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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꿈의 뉘앙스 ㅣ 민음의 시 268
박은정 지음 / 민음사 / 2020년 2월
평점 :

지금까지 만난 시집에서 민음사에서 나온 시집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권도 안 본 건 아닌데, 많이 못 만난 듯합니다. 시인이 쓰는 시는 그리 다르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민음사에서 나오는 이 시집은 좀 어려운 느낌이 듭니다. 이 시집 《밤과 꿈의 뉘앙스》는 ‘민음의 시 268’입니다. 예전엔 이런 양장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집이 어디에서 나오든 상관없을 텐데, 민음사에 내는 이런 시집 어렵다고 말했네요. 박은정 시인 첫번째 시집은 문학동네에서 나왔을 겁니다. 그 시집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첫번째는 못 보고 두번째를 먼저 만났네요.
처음엔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습니다. 한번 보고 두번째에는 느낌이 조금 달랐어요. 모르는 건 백번 보면 안다고 하던데, 시도 그럴까요. 그럴지도. 백번은 어려워도 열번 정도라도 봤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네요. 겨우 두번 보고 이런 걸 쓰다니. 여기 담긴 시 모르는 게 더 많지만, 쓸쓸하거나 슬픈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말은 다른 시집 보고도 했군요. 시가 다 쓸쓸하거나 슬프지는 않겠지만, 어쩐지 그런 시가 더 많은 듯합니다. 시에는 사람이 잘 안 보고 스쳐지나는 걸 담아설지도 모르겠네요. 잊지 않기를 바라는 일도.
검은 눈이 도시를 뒤덮자
아이들은 학교를 버리고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겁먹은 개들이 사납게 짖고
야윈 고양이들이 뒷걸음질 쳤다
대기를 떠도는 불운한 공기와 타락의 징조가
이 도시의 유일한 생명체였다
하천을 따라 달리던 아이들이
죽은 물고기를 꼬챙이에 꽂아
눈사람의 입에 쑤셔 넣자
입 가진 모든 것들은 침묵해야 한다는
신념이 눈사람의 입에 꽃피었다
저녁이면 기어이 찾아드는 아이들과
그들의 혓바닥이 파고드는 불빛 아래
감자와 묽은 스프를 차려 놓고
울먹이며 기도하는 사람들
몇 년째 겨울은 검고 탁했으므로
봄이 오지 않는 그들의 도시에
기도도 없이 전도사들이 하나둘 죽어 가자
술집은 사라지고 청탑의 종이 녹슬었다
각자 자신의 문을 굳게 잠근 채
어둠 속에서 검게 내리는
눈을 헤아려 보는 밤
도대체 이 무심한 장면은
어디서부터 발병한 것인지
구원은 요란한 고해성사처럼
마지막 남은 술병을 비우고
벌거벗은 관 속으로 들어간다
붉게 부어오른 혀를 말고
세상의 장례를 시작한다
-<검은 눈>, 70쪽~71쪽
앞에 옮긴 시 <검은 눈>은 쓸쓸함이나 슬픔은 보이지 않는군요. 조금 쓸쓸한가. 어두운 느낌도 듭니다. 제목이 ‘검은 눈‘이어서 바로 그렇게 생각했군요. 이 시집에는 검은 색이 여러 번 나와요. 그게 어두운 것만 나타낼지. 검은 눈에 덮인 세상을 생각하니 세상이 죽은 듯하네요. 디스토피아 같은. 시인은 다른 생각으로 쓴 걸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의 장례라는 말이 나오는군요. 검정은 장례식 색깔이네요.
아직 갈 길이 먼 철새들이
긴 밤 지치지 않도록
아직 닿지 않은 마음이
저를 미워하지 않도록 (<목련>에서, 104쪽~105쪽)
담벼락에 숨어 앉아
머리카락을 뽑으며 놀았다
이것은 내가 처음 배운 위로
버찌나무 아래 누워
자신의 기이한 미래를
예감처럼 보는 아이들
오후에는 지하상가 계단에 앉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들었다
한줌의 흙을 입에 넣고 부르는 노래는
무덤처럼 따뜻할까
저녁의 한가운데
모르는 대문 앞에 머물다
저녁보다 먼저 저문 마음을 두고 왔다
몇 년 만에 눈이 내렸다
장갑을 버리고 귀를 막으면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아 괜찮았다
언 담벼락을 돌아가는 개가 있다
몸이 찬 사람들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개가 얼어 죽는데
아무도 울지 않았다
-<오후와 저녁>, 130쪽~131쪽
시는 쉽지 않네요. 언제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언가 나타내는 게 있을 텐데, 바로 알지 못하는군요. 알아내는 것도 없고, 제가 생각하는 게 틀릴지도 모르겠네요. 시를 좀 더 자주 많이 만나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군요. 앞에 옮긴 시 <오후와 저녁>은 조금 쓸쓸한 느낌이 들지요. 이건 마지막 연 때문일 것 같네요. 시를 봐도 잘 모르지만 앞으로도 가끔 만나야겠어요. 마음 편하게.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괜찮으면 괜찮은 대로.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