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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 : 서울편 2 - 유주학선 무주학불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평점 :
얼마전에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 첫번째를 만났습니다. 앞으로 두권을 더 낸다고 하는데 서울은 할 말이, 아니 볼거리가 많은 곳이네요. 차 높은 건물 그리고 사람만 많은 곳 같은데. 첫번째 책을 보고 서울에 사는 사람은 마음 내킬 때 궁에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서민과는 먼 궁이지만 지금이기에 갈 수도 있잖아요. 옛날에는 궁에 살거나 일하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궁에서 살아보기 체험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지금 들었습니다. 이건 조금 힘들까요. 사람이 살아서 괜찮은 집(한옥)이 있는가 하면 사람이 많이 드나들어 안 좋아지는 것도 있을 테니. 궁에서 살아본다면 왕으로 살아봐야지 신하는 안 좋을 테지요. 그러려면 돈이 좀 들겠습니다. 서울시는 그걸로 돈을 벌어도 괜찮을 텐데. 돈 많은 사람만 할 것 같아 안 되겠어요. 누구나 평등하게 할 수 있는 게 더 좋겠습니다. 지금은 그런 시대니.
조선을 세우고 수도를 한양으로 옮겼지요. 바로 수도를 한양으로 정한 건 아니지만.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였다고 하더군요. 아주 크니 그걸 제대로 본 사람은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는 대구로만 알고 그래서 아주 덥다고 알았는데, 서울도 그렇다니. 서울은 대구보다 덜 덥지요. 한강 때문인가. 지금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사람이 2천5백만명이라더군요. 정말 많이 사는군요. 한국 사람 반 정도가 그쪽에 몰려 있다니. 한국만 수도권에 많은 사람이 살지는 않겠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게 되고 많은 것이 훼손 됐지요. 그래도 사라지지 않고 남은 게 있어서 다행입니다. 창경궁은 동물원 식물원으로 만들기도 하다니. 조선시대에 궁을 참 많이도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왕이 거기에 다 간 건 아니겠지만. 왕과 왕 친척이 살았겠습니다.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았을지.
저는 무학대사를 몰랐습니다. 태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무학대사한테 물으니, 도성을 쌓아 격식을 갖추게 했답니다. 이건 한양을 둘러싼 산에 쌓은 걸까요. 한양도성은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는 거군요. 그건 전국에서 백성이 와서 했답니다. 승려한테도 시키고. 승려한테는 종이 만들기도 시켰군요. 한양도성에는 이름을 새기기도 했답니다. 그건 싸움에 대비하는 게 아니고 울타리에 가까운 것이었어요. 아주 긴 울타리네요. 한양도성이 둘러싼 곳 안에 궁이 있더군요. 싸움에 대비한 곳은 산성이었답니다. 임진왜란 하면 행주산성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북한산성 남한산성, 한양도성을 따라 돌아볼 수 있답니다. 예전에 그런 놀이가 있었는데 사라졌다가 다시 하게 됐다고.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니. 청와대가 가까이에 있어서. 그래도 시민도 북악산에 갈 수 있게 돼서 다행입니다. 한동안 사람이 다니지 않아 자연이 보호됐겠지만. 사람이 다녀도 보호가 되면 참 좋을 텐데. 바라기 어려운 일일까요.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
덕수궁은 고종이 마지막에 지내던 곳이더군요. 고종은 덕수궁을 옛날과 근대가 함께 있게 했어요. 선조가 임진왜란 때 다른 곳으로 피했다가 한양으로 돌아와서 임시궁궐로 썼답니다. 그곳은 월산대군 집으로 월산대군은 세조 장손으로 그때는 월산대군 증손자 이성이 살았습니다. 선조가 왔을 때 거기 살던 사람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을까요, 그랬겠지요. 그 뒤로 그곳에 건물을 지어서 경운궁이 됐어요. 광해군은 궁 공사를 크게 벌였더군요. 자신의 왕권을 보여주려고 하기보다 자신이 할 일을 잘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왕 자리는 지키기 쉽지 않겠지요. 잘해도 못해도 욕 먹을지도. 옛날 사람은 그러지 않았을까요. 백성은 잘하는 사람은 알리라고 봅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세우고 잘 해 보려 했는데 잘 안 됐습니다. 이름이 좀 마음에 안 듭니다. 대한은 그렇다 쳐도 ‘제국’이라는 말이. 조선이 망하고 왕과 왕 식구들은 살기 힘들었지요.
조선시대에 관왕묘가 생긴 건 임진왜란 때였군요. 관왕묘는 관우를 신으로 모신 사당입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 왜와 싸워달라고 했지요. 조선시대에 조금 안 좋은 신앙으로 퍼지기도 했답니다. 조선 왕은 관왕묘를 보고 충절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 곳이 있으면 정말 중국 사람이 좋아할까요. 한국사람은 일본이나 중국에 한국과 상관있는 곳이 있으면 신기하게 여기는군요. 중국사람도 다르지 않겠습니다. 관왕묘는 서울뿐 아니라 여러 곳에 있어요. 동관왕묘에는 여러 가지 유물이 있었답니다. 한동안 그걸 내버려두었다니. 문화유산이 다 잘 알려진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걸 찾아내고 연구하기도 해야 알겠습니다.
성균관 대학과 성균관은 상관있는 거겠지요.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이 성균관이었다니. 성균관에서 공부해도 대과에 붙는 사람은 많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붙기도 했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곳을 다 돌아보면 정말 괜찮을 듯하네요. 하루에 다 돌아보기는 힘들겠지만. 시간이 날 때 한곳씩 가 보면 괜찮겠지요. 석파랑, 석파정, 현진건, 박수근, 백남준. 조선시대 사람뿐 아니라 그 뒤 사람 이야기도 조금 나옵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