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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가 역설하듯,
“소설의 유일한 존재 이유가 소설만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워더링 하이츠』는 ‘유령의 집’을 현실로 열어 놓으면서 그 임무를 수행한다.

에밀리 브론테의 『워더링 하이츠』 - 폭풍의 언덕을 넘어서 - 유명숙(서울대 영문과 교수)

2. 『워더링 하이츠』 ― ‘유령의 집’으로의 초대

에밀리 브론테의 처녀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된 『워더링 하이츠』를 번역하면서 내린 가장 큰 결정은 이 소설의 제목으로 몇십 년간 통용된 ‘폭풍의 언덕’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Wuthering Heights를 직역하면 ‘바람이 휘몰아치는 언덕’이므로 ‘폭풍의 언덕’이 딱히 틀린 번역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에서 워더링 하이츠는 집의 이름이다.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전망이 좋은 집을 ‘하이츠’로 명명하는 것은 한국의 건축 업자들도 하는 일이거니와, 사람이나 집의 이름이 제목일 때는 고유명사로 번역하는 것이 원칙이다. ‘워더링’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독자들에게도 낯선 단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사실 소설 도입부에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서 폭풍우가 몰아치면 대기의 소요에 그대로 노출됨을 이르는” 요크셔 지방 사투리로 ‘워더링’의 사전적 정의가 제시되기도 한다. 1차 서술자 록우드가 손님인지 불청객인지 애매한 신분으로 워더링 하이츠에 들어가 계속 상황을 잘못 읽어 내듯, 독자도 제목조차 생소한 『워더링 하이츠』를 펼쳐 들고 워더링 하이츠라는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워더링 하이츠 | 에밀리 브론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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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신이 주신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행위’인 자살은 가장 커다란 죄악 중 하나다. 따라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들은 죽음의 순간에 성직자의 축복을 받을 수도 없었고, 교회가 관리하는 묘지에 묻힐 수도 없었다.

일꾼들이 유해를 운반했습니다. 성직자는 한 명도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은 오로지 한 젊은 멍청이의 자살에서 수치스러운 것들을 닦아내는 것과 주인공의 파렴치한 짓을 영웅적인 행동으로 꾸며 보여주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저주받아 마땅한 이 책을 읽은 젊은이들은 영혼에 흑사병의 궤양을 얻게 될 것이며, 그것은 언제고 분명 갈라져 터지고 말 것이다. 게다가 검열이 이런 사탄의 유혹 같은 책의 인쇄를 막지 못했다니!

괴테는 기독교 틀을 완전히 벗어나진 않지만 범신론적이고 자유로운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작품과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또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들을 함께 동원하여 작품을 해석해보고, 처음 읽을 때 해독할 수 없었던 내용을 하나씩 알게 되어갈 때 느끼는 즐거움은 무척 크다. 최종적으로 작품 전체의 의미가 보이고, 작가의 의도를 깨닫게 될 때 느끼는 기쁨은 정서적 감동과는 전혀 다른, 지적인 울림이 큰 즐거움이다.

세기말 아름다운 삶의 멜랑콜리

수수께끼 풀듯이 읽기
소설이 수수께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파악할 수 있는 줄거리는 매우 빈약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사건들과 묘사가 이어지며, 대체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후고 폰 호프만스탈의 단편소설 「672번째 밤의 동화」도 그런 작품이다.

인간이 자연현상의 일부라는 인식의 전환은 무엇보다도 인간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새로운 관점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는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결정론적인 인간관이고, 다른 하나는 성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자연과학적 사고방식하에서 인간을 자연현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와 삶이 예외 없이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특정한 인간 개체의 존재와 삶은 그를 둘러싼 유전적, 환경적 조건들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뜻하며, 그 결과 ‘자유의지’나 ‘신의 뜻’과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들은 개입할 여지가 사라지고 만다.

이제 인간은 신과 자연 사이에 위치하는 특별한 존재에서 유전과 사회ㆍ경제적 조건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자연현상으로 그 위상이 변화하게 되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이드, 자아, 초자아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이드는 정신의 가장 본질적인 영역으로서 성 욕망과 성 에너지로 이뤄져 있다.

초자아는 교육과 사회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으로서 성 욕망을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의지를 뜻한다.

그리고 우리가 ‘나’라고 인지하는 자아는 성 욕망과 이것을 통제하려는 슈퍼에고 사이에서 방황하는 불안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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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유럽의 자랑이 된 괴테의 등장
확실히 독일문학은 괴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물론 괴테 이전에도 독일에 여러 뛰어난 작가가 있었지만, 문학사적인 의미 때문이 아니라 작품 자체의 뛰어난 완성도 때문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작가는 많지않다.

괴테는 1832년 3월 22일에, 그가 50년 이상 삶과 예술의 터전으로 삼아왔던 바이마르에서, 아마도 심근경색으로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82세 때의 일이었다.

지적인 아름다움과 외적인 아름다움이 이렇게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다른 사례를 나는 알지 못한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후에 괴테를 직접 만나 밝힌 바와 같이, 이 소설을 일곱 번이나 읽었으며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무수한 모방을 부른 ‘베르테르효과"

그러나 『젊은 베르터의 고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독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베르터를 전통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가정의 평화를 교란하는 인물로 바라보았다. 또한 이들은 이 소설이 젊은이들을 자살로 이끈다고 비판했는데, 이는 근거가 없는 주장이 아니었다.

오늘날 밝혀진 바로는 『젊은 베르터의 고통』 발표 직후 베르터를 따라 자살한 남성들이 최소 12명에 이르렀다. 우리가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사회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인칭 시점이 아닌 편지 형식을 선택한 이유
굳이 정리한다면 『젊은 베르터의 고통』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베르터라는 이름의 한 젊고 감수성이 풍부한 남성이 약혼자가 있는 여인 로테를 짝사랑하다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는 것. 너무나 간결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줄거리다. 도대체 이 간단한 이야기로 그렇게 긴 소설을 쓸 수 있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것에 머물러서는 여러 작품을 쓰기 어렵다. 토마스 만이나 브레히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나 레프 톨스토이, 에밀 졸라나 귀스타브 플로베르 등 세계 문학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작가들은 모두가 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는 시기를 극복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 등 경험적 차원을 넘어서는 작품들을 쓴 작가들이다.

계몽주의는 독일어로 ‘Aufklärung’이라고 하는데, 이는 ‘aufklären’이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이때 aufklären은 auf(열다)와 klar(선명한, 분명한), -en(동사화 어미)이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로서, "(무엇을/누구를) 열어서 분명하게 하다", 즉 "(누군가의 눈을) 열어 분명하게 보여주다"라는 뜻을 가진 타동사다. 따라서 이 동사의 명사형은 ‘눈을 열어 분명하게 보여주기’라는 의미를 가진다.

계몽주의란 미신과 비이성적 사고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 진실을 가르쳐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계몽은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는 미성숙의 끝이다. 미성숙은 다른 사람의 지도를 받지 않고 스스로의 이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만약 미성숙의 원인이 이성의 결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겠다는 결정과 용기의 결여에 있다면, 이러한 미성숙은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다. 자페레 아우데! 자기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라는 것이 바로 계몽주의의 슬로건이다.

계몽주의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 글에서 칸트는 계몽이란 ‘미성숙을 끝내는 것’, 즉 ‘미성숙한 자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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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의 성장이 의미하는 것
헤세가 보낸 전환기적 유럽의 시대적 상황은 『데미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데미안』은 지나간 시대와의 완전한 종결이자 현대적 세계질서의 고통스러운 탄생을 의미했던 1차 세계대전 중에 집필되었고, 1919년에 발표되었다.

싱클레어의 성장은 선과 악의 구분, 윤리, 종교, 관습에 따라 규정되는 전통적인 가치체계에서 벗어나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삶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데미안』은 전통적인 기독교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간관과 세계관, 새로운 가치체계를 만들어나가야만 했던 당대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충실한 대답인 것처럼 보인다.

내 스스로의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 하는 것, 오로지 그것만을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그런데 "내 스스로의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꿈을,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우리 내면 깊은 곳으로 숨어버린 순수한 소망을 의미할까? "내면"에 대한 『데미안』의 다른 구절들을 살펴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내 책상 위에는 니체의 책 몇 권이 놓여 있었다. 나는 니체와 함께 살았다. 그의 영혼의 고독을 느꼈고, 그를 쉼 없이 몰아친 운명의 냄새를 맡았으며, 그와 함께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토록 가차 없이 자신의 길을 갔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행복해했다.

인간 개체는 세계의 근원적 의지, 즉 세계의 근원을 이루는 거대한 욕망이 그 실현 과정에서 개별화된 존재로 분화된 것이며, 따라서 우리를 지배하는 욕망 역시 세계의지의 개별화된 발현에 불과한 것이다.

『데미안』을 읽는 동안 우리는 모두 이렇게, 비록 한순간일 뿐일지라도, 우리 내면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우리가 유일무이한 소중한 존재이며, 동시에 세상의 중심임을 느낀다.

바로 그것이 『데미안』을 통해 헤세가 보여준, 진정으로 인간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얼마나 오해를 했든 『데미안』이 우리에게 남겨준 감동과 위안은 언제나 옳다.

일반적으로 독일문학은 줄거리가 재미있기보다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작가들을 놓고 보면 이러한 평가가 딱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다른 나라의 문학과 마찬가지로 독일문학도 수백 년의 역사 동안 무수히 많은 다양한 작가들을 배출한 만큼, 모든 시대, 모든 작가들을 아우르는 특징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헤세는 한 인터뷰에서 『데미안』이 늙은 삼촌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싱클레어를 작가로 발표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헤세는 당시 『수레바퀴 아래서』 등을 통해 이미 이름이 많이 알려진 작가였기 때문에, 『데미안』이 ‘헤세’라는 작가에 대한 선입견 없이 읽히기를 바랐던 것이다.

단 한 문장도 허투루 쓰인 것은 없다
-젊은 베르터의 고통

『젊은 베르터의 고통』에서 놀라운 것은 각각의 층위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 서로 방해하거나 모순을 일으키지 않으며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양파껍질을 벗기듯 한 꺼풀씩 벗겨가며 즐길 수도 있고,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감상할 수도 있다.

‘슬픔’이 아닌 ‘고통’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데미안』 못지않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 소설이다. 그런데 이 제목은 조금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제목은 일본식 표기와 영어 번역의 영향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제목임에는 틀림없다.

다행히 ‘젊은 베르터의 고통’이라는 올바른 번역을 제목으로 가진 번역본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으니, 익숙하지만 잘못된 번역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점점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베르테르 신드롬’이라는 개념이나 괴테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및 오페라의 제목 ‘베르테르’까지 바뀌는 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기는 하다.

나는, 물론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탓에
그렇게 많은 친구들을 뒤로 하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그런데 지난 밤 꿈속에서
그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더 강한 사람들이 살아남는 거야."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증오했다.
 
이것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는, 독일의 유명한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쓴 시 「나, 살아남은 자Ich, der Überlebende」이다.

나치에 저항하여 싸우던 시적 자아는 어느 날 전투에서 운 좋게 홀로 살아남았다. 뜻을 같이한 동료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이 생존은 시적 자아에게 기뻐할 만한 일이었을까? 나라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동지들이 모두 기뻐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과연 나는 혼자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기뻐할 수 있을까? 살아남았기 때문에 오히려 처절한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브레히트는 단 세 개의 짧은 문장만으로 잘 묘사해내고 있다.

실제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많은 젊은이들의 희생과 눈물을 발판 삼아 이뤄진 이 땅의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에 널리 읽혔고,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뜨거운 눈물이 맺히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이 시를 읽으며 자신의 친구가, 선배와 후배가 다치고 죽어가는 사이에 자신은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느꼈던 자괴감과 괴로움, 안타까움이 되살아남을 느끼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극복해야 할 부조리가 차고 넘치긴 하지만 어쨌든 곤봉과 방패, 최루탄과 싸우는 것이 더 이상 일상은 아닌, 오늘날의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독자들은 80년대의 젊은이들이 브레히트의 시를 읽으며 느꼈을 그 감정을 똑같이 느끼기는 어려울것이다.

괴테의 또 다른 이름, 독일 고전주의

독일어로 Klassik, 영어로는 classic인 ‘고전’은 classicus라는 라틴어에서 온 형용사로, 원래 ‘상류층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가, ‘최고 수준에 속하는, 모범적인’으로 의미가 확장된 것이다. 이 단어는 이후 유럽 문명의 출발점이자 전범인 고대 그리스의 예술을 뜻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으며, 근대에 와서는 고대 그리스의 예술을 전범으로 삼는 최고의 예술이 꽃을 피웠던 시기를 지칭하는 예술사조의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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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답이 있다.’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독일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문학작품을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내 삶의 일부와도 같은 작가와 작품을 분석과 치밀한 해석의 틀 안에 밀어 넣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
조금은 도발적인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보던 여자가 말한다.
"안 마시면?"
남자가 잠시 숨을 돌리고 대답한다. 여전히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한다.
"평생 볼 일 없는 거지."

문학작품의 ‘해석’은 줄거리 이면에 무언가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단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만 하면 우리는 그것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한 조각씩 찾아내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선 세심한 독서다.

『데미안』을 작가의 의도에 따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헤세와 그가 살아간 시대의 독일에 대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데미안』을 해석해야 한다.

"신은 죽었다" 새로운 세계관의 탄생
 
작가 외에는 그 무엇도 되려 하지 않다

당시 선생님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유롭고 고집이 세며 에너지가 넘치는 학생이었던 헤세는 다루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엄격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헤세는 학교 무단이탈 등의 문제를 일으키다 급기야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된다.

1906년에 마울브론 신학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수레바퀴 아래서Unterm Rad』가 발표된 후에는 작가로서 그의 입지가 더욱 탄탄해졌다.

헤세가 1946년에 만년의 대작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오히려 그의 고국에서 환영의 목소리가 크지 않았던 것도,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헤세의 작품들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었다. 1919년 이래로 스위스에서 살았던 헤세는 지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최소한 주류에 속하는 독일인들에게는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헤세는 1962년에 스위스의 작고 아름다운 도시 몬테뇰라에서 눈을 감았다.

내면으로의 길을 안내하는 『데미안』

헤세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그의 삶을 관통하는 몇 개의 키워드가 눈에 띈다. 바로 방황, 저항, 방랑과 같은 것들이다. 이는 강압적인 교육에 신음하는 소년을 묘사한 초기작 『수레바퀴 아래서』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과 방랑을 이어가는 이들의 이야기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와 만년의 대작인 『유리알 유희』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들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발전소설, 혹은 성장소설은 독일문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괴테의 장편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Wilhelm Meisters Lehrjahre』(1795/96)에서 처음 그 전형이 만들어진 이후 독일 소설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은 소설 형식이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 내면에 무엇이 있기에 헤세는 이렇게 집요하게 내면으로 들어갈 것을,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혹은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이야기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헤세가 살아간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정신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프로메테우스가 흙으로 만든 인간의 형상에 숨결을 불어넣어 생명을 깨웠듯이 "자연과학의 숨결이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것이었다.

자연과학은 이제 ‘만물에 깃든 진리’, 즉 모든 자연현상 이면에 숨어 있는 자연법칙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학문으로 이해되었다. 이에 따라 문학, 철학 등 자연과학과는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인문학에서도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아르노 홀츠Arno Holz는 예술을 지배하는 자연법칙을 두고 "예술=자연–x"라고 주장했다.

역시 자연주의 작가이자 평론가였던 콘라트 알베르티Konrad Alberti는 질량보존의 법칙이 소설을 지배하며,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드라마를 지배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자인 에밀 졸라Emile Zola가 「실험소설론」이라는 에세이에서 인간 행동과 운명은 물리적ㆍ유전적 조건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삶의 물리적ㆍ유전적 조건만 주어진다면 소설을 통해 사회 문제나 사회 정책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오귀스트 콩트는 인간의 지식이 3단계에 걸쳐, 즉 "종교의 시대–철학의 시대–과학의 시대"를 거쳐 발전하며, 인간에 대한 연구 역시 자연과학적 방법론, 즉 구체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법칙에 도달하는 귀납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철학사적 측면에서 실증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유럽 문화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온 인간 이해에 대한 급진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인간을 자연과학적 방법에 따라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은, 인간 역시 절대적인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자연현상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세계관 아래서 인간은 다른 자연적 존재들과는 달리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신과 자연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독교가 세계관과 인간관, 가치체계의 중심으로서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너무나도 유명해진 니체의 문장 "신은 죽었다"로 요약할 수 있는 19세기 중후반의 이러한 상황은, 곧 가치체계 중심의 부재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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