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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 지중해 - 스펙트럼 인기외화 할인20선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 안소니 퀸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너무도 좋아하는 영화 길에 대한 탁월한 영화평이 눈에 띄어 베껴 봅니다. 다음은 한겨레 신문에 실린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중에서 "인생, 한없이 갈라지는 길들"이라는 제목으로 씌인 글입니다.
영화사에서 페데리코 펠리니만큼 독창적 작품세계를 이룬 감독도 없을 것이다. 독창적인 만큼 그의 영화들은 난해하다는 평을 받는다. 펠리니는 은유와 상징 그리고 환상적 요소로 현실에 다양한 통로들을 뚫어 놓는다. 그럼으로써 현실은 훨씬 더 풍부해진다. 그 풍부함이 영화를 한 폭의 신비로운 그림으로 만든다. "길'(1954)에 출현했던 안서니 퀸은 펠리니와 영화를 찍는 일은 "그가 그린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펠리니는 영화의 일관된 줄거리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앙드레 바쟁은 "길"에 대해서 "이 영화에서는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고 그냥 벌어지거나 닥친다. 다시 말하면, 횡적인 인과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종적인 중력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고 쓴 적이 있다.어릿광대 젤소미나와 포악한 떠돌이 차력사 잠파노 그리고 외줄타기 곡예사 마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간관계와 감정의 굴곡, 삶과 죽음의 이야기에서 관객은 여러 의미를 포착할 수 잇다. 사랑을 잃고 나서야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된 남자의 비극을 볼 수도 있고, 어떤 평론가처럼 구원의 모순을 볼 수도 있다. 잠파노는 젤소미나가 죽은 다음에야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천사가 떠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기 문이다.
그러나 펠리니가 여기저기 뚫어놓은 은유와 상징의 통로들을 연결해서 '길'위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종합해보면 좀 더 본질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인생은 신비롭다.'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 신비로움의 교차점에 있는 건 무엇보다도 젤소미나이다. 그녀는 현실의 삶에서도 어릿광대처럼 희극적이자 비극적이다. 울다가 웃고, 고뇌하다가 명랑해지며, 슬픔을 곧 잊어버리는 천진함이 있지만, 기쁨은 금세 작은 격정의 그림자에도 가려진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감정에 '지독하게' 충실하다. 감정의 심연이라는 점에서 세 사람은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서로 필연적인 관계를 갖는다. 그것은 잠파노에 대해 품은 젤소미나의 연정과 한참 후에 잠파노가 섬뜩 깨닫게 되는 인간관계의 의미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돌멩이의 은유'에서 잘 드러나 있다. 마또는 젤소미나에게 "돌멩이 하나가 이 세상에서 아무 소용 없다면, 저 하늘에 수많은 별들도 다 소용없다"고 가르쳐 준다. 젤소미나는 이것을 자신과 잠파노와의 관계에 전이한다. "내가 그와 함께 있지 않다면, 누가 그와 함께 있겠어요." 그녀와 잠파노는 우연히 만났지만, 어떤 필연에 얽혀 있다. 관객들이 흔히 놓친느 필연성은 마또와 잠파노 사이에도 있다. 마또는 잠파노만 보면 골탕 먹이려 하고, 그런 행동이 결국 그에게 죽음을 몰고 온다. 마또도 "그자만 보면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라고 실토한다. 천적은 우연히 만나지만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다. 우연으로 만난 사람들 사이에 필연이 있다는 건 삶의 수수께끼다.
그러면 이 작품에서 '길'의 의미는 무엇일까? 구도의 길인가? 구뼈?길인가? 펠리니에게 구원이나 구도는 너무 고상한 말들일 게다. 그것은 그저 수많은 길들이다. 잠파노와 젤소미나가 유랑했던 길들, 우리 인생의 수많은 길들, 이 세상에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길들, 잘못 들어서서 고통과 구속 그리고 막다른 좌절을 맞게 하는 길들, 잘 들어서서 자유와 환희 그리고 진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길들, 그래서 한없이 신비로운 길들... 그런 길들이 우리 인생에 무수히 깔려있다.
펠리니의 작품이 철학적이라는 것은 인생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가능성의 신비함이 철학을 자극한다. 그의 영화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철학이라고 하느 논리의 틀 안에 설정되지 않는다. 합리적 인과율에 매이지 않은 사건들의 이야기에 그런 논리는 없다. 그의 작품은 오히려 철학적인 것 밖에 서정과 환상이 풍부한 세상을 펼쳐 보임으로써, 철학의 시선을 끈다. 그것은 철학이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길을 향해 던지는 시선일 게다. 엄연한 현실이 아니라, 아련한 현실의 길을 향한 시선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펠리니는 20세기의 이념들이 익어가기 시작할 때에 만든 영화로 21세기적 사유의 씨앗을 미리 뿌렸는지도 모른다.(김용석 영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