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귀를 너에게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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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귀가 들리고 말을 할 수 있지만 말로 하기보다 쓰는 걸 좋아한다. 말도 다른 사람한테 그대로 전해지지 않지만 글도 마찬가지다. 글을 천천히 보면 잘못 보는 일은 적겠지만 빠른 시대니 천천히 보기 어려울지도. 나도 다른 사람 글을 천천히 봐도 잘못 보기도 한다. 그건 왤까. 다른 생각해설지도. 말을 잘못 알아들을 때도 있다. 발음이 비슷한 건. 무슨 말이든 정확하게 하고 정확하게 알아듣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잘못 보거나 다른 사람이 잘못 봐도 그런가 보다 생각하는 게 낫겠다. 아주 다른 뜻으로 받아들일 때는 더 이야기를 하면 괜찮겠지. 이 말 언젠가도 했던가. 내가 말을 무척 안 해서 말을 못하는 사람이냐는 말 들은 적 있다고. 그런 일 많지는 않았지만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나도 내 말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만 아는 말이면 안 되겠다. 그걸 아는 사람이 있고 함께 이야기도 하면 좋겠지.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내가 말을 잘 못하는 건 할 말이 없어서다. 말로 하기보다 써서 정리하는 게 버릇이 됐다. 그래도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말 안 해도 괜찮다. 그렇다고 세상과 아주 끊긴 건 아니다. 책과 글은 나와 세상을 이어준다.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지만. 책에서 알 수 있는 것도 그리 많지 않다. 이건 내가 여러 가지를 안 봐서 그럴지도. 그래도 장애인이 나오는 이야기는 별로 없다. 세상에는 장애인도 사는데. 몸만 괜찮다고 멀쩡한 사람일까. 이 책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들을 수 있는 사람 아라이 나오토다. 첫번째 책 《데프 보이스》에서는 코다인 아라이가 청각장애인 사회에서 벗어나려고 한 모습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아라이는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일로 청각자애인 수화 통역을 하게 된다. 수화에도 종류가 있다. 일본수화와 일본어대응수화. 일본수화를 쓰는 사람이 더 많은 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생각하면 될까. 일본수화는 청각장애인이 편하게 쓰는 거고 일본어대응수화는 귀가 들리는 사람이 배우는 거다고.

 

 이번 이야기 앞부분에서도 아라이는 일본수화로 통역했다. 청각장애인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것보다 아라이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들었다. 아라이가 어렸을 때는 청각장애인 부모와 청각장애인 형 사이에서 쓸쓸했겠지만, 그 시절이 있어서 청각장애인 처지를 잘 알았다. 이런 부분은 괜찮지 않나 싶기도 하다. 청각장애인을 알아도 아라이는 아이를 갖고 싶어하지 않았다. 듣지 못하는 아이일까봐. 아라이는 딸이 있는 미유키와 함께 살게 됐다. 전에는 사귀기만 했는데,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미유키 딸 미와한테 조금 아빠 같기도 했다. 미와는 아라이한테 수화를 배우고 아라이와 수화로 말하는 걸 좋아했다. 미와는 아라이한테 학교에 오지 않는 반 친구 우루시바라 에이치한테도 수화를 가르쳐주면 어떻겠느냐고 한다. 에이치는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로 언제부턴가 말을 하지 않게 됐다. 평소에도 말을 자주 하지 않았지만 어떤 충격을 받고 집에서도 안 했다. 그저 그런 정도인가 했는데, 에이치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였다. 그거 보다가 나도 비슷한데 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소리에 조금 민감하고 누가 내 몸에 손 대는 거 싫어한다. 에이치만큼 심하지는 않던가. 장애라고 할 만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비장애인라 해도 가벼운 장애는 있는 것 같다. 나를 생각하니.

 

 에이치한테 장애가 있고 사람과 말하는 게 어려워도 아이를 생각하고 부드럽게 말하면 괜찮다. 에이치 담임선생님은 아이 마음을 잘 생각하지 않았다. 미와도 선생님이 무서워서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아라이가 에이치한테 수화를 가르치자 에이치는 빨리 익히고 수화로 말하게 된다. 아라이가 에이치한테 수화를 가르치기 전에 에이치 집과 가까운 곳에서 사람이 죽었다. 죽임 당했다. 에이치는 그 일이 일어난 걸 본 것 같은 말을 한다. 에이치가 엄마한테도 말하지 않게 된 건 그걸 봐설지도. 경찰은 에이치가 어린이고 발달장애가 있어서 그런 말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라이가 에이치가 자기 말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에이치한테 말을 듣기로 한다. 어린이가 한 말이라고 모르는 척하기보다 잘 들어보면 좋겠다. 어려서 말을 잘 못해도 자신이 본 걸 그대로 말할 테니. 가끔 어른보다 거짓말을 잘 하는 아이도 있지만. 그런 아이 본 적은 없다. 소설에서 봤던가.

 

 한국도 다르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일본에는 청각장애인한테 수화가 아닌 말을 가르치는 곳도 있다. 그건 청각장애인 처지가 아닌 들리는 사람 처지에서 생각한 건 아닐까. 어떤 부모는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장애가 없는 아이기를 바라기도 한다. 거의 듣지 못하고 말하는 것을 배운 사람한테 경찰은 들리는 게 아니냐는 말을 했다. 그건 들리는 게 아니고 입모양으로 알아본 거였다. 수화가 안 좋은 건 아닐 텐데. 자신이 듣지 못하는 건 말이 아니다. 의사면서 교육에 마음 쓰는 어떤 사람은 부모가 아이한테 사랑을 주지 않아서 발달장애가 일어난다고 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부모 사랑이 아이 발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부모가 아이를 사랑한다는 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부모 마음에 드는 아이기를 바라지 않고.

 

 귀가 들리는 사람한테 수화는 다른 나라 말과 같다. 수화를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말도 있구나 할 것 같다. 소리 내서 하는 것만이 말은 아니다. 세상은 얼마 안 되는 사람이 살아가기에 힘든 일이 많다. 난 비장애인이지만 많은 사람 쪽보다 얼마 없는 사람 쪽이다(이건 누구나 느끼는 건지도). 집에서는 괜찮아도 밖에 나가면 그걸 많이 느낀다. 얼마 없는 사람도 생각하는 세상이 되면 좋을 텐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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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바이 소리가 가까이 왔다. 그건 바로 집배원이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다. 오래전에는 집배원이 걸어서 우편물을 배달하고 다음에는 자전거를 타다가 지금은 오토바이를 탄다. 집배원은 또 내 앞을 그냥 지나쳤다. 그런 집배원을 보면 우울하다. 왜 내 안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을까. 다른 집 우편함에는 가끔 무언가를 넣는다. 하지만 그게 편지일 때는 아주 가끔이다. 듣자 하니 요즘 사람은 편지를 별로 쓰지 않는단다. 집배원이 다른 집 우편함에 넣는 건 거의 광고 편지다. 그래도 그거라도 잠시 만나는 우편함이 부럽다.

 

 우편함인 난 늘 그자리에 있다. 어딘가에 갈 수 없다. 이런 게 나만은 아니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사는 게 많다. 난 그 가운데서 하나일 뿐이다. 맞다, 사람이 누군가한테 편지를 보낼 때는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다. 우체통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누군가 편지를 넣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예전에 내 안에 잠시 머물다 간 편지한테 들었다.

 

 기다리면 언젠가 송희한테 온 편지를 만날 수 있겠지. 송희는 내 주인이다. 송희는 편지보다 택배를 더 자주 받았다. 택배랑 이야기 해 본 적은 없지만, 택배기사가 든 상자를 보면 난 그게 송희한테 온 건지 아닌지 바로 알았다. 그 안에 든 건 책일 때가 많았다. 책은 송희가 사기도 하고 다른 곳에 사는 친구나 다른 곳에서 보내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며칠 전부터 송희는 나를 살펴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게 보여도 송희는 내 안에 손을 넣었다. 손에 잡히는 게 없자 송희는 조금 아쉬운 얼굴을 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걸까. 어쩌면 친구가 송희한테 편지를 보낸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며칠이 흘러도 집배원은 내 앞을 그냥 지나갔다. 다시 집배원이 탄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는 집배원이 오토바이를 멈추고 내 안에 편지를 넣었다. 드디어 편지가 왔다. 이 편지를 보면 송희도 기뻐하겠지. 송희는 언제쯤 집에 올까.

 

 “송희야, 빨리 집에 와.”

 

 

 

*더하는 말

 

 이 이야기를 쓰고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타이핑은 며칠 전에 했는데 슬프더군요. 이젠 송희의 우편함이 없다는 걸 생각하니.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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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7 0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마다 같은 일을 되풀이해서

그날이 그날이에요

 

큰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도 무척 소중합니다

 

늘 똑같이 보인다 해도

잘 보면

아주아주 조금

어제와 다른 오늘일 거예요

 

같은 나날일지라도

아주 적은 차이를 찾으면

흑백으로 보이던 세상이

색깔을 띨 거예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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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 2019-12-25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잔잔한 글 감사드려요. 메리 크리스마스 ~~^^

희선 2019-12-25 23:46   좋아요 0 | URL
아직도 모자라지만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성탄절도 몇 분 남지 않았네요


희선
 
소설 보다 : 봄 2019 소설 보다
김수온.백수린.장희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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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달 전에 소설 네편이 담긴 ‘소설 보다 겨울 2018’로 이 책을 처음 만났는데 이번에 ‘봄 2019’를 만나게 됐어. 그전 것은 못 봐서 몰랐는데 2019년 봄에 ‘소설 보다’가 조금 바뀌었다더군. 이건 한국 단편소설을 더 읽게 하려고 애쓴 거겠지. 이 책은 철마다 나오는 ‘소설 보다’라 하면 될까. 언젠가 ‘90년대생이 온다’는 말을 봤는데 여기 실린 소설 두편은 9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 썼더군. 세편에서 두편이면 많은 거지. 다음 여름 가을 겨울 것을 보고 이런 말해야 했을지도 모르겠어. 앞으로 나올 것도 볼 수 있을까. 소설가가 소설을 쓸 테니 나올 것 같아. 내가 그걸 볼지 안 볼지 알 수 없어. 볼 수 있으면 보고 못 보면 할 수 없지. 꼭 봐야지 하는 마음이 없어 보이는군. 그저 앞날을 알 수 없다 말해둘게.

 

 ‘봄 2019’지만 봄 이야기는 없어. 그저 봄에 발표한 소설이라 해야겠군. 내가 생각하는 소설은 재미있고 감동스런 이야긴데 소설이라고 다 뚜렷한 이야기가 있는 건 아니기도 하더군.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지 않고 뒤로 가기도 하지. 지난 날을 말하는 소설이 많기는 해. 그 시간을 살 때는 그걸 잘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어떤 일이 일어나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겠지. 생각해도 답은 알 수 없을 테지만. 소설에서 지나간 날만 이야기하지 않기는 해. 내가 다른 것보다 소설을 많이 봤지만 어려운 건 거의 안 봤어. 첫번째 김수온 소설 <한폭의 빛>은 내가 자주 보던 소설 형식이 아니더군. 소설을 보면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는 하는데, <한폭의 빛>은 조용한 그림이야. 숲 도시 호수 그리고 아이가 있었던 집.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 아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왜 없을까 생각하게 해. 상상하지는 못했지만. 그저 이젠 아이가 없구나 했을 뿐이야. 여자는 슬퍼하는 것 같으면서 그저 견디는 것 같기도 해.

 

 백수린 소설은 ‘겨울 2018’에도 있었지. 그때와는 다른 소설이야. <아직은 집에 가지 않을래요> 앞부분 보고는 지난번에 만난 <시간의 궤적>처럼 여자 두 사람 이야긴가 했어. 조금 보고 그런 생각을 하다니. 여자(희주)가 친구 한나가 연 레스토랑에 가는 건 오랜만에 밖에 나간 일이었는데. 희주한테는 아이가 둘 있고 남편은 일 잘해서 별 문제 없어 보였어. 겉으로 보기에만 좋았던 건가봐. 어느 집이든 문제가 없지 않을 텐데. 희주는 한나를 만나고 한나 후배 발레리노를 만나고, 자신이 좋아하던 붉은 지붕 집이 헐리는 걸 보고 조금 달라져. 자신은 지금까지 체념했다고 생각해. 희주 엄마가 희주 오빠는 학원에 보내줬는데 희주는 다니고 싶다는 발레학원에 보내주지 않고 재수도 못하게 하고 첫째를 낳자 일을 언제 그만둘 거냐고 했어. 어렸을 때 하고 싶은 거 못했다면 나이 먹고 했으면 됐을 텐데 하는 생각 지금 했어. 무용, 발레는 어릴 때부터 해야겠지. 그래서 희주는 나중에도 하지 않았을까. 소설이 끝날 때 희주는 조금 바뀌어. 남편은 늘 같다고 여기지만. 가정이 아주 깨어지지는 않겠지만 뭔가 일어날 것 같아.

 

 마지막은 장희원 소설 <우리[畜舍]의 환대>야. 이 소설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 제목은 무엇을 나타내는 건지. 앞에서는 제목 이야기 안 했는데. 소설을 다 보니 이쪽에서 다른 쪽으로 간 듯해, 아들이. 부모와 아들이라는 우리에서 집주인과 친구라는 우리로. 우리는 두 가지를 나타내지 않을까. 여러 사람 우리와 동물을 넣는 우리. 부모는 자식이 평범하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지. 자식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한테 마음이 기울겠어. 여기 나온 부모와 아들은 이렇게 멀어지는 걸까. 시간이 흐르고 달라질 수도 있겠지. 그랬으면 해.

 

 지난번에도 한 말인데 책은 작고 가벼워도 이야기는 별로 가볍지 않아. 세편만 실려서 다행이야. 산 시간이 늘어도 알게 되는 건 그리 많지 않군. 소설 보는 건 더. 한국 단편소설이라 해야겠군. 다 알기 어렵다 해도 가끔이라도 만나보는 게 낫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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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2-24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희선 2019-12-25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니데이 님 고맙습니다 그렇게 잘한 건 없지만 서재의 달인이라 하니 조금 기쁘기도 합니다 어쩐지 조금 미안한 마음이네요 그렇게 좋은 이웃이었다고 말하기 어려워서... 서니데이 님 성탄절 편안하게 보내시고 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눈에서 나오는 물은

먹지 못해

먹으려고 눈물 흘리는 건 아니군

 

기쁠 때

슬플 때

즐거울 때

아플 때

화날 때

눈물은 마음대로 흘러나와

 

사람이 평생 흘리는 눈물은 얼마나 될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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