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우리, 주로 어떤 얘기를 했지?"
"산악 종주에 관한 얘기." - P-1

"꽤 예쁘게 생겼네. 내 스타일이야. 그렇지만 나는 빤히 쳐다보기도 조심스러워. 그랬다가 변태 아저씨로 여겨질까 봐 말이야.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우린 아저씨일 뿐이야. 남자도 아니라고. 주제 파악을 해야지." - P-1

"모두 다 남자가 아니야. 마누라가 여자가 아니듯 우리도 남자가 아니라고. 남편, 아버지, 아저씨, 그런 걸로 변해 버린 거지. 그러니까 여자 이야기 같은 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 P-1

"남자로 되돌아가고 싶으면 서비스 업소에나 가. 단, 마누라와 회사에 들키지 말고."
신타니가 말했다. - P-1

"우리는 남자로 돌아가는 것도 숨어서 몰래몰래 해야 한단 말이지."
구로사와가 한숨을 쉬며 체념하듯 말했다. - P-1

우리는 야구 연습장을 나와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나 말고 세 남자는 들뜬 표정이다. 남자들끼리 노래하는 게 얼마나 따분한지 잘 알면서도 노래방에 갔다가 각오 이상의 허망함을 느끼고 탄식하며 나오는 짓을 벌써 몇 년째 반복하고 있는 우리에게 아키하는 구원의 여신이나 다름없었다. - P-1

그런데 아내란 사람들은 왜 남편이 바깥에서 뭘 먹고 오는지 그토록 알고 싶어 하는 걸까. 신타니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느 집이나 다 그런가. - P-1

불륜에 대한 정의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 자체가 불륜이다. 데이트는 말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런 일을 남편이나 아내가 알면 상처받을 테니까. 배우자에게 상처를 준 이상 그것은 불륜이다." - P-1

"결혼을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라는 본성 자체는 변하지 않으므로 다른 이성에게 연애 감정조차 품지 말라는 것은 무리다. 아내나 남편에게 들키지 않고 데이트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그 정도의 두근거림이 있는 편이 인생을 즐겁게 하고, 결과적으로 부부 관계도 원만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키스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역시 섹스를 하느냐의 여부가 불륜이냐 아니냐를 결정한다." - P-1

그런데 아키하와 만난 이후 내 사고방식은 급속히 후자 쪽으로 기울어 갔다. 섹스만 하지 않으면 불륜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편이 내게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 P-1

"단 한 번이라면 바람, 지속적이면 불륜."
분명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는 둘을 그런 식으로 구분해 사용하는 듯하다. - P-1

물론 죄책감은 들었다. 유미코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정말로 잘해 왔다. 그런 아내를 배신하다니 나라는 놈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가, 그런 생각까지 했다. 이건 그야말로 불륜이다. 인륜에 어긋나는 일,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리는 짓이다. - P-1

불륜을 저지르는 놈만큼 멍청이는 없다고 생각했다. 쾌락만을 추구해, 기껏 손에 넣은 행복한 가정을 무너뜨리다니, 그런 멍청이가 없다고. 그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나는 나 자신을 멍청이라고 생각했다. - P-1

그렇지만 한 가지 틀린 것이 있다. 불륜은 쾌락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일단 시작돼 버리면 그렇게 미적지근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지옥이다. 감미로운 지옥. 여기서 도망치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속의 악마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 P-1

"어, 난 또 갑자기 가정적으로 변해서 무슨 반성의 계기라도 있었나 생각했지."
"반성 같은 걸 왜 해." - P-1

"와타나베 씨, 무리하면 안 돼요. 남녀 사이에 무리는 금물이죠. 서로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상대를 사랑하면 되는 거예요.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하려고 하거나 서둘러 결과를 얻으려 하다 보면 반드시 파탄에 이르게 되죠. 뭐든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알겠어요?"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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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을 저지르는 놈만큼 멍청이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자식을 사랑한다면 인생,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냐고. 일시적인 욕망에 휩쓸려 한눈을 팔다가 일껏 이룩해 놓은 가정을 파괴하다니, 그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을까. - P-1

불륜을 저질러 이혼을 하면서 위자료 대신 살던 아파트를 부인에게 내주고 자식의 양육비까지 책임지게 된 사람이 얼마 전까지 우리 회사에 있었다. - P-1

다시 한 번 말하겠다. 불륜을 저지르는 놈만큼 멍청이는 없다. - P-1

그러나 이제 나는 그 대사를 나 자신에게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다만,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덧붙여서.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거야.’ - P-1

만남은 늘 그다지 극적이지 않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렇다. 그것은 언제나 평범한 일상의 한가운데에 툭, 던져진다. 한참이 지나야 비로소 그 만남은 반짝반짝 빛을 내기 시작한다. - P-1

어느 직장이나 그렇지만, 중간 관리직에 앉은 사람들은 걸핏하면 회식을 하려 든다. - P-1

"세상이 온통 재미없는데 우리라고 재미있는 일이 있겠냐."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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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언제나 혼자였어요."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나오는 유키의 이 중얼거림에는 오로지 혼자서 인생과 싸워 이기려 하다가 죽어 간 형 스다에 대한 애달픈 진혼의 기원이 담겨 있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간에 대한 애정이 아름답게 그려진 『마구』가 부디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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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다의 공 자체가 마구였는데……."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것이 유일한 의견이라면 의견이었다. - P-1

그런데 다지마는 "마구라면 엄청난 변화구를 말하는 거겠지요."라고 전제한 뒤 "스다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데요."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강속구만으로 삼진 아웃을 잡는 것이 스다의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 P-1

"마구라면 요즘은 뭐니 뭐니 해도 고야마 선수의 ‘팜볼(Palm Ball. 공을 손바닥 안쪽 깊숙이 쥔 채 손목을 사용하지 않고 밀듯이 던지는 느린 무회전 변화구—옮긴이)’이랍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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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후드득, 빗방울을 떨어뜨릴 것 같은 구름이 흘러가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이 우산을 들고 나왔을 만한 날씨인 오늘, 스다 유키의 자전거 짐받이에도 가방과 함께 우산이 실려 있었다. - P-1

큰 소리로 그렇게 말한 학생은 ‘온천’이라는 별명이 붙은 몸집이 작은 학생이었다. 목욕탕 집 아들이라서 붙은 별명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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