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철도의 비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 자고 있을 테니까 오사카에 데려다 줘.”  (440쪽)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때쯤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는 말레이시아 카메론 하일랜드에서 이포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돌아가야 했다. 아리스는 밤을 새우고 잠깐 자고 일어나서 저런 말을 했다. 왜 내가 처음에 저런 말을 썼느냐 하면, 나도 비슷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볼펜을 쥐고 있을 테니 이 책 이야기를 써줘’ 다. 그런데 이 말은 누구한테 하는 것이지. 손일까, 볼펜일까. 이런 마음은 늘 든다. 어떤 식으로 쓰이길 바랐던가. 볼펜을 쥐면 글이 술술 쓰이는 거였나. 요술만년필, 만년필은 없으니 요술볼펜이 있으면 좋겠다(요술키보드도 괜찮겠다). 이것을 꼭 써야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했다. 내 힘이 아닌 다른 힘이 써주면 ‘이건 내가 쓴 게 아니야’ 할 거면서. 그렇게 잘 쓰지 못해도 내가 쓰는 게 낫겠지.

 

앞에서 이름을 말했는데 이 책 《말레이 철도의 비밀》은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와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나오는 것 가운데 하나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작가 이름이기도 하다(소설 속 아리스도 작가구나. 진짜 작가보다 이름이 잘 알려진 건 아닌 듯하다). 이것은 ‘작가 아리스’ 시리즈고, 에이토 대학 추리소설연구회 부장 에가미 지로가 탐정으로 나오는 ‘학생 아리스’ 시리즈도 있다. 엘러리 퀸이 나라 이름을 제목에 넣어서 쓴 것처럼 아리스가와 아리스도 제목에 나라 이름을 썼다. 러시아, 스웨덴도 있다. 이 소설을 쓰기 전에 말레이시아에 취재를 갔다는데 러시아와 스웨덴에도 갔다 왔겠지. 이런 이야기는 책 날개와 작가가 쓴 글을 보면 다 알 수 있다. 이렇게 써두면 좀더 기억할 테니까. 작가 아리스가 나오는 이야기는 예전에 한번 본 적 있는데 어땠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히무라 히데오도 아리스와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 학생 아리스 시리즈에는 한번도 안 나왔을까(내가 본 책에는 나오지 않은 듯하다). 탐정은 한사람만 있으면 될지도 모르겠다.

 

책을 보면서 이것은 어디에 들어갈까 했다. 일본은 추리소설을 본격, 신본격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것은 본격에 가깝지 않을까 했는데 아리스가와 아리스도 본격이라 말했다. 갑자기 ‘이 본격이 뭐지’ 하는 생각이.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찾아가는 것, 수수께끼와 트릭을 푸는 것. 이런 것도 그렇게 많이 본 게 아니어서. 이야기를 듣고 풀었다기보다 범인을 짐작했다. 아니,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범인을 짐작할 수 있었던 건가. 이런 책은 범인을 맞히기보다 트릭을 푸는 게 재미있는 건지도. 한번 더 말하면 본격 추리소설은 어려운 수수께끼를 논리있게 풀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이야기나 마찬가지구나. 밀실이 나온다. 트레일러하우스 안 문과 창은 테이프로 막혔고 캐비닛 안에 시체가 있었다. 범인은 어떻게 밖으로 나갔을까. 밀실은 일부러 만들기도 하고 저절로 될 때도 있다. 밀실을 만드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로 꾸미기 위해서일 때가 많다. 히무라도 여기 경찰이 웡후(죽은 사람)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로 처리할까봐 걱정했다. 아리스는 엉뚱한 추리를 했다. 아리스가 예전에도 이랬던가 했다. 아리스가 하는 엉뚱한 추리가 히무라한테는 도움이 되는가보다. 추리소설가가 사건을 해결하려고 할 때도 있던데 아리스는 아니구나. 쓰는 것과 푸는 것은 조금 다를지도. 재미있는 게 하나 더 있다. 아리스는 영어를 다 못 알아듣기도 하는데 그런 부분은 ‘XXXX’로 썼다(이 책을 보는 우리도 아리스와 같은 거다. 그 말 몰라도 상관없기 때문이겠지).

 

아리스와 히무라는 쉬려고 말레이시아 카메론 하일랜드에 간다. 그곳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친구 타일론이 한번 오라고 해서다. 카메론 하일랜드에서는 오래전에 실크 왕 짐 톰슨이 사라진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쩐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히무라와 아리스는 우연히 차 바퀴를 갈려고 하는 일본 사람 모모에 준코를 보고 도와준다. 모모세 준코는 다음날 함께 차를 마시자고 한다. 그곳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이 다음날에는 집에 있다면서. 지금 이 말을 해야겠다. 탐정이 가는 곳에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리스와 히무라가 찾아간 모모세 준코 집에 있는 트레일러하우스 안에는 시체가 있었다(이걸 먼저 앞에서 말했구나). 트레일러하우스는 밀실이었다. 그 뒤에 사람이 더 죽는다. 아리스와 히무라가 카메론 하일랜드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남았다. 일본에 돌아가기 전에 사건을 해결하려고 한다. 친구 타일론이 의심을 받기도 해서. 이렇게 말하니 다음에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죽은 사람을 말할까. 트레일러하우스 안 캐비닛에 있던 사람은 웡후로 아리스와 히무라는 전날 이 사람을 만났다. 다음에 죽은 사람은 일본 사람으로 웡후와 싸운 사람이었다. 다음에 죽임 당한 사람은 아리스, 히무라와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은 영국 사람으로 작가다.

 

갑자기 일어난 일처럼 보이는데 그렇게 갑자기는 아니다. 한주 전 열차 사고가 일어났을 때 누군가 씨앗을 뿌렸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솔직해진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하고 잘못한 일을 말하고 용서받고 싶어한다. 열차 사고로 죽어가던 사람은 예전에 있었던 일을 누군가한테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자신이 그 일을 알아보지 않고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한테 말해서 그 사람이 행동하게 한다. 말만 하는 건 죄가 되지 않겠지. 자기 손이 아닌 다른 사람 손을 더럽히려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돈과 관계있을 때가 많다. 지난날에는 그랬고 지금은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남을 죽여서 재물을 얻으면 기쁠까. 처음에는 돈 문제가 해결돼서 한 고비 넘었구나 해도 죄책감은 마음속에 남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얻는 건 오히려 자신을 더 괴롭힐 텐데. 일이 잘 안 풀리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더 낫다고 본다. 내 일이 아니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이니까 이런 거지 해야겠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일지도. 내가 이 세상 사람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니까. 나쁜 쪽으로 넘어가는 사람보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다.

 

말레이시아는 마약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형이라고 한다. 어쩐지 무섭구나. 내가 말레이시아에 갈 일도 없고 마약 같은 걸 갖게 될 일도 없겠지만. 나는 반딧불이를 한번도 본 적 없다. 말레이시아 쿠알라 셀랑고르 강에서는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 강가 맹그로브 숲에서 반딧불이 몇십만 마리가 빛을 내는 모습 멋질 것 같다. 반딧불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겠구나. 말레이시아 철도니까 기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할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없다.

 

 

 

희선

 

 

 

 

☆―

 

악이란 무엇인지.

 

또는 모모세 토라오, 준코, 웡후, 오이 후미치카, 그들 저마다의 죄를.

 

또는 사건의 발단을.

 

인과를 따라가면 그 끝에는 열차건널목에서 고장 나 말레이 철도를 큰 사고로 이끈 트럭 한대가 있었다. 그 엔진이 변덕을 일으켜 멈추지 않았다면, 운전기사가 제대로 차를 정비했더라면…….

 

호랑이는 죽 잠들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4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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