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차, 영~차!"

 

지난 가을 어디선가 날아온 봉숭아 씨앗이 싹을 틔우려 하고 있어요. 작은 씨앗이라 '싹을 틔울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오랜 겨울잠에서 깨선, 봄엔 계속 물과 흙에 있는 영양분을 먹었어요. 여름이 가까이 온 걸 알았는지 힘을 쓰고 있네요.

 

"봉숭아 씨앗아, 힘들지?"

 

"어! 누구세요?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도 저를 알아보다니……."

 

"니가 날아오기 전부터 난 이곳에 뿌리 내리고 있었어. 난 앵두나무야."

 

"네, 반가워요."

 

그렇게 며칠 '영~차, 영~차' 하더니 봉숭아 씨앗은 작은 싹을 틔웠어요.

 

"앵두나무 님, 이렇게 밝은 곳에서 만나보게 되니 더 기뻐요."

 

"이젠 봉숭아 씨앗이 아니구나. 봉숭아라고 할게. 나도 반가워."

 

"땅속보다 이곳이 훨씬 좋은데요. 앵두나무 님은 처음부터 그런 모습이었나요?"

 

꽃이 지고 열매도 사람들이 거둬간 뒤에 봉숭아가 나를 봤으니 그런 걸 물어볼 만도 했어요.

 

"봉숭아야, 지금은 초록잎만 있지만 봄엔 꽃을 피우고 조금 뒤엔 빨간 앵두를 만들어 내. 내 좋은 시절은 봄이야. 봉숭아 너의 좋은 시절은 여름이란다."

 

내 말을 들은 봉숭아는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어요. 잎을 크게 만들려고…. 사실 봉숭아는 자신의 좋은 모습이 어떤지 잘 몰라요. 한번밖에 볼 수 없거든요.

 

여름이 되어갈수록 봉숭아 잎이 많아지고 키도 컸어요. 그러고는 꽃봉오리가 생겼어요. 어느새 봉숭아꽃이 피려고 해요.

 

"봉숭아야, 너 꽃을 피우려고 하는구나?"

 

"네, 제가 꽃을 피우다니 정말 마음이 벅차요."

 

봉숭아는 그렇게 꽃을 많이 피웠어요.

 

어느 날 아침 마당에 나온 희진이가 꽃이 핀 봉숭아를 봤어요.

 

"엄마, 봉숭아꽃이 많이 피었어. 나 손톱에 물들여줘."

 

"그래, 오늘밤에 들이자. 꽃하고 잎 따와."

 

"응. 아이 좋아라."

 

이 말을 들은 봉숭아는 놀라서 밤이 될 때까지 울었어요. 그리고 저녁에 희진이가 꽃과 잎을 따가자, 그 아픔에 자꾸 울었어요.

 

"봉숭아야, 그만울어. 그렇게 슬퍼할 일은 아니란다. 네 몸을 잘 살펴봐. 희진이가 꽃을 다 따가지는 않았어."

 

"그러면 뭐해요? 저의 좋은 시절도 이젠 끝이어요. 흑~ 흑……."

 

"본래 좋은 시절은 짧은 거란다. 내가 이 얘길 해주면 너도 기쁠 거야. 사람들이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까닭은 꿈을 이루고 싶어서야. 첫눈이 오는 날까지 손톱 끝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그러니까 넌 사람들이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풀이야."

 

"정말인가요?"

 

"그래. 이제 울지 않을거지?"

 

"네."

 

아침에 희진이가 마당에 나오더니 봉숭아에게 말을 했어요.

 

"봉숭아야, 내 손톱 봐. 예쁘지? 고마워. 이게 첫눈이 올 때까지 있으면 좋겠어."

 

봉숭아는 희진이의 손톱에 들여진 것이 오래 가기를 바랐어요.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봉숭아는 씨앗주머니를 만들었어요. 곧 지금 봉숭아와는 헤어져야 해요.

 

"봉숭아야, 우리 이제 곧 헤어지겠구나. 난 네 자손들과 만나겠지?"

 

"저에게 해준 것처럼 제 자손들한테도 따듯하게 대해주세요."

 

"그래. 꼭 그럴게."

 

봉숭아 씨앗은 여물대로 여물었어요. 그것을 희진이가 조심조심 받았어요. 잘못하면 봉숭아 씨앗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거든요. 그렇게 날아온 봉숭아였는데 내년엔 자손을 만날 수 있겠네요.

 

 

 

첫눈이 올 때까지 희진이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을까요?

 

 

 

 

 

 

 몇해 전에 담은 봉숭아

 

 

 

우연히 다시 읽어봤는데, 조금 재미있어서

그리고 봉숭아가 자란 것을 보기도 했다

앵두나무 바로 옆은 아니지만,

예전에 앵두나무 옆에 봉숭아가 있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한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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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06-18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봉숭아 진짜 오랜만에 보네요. 희선님께서도 손톱에 물들이시나요??ㅎㅎㅎ

희선 2013-06-20 00:39   좋아요 0 | URL
예전에 물들인 적도 있는데, 이제는 안 해요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만 했습니다


희선
 
독이 서린 말 사계절 1318 문고 82
마이테 카란사 지음, 권미선 옮김 / 사계절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네해 전 열다섯 살이었던 바르바라 몰리나는 ‘나 떠나요. 찾지 마세요. 바르바라.’ 라는 말을 쓴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엄마 누리아 솔리스한테 바르바라가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바르바라가 집으로 전화를 건 공중전화 박스에는 바르바라가 누군가한테 맞은 흔적과 가방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바르바라가 누군가한테 끌려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네해가 지나도록 바르바라를 찾지 못했습니다. 용의자는 있었지만 풀려났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바르바라가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사건을 맡은 형사 살바도르 로사노는 이제 정년 퇴임을 하루 앞두고 있었습니다. 엄마인 누리아 솔리스는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마음에 빠져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일을 다시 시작했지만 다른 때는 약을 먹으며 괴로움을 잊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르바라와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 에바 카라스코는 자신이 바르바라를 배신했다는 것 때문에 열아홉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로사노, 누리아, 에바 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과 바르바라 자신이 말하는 형식입니다. 바르바라라니 하겠군요. 네, 바르바라는 실종되고 네해가 지났지만 아직 살아있었습니다. 어느새 열아홉 살이 되었죠. 바르바라는 어딘가에 네해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바르바라를 가둔 사람은 누구인지, 바르바라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책을 읽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것은 당연한 일이군요. 어떤 책이든 뒤로 갈수록 범인이나 사건의 참모습이 드러나죠. 아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기도 하군요. 저는 책 앞부분을 보다가 옮긴이 말을 조금 봐서 어느 정도 짐작했습니다. 그것을 안 보고 읽었다면 더 많이 놀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바르바라가 말하는 ‘그’가 누구인지 알면, 누구나 놀랄 것입니다.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얼마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까닭이 있을 것 같은데. 이 책에서 다루는 게 그게 아니기 때문에 없는 거겠죠.

 

누구보다 많이 달라진 사람은 누리아입니다. 아니, 자신의 본모습을 찾은 겁니다. 딸 바르바라를 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형사 로사노와 에바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누리아는 결혼하기 전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는 남편 페페한테 기대게 되었습니다. 바르바라가 사라지고는 페페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죠. 사실 누리아가 그렇게 된 것은 남편인 페페 때문이기도 합니다. 페페는 권위주의에 사람을 지배하려 했거든요. 오랫동안 누리아의 자존감을 빼앗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누리아를 보고 바르바라는 자신한테 일어난 일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누리아가 도와줄 수 없을 거다 여긴거죠. 사실 누리아는 보고도 못 본 척하기도 했습니다. 바르바라는 친한 친구 에바한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누리아는 에바가 바르바라한테서 전화가 오고, 바르바라가 쓴 휴대전화가 누구 것인지 알고는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맞서기로 한 거죠. 무엇보다 죽었다고 여긴 바르바라가 살아있다는 게 기뻤을 겁니다. 아이를 잃은 부모는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닐 겁니다.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 폭력에도 마음이 움츠러들지만, 말로 하는 폭력에는 마음이 꺾입니다. 행동보다 말로 하는 폭력이 더 사람을 힘 빠지게 만들지 않을까 싶군요(앞에 쓴 말과 비슷한 말).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는 일을 그만둘 수도 있을 겁니다. 잘못된 말인데 그 말을 듣다보면 그 말이 맞나보다 하는 거죠. 하지만 말로 하는 폭력에 마음이 꺾이면 안 됩니다.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요. 누리아가 바르바라를 구하러 가서 다행입니다. 책은 거기에서 끝나지만 바르바라한테는 앞으로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누리아가 있기에 바르바라가 그 일을 잘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리아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힘을 내는 엄마니까요.

 

이 이야기는 나타샤 캄푸쉬가 억지로 끌려가서 8년 여섯 달 동안 갇혀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더군요. 여기에 나온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딘가에 가두어두지는 않더라도. 다른 책을 말하면 어떤 일인지 알아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 일 하나만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쓰겠습니다. 《영원의 아이》(텐도 아라타)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크레이그 실비) 《살인의 역사》(케이트 앳킨스). 바로 떠오른 책은 앞에 쓴 두 권인데, 더 없으려나 하니 세번째 책이 떠올랐습니다. 앞에 쓴 세권과 이 책이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엄마입니다. 아무리 괴롭고 믿을 수 없다 해도 누리아는 참된 것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엄마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제가 쓴 것 말고 더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야기》(카롤린 필립스) 나중에 이 책도 생각났습니다.  사실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크레이그 실비)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안에서도 '독이 서린 말'에 나온 일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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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전에 무척 어지러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잠을 자기 전에 갑자기 어지러웠는데, 자고 나면 괜찮겠지 했다. 이튿날 여전히 어지러워서 하루 내내 누워 있었다. 겨우 하루 그렇게 누워 있어도 허리 아프고, 어디에 가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 나온 맬컴 에드는 20년 이상으로 7483일째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맬컴은 몸무게가 엄청 늘어서 혼자 움직이지도 못했다. 630킬로그램이 넘었다. 몸이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은 답답한데, 맬컴은 어땠을까. 침대에서만 생활하는 게 정말 좋았을까. 맬컴 마음은 확실하게 알기가 어렵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맬컴이 아니고 동생인 ‘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맬컴뿐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맬컴을 사랑하는 루에 대해서도 말한다. ‘나’는 루를 사랑했다.

 

‘나’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우리가 관심을 더 갖게 되는 것은 맬컴이다. 이것은 언제나 ‘나’한테 있는 일이다. 어머니 아버지는 ‘나’보다는 형인 맬컴을 중심으로 살았고, 다른 사람은 ‘나’를 ‘맬컴 에드의 동생’이라 했다. 맬컴은 좀 남달랐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처음 해 보고 싶어했다.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해도 나이를 먹으며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하지만 맬컴은 그러지 않으려고 했다. 여자 친구 루를 사귀기도 했지만, 그대로 일을 하고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길을 가지 않았다. 맬컴은 스물다섯 살이 된 날부터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잠시 그러다 말겠지 했지만 아니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그 시간을 살아가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와 루. 맬컴이 침대에서 지내는 날이 늘어갈수록 맬컴 몸무게는 늘어갔다. 어머니는 맬컴을 돌보았다. 루는 맬컴을 사랑했지만, 자기 아버지도 사랑했기에 자기 안에 갇히려고 하는 아버지를 도왔다. 맬컴한테 해줄 수 없는 것을 아버지한테 해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맬컴한테는 어머니가 있었기에.

 

침대에서만 살면 재미없지 않을까. 맬컴은 스스로 자신을 가둔 것은 아닐까. 평범하게 사는 것도 무척 어려운 일인데. 하긴 맬컴은 그렇게 애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했다. 그렇게 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아무도 자신을 기억해주지 않는 사람은 흔해 빠졌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나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보통 사람이 봤을 때 맬컴이 살아가는 방식 재미없을지도 모르겠다(나도 재미없게 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하지만 맬컴은 나름대로 재미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자기가 살고 싶은대로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어머니는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좋아했다. 맬컴이 잠시 집을 떠나 있었을 때 실망스러워했다. 아버지한테는 오래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다락방에서 무엇인가를 만들면서 달라졌다. ‘나’는 자신을 불쌍하게 여겼다. 마지막에 가서야 ‘나’도 괜찮아졌다. 이런 식으로밖에 쓰지 못하다니.

 

맬컴이 침대에서 지낼 때 마음이 알고 싶었는데 그것은 끝내 알기 어렵겠다. 맬컴이 왜 침대에서 지내기로 했는지는 7483일째에야 알 수 있었다. 남과는 다르게 살고 싶었던 것도 있는데, 식구들을 사랑해서이기도 했다. 그런 맬컴 마음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 세상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는 하구나. 어쨌든 맬컴은 대단하다.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밀고 나갔으니 말이다. 그렇게 사는 거 쉽지 않다. 침대에서만 살지 않고도 자기 생각대로 살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사랑이 우리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말 맞다. 어머니는 맬컴을 사랑해서 음식을 해주고 돌보았지만, 맬컴 몸무게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먹을 것을 조금만 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평범하게 산다고 해서 진 것은 아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누군한테 지는 것인가. 살아가는 것에 지고 이기는 것은 없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맬컴은 맬컴으로 살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은 부러운 것인지도.

 

 

 

희선

 

 

 

 

☆―

 

“지금 이 순간, 네가 남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할래? 네가 나중에 아무것도 남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기분이 어떻겠느냐고. 너를 기억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너를 기억할 만한 무엇인가를 가진 사람도 없다면? 네가 그저 지난날에 있던 누군가와 하나도 구별되지 않는, 흔해 빠진 사람일 뿐이라면?”  (182쪽)

 

 

“나는 뒤로 물러나 앉아 현실의 삶에 안주할 수 없었어. 저축을 하고, 이런저런 청구서에 돈을 내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죽어라 일만 하는 사람. 이런 건 진짜 삶이 아니야.”

 

나는 형의 절박한 속삭임을 듣는다.

 

“그럼 이런 게 진짜 삶이야? 우리 가운데 누구도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지 않아. 형은 엄마를 노예로 만들었고, 아버지를 은둔자로 말들었어. 루는 내가 바란 모든 것이었어. 그런데 형 때문에 영원히 못 가질 뻔했지.”  (367쪽)

 

 

“형이 우리 가족을 망가뜨렸어.”

 

“아니야, 내가 구원한 거야.”

.

.

.

 

“나는 엄마한테 누군가를 스무해 동안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드렸어. 내가 엄마를 살아 있게 한 거야.”

 

“그럼 아버지는?”

 

“네가 봐.”

 

나는 기중기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아버지를 올려다본다. 아버지 얼굴에는 큰 기쁨이 넘친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아버지한테는 새로운 사진을 드렸군.”

 

“그리고 너한테는 루를 줬어.”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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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편지와 야구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겠군요. 당연히 상관없습니다. 두 가지를 한번에 소개하기 위해서 ‘편지와 야구’라고 쓴 것뿐입니다. 무엇을 소개하느냐 하면, 제가 보고 있는 만화입니다. 하나는 《テガミバチ(레터 비)》(아사다 히로유키), 다른 하나는 《おおきく振りかぶって(크게 휘두르며)》(히구치 아사)입니다. 얼마 전에 《데가미바치》16권과 《크게 휘두르며》21권이 나왔습니다. 그것을 본 다음에 거기에 앞에 나온 이야기를 조금 쓸까 했는데, 그것을 언제 볼지 알 수 없어서. 올해가 가기 전에는 보겠죠.

 

저는 편지쓰기를 좋아합니다. 본래 말을 거의 안 합니다. 말이 하고 싶어서 편지를 쓰게 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보다는 말을 잘 못해서 안 하고 할 말이 없어서 안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쓰는 말은 조금 하는 것 같아요. 하고 싶어하는 것인가. 평소에는 말을 잘 못해도 책 이야기만은 잘하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의 시오리코가 부럽기도 합니다. 저는 잘아는 게 없어서 그것도 못하겠군요. 말을 하려면 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쓰는 것도 그렇군요. 어쨌든 편지가 나와서 제가 이 만화를 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데가미바치’라는 말은 편지벌(letter bee)이라는 뜻입니다. 이 만화 속 세상에서는 편지와 이런저런 것을 배달하는 사람을 데가미바치나 비(bee)라고 합니다. 꼭 종이에 쓴 것만을 편지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우편물 모두를 편지라고 합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했느냐구요. 중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라그 시잉과 딩고인 니치는 둘 다 편지였기 때문입니다.

 

이 ‘데가미바치’ 속 세계는 앰버그라운드로 해가 없는 곳입니다. 세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밑에서부터 요다카, 유우사리, 아카츠키입니다. 수도는 아카츠키로 이곳에는 인공태양이 있습니다. 해가 없어서 못사는 사람은 조금 어두운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만 나오면 재미없겠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조금 시골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이 세계에는 사람 마음을 먹는 아주 커다란 갑충(아주 큰 곤충을 떠올려보세요)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마을에서 마을로 옮겨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데가미바치는 국가공무원으로 사람들을 위해 편지를 배달합니다. 데가비바치는 갑충과 싸울 수 있거든요. 정령호박이 있는 무기(이것은 여러가지가 있더군요, 그래도 총이 많은 편입니다)로 마음을 총알로 바꾸어 갑충을 해치웁니다. 이것을 데가미바치 혼자서 하지 않습니다. 데가미바치를 도와주는 딩고가 있습니다. 딩고가 갑충의 약점을 찾으면 그곳으로 마음을 채운 총알 심탄을 쏩니다. 이렇게 말로만 하면 ‘대체 뭐야’ 하겠군요. 그리고 라그는 왼쪽 눈이 있어야 할 곳에 정령호박이 있습니다.

 

고슈 수에이드는 어린 라그 시잉을 편지로서 배달했습니다. 라그는 엄마하고만 살았는데, 어느 날 엄마가 누군가한테 끌려갔습니다. 고슈는 라그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든 상관없이 자신은 자기 일을 할 뿐이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고슈와 라그가 함께 캠벨에 가면서 마음을 나눕니다. 라그와 헤어질 때 고슈는 라그한테 두 사람은 이제 친구라고 합니다. 라그는 언젠가 자신도 고슈와 같은 데가미바치가 되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열두 살이 된 라그는 데가미바치 시험을 보러 갑니다. 시험을 보러 가다가 어린 여자아이와 만납니다. 여자아이는 편지였습니다. 라그는 여자아이를 보고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고 고슈처럼 자신이 여자아이를 가야 할 곳에 데려다주려고 했습니다. 여자아이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아니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라그는 여자아이한테 니치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라그가 니치를 데려다 준 곳은 희귀한 생물을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라그는 니치가 걱정스러워서 다시 찾아가게 되고, 라그와 니치는 함께 유우사리에 가게 됩니다. 이때 신기하게 생긴 생물을 니치가 데리고 갑니다. 니치는 그 생물 이름을 스테이크라고 지었습니다. 자기가 언젠가 먹을 거라며. 스테이크 좀 재미있게 생겼습니다. 말은 니치하고만 통하는데 라그한테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라그는 데가미바치 시험에 붙고 니치는 라그의 딩고가 됩니다.

 

데가미바치가 되어 라그는 고슈를 만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슈는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고슈는 수도 아카츠키에 가게 되었는데 그 뒤 마음을 모두 잃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고. 그러고 보니 고슈가 데가미바치가 되어 일을 했던 것은 여동생 실베트 때문이었습니다. 실베트는 걸을 수 없었는데, 고슈는 돈을 벌어서 실베트 다리를 낫게 해주려고 했죠. 라그는 실베트를 만나서 자신이 고슈를 꼭 찾아내겠다고 약속합니다. 라그가 데가미바치가 되어 니치와 함께 편지를 배달하며 일어나는 일, 데가미바치 동료들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수도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조직도 있습니다. 수도에 있는 인공태양의 비밀이 밝혀지고, 라그 엄마와 라그가 어떻게 태어났나도 밝혀집니다. 그리고 이제 라그는 이 세계에 대한 비밀을 밝히려고 합니다. 그 전에 라그는 라그와 같은 날 태어난 아이들을 찾아야 합니다.

 

이 정도밖에 못 쓰다니. 처음에는 편지 때문에 일어나는 따듯한 이야기 정도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가 커져가더군요. 이 세계 자체가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라그가 그 한가운데 있습니다. 16권에는 저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봤습니다.

 

 

 

 

ラグは誰かに手紙を書いたことはありますか?

 

라그는 누군가한테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까?

 

ないよ… そんなの…

 

없어… 그런 거…

 

ではいつか書いてみて下さい

 

그러면 언제가 써보세요

 

なんで…? いいよ手紙なんて

 

왜…? 됐어 편지 같은 거

 

たったひと言でもいいのです

 

단 한마디라도 괜찮습니다

 

それでも受けとって…… 嬉しくてを流す人だっているのですから…

 

그래도 받고…… 기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ひとことで…?

 

한마디로…?

 

はなれて暮す人にとって「テがミ」は

書く人の「こころ」そのものなのですよ (1권 70~71쪽)

 

떨어져 사는 사람들한테 ‘편지’는

쓴 사람의 ‘마음’ 그 자체입니다

 

 

 

 

      

          왼쪽에서부터 고슈와 딩고 로다, 니치와 머리 위에는 스테이크 그리고 라그

 

 

 

      

                    왼쪽은 느와르(본래 고슈였음) 그리고 니치 스테이크 라그

 

 

 

                    

 

 

 

 

 

저는 야구를 가까이에서 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런 운동이 야구만은 아니군요. 제가 야구에 조금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메이저》(미츠다 타쿠야) 때문입니다. ‘메이저’는 혼다 고로, 나중에는 시게노 고로가 됩니다. 고로가 어릴 때부터 야구 선수인 아버지를 따라 야구를 하며 자라서 메이저까지 가서 야구를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저런 일들이 참 많이도 일어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메이저, 일본대표. 고로 삶에는 야구뿐이군요. 야구 선수는 본래 그럴까요. 아니 어떤 운동이든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한가지를 좋아하고 그것을 하고 오래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겠죠. 저한테 야구가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 바로 《크게 휘두르며》입니다.

 

이 만화에는 고교야구가 나옵니다. 그래서 모두 고시엔에 가는 것이 꿈입니다. 여기에서 중심학교는 니시우라 고등학교입니다. 투수 미하시와 포수 아베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야구를 하면서 조금씩 커갑니다. 물론 다른 학교 아이들도. 미하시와 아베가 가장 눈에 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하시는 메이저에 나온 고로와는 다르게 느린 공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야구를 아주 좋아하고 늘 연습해서 제구력이 좋았습니다. 9분할을 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미하시한테 하나 빠진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입니다. 아주 소심합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야구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야구부가 어떤가 보러 갔다가 야구부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베는 중학교 때 배터리였던 투수 하루나 때문에 투수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하시한테 자신이 사인을 보내면 고개를 젓지 말라고 합니다. 미하시는 중학교 때 거의 혼자서 야구를 했습니다. 중학교가 할아버지 학교였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은 미하시를 편애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때 포수는 미하시한테 한번도 사인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미하시는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일이 없었는데 그런 점 대단합니다. 미하시는 포수가 사인을 보내준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아베한테 절대 고개를 젓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미하시는 니시우라 야구부 아이들과 야구를 하면서 조금씩 자신을 가져갑니다. 그리고 아베는 투수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하루나가 중학생 때 왜 그랬나 깨달아갑니다. 언젠가 하루나네 학교와 니시우라가 경기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21권에 나오는 듯합니다. 벌써 나오다니. 미하시와 하루나가 싸우게 되는 겁니다. 자신 없어하던 미하시가 이제는 하루나한테도 이기겠다고 말하게 되었는데, 경기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요. 21권 조금 보니까 4번 타자로 몸은 작지만 야구를 잘하는 타지마는 아주 좋아하더군요(타지마는 어떤 운동이든 하면 잘하는 것 같습니다). 무사시노 제1고교와 경기하게 된 것을. 타지마는 어떤 공이든 칠 수 있습니다. 하루나가 던지는 빠른 공을 치고 싶어합니다. 타지마는 미하시가 제대로 말 안 해도 미하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습니다. 만화를 보면 가끔 그런 사람이 나오는데 정말 그런 사람 있을까요. 제가 말을 잘 못해서 제가 하려는 말을 잘 알아듣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답니다.

 

원피스 70권도 나왔습니다. 이번에 펑크해저드 편 끝날지 어떨지.

 

 

 

희선

 

 

 

 

 

  

 

 

 

            

 

 

 

                    

                                                   미하시와 아베

 

 

 

 

 

 

 

             

 

             

 

고쳤지만,

위에 라그 오른쪽 눈에 정령호박이 있다고 쓴 거 틀렸습니다 왼쪽 눈에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서도 그것을 바로 못 봤네요 쓰면서 오른쪽이던가 왼쪽이던가 했답니다

지금까지 열다섯권이나 봤는데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라그한테 미안하군요  (2013,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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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1 12: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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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3 0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동생, 아니발을 소개합니다 푸른길 청소년 성장 소설
안느 브라강스 지음, 박경혜 옮김, 김인석 그림 / 푸른길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느 달보다 오월에 ‘무슨 날’이 많지 않나 싶습니다. 그 가운에 ‘입양의 날(5, 11)’도 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은 아직도 입양에 대해 그렇게 좋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는 ‘아이를 수출하는 나라 1위’라는 부끄러운 이름도 붙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다른 나라로 입양되는 아이들이 있겠죠. 태어나는 아이는 적다고 하는데, 부모한테 버림받는 아이는 많다니 대체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제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에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러나는 안 좋은 일보다 드러나지 않는 좋은 일이 많다고 믿고 싶습니다. 이름이 잘 알려진 연예인 부부가 아이를 입양했죠. 두 사람이 멋지게 보입니다. 자기가 낳은 아이 키우기도 힘든데 남의 아이를 키우는 일은 더 어렵겠죠. 입양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는 한 나라의 앞날이고 희망입니다. 입양을 꼭 큰뜻을 가진 사람만이 하지는 않기도 합니다. 사실 이 책 속에 나온 스위티 엄마 아빠는 누군가가 한 말에 페루에서 아이를 데리고 오기로 결정했습니다.

 

스위티는 프랑스에서 영화 만드는 일을 하는 부모님과 모자란 것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스위티는 아빠하고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스위티를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았습니다. 스위티가 뜰을 가꾸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부모의 사랑이나 관심을 받지 않았지만, 스위티한테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정원사, 의사인 슈발리에 선생님 그리고 영화배우 제라르 르그랑디유입니다. 누군가한테서 사랑을 받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채워준다는 말이 있던데 그 말대로네요. 어른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페루에서 데리고 온 다섯 살배기 남자아이 아니발도 누구보다 스위티를 좋아했습니다. 아이는 본능으로 자기를 가장 사랑해줄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고 하는 말도 있던데, 그래서 아니발이 스위티를 잘 따른 걸까요. 사실 스위티가 처음부터 아니발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엄마 아빠가 낳은 아이도 아니고 다른 나라에서 데리고 와서 좋아하지 않았죠. 아니발이 스위티 편을 들어주는 행동을 한 뒤로는 스위티가 아니발을 좋게 여겼습니다.

 

엄마 아빠가 집을 비우고 스위티와 아니발만 있을 때 아니발이 아팠습니다. 집에 일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엄마 아빠가 없을 때는 일을 안 했습니다. 그런 일을 스위티는 엄마 아빠한테 말하지 않았죠. 스위티는 슈발리에 선생님한테 연락했습니다. 슈발리에 선생님은 스위티 엄마 아빠한테 연락해서 집에 돌아오게 했습니다. 아니발은 천식이었어요. 슈발리에 선생님은 엄마 아빠보다 스위티한테 아니발을 잘 보라고 말했습니다. 아니발은 식물과 같다면서. 식물을 본래 살던 곳에서 뽑아다 다른 곳에 심으면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스위티는 아니발이 프랑스어를 공부할 때 귀마개를 꽂아준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장난처럼 보이지만 아니발은 스위티가 귀마개를 해준 일을 좋아했습니다. 프랑스어 선생님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괜찮았으니까요. 하지만 곧 그 일을 프랑스어 선생님이 알게 되고 아빠한테 말했습니다. 아빠는 스위티를 기숙학교에 보내겠다고 했어요.

 

아니발의 천식이 꽃가루 때문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스위티는 뜰에 심은 꽃들을 거의 뽑았습니다. 꽃들을 뽑는 것은 마음 아팠지만 아니발을 위해서 큰마음을 먹은 거죠. 아니발이 발작을 일으키면 스위티는 아니발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어서 아니발이 숨을 잘 쉬도록 해주기도 했습니다. 아니발을 누구보다 잘 돌본 사람은 스위티였죠. 그런데 시간은 흘러서 아빠는 스위티를 기숙학교에 보내려고 했지요. 스위티는 자신이 없으면 아니발은 어쩌나 걱정하며, 아니발을 본래 살았던 곳에 돌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하고 시작은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루기에는 어려운 일이죠. 스위티는 아직 어리니까요. 그래도 스위티 행동이 나빴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다행하게도 스위티와 아니발은 떨어지지 않게 됐어요.

 

엄마 아빠는 책임감을 갖지 못했는데, 스위티는 아니발한테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스위티가 식물을 길렀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엄마 아빠가 철이 없으면 아이가 먼저 철이 든다고도 하던데 스위티를 보니 정말 그렇군요. 스위티와 아니발이 앞으로 잘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둘이 크면 페루에 가서 살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

 

“너는 정원사이며, 다른 사람한테는 없는 뛰어난 관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네가 꽃들이 괴로워하는 까닭을 알아낼 수 있다면, 아니발을 괴롭히는 게 뭔지도 알아내고 말거야.”  (112~113쪽)

 

 

가끔 나는 아니발이 한 포기 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 손 안에 있어서 잘해 주든 못해 주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끔찍하게도 무거운 책임이다. 그것이 자신을 우상처럼 우러러보는 다섯 살짜리 꼬마라면 그 책임감의 무게는 더욱 엄청나다. 녀석이 나를 바라보는 그 눈길 때문에라도 나는 바보 같은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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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4 0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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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6 15: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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