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마음 사계절 만화가 열전 12
소복이 지음 / 사계절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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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만화책일까 그림책일까. 만화책과 그림책 중간. 소복이는 몇해 전에 한짱짜리 그림으로 알았다. 소식지에 실렸다고 해야겠다. 그림 한장에 짧은 글을 곁들였는데 따스한 느낌이었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고 평범한 이야기였다. 그림일기라고 해도 되겠구나. 시간이 흐르고 소복이 이름이 쓰인 책을 만났다. 그 책 제목이 뭐였는지 잊어버렸다. 《시간이 좀 걸리는 두번째 비법》이었던가. 생각 안 난다면서 이런 말을. 그때 책을 봤지만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예전에 썼던 수첩 찾아보면 있을 텐데, 앞에 쓴 제목 맞는 것 같다. 그때는 왜 할 말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을까. 거기에서도 말보다 그림으로 말했다. 그림만 보고도 무언가 말 잘하는 사람도 있던데 난 못한다. 이 책도 글보다 그림이 더 많다. 천천히 보면 알 수 있을 만한 그림이다.

 

 남자아이는 방이 없다. 누나가 둘이어서. 만약 누나가 하나였다면 남자아이한테 방을 줬을까. 그건 알 수 없구나. 방이 두개 있는 아파트로 하나는 누나 둘이 쓰고 하나는 엄마 아빠가 썼다. 어린 남자아이는 방 두 개 사이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겠지. 그 남자아이는 지금은 그림 그리지 않으려나. 누나가 이런 그림을 그린 걸 보면, 이건 소복이 동생 이야기기도 하다. 상상도 조금 있겠지. 자신이나 둘레 사람 일을 그림이나 글로 잘 나타내는 사람 부럽구나. 난 잘 못한다. 나한테 있었던 일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서기도 하구나.

 

 나도 어릴 때는 그림 그리고 놀기 좋아했을까. 잘 모르겠다. 아주 어릴 때 일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림 그리고 논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여기 나온 남자아이보다 어린 아이는 벽에 그림을 그릴지도. 남자아이는 누나가 방에서 나오면 좋았다. 자신과 놀아줄 것 같아서. 두 누나는 잠깐 놀다가 남자아이와 맞지 않아서 둘만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남자아이는 소를 그렸다. 소가 남자아이와 놀았다. 엄마 아빠가 싸울 때는 말을 그렸다. 말도 남자아이와 즐겁게 놀았다. 남자아이한테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친구였다. 밖에 나가서 논 적은 없었을까. 어쩌면 남자아이는 혼자 밖에 나가기에는 어렸을지도.

 

 엄마와 싸운 아빠가 거실에서 남자아이와 함께 잤다. 남자아이는 밤이 무서웠다. 밤은 죽음을 생각하게 했다. 할머니가 죽은 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던가 보다. 남자아이는 밤에는 물고기를 그렸다. 그랬더니 밤에 바닷물이 차올랐다. 남자아이는 책상을 뒤집어서 배처럼 타고 창문으로 나왔다. 꿈같은 이야기구나. 남자아이가 책상 배를 타고 바다에 둥둥 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남자아이가 전화를 받자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남자아이는 할머니를 만나고 싶다고 한다. 그 말을 하자 할머니가 헤엄쳐서 나타난다. 남자아이는 무척 기뻤다. 할머니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이 죽었다고 말했다. 남자아이는 울었다. 그런 남자아이한테 할머니는 남자아이가 생각하면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고 달랜다.

 

 아이가 처음 죽음을 알게 되면 무섭겠지. 남자아이는 할머니하고 친하게 지내서 할머니가 죽고 더는 볼 수 없어서 슬펐겠다. 그 뒤 남자아이는 누나 엄마 아빠가 죽을까 봐 걱정했다. 남자아이가 날마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할머니가 어디에나 있다는 걸 알고 남자아이는 마음을 놓은 듯하다. 할머니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남자아이는 식구들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 본다. 아이는 그렇게 자라는 거겠지. 어렸을 때는 식구를 그렇게 애틋하게 생각하는데. 지금도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만큼 마음을 많이 나타내지는 않겠지만. 사람이 그렇게 많이 바뀌지는 않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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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외딴 성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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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 시절 힘든 때는 지나간다. 그때뿐 아니라 어느 때든 지나가지만 그때 무척 힘들다. 그렇다고 참고 힘든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야 할까. 어떤 게 맞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난 어딘가 피할 곳이 있다면 피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 건 어릴 때만 허락되는 일일지도. 난 지금도 피하지만. 아니 이제는 그렇게 참아야 할 건 없다. 내가 크게 따돌림이나 괴롭힘 당한 건 아니지만, 학교에 가기 싫은데도 다녔다. 뭐가 힘들었던가. 공부보다는 친구 사귀는 게 무척 힘들어서. 그건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닐지 몰라도 그때는 무척 큰일이었다. 아니 지금도 그런 건 싫다. 모르는 사람이 잔뜩 있는 곳에 가는 거. 길을 다니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길을 가는 사람은 다 자기 할 일이 있고 남한테 마음 쓰지 않는구나. 여러 사람이 모여서 무언가를 하는 곳이 싫다. 이런 거 나만 그런 건 아니겠다. 여러 사람과 함께 뭔가 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어렸을 때 난 늘 학교에 갔다. 아주아주 가기 싫은 날도 가끔 있었을 텐데. 그런 날 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하루도 쉬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난 조금 바보였다.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건 안 했다. 하라면 하라는대로 했다. 지금은 다 귀찮아서 안 하지만. 어렸을 때 좀 그랬다면 좋았을걸. 어떤 선생님이 개근상만큼 좋은 건 없다고 한 말을 듣고는 그 말을 따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아파서 쉰 적이 있어서 개근상 못 받았지만. 중, 고등학교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상 받았다. 개근상 같은 거 받아봤잔데.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집단 따돌림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그저 뒤에서 어떤 아이가 불량하다더라 하고 말하는 걸 조금 들었다. 학교 다닐 때 안 좋은 기억도 없지만 좋은 기억도 없다. 가야 하니 갔던 것 같다.

 

 이 책에 중학교 1학년에서 3학년 아이들이 나와서 그때를 생각했다. 중학교 1학년인 안자이 고코로는 학교에서 미오리와 미오리 친구한테 안 좋은 일을 겪고 학교에 가지 않게 됐다. 학교에서만 그랬다면 좀 나았을까. 미오리와 미오리 친구는 고코로 집에 와서 고코로를 무섭게 만들었다. 미오리는 왜 그랬을까. 자신이 사귀게 된 남자 친구가 예전에 고코로를 좋아했다고 말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미오리는 어른 앞에서는 착한 아이가 된다. 실제 그런 아이 있을 듯하다. 난 그런 쪽이 아니어서. 옛날에는 몰랐는데, 내가 어렸을 때도 그런 아이 있었을 것 같다. 남을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하면 어른이 좋아하는지 아는. 그런 아이는 자라서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자신을 좋아하는지 알까. 자란 다음에는 어릴 때와 달라질지도.

 

 학교에 가지 않던 어느 날 고코로 방에 있던 거울이 빛났다. 고코로가 거울에 손을 대자 손이 쑥 들어가고 몸까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거울 반대쪽은 성이었다. 거기에는 고코로처럼 거울을 지나서 온 아이가 여섯이나 있었다. 아키, 후카, 스바루, 마사무네, 우레시노, 리노 그리고 늑대가면을 쓴 작은 여자아이. 거울속 다른 세상이구나. 그렇다고 그 세상을 마음대로 다닐 수는 없다. 아이들은 성 안에만 있을 수 있었다. 아침 아홉시에서 저녁 다섯시까지. 기간은 다음해 3월 30일까지다. 아이들이 거울속으로 들어간 건 5월이다.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성에서 열쇠를 찾고 소원방에서 바라는 일을 빌면 이뤄준다고 했다. 먼저 열쇠를 찾아야 한다. 일곱 아이는 저마다의 사정으로 학교에 가지 않게 됐다. 괴롭힘 당하거나 따돌림 당했구나.

 

 성에서 아이들은 편하게 지낸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서로 편하게 이야기한다. 학교 친구와는 다르고 학교에 가지 않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랬던 건지도. 학교 이야기를 털어놓은 건 아니지만 서로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걸 짐작으로 안다. 고코로와 아이들은 나중에야 어떤 걸 알지만 난 중간에 알았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거여서 책을 읽는 사람은 바로 알겠다. 그건 그렇고 아이들은 학교에 잘 다니지 못했는데 성에 다니고 다른 아이들을 만나고 조금씩 달라진다. 학교에 가려고 용기를 낸다고 할까. 그런 모습을 보고 몇 사람은 자신은 그 자리에 남은 듯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중학생 때는 그런 마음 들까. 그때 더할지도. 나도 비슷한 생각했던 것 같다. 난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다른 사람은 다 앞으로 간다고. 난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그뿐이었다. 내가 뭘 더 할 수 있었을까 싶다.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다.

 

 앞에서 말 안 했는데 열쇠를 찾고 일곱 아이에서 한사람이 바라는 걸 이루면 아이들은 성에서 지낸 일을 다 잊는다. 좋은 기억일 텐데 잊으면 아쉬울 듯하다. 서로를 잊는다 해도 우연히 만나면 뭔가 느낌은 있지 않을까. 이 말은 기억을 잃는다는 말 같구나. 기억보다 목숨이 중요하겠지. 아이들이 별일 없이 자라기를. 성에서 지낸 기억은 잊어도 예전보다 잘 지내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뿐 아니라 언제든 남한테 도움을 바라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용기를 내고 손을 내밀면 그걸 잡아주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런 사람이 없으면 어떤가. 스스로가 스스로를 도우면 된다. 나도 잘 못하면서 이런 말을. 부모 눈치 보고 자기 마음을 숨기는 것도 안 좋겠다. 어릴 때는 학교가 모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도 생각하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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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원 - 꿈꿀수록 쓰라린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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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어느 쪽을 골라야 하는 건 아니다.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모가 아닌 아이가 한 일이니. 아이가 어느 쪽일지 생각한다고 해야겠구나. 가해자든 피해자든 좋지 않은 듯하다. 큰일이 아니면 피해자인 게 그나마 낫겠지만 목숨이 달렸다면 어떨까. 아니 목숨이 달렸다 해도 엄마 아빠 마음이 다 똑같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믿으면 피해자로 죽었을 테고, 아이가 살아 있기를 바라면 사람을 죽인 사람이 된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아주 안 좋다. 처음부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으련만. 아이, 더욱이 남자아이는 사춘기 때 많이 거친 듯하다. 그때를 잘 보내면 좋을 테지만 그게 쉽지 않을지도. 자신만 가만히 있는다고 괜찮은 일은 아닌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할까. 모르겠다.

 

 별 문제없어 보이는 가정에 어느 날 큰일이 닥친다. 그건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 이시카와 다다시가 살인사건과 상관있다는 거였다. 다다시는 집에 없었다. 아빠인 가즈토와 엄마인 기요미는 다다시가 그저 친구 집에서 자고 오겠거니 생각했는데, 얼마전에 다다시는 얼굴에 멍이 들어서 집에 오고 공작용 칼을 사기도 했다. 기요미가 다다시한테 왜 얼굴에 멍이 들었는지 물어도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공작용 칼은 가즈토가 빼앗았다. 한동안 별일 없었는데 다다시는 쉬는 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누군가한테 맞고 죽고, 시체는 차 트렁크에 있었다. 차를 버리고 달아난 사람은 두 사람으로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죽은 구리하시 요시히코는 다다시 친구였다.

 

 책을 읽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다다시가 사람을 죽였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는 다다시 부모를 잠깐 떠올리니 몸이 덜덜 떨릴 듯하다. 자기 식구가 어떤 범죄와 상관있다고 생각하면 그럴 것 같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 가장 가까이 산다 해도. 부모가 가장 모르는 것도 아이 마음이 아닐까. 남의 마음도 알기 어렵지만. 다다시가 조금밖에 나오지 않아서 책을 읽는 나는 다다시가 어느 쪽일지 생각하기 어려웠다. 아빠인 가즈토는 다다시를 믿고 피해자이기를 바랐고, 엄마인 기요미는 다다시가 어쨌든 살아 있기를 바랐다. 피해자면 죽고 가해자면 산다니. 한 아이가 더 죽었다는 말이 나온다. 가즈토는 순수하게 다다시를 믿은 건 아니다. 다다시가 다른 사람을 죽였을 경우에는 앞으로 일하기 힘들어서였다. 실제 밝혀진 게 없을 때도 가즈토는 다른 사람한테 안 좋은 말을 들었다. 그렇다고 가즈토가 다다시가 죽기를 바란 건 아닐 거다. 엄마는 아이가 무슨 짓을 저지르든 살아 있기를 바랄까.

 

 아는 사람 식구나 아이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전과 다르지 않게 지낼 수 있을까. 다른 식구한테 잘못은 없지만 예전과 똑같은 마음으로 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다시를 믿기도 믿지 않기도 어려운 일이다. 믿으면 죽고 믿지 않으면 나중이 걱정이니. 언론은 빨리도 다다시를 알아내고 집에 찾아왔다. 가즈토 집앞에는 텔레비전 방송 관계자와 기자가 나타나서 누군가는 다다시가 구리하시를 죽였다고 보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안 좋은 말이 떠돌았다. 다다시가 범인으로 밝혀지면 가즈토 집안은 그곳을 떠나야겠구나. 이름도 바꾸고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 가즈토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기요미는 다다시가 살아 있기를 바라고 다음에 일어날 일을 각오한다.

 

 앞에서도 말했듯 어느 쪽이든 끝은 좋지 않다. 아예 아무 상관없으면 좋을 텐데. 다다시는 그저 다른 곳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오는 거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까 했는데. 내가 바란 건 그거였구나. 부모는 아이가 그저 아프지 않고 자라면 좋을 것 같은데 그 아이 마음이 어떨지도 마음 써야겠다. 부모 쉽지 않겠구나. 아이가 길을 벗어난 게 꼭 부모 탓만은 아니겠지만. 부모와 아이가 이야기를 자주 하면 어느 정도 서로를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는 부모가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고 큰일이 있어도 말하지 않겠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때는 어른 힘을 빌리기도 해야 하는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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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없다
조영주 지음 / 연담L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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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경찰은 언제까지 일을 할까. 예순이 정년인 것 같다. 공무원 정년을 예순다섯으로 한다는 말이 보이기도 하던데, 그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왜 이런 말을 했느냐면 이 소설에 나오는 이친전이 경찰로 정년을 한해 앞두고 사람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가 생기고 반년 뒤 유급휴가를 받아서다. 경찰은 누구보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해야 할 텐데. 친전은 식구 얼굴뿐 아니라 가끔 자기 얼굴도 낯설게 느꼈다. 한해 전에 그렇게 됐으니 그때 뭔가 큰일이 일어나서인 것 같다. 아쉽게도 그 이야기는 끝까지 풀리지 않았다. 친전은 자신이 믿었던 후배 정의정한테 배신당했다고 여겼는데 정의정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친전이 정의정한테 배신당했다고 생각해선지 정의정 얼굴만은 기억했다. 그건 신기하구나.

 

 잠시 여기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지 말해볼까 한다. 난 이런 거 정리하는 게 조금 어렵다. 실제 현실에서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어떤 일은 이어져 있기도 하다. 친전은 손자인 나무가 우비 입은 할아버지를 잡아달라고 하는 말을 듣고, 얼마 뒤 친구가 불러서 간 곳에서 우비를 입은 할아버지가 책에 깔려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얼핏 보면 사고 같지만 그건 사고가 아니었다. 친전이 그곳에 가서 그게 살인사건이라는 걸 깨닫는다. 지금은 쉬고 있지만 경찰이기도 하니 경찰로 일한 경험 때문에 다른 사람은 그냥 넘긴 걸 친전은 알아봤겠지. 친전은 추리소설도 아주 좋아한다. 책을 읽기도 하고 많이 모으기도 했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 죽은 사람은 김성국으로 재일교포에 일본 야쿠자였다가 그만뒀다. 책에 맞은 얼굴이 뭉개져서 누군지는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된다. 김성국 얼굴을 때린 책을 보니 모두 뒤쪽이 찢겨 있었다. ‘반전이 없다’는 건 바로 이걸 가리킨다. 그 책은 다 추리소설이다.

 

 살인사건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김성국과 상관있는 출판사 사장과 헌책방 사장은 김성국과 똑같이 책에 맞아 죽었다. 스무해 전에 세 사람은 같은 출판사에서 일했다. 그때 서적 도매상이 망해서 출판사도 다 빚더미에 앉게 됐다. 그런데 세 사람이 일했던 리문 출판사 사장 이문석이 2억엔을 가지고 야반도주했다고 한다. 리문 출판사와 상관있는 사람은 세 사람만이 아니기는 하다. 김성국이 스무해 전에 일어난 일을 소설로 쓰고 그걸 책으로 내려 했다. 그때 김성국을 죽였을지도 모를 사람으로 이문석 이름이 나왔다. 정말 이문석은 김성국이나 다른 사람을 죽였을까. 이 말은 그게 아니다 말하는 것과 같겠구나. 자세한 말을 하면 안 되겠다. 자세하게 하려 해도 잘 안 된다. 어쩐지 글로도 버벅대는 듯하다. 자주 이러던가.

 

 누가 왜 사람을 추리소설책으로 때려 죽였는지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건을 풀어 나가는 모습 보는 것도 재미있다. 지금 친전은 쉬지만, 사고로 보인 일을 맨 먼저 살인사건이라는 걸 알아채서 사건을 조사하기도 한다. 그것도 김나영과 함께. 김나영은 조영주가 쓴 《붉은 소파》에도 나온 형사다. 여기 나온 김나영 보면서 예전에도 김나영이 이랬던가 했다. 지금도 많이 다르지 않지만, 예전에 난 누가 범인일까를 더 생각했을 것 같다. 나영은 친전과 함께 다니면서 친전이 정말 사람 얼굴을 못 알아보는지 몇 번이나 시험해 본다. 짧은 가발을 쓰고. 그런데 하루는 친전이 여러 사람 아내, 딸, 손주 얼굴을 다 구별했다. 헌책방을 돌아본 날이다. 친전이 좋아하는 책을 많이 봐서 다른 사람 얼굴도 알아보게 됐을까. 그런 일은 겨우 하루였다. 친전은 다시 경찰로 돌아갈지.

 

 친전이 사람 얼굴은 알아보지 못해도 책은 잘 알아봤다. 추리소설을 잘 아는 친전이 있어서 범인을 알 게 된 거겠지.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책 제목인 ‘반전이 없다’와는 달리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다(제목 반전이 없다는 책이 뜯긴 걸 뜻하지만). 스무해 전 일어난 일뿐 아니라 다른 일도 그렇다. 사람은 돈 앞에서는 잔인해질까. 앞에서 나온 말은 뒤에서 맞아 떨어진다. 추리소설은 앞에 나온 말을 잘 기억해두기도 해야 하는데, 난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 친전이 말했을 때 맞아 그랬지 했을 뿐이다. 친전은 경찰 일 다하고 탐정이 되어도 괜찮겠다. 아직 한국은 탐정이 일이 아니던가. 탐정을 일로 인정하겠다는 말 나온 지 몇해 지난 것 같은데. ‘한국탐정협회’는 있다. 탐정이 아주 없는 건 아니구나.

 

 

    

 

 

 

 어쩐지 책 잘 읽고 잘 써야지 하면 더 안 된다. 여기에는 작가와 아주 비슷한 사람이 나온다. 여기 나오는 사람 모두에 작가 자신을 투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작가 모습과 비슷한 사람은 친전 아내 침례가 하는 카페에 오는 바리스타다. 그 사람은 다른 카페에서 일하고 침례가 하는 카페에 와서는 글을 쓰고 때로는 침례 일을 도왔다. 그리고 초이세. 많은 사람이 알겠지만 초이세는 일본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를 한국 작가처럼 쓴 거다. 이 책 시작하기 전에는 그장소(조송희) 님 이름이 나온다. 어느새 한해가 넘게 지났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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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미션 - 죽어야 하는 남자들
야쿠마루 가쿠 지음, 민경욱 옮김 / 크로스로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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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은 과학이 발달해서 사람이 오래 살고 암도 잘 낫는다. 그래도 여전히 암으로 죽는 사람은 많다. 암을 바로 못 찾을 수도 있고 암에 한번 걸린 사람이 다시 암에 걸리면 더 나빠지기도 한다. 그런 걸 한번 들었을 뿐이지 정말 그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암이 잘 낫는다 해도 무서운 병이다. 20~30대에 암에 걸리면 더 빨리 진행된다고 한다. 난 검사를 안 받아봤는데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는 여기 사는 사람한테 건강검진을 받게 했다. 그런 것 때문에 병을 빨리 찾기도 한단다. 이건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그럴까. 건강검진 안 받고 큰 병에 걸리면 의료보험공단에서 돈도 안 나온단다. 난 병원에 거의 안 가서 의료보험료 그냥 굳는데. 그게 다른 사람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그렇다면 다행일 텐데.

 

 암 이야기를 한 건 여기 나오는 사람이 암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한사람은 경찰인 아오이 료고 한사람은 범인인 사카키 신이치다. 아오이는 세해전에 초기 위암으로 수술했는데 다시 암에 걸렸다. 암에 걸리고 수술 받으면 그전과 다르게 살아야 괜찮을 텐데 아오이는 여전히 형사였다. 형사는 생활에 규칙이 없다. 그리고 아내가 죽은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사카키 신이치는 젊은데 주식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사카키가 돈 버는 데 마음 쓴 건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려는 거였을지도. 자원봉사도 했지만. 사카키가 여자를 죽인다는 건 바로 나온다. 사카키와 아오이는 앞에서 한번 만난다. 같은 병원에 갈 우연이 정말 일어날 수 있을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하긴 큰 병원은 시에 한두 곳 정도만 있겠지. 작은 병원에서는 암치료 못한다.

 

 사카키 신이치는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지금까지 억눌렀던 욕망을 풀기로 한다. 그건 여자를 죽이는 거다. 왜 사카키는 여자를 죽이고 싶어할까 했다. 첫사랑인 스미노는 죽일 뻔했다. 스미노는 사카키가 잊어버린 초등학교 6학년 때 있었던 일을 알았다. 스미노는 사카키를 좋아했지만 어렸을 때 일어난 일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두 사람은 얼마전에 다시 만났다. 스미노는 사카키가 암이라는 걸 알게 된다. 아오이 료는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한다는 걸 알고도 형사 일을 하려 했다. 여자가 죽임 당했다(사카키가 죽였다). 아오이와 함께 관할 경찰서 형사 야베가 함께 다닌다. 야베는 형사가 되고 얼마 안 됐다. 처음에는 아오이를 별로 안 좋게 여겼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 달라졌다. 이런 모습 보는 것도 괜찮다. 아오이는 아내하고는 사이가 괜찮았던 것 같지만 아이들하고는 사이가 별로 안 좋았다. 아이들은 아오이가 집이나 식구는 생각하지 않고 일만 한다고 여겼다.

 

 이 소설이 평범했다면 사카키는 스미노와 남은 삶을 편안하게 보내고 아오이는 아이들과 좀 더 이야기하고 지냈겠지. 그렇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사카키는 어린 시절에 부모한테 학대받았다. 자라면서 그런 게 조금 나아졌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사카키 자신 또한 왜 자신이 여자를 죽이고 싶어하는지 몰랐다. 난 사카키가 어머니를 죽이고 싶어하는 거 아닐까 했는데. 사이코패스가 가장 먼저 죽이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일 때가 많다. 부모한테 학대받고 사이코패스가 됐다고 해야겠구나. 이것도 그런 소설을 봐서 아는구나. 사카키는 아버지가 자신을 때린 건 어렴풋이 기억해도 어머니가 한 일은 잊어버렸다. 그걸 스미노가 알았다. 어렸을 때는 어려웠겠지만 대학생 때는 도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사람을 여럿이나 죽이고도 사카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사이코패스가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아오이는 사카키가 괴로워하고 죽기를 바라고 거짓말한다. 사카키는 죗값을 치르지 못한다. 그런 걸 사카키한테 죽임 당한 식구가 알면 마음이 안 좋겠지. 얼마 뒤 아오이도 죽는다. 형사와 범인이 다 암으로 죽다니. 아오이는 자신이 죽는다는 걸 알았을 때는 무서워했는데, 나중에 왜 자신이 그렇게 생각했는지 깨닫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들을 남겨두고 가서였다는 걸. 죽는 건 그렇게 무섭지 않을 거다. 그저 영원히 잠드는 거 아닐까. 그런 걸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살았을 때 더 말하면 좋을 텐데. 사람은 어리석어서. 그런 거 알아도 나도 잘 못한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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