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종기, 루시드폴(2009, 2014)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려 편지를 쓴다
‘보내기’만 누르면 되는데,
내게 다시 돌아올까봐
임시보관함으로
보내지 못한 편지가 쌓여간다
이 책이 나오고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마종기 시인과 루시드폴(조윤석)이 나눈 전자편지가 책으로 나왔다고 했을 때 조금 관심을 가졌는데 바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얼마전에 우연히 두번째가 나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그때 루시드폴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해요. 그냥 갑자기 한 거죠. 그런 일 가끔 일어나잖아요. 우연히 생각한 것을 만나는 일. 마종기 시인 이름은 알지만 시는 많이 못 보았습니다. 루시드폴은 2집이 나왔을 때 알았습니다. 루시드폴이 마종기 시인 이야기를 해서 시인한테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집 한권 샀는데 제대로 못보았네요. 루시드폴 알고 나서 ‘미선이’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새음반은 못 샀군요. CD 플레이어가 고장나서 CD 듣기 어려워서 그렇다는 핑계를 대고 싶습니다. 루시드폴이 스위스에서 하던 공부를 끝내고 우리나라에 와서 한 라디오 방송은 들었습니다. 그때 ebs에서 <세계음악기행>이라는 방송을 했어요. 우리나라 사람이 책 많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 읽어주는 라디오’로 바꾼 걸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음악방송이 하나도 없는 건 조금 아쉽습니다. ebs인데 음악방송 하기를 바라는 건 억지스러울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ebs를 들은 건 음악방송이 있어서였어요. 교육방송인데 음악방송이 다 있구나 했습니다. 그것은 밤 방송이었습니다. 루시드폴 라디오 방송은 안 해도 음악은 여전히 하고 있엇꾼요. 제가 관심을 덜 가져서 그것을 빨리 몰랐던 거네요. 생명공학 쪽은 어떻게 하고 있을지. 어쩌면 두번째 책에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전자편지(앞으로는 그냥 편지라고 할게요)라고 해도 오랫동안 주고받기 어렵습니다. 루시드폴이 마종기 시인한테 편지를 썼다 해도 마종기 시인이 답장을 쓰지 않았다면 주고받는 대화가 되지 않았겠지요. 마종기 시인을 시를 쓰고 루시드폴은 음악을 해서 서로 다른 것 같지만, 두 사람한테는 공통분모인 과학이 있었습니다. 과학이라 해도 분야는 다르지만(마종기 시인은 의사고, 루시드폴은 공학박사). 시와 음악은 아주 동떨어진 건 아니죠. 시는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하니까요. 예전에 친구와 루시드폴이 쓴 노랫말은 시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루시드폴은 시를 쓰고 싶다고 하더군요. 벌써 쓰고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어쩌면 시인이 인정해주는 시를 쓰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두 사람이 나누는 편지를 보니 저도 편지 쓰고 싶었습니다. 제가 쓰고 싶은 건 전자편지가 아니고 그냥 편지예요. 다른 사람이 쓴 편지를 보니, 내 생활은 정말 단순하구나 했습니다. 무엇인가 다른 일이 있어야 그런 일을 말할 텐데, 날마다 거의 비슷한 날이어서 비슷한 말을 합니다. 한사람(마종기 시인)은 미국 플로리다에서 한사람(루시드폴)은 스위스 로잔에서 할 일을 하면서 어디론가 떠나기도 하더군요. 갔다 와서는 그곳 이야기를 하고, 책과 CD 를 서로 보내주기도 했어요.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그냥 친구처럼 보였습니다. 나이 차이를 아버지와 아들에 가깝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종기 시인 아들과 루시드폴 아버지는 두 사람 사이를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종기시인 아들은 좀 달랐을지도 모르겠군요. 한글이어서 읽지 못할지도 모르니까요. 부러움을 느끼지 않게 마종기 시인은 아들과 루시드폴은 아버지와 잘 지냈을 것 같네요.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서 사는 일은 쉽지 않겠지요. 조금 다른 형편이지만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있다는 게 서로 마음을 열게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두 사람은 편지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전에 한번 들었을 텐데 잊어버린 것이 생각났습니다. 마종기 시인 아버지가 동화작가 마해송이라는 거예요. 마종기 시인과 마찬가지로 이름은 알지만 만나 본 동화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조금 신기해서. 동화가 시와 닿아있다는 거 아세요. 시·소설 이런 갈래가 있지만 모두 글이라는 것은 같군요. 어떤 게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러 사람이 시를 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제가 시를 많이 보고 잘 아는 게 아니어서, 여러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말하기 어렵네요. 루시드폴은 마종기 시인 시를 여러번 보았다고 하더군요. 좋아하는 시, 시인이 있는 것도 좋은 거예요. 저요, 저는 아주 많이 좋아하는 시인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쉬워요. 이 말은 전에도 했군요(아주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우연히 괜찮은 시를 보면 그 시인은 어떤 시를 쓸까 조금 알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 한편은 좋아도 시집 안에 있는 시가 다 좋지는 않더군요. 음악은 CD 한장에 들어있는 게 다 좋기도 합니다. 제가 시집 한권을 제대로 못 봐서 그런 거겠지요. 편지보다 시 이야기를 했군요.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저도 아직 시를 좋아합니다. 생각만 하지 않고 앞으로는 시를 봐야겠습니다. 예전에 사둔 마종기 시인 시집을 먼저 만날까봐요.
마종기 시인은 과학을 하는 사람도 문학을 알면 좋다고 했습니다. 꼭 문학만 말한 건 아닙니다. 철학, 음악, 미술……. 마종기 시인은 우리나라 대학에서 ‘문학과 의학’ 강의를 했습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이 과학에만 관심을 갖는 건 아니겠지요. 마종기 시인처럼 의사면서 시를 쓰는 사람도 있고, 소설을 쓰는 의사도 있습니다. 두 가지를 하는 사람 부럽군요. 저는 하나도 못하는데……. 책을 보면서 아무것도 못하는 저를 생각했습니다. 루시드폴은 공학뿐 아니라 여러 나라 말도 하더군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니 그쪽 말을 알아야 했겠지만. 루시드폴 소설도 쓰고 다른 나라 소설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두권 다 아직 못 봤지만. 하나를 잘하는 사람은 여러가지를 다 잘하기도 하더군요. 이런 것도 그런가 보다 해야죠.
나이 차이가 나도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 좋다고 봅니다. 얼마전에 라디오 방송에 나온 의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세대 사이에 소통이 없는 게 문제다고(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곳이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서로 상대 말을 귀 기울여 듣기보다 자기 말을 더 하려고 하니까요. 어른은 아이 말을 아이는 어른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 어떨까 싶네요. 말로 하기 어려우면 이렇게 편지로 하는 것도 좋겠지요.
임시보관함에 쌓인 편지를 하나씩 지운다
끝내 너에게 건네지 못한 마음
*더하는 말
조금 쓸데없는 말인데 짧은 글은 제 이야기 아닙니다. 글은 자신이 아닌 남이 되어보는 것이기도 하죠. 이 말을 듣고 저도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서 글을 써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 말 나중에 들었습니다. 제가 말을 조금 바꾸었네요. 글을 쓸 때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써보는 것도 좋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저는 편지 쓰면 쌓아두지 않고 다 보냅니다. 저하고는 다르게 쓰고 차마 보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얼마전에 본 책에도 그런 사람이 나왔습니다. 제가 본 이 책은 개정판이 아니고 예전에 나온 겁니다. ebs 라디오 음악방송이 없어서 아쉽다고 했는데 얼마전에 개편을 했습니다. (음악과 책을 함께 들려주겠다고 하더군요. 조금 들어봤는데 다른 라디오 방송과 비슷해졌습니다. 몇번 듣지도 않고 이런 생각을 했네요). 전에 하던 방송이 거의 없어지고 아주 달라졌습니다. ebs는 많은 게 한번에 바뀌더군요. 날마다 들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 없어지니 아쉬웠습니다. 좋아하는 걸 만들지 않아서 다행이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어쩌면 이런 생각은 좋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헤어질 텐데 사람(친구)을 왜 사귀나 할 수 있으니까요(친구와 사이가 나빠지거나 어쩌다 연락이 끊기기도 하잖아요). 그런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람하고 라디오 방송은 좀 다르기도 하죠.
희선
☆―
서둘러 윤석 군의 《국경의 밤》 앨범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첫 결과는 ‘어리둥절함’이었습니다. 내가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아니면 이게 세대 차이라는 것일까.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 ‘아주 좋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던 생각이 나서 다시 듣기 시작했지요. 그러면서 아, 이 노래들은 혹 대화를 나누려는 외로운 영혼의 숨소리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흐처럼 나를 맑게 정돈시키는 힘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베토벤처럼 나를 압도하고 소름 끼치게 진리를 설파하는 것도 아니고, 모차르트처럼 천상의 황홀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만, 바로 이 음악이 외롭고 고달픈 또래 영혼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같은 세대가 느끼는 동류의 슬픔을 같이 흐느끼면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서로가 동료 의식으로 힘이 되는 그런 부드러움. 부드러움이 결국 힘이 되고 열기가 되어 불꽃으로 피어날 수도 있는 그런 노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84쪽)
청솔 그늘에 앉아
이제하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보랏빛 노을을 가슴에
안았다고 해도 좋아
혹은 하얀 햇빛 깔린
어느 도서관 뒤뜰이라 해도 좋아
당신의 깨끗한 손을 잡고
아늑한 얘기가 하고 싶어
아니 그냥
당신의 그 맑은 눈을 들여다보며
마구 눈물을 글썽이고 싶어
아아 밀물처럼
온몸을 스며 흐르는
피곤하고 피곤한 그리움이여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친구의 편지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