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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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세상에 와서 사람을 얼마나 만날까요. 가까이에서 만나는 게 아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인연이 닿는 데도 아주 긴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옷깃이 아닌 가까이에서 만나고 서로 이름을 알고 말과 마음을 나누는 것은 얼마나 많은 어긋남 뒤에 일어난 일일지 헤아릴 수 없겠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고 누군가를 만난 일을 기쁘게 여기고 살지는 않습니다. 아니, 아주 가끔 할지도. 언젠가 추사 김정희와 제자 이상적 이야기를 짧게 본 적 있습니다. 이상적은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중국에서 어렵게 구한 책을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김정희는 그런 이상적한테 감격하여 늘 같은 마음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빗대로 세한도를 그렸습니다. 짧지만 이 이야기만으로도 옛날에는 이런 만남도 있었구나 했습니다. 좀더 긴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책도 있을 듯하네요.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이 귀양살이 한 이야기가 함께 나와서 두 사람이 비슷한 때 귀양살이를 했나 했습니다. 추사 김정희는 다산 정약용한테 아들 뻘이더군요. 이것을 깨닫고 기분이 좀 이상했습니다. 다산 정약용 이름만 알고 다른 것은 잘 모릅니다. ‘목민심서’는 생각나는군요. 한번은 다산 정약용이 어느 마을에서 사람을 죽인 사람을 알아낸 것을 보았습니다. 정약용이 탐정처럼 나오는 소설도 있는 걸로 압니다. 이런 일은 좀더 젊을 때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마흔이 넘어도 나이가 많다고 하지 않지만 19세기에는 마흔을 아주 많다고 여겼지요. 다산 정약용이 귀양살이를 간 건 1801년 11월로 나이는 마흔이군요.

 

강진이 어딘지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동쪽인가 했어요. 백제 남쪽이었다는 말을 보고 전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전에 다산초당 가까이에 가기도 했는데 그것을 잊어버렸습니다(다산초당까지 갔는지 어땠는지 생각 안 납니다). 월출산은 차 안에서 보았던 것 같아요.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서 열여덟해 동안 귀양살이를 했습니다. 처음에 있던 곳은 주막집입니다. 한해가 지나고 정약용은 주막집 봇농방에 작은 서당을 열어 아전 자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정약용은 열다섯살 황상을 만났습니다. 황상은 정약용한테 자기처럼 둔하고, 꽉 막히고 답답한 사람도 공부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정약용은 황상한테 너라면 할 수 있다. 꾸준히 부지런히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누군가는 단점으로 본 것을 정약용은 장점으로 보았습니다. 빨리 잘 알고 글을 잘 지으면 들뜨니, 자기 재능을 믿고 애쓰지 않으면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황상은 스승의 가르침을 늘 지켰습니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고 한 말입니다. 이 말 보고 나도 그래야 할 텐데 했습니다. 다른 것보다 책읽고 쓰기에서.정약용은 제자뿐 아니라 자식들한테도 늘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어딘가에서 들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아버지 말 잘 안 들을지도 모를 텐데 정약용 아들 둘은 아버지 말을 잘 지켰습니다. 집안이 어려워서 공부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다산 정약용은 깐깐한 스승이어서 제자들이 견디기 힘들었답니다. 힘들어도 스승 말이 옳으니 잘 따르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서 황상이 가장 잘 따랐겠지요. 정약용은 황상한테 크고 작은 일을 의지하기도 했습니다. 황상이 학질에 걸렸을 때는 위로하는 시를 써주었습니다. 언젠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혁명이라고 한 말을 보았는데, 다산 정약용이 그렇더군요. 책을 보고 여러 글을 썼으니까요. 정약용은 아이들이 공부하는 《천자문》 《사략》 《통감절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교과서를 새로 만들었습니다(천자문을 대신하는 것). 이런 것은 많이 알아야 잘못된 것을 알고 고칠 수 있겠지요. 다산이 쓴 책이 아이들 공부에 널리 쓰였는지 그것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산이 가르친 제자만 그 책으로 공부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다산은 제자가 어떤 분야를 잘하는지 알아보고 거기에 힘을 쏟게 했습니다. 정약용은 황상을 시인으로 기르고 싶어했어요. 황상한테 과거시험을 보라고 권했지만 황상은 벼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때 과거시험은 시도 잘 써야 했나봐요. 학문은 깊지만 시를 잘 쓰지 못하는 정약용 제자 이청은 과거시험에서 늘 떨어졌습니다. 이청은 다산 정약용을 따르다 자신한테 도움이 되지 않자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정약용이 귀양살이를 끝냈을 때 처음에는 제자들이 정약용을 따랐지만 시간이 갈수록 멀어졌습니다. 벼슬길에 나가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때는 한사람 벼슬길이 막히면 식구뿐 아니라 제자들까지 벼슬하기 어려웠나봅니다. 지금과는 다르게 옛날(조선시대)에는 과거시험에 붙어서 벼슬을 해야 사는 것 같았겠지요. 지금은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을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즐겁겠지요. 백련사 주지 혜장은 다산 정약용을 무척 만나고 싶어하고 만나고는 아주 기뻐했습니다. 정약용이 더 기뻤을지도 모르겠군요. 제자들 실력이 좋아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즐겁겠지만,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친구를 만나는 것도 즐겁잖아요. 아쉽게도 혜장은 술을 많이 마셔서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혜장 때문에 다산 정약용한테는 승려 제자도 있었습니다(김정희 친구기도 하죠). 황상이 혼인하고 공부를 게을리 할 때는 정약용이 황상한테 편지를 써서 혼냈습니다. 정약용은 자애로웠지만 삐치기도 잘했다고 하네요. 이 말을 보니 재미있었습니다. 스승이 삐치면 제자는 그 마음을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아들 정학연이 먼 길을 찾아왔을 때는 다음날부터 함께 공부했습니다. 정약용은 공부는 밥 먹듯이 숨 쉬듯이 버릇처럼 해야 한다고 했어요. 정학연과 황상이 만나고, 혜장과 정약용 네 사람은 돌아가면서 시를 짓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 좋아 보이더군요. 예전에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 본 적 있습니다. 시를 짓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바로 시를 지을까 했습니다. 공부를 하다보면 그렇게 되는 것인지. 시를 보니 저도 잘 못 써도 시처럼 쓸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요. 글씨도 좀더 잘 쓰고 싶습니다. 편지 쓸 때는 잘 알아보게 천천히 쓰지만 연습장에는 흘려쓰거든요. 글씨체 바꾸고 싶기도 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김정희는 제주에서 추사체를 완성했다고 하죠. 저는 글씨보다 글쓰기에 더 마음을 두고 있군요. 엉뚱한 말로 흘렀습니다.

 

조선시대 때는 편지가 오고가는 데 꽤 오랜이 시간이 걸렸습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걸어서 가야 하니까요(말을 타고 간 사람도 있었겠네요).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일을 애틋하게 여긴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 할 테니까요. 정약용이 귀양살이를 끝내고 강진에서 서울에 가고 황상과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황상은 아전 자리를 동생한테 맡기고 식구들과 돌밭을 일궈 농사를 지었습니다. 정약용은 황상과 연락이 되지 않아 아쉬워했습니다. 황상과 정약용은 열여덟해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황상이 강진에 돌아가는 길에 정약용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황상은 정약용 집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책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는 것도 슬프군요. 황상이 정약용과 만나는 일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겠지만 그렇게 바로 그 일이 일어나서 슬펐겠습니다. 시간이 또 많이 흘러서 황상은 정약용 아들 정학연, 정학유, 김정희 형제와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황상과 정학연이 만난 것은 서른해 전인데 다시 만났을 때 어색하지 않다니. 그런 만남 부럽더군요. 편지를 주고받는 모습도. 황상이 서울에 몇번 올라와서 정학연, 김정희 형제와 만났습니다. 그렇게 먼 길을 다닌 걸 보면 다른 사람보다 황상이 건강했나봅니다. 한사람 한사람 세상을 떠나갈 때 마음이 아프더군요. 저도 이런데 그때 황상은 어땠을까요. 황상한테는 땅 때문에 안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공부하고 시를 썼습니다. 황상한테 일어난 일을 알고 정학연이 더 화를 냈습니다. 정학연은 황상한테 도움을 주지 못해서 애태웠겠네요. 어쩌면 황상은 자기 대신 화내주는 친구가 있어서 흔들리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만남이 좋지는 않습니다. 어떤 만남이든 소중하게 여긴다면 좋은 만남이 되지 않을까요.

 

 

 

희선

 

 

 

 

☆―

 

처음에는 누구나 공부가 익지 않아 힘들고 버벅거리고, 들쭉날쭉하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꾸준히 연마하면 나중에는 튀어나와 울퉁불퉁하던 것이 반질반질 반반해져서 마침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구멍은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막힌 것을 틔우는 것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연마하는 것을 어찌해야 하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어찌해야 부지런히 할 수 있겠니?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으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어기지 않고 할 수 있겠지?  (35~36쪽)

 

-정약용이 황상을 처음 만났을 때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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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술사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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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을까. 이번으로 끝나는 거라면 말하기 좀더 쉬울 텐데. 내가 첫번째 ‘흑백’과 두번째 ‘안주’를 보았지만 잊어버린 것도 있어. 이번이 세번째인데 여기에서도 짧게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 흑백방, 오치카를 말하거든. 오치카는 한해 전에 슬픈 일을 겪고 친척집인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에 왔어. 미시마야 주인은 이헤에로 오치카는 조카딸이야. 이헤에는 바둑을 좋아해. 집에는 바둑두는 ‘흑백방’이 있거든. 이헤에가 집에 없는 날 오치카가 손님을 흑백방에서 대접했어. 그 손님은 오치카가 자신과 비슷한 눈을 한 것을 보고 지금까지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했어. 나중에 그 말을 들은 이헤에는 오치카가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마음을 달래면 어떨까 생각하고 미시마야 아가씨가 백가지 이야기를 모은다고 알렸어. 그냥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고 백가지였다니, 이것을 이번에야 제대로 알았어. 괴담 모임에서는 백가지 이야기를 해. 이때 초 백자루를 켜놓은 뒤 이야기가 하나 끝나면 촛불도 하나 꺼. 백가지 이야기가 끝나고 방안이 캄캄해지면 뭔가 괴상한 일이 일어난대. 그러고 보니 이것도 괴담이구나. 언젠가 한번 백가지는 아니고 그런 것처럼 꾸미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야기가 끝나자 바깥에 무엇인가 나타났어. 백가지 이야기를 다 채우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

 

미시마야에 오치카가 온 지 한해가 지났는데 흑백방에서 이야기를 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 이야기를 하러 사람이 자주 오는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어. 좋은 이야기도 아니고 이상하고 무서운 이야기니 쉬는 시간도 있어야 오치카가 괜찮겠지. 소문을 듣고 미시마야에 바로 오는 사람도 있지만 이야기할 사람을 소개해주는 사람도 있어. 먼저 그 사람이 이야기할 사람을 만나서 거르는 거야. 하지만 한번 사람을 잘못봐서 미시마야에 큰일이 일어날 뻔했어. 그때는 여러 사람이 도와줘서 괜찮았어. 흑백방에서는 말하고 버리고 듣고 버리는 규칙만 있어. 흑백방에서 말한 이야기가 다른 데 새어나갈 일은 없어. 흑백이지만 여기에서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아. 흑백방이니 그것을 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본래 바둑두는 방이어서 그런 이름(흑백방)이 붙은 것뿐이야. 세상에는 흑백을 가릴 수 없는 일이 많지. 나는 오치카 나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어. 전에도 몇살인지 나왔을 텐데 그것은 별로 마음쓰지 않았어. 왜 그랬을까. 혼인 이야기가 오고 가서 스물은 넘지 않았을까 생각했나봐.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이른 나이에 혼인을 했는데 그걸 잊어버린 거지. 오치카가 흑백방에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을 때는 열일곱이었고, 지금은 열여덟이 되었어. 그 나이에 벌써 안 좋은 일을 겪다니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일을 겪는 건 나이와 상관없을 거야.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하는. 오치카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아. 흑백방에서 오치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조금 위로받지 않았을까.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하고.

 

가만히 생각하니 오치카 혼자 이야기를 듣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으면 답답할 것 같아. 흑백방에서는 오치카 혼자 손님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저녁에 오치카는 미시마야 부부한테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해줘. 거기에 한사람 더 늘었어. 오카쓰는 얼굴에 마마자국이 있는 사람으로 미시마야에 오기 전에는 안 좋은 것(마)을 쫓는 일을 했어. 에도시대 때는 마마자국이 있는 사람한테는 안 좋은 것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거든. 오카쓰는 미시마야에서 일하면서 오치카가 흑백방에 있을 때는 바로 옆방에 있어. 안 좋은 이야기에는 무엇인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오치카는 바로 옆방에 오카쓰가 있다고 생각하면 덜 무섭지 않을까. 무섭고 이상한 일이라고 해도 사람이 겪은 일이야. 거기에는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도 있어. 에도시대 사람들은 신을 잘 믿기도 해서 신과 관계있는 일도 있었어. 요괴, 이승과 저승도. 이번에 오치카는 애인 사이를 갈라놓는 연못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어. 사이가 좋은 두 사람을 시샘하고 미워하는 신이 있거든. 다마토리 연못은 그곳 땅신이 몸을 씻는 곳으로 사이 좋은 두 사람이 그곳에 모습을 비춰보면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대. 그것을 사람은 어떻게 이용할까. 혼인할 상대가 자신을 진짜 좋아하는지 어떤지 알아보는 데였어. 아무리 좋아해도 시간이 흐르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지. 그걸 꼭 혼인하기 전에 확인해야 할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믿어야지. 사람이 집착하는 것을 빼앗아간다는 말도 있어.

 

사람은 자신이 겪은 일, 혹은 들은 이야기를 자기 혼자만 알고 있으면 안 좋은가봐. 그걸 누군가한테 털어놓고 짐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있는 듯해. 짐이라고 해서 무거운 것만은 아닐 테지만, 누군가 나와 함께 그 일을 알고 있다 생각하면 혼자가 아닌 것 같은 마음이 들지도 몰라. 끝까지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어릴 때 살던 마을에 엄청난 큰비가 오고 산사태가 일어나서 식구들과 친구들이 모두 죽었어. 그때 그 사람은 선주 가문 별장에서 지냈는데 가끔 꿈을 꾸었어. 친구와 노는 꿈이었는데 그 꿈을 꾸면 꿈에 나온 친구 시체를 찾았다는 말을 들었어. 그 사람은 거기에 있으면 친구가 오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어. 얼마전에 아플 때 이제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겠구나 했는데 그 사람은 다시 깨어났어. 그때 꿈에서 친구들을 만났대. 친구들이 너는 아직 이쪽에 올 때가 안 되었어 했대. 그 사람이 지금까지 자기 아내한테 하지 못한 말이 있었어. 그것은 자신만 살아남아서 미안하다는 거고, 그런 자신을 친구들이 미워할거다는 거야. 누가 그런 생각을 할까. 어떤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다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자신은 죽고 다른 사람이 살았구나 하고 화내는 사람은 없을거야. 네가 살아서 다행이다 생각할거야. 누군가한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면 다르겠지만.

 

말도 못하는 아이가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지르려 하고 저지른 걸 알면 어떨까. 그 아이를 무서워할까. 죄를 지은 사람이라면 무서워하겠지.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러야 하는 건 그래서인가봐. 죗값을 치렀다고 그걸로 끝난 건 아니지만. 자신이 지은 죄가 자기 목을 조여오면 또 다른 나쁜 짓을 할지도 몰라. 약한 사람이어서 그런 거겠지만. 검은 사람 마음을 꿰뚫어보는 그 아이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런 괴담을 하고 듣는 일은 그동안 자신한테 들러붙은 나쁜 것을 떼어내는 것이기도 하대. 오치카 혼자 흑백방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과는 다르게 어떤 사람은 섣달에 괴담 모임을 가졌어. 그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으면 살면서 다른 사람한테 원한을 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할 것 같아. 원한 때문에 괴롭게 죽은 사람 이야기도 있었거든. 사람 겉모습 가지고 흉을 보아서도 안 돼. 괴담 모임에 간 오카쓰 얼굴에 있는 마마자국을 보고 뭐라고 한 사람이 있었어. 사람은 마음을 곱게 가져야 해. 겨울이 되어 미시마야에 오게 된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살던 곳에서 모시던 신이 오치카한테 그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러 오기도 했어. 사람이 아닌 다른 게 나타나서 무섭게 여길 수 있지만 오치카는 그것을 따듯하게 생각했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일도 슬프지만 어머니가 하던 일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아쉬워서 그 이야기를 하러 무사가 흑백방에 왔어. 무사 어머니가 한 일은 사람을 잡아먹는 마구로를 물리치는 일이었어. 그 일 무서워보여. 오치카도 그 이야기를 듣고 이런저런 생각을 했어. 마구로는 원한이 모여서 만들어진 짐승이라는 말이 있거든. 사람이 살려면 그것을 없앨 수밖에 없잖아. 마구로를 없애도 또 다른 원한이 생기는 거지. 끝이 없기도 해. 무서운 것보다 슬픈 일일까. 오치카는 절기마다 얼굴이 바뀌는 사람 이야기도 들어(절기마다 남자 얼굴은 죽은 사람 얼굴이 돼. 남자는 그날 죽은 사람을 아는 사람을 만나러 다녀. 이게 늘 좋지만은 않아. 죽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거든). 이때 이 세상과 저세상을 이어주는 상인이 또 나왔어. 예전에 나왔다고 하는데 잘 생각 안 나. 그때 오치카는 상인을 나쁘게 생각했는데 이번에 이야기를 듣고는 그 사람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세상에는 그런 사람 있어. 선과 악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 바라는 일을 해주는.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나도 모르겠어. 그 상인은 언젠가 다시 나올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었어. 아니면 또 다른 사람 이야기에 나오게 될지도.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이야기도 하는 것 같아. 관계를 맺으면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으니 그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같은. 오치카도 그것을 조금씩 알아가겠지.

 

책을 읽는 것도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 이야기를 다시 다른 사람한테 하는 건 어렵지만. 오치카를 다시 만날 때까지 기다려야겠군.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까.

 

 

 

희선

 

 

 

 

☆―

 

영혼이 부서질 정도로 슬픈 일을 겪은 젊은 처녀에게 어지간한 위로나 격려는 별 소용이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오치카가 이런 식으로 세상에 일어나는 신기한 이야기, 업보 이야기, 온갖 인생 이야기를 듣고 그런 이야기들에서 실을 자아내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꿰매어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17쪽)

 

 

괴이한 일을 이야기하거나 들으면 일상생활에서는 움직일 일이 없는 마음속 깊은 곳이 소리도 없이 움직인다. 무엇인가 웅성거린다. 그래서 무거운 생각에 짓눌릴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 문득 더러운 게 깨끗해진 듯한, 혹은 깨어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178쪽)

 

 

“괴담 모임을 마련해서 여러 괴담을 듣고 보니 신선의 영험함이나 요괴의 무서움과 신기함에 온몸이 절로 오그라들더군요. 사람의 지혜나 이치가 닿지 않는 일들을 알고 사람 분수를 헤아리게 됩니다. 혼백이 덜덜 떨리면 때가 떨어지고 욕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집니다. 그 고마운 효험에 선대 뒤를 이은 저도 괴담 모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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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2 1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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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3 0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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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루시드폴(2009, 2014)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려 편지를 쓴다

‘보내기’만 누르면 되는데,

내게 다시 돌아올까봐

임시보관함으로

보내지 못한 편지가 쌓여간다

 

 

 

이 책이 나오고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마종기 시인과 루시드폴(조윤석)이 나눈 전자편지가 책으로 나왔다고 했을 때 조금 관심을 가졌는데 바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얼마전에 우연히 두번째가 나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그때 루시드폴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해요. 그냥 갑자기 한 거죠. 그런 일 가끔 일어나잖아요. 우연히 생각한 것을 만나는 일. 마종기 시인 이름은 알지만 시는 많이 못 보았습니다. 루시드폴은 2집이 나왔을 때 알았습니다. 루시드폴이 마종기 시인 이야기를 해서 시인한테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집 한권 샀는데 제대로 못보았네요. 루시드폴 알고 나서 ‘미선이’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새음반은 못 샀군요. CD 플레이어가 고장나서 CD 듣기 어려워서 그렇다는 핑계를 대고 싶습니다. 루시드폴이 스위스에서 하던 공부를 끝내고 우리나라에 와서 한 라디오 방송은 들었습니다. 그때 ebs에서 <세계음악기행>이라는 방송을 했어요. 우리나라 사람이 책 많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 읽어주는 라디오’로 바꾼 걸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음악방송이 하나도 없는 건 조금 아쉽습니다. ebs인데 음악방송 하기를 바라는 건 억지스러울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ebs를 들은 건 음악방송이 있어서였어요. 교육방송인데 음악방송이 다 있구나 했습니다. 그것은 밤 방송이었습니다. 루시드폴 라디오 방송은 안 해도 음악은 여전히 하고 있엇꾼요. 제가 관심을 덜 가져서 그것을 빨리 몰랐던 거네요. 생명공학 쪽은 어떻게 하고 있을지. 어쩌면 두번째 책에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전자편지(앞으로는 그냥 편지라고 할게요)라고 해도 오랫동안 주고받기 어렵습니다. 루시드폴이 마종기 시인한테 편지를 썼다 해도 마종기 시인이 답장을 쓰지 않았다면 주고받는 대화가 되지 않았겠지요. 마종기 시인을 시를 쓰고 루시드폴은 음악을 해서 서로 다른 것 같지만, 두 사람한테는 공통분모인 과학이 있었습니다. 과학이라 해도 분야는 다르지만(마종기 시인은 의사고, 루시드폴은 공학박사). 시와 음악은 아주 동떨어진 건 아니죠. 시는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하니까요. 예전에 친구와 루시드폴이 쓴 노랫말은 시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루시드폴은 시를 쓰고 싶다고 하더군요. 벌써 쓰고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어쩌면 시인이 인정해주는 시를 쓰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두 사람이 나누는 편지를 보니 저도 편지 쓰고 싶었습니다. 제가 쓰고 싶은 건 전자편지가 아니고 그냥 편지예요. 다른 사람이 쓴 편지를 보니, 내 생활은 정말 단순하구나 했습니다. 무엇인가 다른 일이 있어야 그런 일을 말할 텐데, 날마다 거의 비슷한 날이어서 비슷한 말을 합니다. 한사람(마종기 시인)은 미국 플로리다에서 한사람(루시드폴)은 스위스 로잔에서 할 일을 하면서 어디론가 떠나기도 하더군요. 갔다 와서는 그곳 이야기를 하고, 책과 CD 를 서로 보내주기도 했어요.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그냥 친구처럼 보였습니다. 나이 차이를 아버지와 아들에 가깝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종기 시인 아들과 루시드폴 아버지는 두 사람 사이를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종기시인 아들은 좀 달랐을지도 모르겠군요. 한글이어서 읽지 못할지도 모르니까요. 부러움을 느끼지 않게 마종기 시인은 아들과 루시드폴은 아버지와 잘 지냈을 것 같네요.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서 사는 일은 쉽지 않겠지요. 조금 다른 형편이지만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있다는 게 서로 마음을 열게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두 사람은 편지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전에 한번 들었을 텐데 잊어버린 것이 생각났습니다. 마종기 시인 아버지가 동화작가 마해송이라는 거예요. 마종기 시인과 마찬가지로 이름은 알지만 만나 본 동화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조금 신기해서. 동화가 시와 닿아있다는 거 아세요. 시·소설 이런 갈래가 있지만 모두 글이라는 것은 같군요. 어떤 게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러 사람이 시를 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제가 시를 많이 보고 잘 아는 게 아니어서, 여러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말하기 어렵네요. 루시드폴은 마종기 시인 시를 여러번 보았다고 하더군요. 좋아하는 시, 시인이 있는 것도 좋은 거예요. 저요, 저는 아주 많이 좋아하는 시인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쉬워요. 이 말은 전에도 했군요(아주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우연히 괜찮은 시를 보면 그 시인은 어떤 시를 쓸까 조금 알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 한편은 좋아도 시집 안에 있는 시가 다 좋지는 않더군요. 음악은 CD 한장에 들어있는 게 다 좋기도 합니다. 제가 시집 한권을 제대로 못 봐서 그런 거겠지요. 편지보다 시 이야기를 했군요.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저도 아직 시를 좋아합니다. 생각만 하지 않고 앞으로는 시를 봐야겠습니다. 예전에 사둔 마종기 시인 시집을 먼저 만날까봐요.

 

마종기 시인은 과학을 하는 사람도 문학을 알면 좋다고 했습니다. 꼭 문학만 말한 건 아닙니다. 철학, 음악, 미술……. 마종기 시인은 우리나라 대학에서 ‘문학과 의학’ 강의를 했습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이 과학에만 관심을 갖는 건 아니겠지요. 마종기 시인처럼 의사면서 시를 쓰는 사람도 있고, 소설을 쓰는 의사도 있습니다. 두 가지를 하는 사람 부럽군요. 저는 하나도 못하는데……. 책을 보면서 아무것도 못하는 저를 생각했습니다. 루시드폴은 공학뿐 아니라 여러 나라 말도 하더군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니 그쪽 말을 알아야 했겠지만. 루시드폴 소설도 쓰고 다른 나라 소설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두권 다 아직 못 봤지만. 하나를 잘하는 사람은 여러가지를 다 잘하기도 하더군요. 이런 것도 그런가 보다 해야죠.

 

나이 차이가 나도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 좋다고 봅니다. 얼마전에 라디오 방송에 나온 의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세대 사이에 소통이 없는 게 문제다고(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곳이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서로 상대 말을 귀 기울여 듣기보다 자기 말을 더 하려고 하니까요. 어른은 아이 말을 아이는 어른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 어떨까 싶네요. 말로 하기 어려우면 이렇게 편지로 하는 것도 좋겠지요.

 

 

 

임시보관함에 쌓인 편지를 하나씩 지운다

끝내 너에게 건네지 못한 마음

 

 

 

*더하는 말

 

조금 쓸데없는 말인데 짧은 글은 제 이야기 아닙니다. 글은 자신이 아닌 남이 되어보는 것이기도 하죠. 이 말을 듣고 저도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서 글을 써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 말 나중에 들었습니다. 제가 말을 조금 바꾸었네요. 글을 쓸 때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써보는 것도 좋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저는 편지 쓰면 쌓아두지 않고 다 보냅니다. 저하고는 다르게 쓰고 차마 보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얼마전에 본 책에도 그런 사람이 나왔습니다. 제가 본 이 책은 개정판이 아니고 예전에 나온 겁니다. ebs 라디오 음악방송이 없어서 아쉽다고 했는데 얼마전에 개편을 했습니다. (음악과 책을 함께 들려주겠다고 하더군요. 조금 들어봤는데 다른 라디오 방송과 비슷해졌습니다. 몇번 듣지도 않고 이런 생각을 했네요). 전에 하던 방송이 거의 없어지고 아주 달라졌습니다. ebs는 많은 게 한번에 바뀌더군요. 날마다 들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 없어지니 아쉬웠습니다. 좋아하는 걸 만들지 않아서 다행이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어쩌면 이런 생각은 좋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헤어질 텐데 사람(친구)을 왜 사귀나 할 수 있으니까요(친구와 사이가 나빠지거나 어쩌다 연락이 끊기기도 하잖아요). 그런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람하고 라디오 방송은 좀 다르기도 하죠.

 

 

 

희선

 

 

 

 

☆―

 

서둘러 윤석 군의 《국경의 밤》 앨범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첫 결과는 ‘어리둥절함’이었습니다. 내가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아니면 이게 세대 차이라는 것일까.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 ‘아주 좋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던 생각이 나서 다시 듣기 시작했지요. 그러면서 아, 이 노래들은 혹 대화를 나누려는 외로운 영혼의 숨소리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흐처럼 나를 맑게 정돈시키는 힘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베토벤처럼 나를 압도하고 소름 끼치게 진리를 설파하는 것도 아니고, 모차르트처럼 천상의 황홀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만, 바로 이 음악이 외롭고 고달픈 또래 영혼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같은 세대가 느끼는 동류의 슬픔을 같이 흐느끼면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서로가 동료 의식으로 힘이 되는 그런 부드러움. 부드러움이 결국 힘이 되고 열기가 되어 불꽃으로 피어날 수도 있는 그런 노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84쪽)

 

 

 

 

 

청솔 그늘에 앉아

 

이제하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보랏빛 노을을 가슴에

안았다고 해도 좋아

 

혹은 하얀 햇빛 깔린

어느 도서관 뒤뜰이라 해도 좋아

 

당신의 깨끗한 손을 잡고

아늑한 얘기가 하고 싶어

 

아니 그냥

당신의 그 맑은 눈을 들여다보며

마구 눈물을 글썽이고 싶어

 

아아 밀물처럼

온몸을 스며 흐르는

피곤하고 피곤한 그리움이여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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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2 16: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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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4 0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말레이 철도의 비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 자고 있을 테니까 오사카에 데려다 줘.”  (440쪽)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때쯤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는 말레이시아 카메론 하일랜드에서 이포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돌아가야 했다. 아리스는 밤을 새우고 잠깐 자고 일어나서 저런 말을 했다. 왜 내가 처음에 저런 말을 썼느냐 하면, 나도 비슷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볼펜을 쥐고 있을 테니 이 책 이야기를 써줘’ 다. 그런데 이 말은 누구한테 하는 것이지. 손일까, 볼펜일까. 이런 마음은 늘 든다. 어떤 식으로 쓰이길 바랐던가. 볼펜을 쥐면 글이 술술 쓰이는 거였나. 요술만년필, 만년필은 없으니 요술볼펜이 있으면 좋겠다(요술키보드도 괜찮겠다). 이것을 꼭 써야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했다. 내 힘이 아닌 다른 힘이 써주면 ‘이건 내가 쓴 게 아니야’ 할 거면서. 그렇게 잘 쓰지 못해도 내가 쓰는 게 낫겠지.

 

앞에서 이름을 말했는데 이 책 《말레이 철도의 비밀》은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와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나오는 것 가운데 하나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작가 이름이기도 하다(소설 속 아리스도 작가구나. 진짜 작가보다 이름이 잘 알려진 건 아닌 듯하다). 이것은 ‘작가 아리스’ 시리즈고, 에이토 대학 추리소설연구회 부장 에가미 지로가 탐정으로 나오는 ‘학생 아리스’ 시리즈도 있다. 엘러리 퀸이 나라 이름을 제목에 넣어서 쓴 것처럼 아리스가와 아리스도 제목에 나라 이름을 썼다. 러시아, 스웨덴도 있다. 이 소설을 쓰기 전에 말레이시아에 취재를 갔다는데 러시아와 스웨덴에도 갔다 왔겠지. 이런 이야기는 책 날개와 작가가 쓴 글을 보면 다 알 수 있다. 이렇게 써두면 좀더 기억할 테니까. 작가 아리스가 나오는 이야기는 예전에 한번 본 적 있는데 어땠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히무라 히데오도 아리스와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 학생 아리스 시리즈에는 한번도 안 나왔을까(내가 본 책에는 나오지 않은 듯하다). 탐정은 한사람만 있으면 될지도 모르겠다.

 

책을 보면서 이것은 어디에 들어갈까 했다. 일본은 추리소설을 본격, 신본격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것은 본격에 가깝지 않을까 했는데 아리스가와 아리스도 본격이라 말했다. 갑자기 ‘이 본격이 뭐지’ 하는 생각이.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찾아가는 것, 수수께끼와 트릭을 푸는 것. 이런 것도 그렇게 많이 본 게 아니어서. 이야기를 듣고 풀었다기보다 범인을 짐작했다. 아니,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범인을 짐작할 수 있었던 건가. 이런 책은 범인을 맞히기보다 트릭을 푸는 게 재미있는 건지도. 한번 더 말하면 본격 추리소설은 어려운 수수께끼를 논리있게 풀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이야기나 마찬가지구나. 밀실이 나온다. 트레일러하우스 안 문과 창은 테이프로 막혔고 캐비닛 안에 시체가 있었다. 범인은 어떻게 밖으로 나갔을까. 밀실은 일부러 만들기도 하고 저절로 될 때도 있다. 밀실을 만드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로 꾸미기 위해서일 때가 많다. 히무라도 여기 경찰이 웡후(죽은 사람)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로 처리할까봐 걱정했다. 아리스는 엉뚱한 추리를 했다. 아리스가 예전에도 이랬던가 했다. 아리스가 하는 엉뚱한 추리가 히무라한테는 도움이 되는가보다. 추리소설가가 사건을 해결하려고 할 때도 있던데 아리스는 아니구나. 쓰는 것과 푸는 것은 조금 다를지도. 재미있는 게 하나 더 있다. 아리스는 영어를 다 못 알아듣기도 하는데 그런 부분은 ‘XXXX’로 썼다(이 책을 보는 우리도 아리스와 같은 거다. 그 말 몰라도 상관없기 때문이겠지).

 

아리스와 히무라는 쉬려고 말레이시아 카메론 하일랜드에 간다. 그곳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친구 타일론이 한번 오라고 해서다. 카메론 하일랜드에서는 오래전에 실크 왕 짐 톰슨이 사라진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쩐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히무라와 아리스는 우연히 차 바퀴를 갈려고 하는 일본 사람 모모에 준코를 보고 도와준다. 모모세 준코는 다음날 함께 차를 마시자고 한다. 그곳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이 다음날에는 집에 있다면서. 지금 이 말을 해야겠다. 탐정이 가는 곳에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리스와 히무라가 찾아간 모모세 준코 집에 있는 트레일러하우스 안에는 시체가 있었다(이걸 먼저 앞에서 말했구나). 트레일러하우스는 밀실이었다. 그 뒤에 사람이 더 죽는다. 아리스와 히무라가 카메론 하일랜드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남았다. 일본에 돌아가기 전에 사건을 해결하려고 한다. 친구 타일론이 의심을 받기도 해서. 이렇게 말하니 다음에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죽은 사람을 말할까. 트레일러하우스 안 캐비닛에 있던 사람은 웡후로 아리스와 히무라는 전날 이 사람을 만났다. 다음에 죽은 사람은 일본 사람으로 웡후와 싸운 사람이었다. 다음에 죽임 당한 사람은 아리스, 히무라와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은 영국 사람으로 작가다.

 

갑자기 일어난 일처럼 보이는데 그렇게 갑자기는 아니다. 한주 전 열차 사고가 일어났을 때 누군가 씨앗을 뿌렸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솔직해진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하고 잘못한 일을 말하고 용서받고 싶어한다. 열차 사고로 죽어가던 사람은 예전에 있었던 일을 누군가한테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자신이 그 일을 알아보지 않고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한테 말해서 그 사람이 행동하게 한다. 말만 하는 건 죄가 되지 않겠지. 자기 손이 아닌 다른 사람 손을 더럽히려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돈과 관계있을 때가 많다. 지난날에는 그랬고 지금은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남을 죽여서 재물을 얻으면 기쁠까. 처음에는 돈 문제가 해결돼서 한 고비 넘었구나 해도 죄책감은 마음속에 남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얻는 건 오히려 자신을 더 괴롭힐 텐데. 일이 잘 안 풀리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더 낫다고 본다. 내 일이 아니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이니까 이런 거지 해야겠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일지도. 내가 이 세상 사람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니까. 나쁜 쪽으로 넘어가는 사람보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다.

 

말레이시아는 마약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형이라고 한다. 어쩐지 무섭구나. 내가 말레이시아에 갈 일도 없고 마약 같은 걸 갖게 될 일도 없겠지만. 나는 반딧불이를 한번도 본 적 없다. 말레이시아 쿠알라 셀랑고르 강에서는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 강가 맹그로브 숲에서 반딧불이 몇십만 마리가 빛을 내는 모습 멋질 것 같다. 반딧불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겠구나. 말레이시아 철도니까 기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할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없다.

 

 

 

희선

 

 

 

 

☆―

 

악이란 무엇인지.

 

또는 모모세 토라오, 준코, 웡후, 오이 후미치카, 그들 저마다의 죄를.

 

또는 사건의 발단을.

 

인과를 따라가면 그 끝에는 열차건널목에서 고장 나 말레이 철도를 큰 사고로 이끈 트럭 한대가 있었다. 그 엔진이 변덕을 일으켜 멈추지 않았다면, 운전기사가 제대로 차를 정비했더라면…….

 

호랑이는 죽 잠들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4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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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거리에서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책을 다 본 지금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슬프다, 우울하다, 화난다, 어이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작가는 ‘모든 일에는 흑백을 가릴 수 없는 면이 있기 마련이라, 100퍼센트 악도 100퍼센트 정의도 없다’ 고 했습니다(악을 말하고 선이 아닌 정의를 말했군요.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쩐지 이 말을 따라 글을 쓴 것 같습니다. 작가가 한 말 틀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보고 제가 생각한 것은 사람한테는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다였어요. 여기 나오는 사람은 거의 현실에서 달아나고 있습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다. 이것은 제가 그렇게 본 것이지 저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아이는 아직 어려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몰라서 다른 아이를 따라하고 아이들과 한 약속을 지켰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 부모는 자기 아이가 아니면 괜찮고, 자기 아이한테만 나쁜 일이 없기를 바랐습니다. 부모는 아이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그냥 시간이 흘러서 아이가 다시 웃는 일상을 살아가기를 바라더군요. 자기 아이한테 큰일이 없으면 어떤 일이 있었든 상관없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기 아이가 귀하면 남의 아이도 귀한 법인데 요즘은 이것을 잊어버리는 부모가 많은 듯합니다(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부모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상한 말로 시작했군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는 게 좋겠지요. 7월 1일 저녁무렵 구와바타 시립 제2중학교 교무실에 전화가 걸려옵니다. 전화를 한 사람은 2학년 B반 나구라 유이치 엄마였어요. 나구라가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고 했어요. 전화를 받은 국어교사 이지마 히로시는 학교 안을 둘러보다가 콘크리트 도랑에 머리를 부딪쳐 죽은 나구라를 찾아냅니다. 나구라는 죽었습니다. 운동부 아이들은 운동부실 지붕에서 옆 은행나뭇가지로 건너뛰는 일을 즐겼습니다. 나구라는 테니스부였어요. 이지마는 나구라가 운동부실 지붕에서 나뭇가지로 건너뛰다 떨어져 죽은 걸까 했어요. 경찰이 오고 신문 기자도 알게 되고 텔레비전 뉴스에도 나구라 유이치 일이 나왔습니다. 처음에 경찰은 나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가 했어요. 어쩐지 경찰이 가장 처음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가 싶기도 하군요. 그런 게 처리하기에 편할지도 모르죠. 나구라 등에 꼬집힌 자국이 있는 것을 본 형사는 사고가 아닌 사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구라 유이치를 괴롭혔다고 생각되는 아이 넷(가네코 슈토, 후지타 가즈키, 사카이 에이스케, 이치카와 겐타)을 만납니다. 넷은 나구라와 같은 테니스부예요. 혹시 넷이 말을 맞출지도 몰라서 형사는 열네 살 이상과 열네 살 미만 아이들을 나누어서 잡아두었습니다. 같은 중학생인데 생일이 빠르고 늦고에 따라 나뉘다니. 다행이다 생각하는 부모, 억울하다 생각하는 부모가 있었어요.

 

학교에서는 집단 괴롭힘이 있었어요. 어쩌다 보니 네 아이가 드러났는데, 나구라를 괴롭힌 건 네 아이만이 아니었습니다. 반 아이들, 운동부, 테니스부……. 어떤 아이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나구라가 따돌림 당하는 일을 괴로워하면 그만둘지 모르는데 힘들어하지 않아서 괴롭히게 된다고. 아이들한테 따돌림 당하고 괴롭힘 당해서 기분 좋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나구라가 분위기를 잘 못 읽지만 괴롭힘 당해서 마음 안 좋았을 거예요. 덮어놓고 나구라가 안됐다고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나구라는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하게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힘있는 아이한테는 꼼짝 못하고 자기보다 힘없는 아이한테는 분풀이를 하는 듯했습니다. 그 안에서도 여자아이한테. 중학생 무섭습니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사이여서 그런 걸까요.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어중간한 때. 고등학생도 다르지 않지만 중학생보다 덜 어중간할지도. 남자아이만 있을 때는 또 다르겠지요.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 게 확실하게 보이고, 그 폭력 안에 있으면 괜찮은 아이도 그 분위기에 휩쓸릴 수 있더군요. 나구라가 괴롭힘 당하는 걸 봐도 내 일이 아니니까 그냥 보기만 하고, 도와주었지만 아무 말 안 해서 괜히 도와주었다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도와줄 때는 상대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게 가장 좋은데 말입니다. 아직 어려서 도움을 받은 상대가 ‘고맙다’고 말해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르죠. 어떤 아이는 좀 잘못 생각하고 있더군요.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자신이 모든 걸 뒤집어쓰면 된다고. 그 아이 괜찮기도 했지만 아주 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좀더 세게 말려야 하는데 겨우 한마디 하고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쩌면 이 책에 나온 사람들 현실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슬프고 씁쓸하군요. 세상에는 자신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해도 저는 남을 생각하고 안 좋은 일을 막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여기 나온 아이들 아직 중학생이니 나이를 먹으면 달라질지도 모르죠.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 잘 사귀고 공부 잘하기를 바라겠지요. 요즘은 아이가 중학교에 올라갈 때 걱정하는 부모가 많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 학교도 폭력에서 자유롭지 않으니까요.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집단 따돌림이 퍼지게 된 것인지. 아니, 이런 일은 오래전부터 있었을지도 모르죠. 다만 정도가 달랐을 뿐이겠지요. 요즘 아이들은 잔인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듯합니다. 이것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입시만을 생각하고 공부만 잘해라 해서일까요.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문제기도 하지만 부모가 학교에 아이를 맡겨두기만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지. 나구라 엄마는 그 지역 큰 포목점 며느리로 아들을 낳아야 했어요. 처음과 세번째 아이는 배 속에서 죽고, 두번째인 나구라만 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러니 엄마는 나구라가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소중하게 여기면 아이가 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기도 하죠. 엄마만이 아니고 할머니도 나구라를 옥이야 금이야 했습니다. 아이를 그렇게 키우는 것은 안 좋은 듯합니다. 그렇게 자라도 학교에 다니면서 아이들과 사귀면 세상을 알게 되는 아이도 있지만 나구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아쉬운 일입니다. 나구라가 좀더 다른 사람 마음을 아는 아이였다면 좋았을 텐데. 친구는 돈으로 사귈 수 있는 게 아닌데 나구라는 그것도 잘 몰랐습니다. 아이들이 나구라를 그런 아이구나 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고 따돌리고 괴롭혔군요.

 

누구 하나 잘못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누구 하나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 그래서 ‘침묵의 거리에서’군요. 정말 말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지 않고, 남이 알아도 상관없는 말을 하고 부모는 자기 아이만 생각하는군요. 책속에서 어떤 결론이 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생각하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 저는 희망을 갖고 싶습니다. 부질없는 바람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그래도 아이는 바뀔 수 있겠지요. 중학생이잖아요. 지금 말하지 않으면 평생 그 짐을 짊어져야 합니다. 그걸 깨달으면 좋을 텐데요.

 

 

 

희선

 

 

 

 

☆―

 

애초에 중학생이란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존재다. 이지마는 중학교 교사가 된 뒤로 날마다 그것을 실감했다. 어째선지 제 뜻과는 상관없는 일도 저지른다. 아이들이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건 고립이다. 장단을 못 맞춘다거나, 따분하다는 말을 들을까 상식에서 벗어나고 만다. 연못에 뜬 물풀처럼 뿌리 없이 불안정하다. 덤으로 집안 분위기에 쉽게 잠식되고 휩쓸린다.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기 가장 어려운 나이대인 까닭에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는 일이 많다.  (1권, 226쪽)

 

 

 

기분 나쁜 장면을 봤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왕따가 된다는 건 저런 일을 당하는 것이다. 둘레가 모두 재미난 일처럼 바라본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외로움 속에서 그저 견디는 수밖에 없다. 만일 자신이 저 처지에 놓인다면…….  (2권, 33쪽)

 

 

겐타는 딱히 하고 싶지 않았지만 거절하면 분위기를 깰 것 같아서 꼬집었다. 에이스케도 말없이 따라했다.  (2권, 235쪽)

 

 

아이들은 목숨의 존엄성도, 삶의 뜻도, 사람 마음도, 자기 마음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2권,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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