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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평점 :
책을 선택하는데 누구나 기준이 있겠지만 나역시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다. 선호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꼭 읽어야하고, 그러다보니 선호하는 출판사도 생기게 되었고, 책을 읽다보면 그 책속에서 나오는 작가나 책들은 또 연결해서 읽게되고..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책읽으며 산다고 생각했었는데.. 몇달전부터 난 내가 얼마나 편협한 독서를 해왔는지 느꼈다. (세상엔 많고 많은 책이 존재하는만큼 좋은책도 많고, 읽어야할 책도 많았는데 난 고전은 무조건 어렵다는 이유로 싫어했고, 일본작가의 책엔 관심이 없었고, 단편들은 아예 거들떠도 안봤으니.. --;;;)
그런 생각을 한 계기가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나서부터였다. 상실의 시대를 못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몇 년전엔 tv광고에까지 등장해서 다시한번 하루키 신드롬을 불렀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왠지 손에 잡히지 않던 책!! 사람들이 너무 많이 말하다보니 안읽었으면서 마치 읽은듯한 느낌도 들었고말이다. 아무튼 무슨생각이였는지 모르지만 얼마전 이 상실의 시대와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구입했고, 상실의 시대를 먼저 읽었었다.
꽤나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책은 빨리 읽혀졌다.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읽고나서도 한동안 난 혼란스러웠다. 와타나베의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과 너무나 비슷했기에.. 겉으론 평범하게 보이지만 세상에 관심없고, 더 다가가려하지도 그렇다고 벗어나려하지도 않는 그저 한발 물러선 방관자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모습과 주위사람들의 연이은 죽음. 책은 이십대의 발랄함보단 사회에 적응하지못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우울과 슬픔을 이야기한다.
그럼 죽음은 무얼 의미하는것일까? 내 생각엔 현실에 끝내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한게 아닌가 싶다. 열입곱에 죽은 기즈키와 끝내 와나타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채 죽어버린 나오코. 우린 어른이 되기위해서 어떤 단계를 지나야한다. 그 단계가 어떤 사람에겐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지나가버릴 수 있지만 누군가는 죽을만큼 힘들게 보내기도 한다. 어른이 되기란 말처럼 쉬운게 아니니깐 말이다. 그 어려움을 못견딘 기즈키의 모습을 와타나베는 이렇게 말한다. '기즈키는 영원히 열일곱살로 기억된다.'라고 말이다. 순수함을 간직한 열일곱의 친구와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는 와타나베..
하지만 기억속에서만 존재하는 그 모습이 진정한 모습일까? 이 이야기는 하루키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했다. 20세때 40세가 된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던 작가의 말에서 아직까지 살아있을 와타나베의 모습이 더 아름답지않을까 상상해본다. 또한 자신은 나오코를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나오코의 죽음으로 자신이 사랑해왔던 사람은 미도리였음을 느낀다. 하지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못한채 그녀의 이름만 부른채 소설은 끝이난다.
결국 세상을 산다는건, 사랑을 한다는건 정답이 없다는거 아닐까? 사랑이야기를 하고싶었다지만 사랑하는것도 삶의 한부분이기에 이 책은 사람사는 이야기를 하고자한것같다. 그리고 무언가를 잃음으로써 더 큰것을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 또한 말하고싶었던것 같다. 20대인 난 지금 20대의 시선으로 이 책을 읽었지만 30, 40대에 이 책을 읽으면 또 어떤시각으로 읽혀질지 궁금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이 왜 그토록 사랑을 받고있는지 조금 알 것도 같다. 역시 책이란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것 같아 좋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