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윌리엄 터너 엽서집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지음 / 유어마인드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잘 모르는 작가지만 이 사람 그림으로 엽서집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는 사람은 벌써 알고 있었나봅니다. 저는 빛의 화가 하면 클림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작가 소개를 보면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도 빛의 화가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름도 기네요(클림트도 앞에 다른 게 있군요). 클림트하고는 또 다른 빛을 그림에 나타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클림트도 그렇게 잘 아는 건 아니예요. 지난번에는 색을 칠해야 하는 엽서였는데, 이번에는 화가 그림으로 만든 엽서예요(색칠하는 엽서 더 나오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진짜 나왔더군요. 이건 우연히 알았습니다). 제가 엽서를 좋아하는 것 같네요. 할 말이 그렇게 많이 떠오르지 않을 때 쓰기에 엽서가 좋습니다. 편지도 그렇게 길게 쓰지 않지만. 거의 편지지 두장뿐이에요. 이것은 편지지가 그런 식으로 들어 있어서 그렇게 쓰는 거군요. 그것보다 그 이상 말을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알았던 친구는 아주 긴 편지를 쓴 적도 있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한번도 아주 긴 편지를 써 본 적 없습니다. 앞으로도 아주 긴 편지 못 쓸 듯합니다. 여러 날에 걸쳐서 쓰면 좀 길게 쓸지도 모르겠네요. 편지를 쓰면 바로 보내고 싶어서 그건 어렵겠습니다. 저는 거의 편지를 쓴 다음날 보내고, 아주 가끔 그날 써서 보내기도 해요. 편지를 거둬가는 시간 안에 쓰면 말이죠.
몇 해 전에 저한테 괜찮은 엽서가 좀 있었는데, 여름에 비가 엄청나게 와서 집안까지 물이 들어오는 바람에 그 엽서는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끼다 못 썼다고 해야겠네요. 그렇게 된 게 엽서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편지지에 책에 공책에……. 아직도 그때 일어난 일 때문에 여름이 오면 비 많이 올까봐 걱정한답니다. 저도 이런 제가 좀 싫어요. 언제쯤 그 걱정을 안 하고 살까요. 일층이 아닌 데서 살면 그만할지도 모를 텐데요. 어떤 일이든 자신만 피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쁜 일일지라도 편하게 받아들여야겠습니다. 이 엽서집이 나온 곳을 보면 어떤 그림이 있는지 볼 수 있어요. 작가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이렇게 작가 이름을 알게 된 것만 해도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엽서집에서 그림을 떼어서 액자에 넣고 벽에 걸어도 좋을 듯합니다. 그림이 작아서 가까이에 두고 봐야 하지만. 가까운 곳에 그림을 두고 보는 것도 마음에 도움이 되겠지요. 그런 거 저도 해 본 적 없는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군가한테 짧은 말을 써서 보내도 좋을 테지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편지는 없어질까요. 그때까지 제가 살아있을지 모르겠지만, 편지는 없어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러기를 바란다고 해서 없어질 게 없어지지 않을 리 없겠지만. 아직 편지가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저한테 편지는 말하는 것과 같아요. 목소리를 내서 하는 말보다 글로 하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도 가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지만, 그게 편지여도 괜찮아요. 편지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시간을 들여서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이 말은 답장을 늦게 써도 괜찮다는 게 아니고(가끔 늦게 쓸 때도 있군요), 말은 다른 사람이 저한테 하면 거기에 바로 대답해야 하지만 편지는 말처럼 바로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거예요. 편지는 가는 데 사나흘, 오는 데 사나흘 걸립니다. 제가 말하는 시간은 바로 이때예요. 다 아는 것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쩐지 편지를 쓰자 같은 말을 한 듯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저는 지난 이월에 편지 많이 못 썼습니다. ‘이 책 다 보면 써야지’ 하면서 미뤘거든요. 어쩌면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지도 재미있게 쓰고 싶은데 재미있는 일이 없어서. 자꾸 쓰다보면 한 말 또 하고 또 합니다. 그럴 때 짧게 엽서를 쓰면 되겠군요. 앞에서도 이런 말을 했네요.
지난달이 가기 전에 편지 두 통 썼습니다. 이월이 오고 얼마 안 됐을 때 받았는데, 답장은 이월이 다 갈 때쯤 썼네요. 본래는 며칠 더 늦게 쓰려고 했는데 어쩐지 그러면 안 될 듯해서 한통 쓰고, 다음날 다른 편지를 보고(받은 날 안 보고 편지 쓴 날 봤습니다. 그 편지를 보면 바로 쓰고 싶어질 것 같아서 그랬는데 실제 그랬습니다. 편지 받으면 거의 바로 쓰는데 그 두 통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날 썼습니다. 주말이 끼어 있어서 삼월에 보냈어요. 바로 쓰는 것도 괜찮지만 그렇게 시간을 두고 쓰는 것도 괜찮은 듯합니다. 이월에는 시간을 좀 많이 두었지만. 삼월에는 즐겁게 써야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또 ‘이 책만 다 읽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언젠가도 예전에 편지를 많이 쓰고 지금도 쓴다는 말을 했는데, 이번에도 이런 말을 했네요. 이것도 쓴 이야기 또 쓰는 거군요. 사실은 지난해 십이월에도 그런 말 썼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가장 많이 쓴 건 편지였다고. 뭔가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편지를 쓰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냥 쓰죠. 편지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다, 하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재미없지요. 그런 일이 없다는 게 조금 아쉽습니다. 별걸 다 아쉬워하는군요. 별일 없어도 앞으로도 편지 쓸 거예요. 편지 쓰는 게 특별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쓰는 제가 더 즐겁습니다. 다른 것도 즐겁게 쓰면 좋을 텐데요.
날아서
오늘 전 여행을 떠나요. 희진이가 친구 영주한테 저를 보내려 하거든요.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것처럼 저도 여행을 좋아해요. 비록 평생에 한번뿐이지만 멋진 여행이 될 거예요.
하지만 그곳에 가면 향수병에 걸릴지도 모르겠어요.
아침에 희진이는 영주한테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을 제 몸 위에 썼어요. 영주는 단짝이었는데, 얼마전에 다른 곳으로 가서 섭섭했나봐요. 그래도 보고 싶다고 쓰더군요.
제 옷에 주소 쓰는 걸 보고 전 놀랐어요. 서울도, 부산도, 대구도 아닌 미국이었거든요.
희진이는 할말을 다 쓰고 기분 좋게 벌어진 제 옷을 풀로 붙였어요.
떠날 시간이 오니 아쉬워요. 그래도 희진이 마음을 갖고 가는 거니까 그렇게 슬프지 않아요.
‘음, 이 편지가 정말 갈까?’
희진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저를 들고 우체국에 갔어요.
제가 미국에 가려면 우푯값이 더 드는가봐요.
희진이는 우체국에 들어가자 저를 우체국에서 일하는 사람한테 내밀었어요. 그 사람은 저를 저울 위에 올렸어요. 그때 희진이가 그 사람한테 말을 했어요.
“여기에 붙일 그냥 우표로 주세요.”
그 말을 듣지 못했는지 그 사람은 우푯값만 말하고 저를 자기 앞으로 가지고 갔어요.
희진이가 가만히 서 있자, 그 사람은 자신이 우표를 붙이겠다고 했어요.
희진이는 아쉬운 듯 저를 한번 바라보고는 우체국에서 나갔어요. 그 사람은 제 옷에 기계에서 나온 우표를 붙여줬어요. 그러고는 외국으로 가는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저를 갖다뒀어요.
다들 외국으로 가는 것이 슬픈지 울먹이는 모습으로 있었어요. 전 씩씩하게 울지 않았어요. 그러고는 잠에 빠져 들었죠.
얼마나 잤을까 깨어보니 둘레가 어두웠어요. 무슨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작게 들리는 것도 같았어요.
“여기는 어디지?”
“여긴 비행기 안이야.”
옆에 있던 커다란 상자가 말했어요.
“비행기가 뭐죠?”
“하늘을 나는 기계야. 사람도 이 기계를 타고 하늘을 날지.”
“우리는 지금 하늘 위에 있는 거군요.”
“맞아.”
“상자 님도 처음 비행기를 탔을 텐데 잘 아시는군요.”
“그런 건 그냥 알게 돼 있어.”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도 비행기는 한참 날아갔어요.
비행기가 멈추자 사람들은 우리들을 다시 차로 옮겼어요. 피곤이 몰려와서 저는 잠이 들었어요.
제가 깨어났을 때는 캄캄한 곳에 혼자 있었어요. 갑자기 밖이 밝아지더니 어떤 손이 저를 꺼냈어요.
저를 받아야 하는 영주였나봐요. 영주는 저를 보고 활짝 웃었어요. 힘든 여행이었지만 영주가 웃는 걸 보니 제 마음도 기뻤어요.
이제 저는 희진이 마음을 담은 채 영원히 이곳에 있어야 해요.
전 깊은 잠에 빠져들 거예요. 언젠가 또 다른 제가 영주한테 찾아올지도 모르죠.
*더하는 말
편지는 가면서 잠만 자더니, 그곳에 가서도 잠이 드는군요. 편지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네요. 이건 예전에 쓴 건데, 조금 고쳤습니다. 좀 더 고쳤으면 좋았겠지만, 더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자주 쓰는 게 편지여서 편지와 관계있는 걸 쓰기도 했네요. 지금은 떠오르는 게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별로 생각도 안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조금 생각했을 때는 떠오를 것 같으면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