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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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유, 마음이 참. 이 책 《밝은 밤》을 겨우 다 읽었다. 시작은 담담했는데 말이지. 지연은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헤어진 다음 희령 천문대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그곳으로 옮겨간다. 남편과 헤어져서 마음이 그리 좋지 않았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마음이 떠난 거여서 배신감이 컸겠다. 한때는 좋아했을 텐데. 사람은 왜 약속을 어길까. 결혼할 때 듣는 말 있지 않은가. 기쁠 때든 아플 때든 함께 하겠다는. 그런 건 결혼할 때 그저 흘려듣고 약속으로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잊지 않고 지켜야겠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나도 지금 그런 거 생각했다.

 

 지연은 열살쯤에 희령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열흘 정도를 보냈다. 그때 기억은 아주 좋았다. 그 뒤로 할머니를 만나지 않았다. 엄마가 할머니를 만나지 않아서 그랬던가 보다. 이 책을 끝까지 보면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 아주 큰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될까 했는데, 그렇게 큰일로 보이지 않았다(분명하지 않기도 하다). 이건 내 느낌이고 할머니 딸인 미선은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사람이 아니니 어떻게 다 알겠나. 할머니도 딸을 다 알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엄마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소설을 보는 사람은 그걸 알지만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은 잘 몰랐을까. 아니 모르지 않았을 거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지 않았을까.

 

 이 소설에 나온 사람에서 가장 외로워 보이는 사람은 지연 할머니인 영옥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늘 외롭지는 않았겠지. 어릴 때는 희자와 새비 아저씨 새비 아주머니 그리고 대구로 피난 왔을 때는 명숙 할머니가 있었다. 딸이고 여성이어서 안 좋았던 게 있었구나. 이 소설 《밝은 밤》은 여성 이야기다. 그것도 4대에 걸친. 지연은 희령에 오고 오랜만에 할머니를 만난다. 지연은 할머니를 오래 못 봐서 거의 잊어버렸는데 할머니는 지연을 알아봤지만 바로 알은체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멀리서나마 지연을 봐서 반가웠을 듯하다. 언제 기회가 오면 말해야지 하고 기다리다 지연한테 말한 거 아닐까 싶다. 할머니가 지연을 오래 못 봤다 해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바로 알아봤을 것 같다.

 

 조금 어색해도 가끔 지연은 할머니와 만났다. 지연도 할머니를 만나고 남편과 헤어지고 다친 마음이 조금씩 나아간다. 할머니는 지연이 결혼하고 남편과 헤어졌다고 했을 때 다른 말보다 “잘했다”고 했다. 그 말 지연한테 힘을 줬을 것 같다. 그때 할머니는 지연만 생각하고 지연만 편들었다. 난 그런 일 한번도 없었다. 온전한 자기 편, 그게 있고 없고 차이는 크다. 지연은 할머니를 만나고 자신이 할머니 엄마인 증조할머니를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그 뒤에는 증조할머니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름은 이정선이지만 삼천이라 한. 삼천과 새비. 다른 사람 이야기가 나올 때는 괜찮은데 삼천과 새비 이야기가 나오면 왜 눈앞이 흐려지는지. 듣지 않아도 끝을 알아서였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삼천은 호기심 많고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백정 딸이라는 것 때문에 차별받았다. 삼천이 어릴 때는 일제 강점기였다. 우연히 만난 증조할아버지는 삼천을 좋아했다기보다 그저 자신이 삼천을 구해야 한다 생각하고, 삼천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갈 뻔했을 때 자신과 혼인하자고 했다. 둘은 함께 개성으로 떠난다. 삼천 어머니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때 새비 아저씨가 돌봐주었다. 삼천은 새비 아저씨를 위해 뭐든 하겠다고 다짐한다.

 

 새비 아저씨는 그 시대 남자와 다르게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여기고 자신이 다른 사람 위에 서려 하지 않았다. 종교가 천주교여도 사람은 다르구나. 그때 정말 새비 아저씨 같은 사람 있었겠지. 새비 아저씨는 집안 식구가 진 빚과 일본 때문에 고향을 떠나 개성에 가고 한동안 일본에 돈을 벌러 간다. 그때 일본에 가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싶은데. 새비와 새비 아저씨가 개성에 왔을 때 오랫동안 잘 먹지 못해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삼천은 새비를 돌봤다. 삼천과 새비는 그렇게 친구가 된다. 새비는 삼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친구였다. 사는 건 힘들어도 친구가 있어서 좋았겠다. 삼천 딸인 영옥도 새비 아주머니 새비 아저씨를 아주 좋아했다. 두 사람 딸인 희자를 동생처럼 생각했다. 영옥은 아버지한테 받지 못한 사랑을 새비 아저씨한테 받은 듯하다. 누군가 자신이 가진 좋은 점을 말해주면 기쁘겠지. 새비 아주머니는 말하지 않아도 영옥 마음을 알아줬다.

 

 사람은 사는 게 아프고 힘들어도 좋은 기억이 있으면 낫겠다 싶다. 이 책을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함께 한 시간이 적다 해도.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났다 헤어져도 함께 한 시간이 어두운 밤을 밝혀줄 거다. 삼천과 새비 영옥과 희자 미선 명숙 할머니 그리고 지연. 옛날 이야기를 듣는 느낌도 들고 슬프지만 따듯한 이야기다. 예전에 최은영 소설에서 느낀 걸 이번에도 느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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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8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30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7-28 08: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4대에 걸친 이야기 너무 좋더라구요. 아무리 힘들더라도 주위에 의지되는 사람이 단 한명만 있더라도 살아갈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이 책 너무 좋았습니다 ^^

희선 2022-07-30 00:06   좋아요 1 | URL
사람이 그렇게 이어오기도 하다니 신기합니다 지금 사는 사람은 다 그렇겠지요 다들 어떤 이야기가 있기도 하겠습니다 자신한테 힘을 주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으면 괜찮지요


희선

페넬로페 2022-07-28 12: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밝은 밤 읽으셨군요.
답답하기도, 좋기도 한 책이었어요.
번역서가 아닌 모국어로 읽는 소설의 행복도 있었고요^^

희선 2022-07-30 00:08   좋아요 1 | URL
책은 지난해에 샀는데, 늦게 봤네요 그래도 봐서 다행입니다 앞으로 볼 사람이 부럽기도 하네요 여성 이야기는 답답한 게 있기도 하죠 아니 꼭 여성 이야기만은 아니군요 오래전에는 하는 일로 차별했네요 지금이라고 그런 게 아주 없지는 않겠습니다


희선

yamoo 2022-07-28 1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은영 작가의 소설이군요. 저는 한국 소설을 읽은지 언제인지 생각도 없어요~
마지막으로 읽은 작가가 전경린이군요..넘 오래되어서 요즘 소설은 어떤지 몰겠어요.

따뜻한 이야기라니...희선 님이 좋아하시난 작품군 같습니다.
전 희선 님의 글로 대체하렵니다~^^

희선 2022-07-30 00:15   좋아요 0 | URL
책을 읽고 한국소설을 많이 봤는데, 잘 안 보다가 몇해 전부터 다시 보게 됐네요 단편소설은 여전히 어렵고 어둡기도 합니다 거기엔 지금 한국 이야기가 있기도 한데,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기도 하네요

몇해 전에 최은영 작가 단편소설집을 우연히 봤는데, 저는 그게 좋았습니다 그 뒤로 최은영 작가 책이 나오면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사람마다 보는 책이 다르기도 하죠 자신이 보고 싶은 거 보면 되죠 그러다 우연히 한국소설을 보는 날도 있겠지요


희선

mini74 2022-07-29 16: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글처럼 좋은 기억이 따듯한 추억이 밝은 밤을 만드는 듯 합니다.~

희선 2022-07-30 00:13   좋아요 1 | URL
어떤 일이든 다 사라지지만 기억은 아주 사라지지 않겠지요 소설에서는 그런 걸 잘 보여주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뚜렷하게 기억하지 못하기도 해요 저만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scott 2022-07-29 23: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슬프지만 따뜻한 이야기
최은영 작가표 이야기!

영상으로 만들어진다는 소문?풍문이 있습니돠 ㅎㅎㅎ

희선 2022-07-30 00:15   좋아요 2 | URL
최은영 작가표... 작가는 이런 거 안 좋아할지도 모르겠지만, scott 님 말씀이 맞습니다

잠깐 이거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런 소문이 있군요 영상으로 만들면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만나겠습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