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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서린 말 ㅣ 사계절 1318 문고 82
마이테 카란사 지음, 권미선 옮김 / 사계절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네해 전 열다섯 살이었던 바르바라 몰리나는 ‘나 떠나요. 찾지 마세요. 바르바라.’ 라는 말을 쓴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엄마 누리아 솔리스한테 바르바라가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바르바라가 집으로 전화를 건 공중전화 박스에는 바르바라가 누군가한테 맞은 흔적과 가방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바르바라가 누군가한테 끌려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네해가 지나도록 바르바라를 찾지 못했습니다. 용의자는 있었지만 풀려났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바르바라가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사건을 맡은 형사 살바도르 로사노는 이제 정년 퇴임을 하루 앞두고 있었습니다. 엄마인 누리아 솔리스는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마음에 빠져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일을 다시 시작했지만 다른 때는 약을 먹으며 괴로움을 잊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르바라와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 에바 카라스코는 자신이 바르바라를 배신했다는 것 때문에 열아홉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로사노, 누리아, 에바 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과 바르바라 자신이 말하는 형식입니다. 바르바라라니 하겠군요. 네, 바르바라는 실종되고 네해가 지났지만 아직 살아있었습니다. 어느새 열아홉 살이 되었죠. 바르바라는 어딘가에 네해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바르바라를 가둔 사람은 누구인지, 바르바라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책을 읽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것은 당연한 일이군요. 어떤 책이든 뒤로 갈수록 범인이나 사건의 참모습이 드러나죠. 아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기도 하군요. 저는 책 앞부분을 보다가 옮긴이 말을 조금 봐서 어느 정도 짐작했습니다. 그것을 안 보고 읽었다면 더 많이 놀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바르바라가 말하는 ‘그’가 누구인지 알면, 누구나 놀랄 것입니다.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얼마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까닭이 있을 것 같은데. 이 책에서 다루는 게 그게 아니기 때문에 없는 거겠죠.
누구보다 많이 달라진 사람은 누리아입니다. 아니, 자신의 본모습을 찾은 겁니다. 딸 바르바라를 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형사 로사노와 에바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누리아는 결혼하기 전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는 남편 페페한테 기대게 되었습니다. 바르바라가 사라지고는 페페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죠. 사실 누리아가 그렇게 된 것은 남편인 페페 때문이기도 합니다. 페페는 권위주의에 사람을 지배하려 했거든요. 오랫동안 누리아의 자존감을 빼앗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누리아를 보고 바르바라는 자신한테 일어난 일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누리아가 도와줄 수 없을 거다 여긴거죠. 사실 누리아는 보고도 못 본 척하기도 했습니다. 바르바라는 친한 친구 에바한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누리아는 에바가 바르바라한테서 전화가 오고, 바르바라가 쓴 휴대전화가 누구 것인지 알고는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맞서기로 한 거죠. 무엇보다 죽었다고 여긴 바르바라가 살아있다는 게 기뻤을 겁니다. 아이를 잃은 부모는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닐 겁니다.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 폭력에도 마음이 움츠러들지만, 말로 하는 폭력에는 마음이 꺾입니다. 행동보다 말로 하는 폭력이 더 사람을 힘 빠지게 만들지 않을까 싶군요(앞에 쓴 말과 비슷한 말).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는 일을 그만둘 수도 있을 겁니다. 잘못된 말인데 그 말을 듣다보면 그 말이 맞나보다 하는 거죠. 하지만 말로 하는 폭력에 마음이 꺾이면 안 됩니다.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요. 누리아가 바르바라를 구하러 가서 다행입니다. 책은 거기에서 끝나지만 바르바라한테는 앞으로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누리아가 있기에 바르바라가 그 일을 잘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리아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힘을 내는 엄마니까요.
이 이야기는 나타샤 캄푸쉬가 억지로 끌려가서 8년 여섯 달 동안 갇혀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더군요. 여기에 나온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딘가에 가두어두지는 않더라도. 다른 책을 말하면 어떤 일인지 알아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 일 하나만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쓰겠습니다. 《영원의 아이》(텐도 아라타)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크레이그 실비) 《살인의 역사》(케이트 앳킨스). 바로 떠오른 책은 앞에 쓴 두 권인데, 더 없으려나 하니 세번째 책이 떠올랐습니다. 앞에 쓴 세권과 이 책이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엄마입니다. 아무리 괴롭고 믿을 수 없다 해도 누리아는 참된 것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엄마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제가 쓴 것 말고 더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야기》(카롤린 필립스) 나중에 이 책도 생각났습니다. 사실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크레이그 실비)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안에서도 '독이 서린 말'에 나온 일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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