

초인의 진정한 모습은 플러스의 방향보다는 마이너스의 방향에서 더 잘 보인다. 삶의 가혹한 고통 속에서도 미소와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 자신을 해하려는 인간을 오히려 너그럽게 포용하는 사람, 타인들의 적대에 원한을 가지기 보다는 오히려 사랑으로 그 적대를 극복하려 하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서 우리는 초인의 모습을 본다.

초인은 어떤 현란하고 엄청난 일을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고난을 초연하게 극복할 수 있는 사람, 원한을 사랑으로 덮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초인의 철학은 우리에게 이 힘겨운 세상을 미소 지으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장자>는 우리에게 이런 초인의 철학을 준다. <장자>는 눈앞의 작은 이익들에 집착하는 우리의 눈을 더 넓고 깊은 지평으로 돌리게 해 준다.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을 호방한 용기와 기쁨으로 바꾸어 준다.

그러나 <장자>의 이런 호방함과 초연함은 깊은 체험이 결여된 들뜬 선언이나 호언의 차원과는 다르다. 우리는 이 책의 행간에서 처절할 정도의 비극적 눈길, 잔혹한 세상을 바라보는 젖은 눈길을 느낄 수 있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잔인무도한 현실에 대한 고난에 찬 시선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장자>는 이런 심연을 딛고 일어서서 초연함과 희망을 주기에 위대한 텍스트다.

장자의 사유는 철저하게 비사변적이다. 마니일 우리가 경험주의라는 말을 지접적 지각이나 실험, 사료의 확보 등과 같은 편협한 과학적 방법론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사유의 근본 태도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장자는 철저한 경험주의 철학자이다. 이 때의 경험은 현실에 대한 외적인 지각이 아니라 삶이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에 대한 가장 정직한 눈길이라는 의미이다.

"북녁 바다에 물고기가 있어 이름을 곤이라 한다. 크기가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변하여 새가 되니 이름을 붕이라 한다. 크기가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힘차게 날아오를 때면 그 날개가 하늘에 드리우는 구름과도 같다. 바다의 김운이 바뀔 때면 이제 남녘 바다로 날아간다. 남녘 바다를 일러 하늘못이라 한다."

장자는 박진감 넘치는 필치와 인상깊은 이미지들로 갑갑한 현실과 좁쌀같은 인간들의 세계를 벗어나려 한다. 장자의 사유는 변신의 사유이다.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사유이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포함해 일정한 동일성을 가진 존재들의 세계가 아니라 범주들의 칸막이를 허물고 다른 존재로 화하려는 사유이다. 그래서 장자의 사유는 반존재론적 존재론이다.

작은 인간들, 삶을 만들어내야 할 것으로 보기보다는 주어진 것으로 보는 인간들은 이렇게 변신을 꿈꾸는 인간들을 비웃는다. "우리는 힘껏 날아올라야 기껏 나무 위에 오르는 것이 고작이고, 그나마 못 올라 다시 땅에 떨어지는 데, 도대체 뭣하러 9만리나 날아올라 남녘으로 간담. 별꼴이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체제, 사믈들을 가르는 분절선들, 기호들의 체계, 제도가 부여하는 자리들/지위들, 현실이 요구하는 가치들, 분류의 범주들,...이런 틀을 당영한 것으로,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삶을 찾아 나설 용기가 없는 사람들, 이런 매미들, 비둘기들은 주어진 삶을 거부하고 또 다른 삶을 만들어나가려는 사람들을 비웃는다. 매미들, 비둘기들과 대붕 사이에는 건너뛸 수 없는 인식의 간격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는 자리들과 이름들로 구성된다. 자리들과 이름들의 체계는 위(+위치)를 구성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위의 체계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발버둥치고 산다. 그러나 대붕은 이 위를 거부한다. 그것은 무위(=위치가 없는)의 삶이다. 그러나 이 무위의 삶은 무엇인가 도드라지는 능력을 보여준다거나 현란하고 엄청난 무엇인가를 이룩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무위의 삶은 위가 강요하는 갈등, 경쟁, 질시와 시기, 인생의 허비, 피곤한 타인의 눈길들,  하망한 기쁨과 슬픔,...같은 것들에서 해방되어 소요하려는 삶이다. ㄱ러나 역으로 그러한 소요의 삶은 갖가지 히미겨운 고통들, 타인들의 피곤한 눈길을 가져온다. 무위의 삶은 그러한 고통들과 눈길들을 감내하는 삶, 아니 감냄를 넘어 빙그레 웃으면서 감내조차도 던질수 잇는 그러한 삶이다. 장자적 초이니은 위의 삶이 생각하는 초인이 아니라, 무위의 삶이 생각하는 초인인 것이다.      

이런 무위의 삶을 철학적으로 근거지어 주는 것이 제동의 존재론이다. "사람은 습한 데서 자면 요통 때문에 죽기까지 하지만 미꾸라지는 그러한가? 사람은 높은 나무 위에서 벌벌 떨리지만 원숭이도 그러한가/ 사람, 미꾸라지, 원숭이, 이 셋 중에서 어느쪽이 올바른 거처를 알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고기를 먹고, 순록은 풀을 먹으며, 지넨는 뱀을 먹기 좋아하고, 부엉이와 까마귀는 쥐를 맛있게 먹으니, 이들 중 어느 쪽이 진짜 맛을 알고 있다고 해야 하는가? 원숭이는 갈장과 짝이 되고, 고라니는 사슴과 교배하고,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논다. 모장과 여희는 미인으로 소문나 있지만, 이들을 보고 물고기는 숨어들어가고, 새는 날아가버리며, 군록은 달아나버린다. 이 넷 중 어느 쪽이 진짜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가/ 내 쪽에서 본다면, 인의의 발단이나 시비의 길은 어수선하고 어지럽다. 그러나 나라고 과연 그런 구별들을 쉽게 알 수 있겠는가?"

장자가 말하려는 것은 모든 사물들이 상대적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사람, 미꾸라지, 원숭이 각각의 거처 그 어느 것도 '올바른 거처'가 아니라는 것은 그 상대성을 벗어난 눈길을 가졌을 때에만 그 상대상을 진정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상대성의 내부에서는 상대성을 볼 수 없다. 상대성의 바깥에 설 때에만 상ㅇ대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눈길은 사물들 위로 솟아올라 그것들을 굽어볼 수 있는 어떤 초춸적 눈길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아래로 내려가 그것들의 상대성이 무화되는 제동의 경지를 뜻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무화란 없어짐, 사라짐이 아니다. 오히려 사물들의 차별성의 사라짐, 존재의 평등이 성립하는 경지를 뜻한다. 장자는 이 경지를 기 개념으로 포착한다.

존재론적 평등이 성립하는 지평으로서 무(=없음)는 단순한 없음이 아니라 있음을 가능케 하는 없음이다. 없음은 있음의 안감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없음에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이론적 논증이 아니라 신체적 실천이다. 즉 자신을 가두고 있는 기를 넘어 존재론적 평등이 성립한는 지평으로서의 기로 다가가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적 수양과도 다르다. 내가 타자가 되려는 어떤 비상한 노력을 동반하는 실천적 수양이다. 미꾸라지가 되고 원숭이가 되어 봐야만 비로소 사람, 미꾸라지, 원숭이의 상대성을 넘어서는 제동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은 이론적 논증과는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된다는 것이 마치 만화나 영화에서처럼 인간이 갑자기 미꾸라지나 원숭이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상상의 문제이지 실재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장자가 진정 말하려 하는 것은 그런 제동의 경지에 머물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죽음만이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간다. 장자가 말하려는 것은 그런 제동의 경지에 들어섬으로써만 이 상대적인 구별이 판치는 이 세계, 위(=위치)의 세계 안에서(언제까지나 그 "안에서") 무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 서평자 추천 도서

(1) 안동림 역주, 현암사, 장자 (2만 5천)

(2)이강수, 이권 옮김, 길, 장자1(2만 2천)

(3)로버트 앨린슨 짓고, 김경희 옮김, 그린비, 영혼의 변화를 위한 철학(2만)

****** 끝으로 제 경험으로 일반인이 보기에 가장 좋은 것은 오강남 선생의 '장자'입니다. 현암사의 시리즈가 다 좋아요. 특히 오강남선생의 '장자'와 더불어 마쓰야 후미오의 '불교개론' 강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