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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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세상에 와서 사람을 얼마나 만날까요. 가까이에서 만나는 게 아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인연이 닿는 데도 아주 긴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옷깃이 아닌 가까이에서 만나고 서로 이름을 알고 말과 마음을 나누는 것은 얼마나 많은 어긋남 뒤에 일어난 일일지 헤아릴 수 없겠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고 누군가를 만난 일을 기쁘게 여기고 살지는 않습니다. 아니, 아주 가끔 할지도. 언젠가 추사 김정희와 제자 이상적 이야기를 짧게 본 적 있습니다. 이상적은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중국에서 어렵게 구한 책을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김정희는 그런 이상적한테 감격하여 늘 같은 마음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빗대로 세한도를 그렸습니다. 짧지만 이 이야기만으로도 옛날에는 이런 만남도 있었구나 했습니다. 좀더 긴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책도 있을 듯하네요.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이 귀양살이 한 이야기가 함께 나와서 두 사람이 비슷한 때 귀양살이를 했나 했습니다. 추사 김정희는 다산 정약용한테 아들 뻘이더군요. 이것을 깨닫고 기분이 좀 이상했습니다. 다산 정약용 이름만 알고 다른 것은 잘 모릅니다. ‘목민심서’는 생각나는군요. 한번은 다산 정약용이 어느 마을에서 사람을 죽인 사람을 알아낸 것을 보았습니다. 정약용이 탐정처럼 나오는 소설도 있는 걸로 압니다. 이런 일은 좀더 젊을 때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마흔이 넘어도 나이가 많다고 하지 않지만 19세기에는 마흔을 아주 많다고 여겼지요. 다산 정약용이 귀양살이를 간 건 1801년 11월로 나이는 마흔이군요.

 

강진이 어딘지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동쪽인가 했어요. 백제 남쪽이었다는 말을 보고 전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전에 다산초당 가까이에 가기도 했는데 그것을 잊어버렸습니다(다산초당까지 갔는지 어땠는지 생각 안 납니다). 월출산은 차 안에서 보았던 것 같아요.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서 열여덟해 동안 귀양살이를 했습니다. 처음에 있던 곳은 주막집입니다. 한해가 지나고 정약용은 주막집 봇농방에 작은 서당을 열어 아전 자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정약용은 열다섯살 황상을 만났습니다. 황상은 정약용한테 자기처럼 둔하고, 꽉 막히고 답답한 사람도 공부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정약용은 황상한테 너라면 할 수 있다. 꾸준히 부지런히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누군가는 단점으로 본 것을 정약용은 장점으로 보았습니다. 빨리 잘 알고 글을 잘 지으면 들뜨니, 자기 재능을 믿고 애쓰지 않으면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황상은 스승의 가르침을 늘 지켰습니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고 한 말입니다. 이 말 보고 나도 그래야 할 텐데 했습니다. 다른 것보다 책읽고 쓰기에서.정약용은 제자뿐 아니라 자식들한테도 늘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어딘가에서 들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아버지 말 잘 안 들을지도 모를 텐데 정약용 아들 둘은 아버지 말을 잘 지켰습니다. 집안이 어려워서 공부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다산 정약용은 깐깐한 스승이어서 제자들이 견디기 힘들었답니다. 힘들어도 스승 말이 옳으니 잘 따르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서 황상이 가장 잘 따랐겠지요. 정약용은 황상한테 크고 작은 일을 의지하기도 했습니다. 황상이 학질에 걸렸을 때는 위로하는 시를 써주었습니다. 언젠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혁명이라고 한 말을 보았는데, 다산 정약용이 그렇더군요. 책을 보고 여러 글을 썼으니까요. 정약용은 아이들이 공부하는 《천자문》 《사략》 《통감절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교과서를 새로 만들었습니다(천자문을 대신하는 것). 이런 것은 많이 알아야 잘못된 것을 알고 고칠 수 있겠지요. 다산이 쓴 책이 아이들 공부에 널리 쓰였는지 그것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산이 가르친 제자만 그 책으로 공부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다산은 제자가 어떤 분야를 잘하는지 알아보고 거기에 힘을 쏟게 했습니다. 정약용은 황상을 시인으로 기르고 싶어했어요. 황상한테 과거시험을 보라고 권했지만 황상은 벼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때 과거시험은 시도 잘 써야 했나봐요. 학문은 깊지만 시를 잘 쓰지 못하는 정약용 제자 이청은 과거시험에서 늘 떨어졌습니다. 이청은 다산 정약용을 따르다 자신한테 도움이 되지 않자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정약용이 귀양살이를 끝냈을 때 처음에는 제자들이 정약용을 따랐지만 시간이 갈수록 멀어졌습니다. 벼슬길에 나가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때는 한사람 벼슬길이 막히면 식구뿐 아니라 제자들까지 벼슬하기 어려웠나봅니다. 지금과는 다르게 옛날(조선시대)에는 과거시험에 붙어서 벼슬을 해야 사는 것 같았겠지요. 지금은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을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즐겁겠지요. 백련사 주지 혜장은 다산 정약용을 무척 만나고 싶어하고 만나고는 아주 기뻐했습니다. 정약용이 더 기뻤을지도 모르겠군요. 제자들 실력이 좋아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즐겁겠지만,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친구를 만나는 것도 즐겁잖아요. 아쉽게도 혜장은 술을 많이 마셔서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혜장 때문에 다산 정약용한테는 승려 제자도 있었습니다(김정희 친구기도 하죠). 황상이 혼인하고 공부를 게을리 할 때는 정약용이 황상한테 편지를 써서 혼냈습니다. 정약용은 자애로웠지만 삐치기도 잘했다고 하네요. 이 말을 보니 재미있었습니다. 스승이 삐치면 제자는 그 마음을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아들 정학연이 먼 길을 찾아왔을 때는 다음날부터 함께 공부했습니다. 정약용은 공부는 밥 먹듯이 숨 쉬듯이 버릇처럼 해야 한다고 했어요. 정학연과 황상이 만나고, 혜장과 정약용 네 사람은 돌아가면서 시를 짓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 좋아 보이더군요. 예전에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 본 적 있습니다. 시를 짓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바로 시를 지을까 했습니다. 공부를 하다보면 그렇게 되는 것인지. 시를 보니 저도 잘 못 써도 시처럼 쓸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요. 글씨도 좀더 잘 쓰고 싶습니다. 편지 쓸 때는 잘 알아보게 천천히 쓰지만 연습장에는 흘려쓰거든요. 글씨체 바꾸고 싶기도 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김정희는 제주에서 추사체를 완성했다고 하죠. 저는 글씨보다 글쓰기에 더 마음을 두고 있군요. 엉뚱한 말로 흘렀습니다.

 

조선시대 때는 편지가 오고가는 데 꽤 오랜이 시간이 걸렸습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걸어서 가야 하니까요(말을 타고 간 사람도 있었겠네요).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일을 애틋하게 여긴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 할 테니까요. 정약용이 귀양살이를 끝내고 강진에서 서울에 가고 황상과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황상은 아전 자리를 동생한테 맡기고 식구들과 돌밭을 일궈 농사를 지었습니다. 정약용은 황상과 연락이 되지 않아 아쉬워했습니다. 황상과 정약용은 열여덟해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황상이 강진에 돌아가는 길에 정약용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황상은 정약용 집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책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는 것도 슬프군요. 황상이 정약용과 만나는 일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겠지만 그렇게 바로 그 일이 일어나서 슬펐겠습니다. 시간이 또 많이 흘러서 황상은 정약용 아들 정학연, 정학유, 김정희 형제와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황상과 정학연이 만난 것은 서른해 전인데 다시 만났을 때 어색하지 않다니. 그런 만남 부럽더군요. 편지를 주고받는 모습도. 황상이 서울에 몇번 올라와서 정학연, 김정희 형제와 만났습니다. 그렇게 먼 길을 다닌 걸 보면 다른 사람보다 황상이 건강했나봅니다. 한사람 한사람 세상을 떠나갈 때 마음이 아프더군요. 저도 이런데 그때 황상은 어땠을까요. 황상한테는 땅 때문에 안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공부하고 시를 썼습니다. 황상한테 일어난 일을 알고 정학연이 더 화를 냈습니다. 정학연은 황상한테 도움을 주지 못해서 애태웠겠네요. 어쩌면 황상은 자기 대신 화내주는 친구가 있어서 흔들리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만남이 좋지는 않습니다. 어떤 만남이든 소중하게 여긴다면 좋은 만남이 되지 않을까요.

 

 

 

희선

 

 

 

 

☆―

 

처음에는 누구나 공부가 익지 않아 힘들고 버벅거리고, 들쭉날쭉하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꾸준히 연마하면 나중에는 튀어나와 울퉁불퉁하던 것이 반질반질 반반해져서 마침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구멍은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막힌 것을 틔우는 것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연마하는 것을 어찌해야 하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어찌해야 부지런히 할 수 있겠니?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으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어기지 않고 할 수 있겠지?  (35~36쪽)

 

-정약용이 황상을 처음 만났을 때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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