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의 힘을 빼며 앞으로 구른다. 낙하하는 느낌에 몸을 싣는다.

죽여! 때려죽여!

머리를 재빨리 가랑이 쪽으로 숙이며 다다미를 박차서 몸을 굴리고 원심력과 온몸의 힘을 왼손 하나에 모아 다다미를 힘껏 내려친다. - P-1

승강기 앞에 도착하자 시노자키가 버튼을 누른다. "하긴 구라 선배는 유난히 짐승과니까요. 하치오지 남서 최고의, 아니 경시청 최고의 수컷고릴라랄까 혹멧돼지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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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엔딩 크레딧 이판사판
안도 유스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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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기는 활기차게 움직이며 오늘도 새로운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책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천천히 스러져 갈 것이다.

우라모토는 생각했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 아닐까. 그것을 자문한 결과 책 만드는 일을 선택했다. 인연의 힘에 끌려 스스로 택한 길이다.

그리고 스러져 가는 것은 패배하는 것이 아니다. 스러져 가는 책을 만드는 일을 선택하여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패배하는 일은 없다.

스러져 가는 것을 지키는 인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기 때문에 더욱 좋아하지 않고서는 계속해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비장감이 아니라 계속 만들어 나가는 것에 대한 긍지와 평소의 성취감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책 제작은 계속될 것이다. 우라모토의 눈앞에서 확실하게 계속되고 있다.

완성을 기다리는 책이 끊이지 않는 한 책이 없어진다는 공포에 떨고 있을 틈이 없다. 스스로 선택한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앞으로도 책을 만들어 갈 것이다.

책은 필수품. 그 말을 가슴에 새긴다.

거대한 재난을 보면서 무력감에 시달리지만, 우리가 하루하루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믿고 싶다.

우라모토와 도요즈미인쇄 사람들에게 그 일이란 책을 만드는 것이다.

책은 바이러스를 없애지 못한다. 책은 역병을 고치지 못한다.

그래도, 이 기나긴 비상사태 세상에도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사람의 마음을 공감해 준다느니 용기를 준다느니 하는 그런 의욕은 내려놓고 생각해 본다.

그렇다. 우리는 책이라는 필수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책의 엔딩 크레딧 | 안도 유스케 저,이규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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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5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엔 아직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걸요. 굳이 의미를 찾지 않아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데 책은 그저 만들어져야합니다. ^^
 

일이란 고객을 위해, 가족을 위해, 다른 누군가를 위해 하는 것이고 나를 위함은 아니라고 믿어 왔다. 마음속 어디선가 나를 위해서와 남을 위해서는 양립할 수 없으며, 남을 위해서는 나를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틀렸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 혹은 뭔가에 도움이 되는 것은 나의 행복으로 연결된다. 나를 위해서 일해도 되는 것이다. - P-1

누군가를 위해서가 나를 위해서가 되고, 나를 위해서가 누군가를 위해서가 된다. 그렇게 계속 믿고 지낼 수 있도록 책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 P-1

"직속 상사란 사람을 상대할 때는 말이지, 능숙하게 부려먹으란 말이야.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높은 양반을 설득할 재료를 내 손에 들려 주고 올라가서 싸우라고 부추기란 말이야." - P-1

"우라모토 씨, 말 잘했어. 우리가 만든 책이야. 고마워." - P-1

"꿈은, 내가 맡은 일을 하루하루 실수 없이 마치는 것. 그리고 인쇄기 가동률을 유지하는 것." - P-1

무사히 책이 완성되어서 다행이다. 마무리가 훌륭해서 다행이다. 작가가 기뻐해 주어서 다행이다. 수주 증가를 바라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제본소 젊은 사장이 기뻐해 줘서 다행이다. 나카이도와 서로 인정해 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오늘은 소소하나마 여러 가지로 다행이었다. - P-1

설사 천직이 아니어도 좋다.
이 일을 하길 잘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을 일상의 갈피갈피에서, 도처에서 만난다면 아마 행복할 것이다. - P-1

설사 천직이 아니어도 좋다.
이 일을 하길 잘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을 일상의 갈피갈피에서, 도처에서 만난다면 아마 행복할 것이다. - P-1

"선택지는 많지 않아. 침몰을 기다릴지, 침몰 전에 탈출할지, 침몰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할지. 나는 오래전에 결론을 냈어. 우라모토 씨는 어때?" - P-1

"이 세상에 책이 남아 있는 한 도망치지 않고 전력을 다할 겁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일감도 떨어지고 급료를 못 받으면 먹고살 수가 없잖아요." - P-1

"인쇄 회사는 모노즈쿠리이다. 하강 곡선을 그릴 때야말로 우라모토 씨의 긍지가 버팀목이 될지 몰라."
외근을 나가려고 하는 나카이도의 뒷모습을 향해 우라모토는 엉겁결에 말했다.
"꿈은, 내가 맡은 일을 하루하루 실수 없이 마치는 것. 그리고 인쇄기 가동률을 유지하는 것." - P-1

"최첨단 기계에 제일 나이 많은 인쇄공을 붙였으니 신구 콤비였죠. 인쇄기는 함께 일하는 동료입니다. 여러분, 작업에 쓰는 연장이나 필기구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 P-1

후하게 대우하겠다는 월드인쇄의 스카우트 제안을 뿌리치고 도요즈미인쇄에 남는 쪽을 선택한 노즈에인 만큼 그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 P-1

‘돈 때문이지.’

전에 ‘무엇을 위해서 일하느냐’고 물었을 때 노즈에는 그렇게 대답했다. 우라모토는 그때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 P-1

"판권은 책의 엔딩 크레딧입니다.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 남편, 부인의 이름도 적혀 있습니다." - P-1

"‘판권은 책의 엔딩 크레딧이다. 회사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했어요. 알고 보니 우라모토 씨의 말씀이었군요." - P-1

책은 필수품. 그 말을 가슴에 새긴다.

거대한 재난을 보면서 무력감에 시달리지만, 우리가 하루하루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믿고 싶다.

우라모토와 도요즈미인쇄 사람들에게 그 일이란 책을 만드는 것이다.

책은 바이러스를 없애지 못한다. 책은 역병을 고치지 못한다.

그래도, 이 기나긴 비상사태 세상에도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사람의 마음을 공감해 준다느니 용기를 준다느니 하는 그런 의욕은 내려놓고 생각해 본다.

그렇다. 우리는 책이라는 필수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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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실수였죠. 사과하고 즉시 가져다 주었는데요."

"그런 작은 실수가 신뢰를 해치지. 좋은 책을 만든다는 둥 뜬구름 잡는 소리 하기 전에 당장 눈앞에 있는 작업에 집중하는 게 어때." - P-1

컬러 견본을 엉뚱하게 전달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해도, 마침 오다의 불신이 깊어졌을 때 월드인쇄 영업자가 자꾸 찾아오자 거래처를 바꾸게 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 P-1

"제가 생각하는 사양과 비용 등 여러 가지에서 합의가 안 돼서요. 뭐, 간단히 말하면 제가 짜증이 나서 ‘관둡시다’라고 끝내 버렸죠."

"그래서 저희 회사에 문의하셨군요. 감사합니다." - P-1

"실은요, 제가 소설은 이번에 처음 맡아 봅니다." - P-1

"월드는 출판인쇄 점유율을 석권할 작정으로 움직이고 있어. 싸우는 방식부터가 차원이 달라. 우리는 기존 고객을 소중히 여기고 신규 거래처 획득도 지금의 고객을 바탕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봐."

"자네는 천생 미스터 꿍이군. 귀찮은 일이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최대한 기분 좋게 하는 게 낫지."

"컬러가 생각대로 나온 날은 일을 잘했다 싶고 실패한 날은 기분도 찝찝하고 주눅이 들지. 기술자의 하루하루는 그 둘 가운데 하나야."

주점 미닫이문을 열고 남녀 네 명이 들어왔다. 자리는 거의 만석. 술이 제법 들어갔는지 자리마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방감 가득한 기분 좋은 소란이다.

‘에치고의 호랑이인 아버지는 까마득히 먼 존재다. 하지만 새끼 호랑이는 강자를 따르며 살아남았다.’

양부 우에스기 겐신의 뒤를 이어 도요토미-도쿠가와 시대를 살아 간 가게카쓰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프롤로그의 한 문장이다. 이 작품을 늘 곁에 두는 아마쿠사는 영화계의 호랑이인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발버둥치고 있을 것이다.

이번 『나가시노의 바람』도 부친 다케다 신겐에게 풍림화산風林火山의 기치를 물려받은 다케다 가쓰요리의 고뇌를 중신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네가시마
포르투갈산 철포가 최초로 전해진 규슈 가고시마 현에 있는 섬으로, 초석, 유황, 숯 조달에 유리하여 전통 화약 생산이 활발했다

"일을 그렇게 너무 깔끔하게만 진행하려고 하지 마. 쩔쩔매도 좋으니까 선배나 상사에게 울며불며 매달려도 돼. 책을 기한 내에 완성시키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그럼 노즈에 씨는 무엇을 위해 일하지?"
무엇을 위해. 요즘 스스로 누차 물었지만 답을 찾지 못한 물음이다. 아니, 답을 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돈이지."

판권은 책의 엔딩 크레딧이다. 제작에 관여한 모든 이의 이름을 실을 수는 없지만 ‘도요즈미인쇄주식회사’ 너머에는 노즈에나 지로 씨, 후쿠하라, 우라모토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종이 구입처를 알아봐 준 게이단샤 업무부의 요네무라 신코나 기후의 이나바야마지업 사람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뇨, 오쿠다이라 씨는 원래 저런 편집자인지도 모릅니다. 작가나 작품을 위해서 때로는 오만해지기도 하고 싹싹하게 굴기도 하죠. 보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한 방편이 아닐까요."

"인쇄 회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보다 나은 책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좋은 책이란 뭘까를 고민해 보면 답은 하나가 아니죠. 꼭 디자인이 좋다거나 만듦새가 튼튼하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가르쳐 주는 것 같아요."

‘인쇄기는 같이 일하는 동료야. 귀하게 대하면 보답해 주지.’

막 입사했을 때 들었던 말인데, 규 씨는 심각한 병으로 쓰러졌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았구나.

"같이 일하는 동료잖아. 인쇄공은 인쇄기와 함께 일하는 거니까."

"아니, 더 힘을 쏟아야 합니다. 우리 인쇄 회사는 매일 방대한 종이를 사용하며 책을 찍습니다. 독자 손에 전해질 때까지 여러 회사가 중간에 마진을 빼 갑니다. 이참에 솔직히 말하지만……."
후리하타는 일동을 둘러보더니 호흡을 한 번 고르고 나서 말했다.
"종이책은 기득권 덩어리입니다."

역전 헌책방 무사시야서점 주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책과 작별하는 것은 아쉽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양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후쿠하라는 사람이 싫었다. 하지만 책에 관련된 사람들은 좋아할 수 있었다.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리더 시라오카,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 주며 어려운 업무를 맡겨 주는 우라모토, 소중한 장서를 구입해 주는 무사시야서점의 주인 아저씨. 책에 관련된 사람들은 그녀를 온전한 한 인간으로 인정해 주었다. 그것은 아마 자신이 책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후쿠하라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었을 뿐 아니라 타인과 연결해 주었다.

"저이가 월드에 있었기 때문에 서로 알게 되었고 도요즈미로 이적했기 때문에 여기서 이렇게 벚꽃놀이를 하고 있잖아요. 인연의 끈이 여러 가닥 이어져서 지금 여기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도요즈미인쇄, 좋은 회사니까요."

"월드인쇄는 워낙 다양한 것들을 인쇄해서 장차 어떤 라인에 배치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도요즈미인쇄에 남으면 나는 계속 책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판단한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 도움을 주는 것을 만들고 싶다는 동경. 후리하타가 풍기는 헝그리 정신의 근원은 거기에 있었다.

"시대가 변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어. 전용 단말기가 좀 더 보급된다면, 판로가 좀 더 확대된다면, 좀 더 많은 작품이 디지털화된다면…… 하면서."

상하권 총 30만 부의 본문을 인쇄하는 방대한 작업은 기계만으로 혹은 사람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양자가 한 몸으로 움직여야 가능한 작업이다.

책은 언젠가 사라져 버릴 것인가.

"도요즈미인쇄라는 글자 너머에는 전체 직원의 이름이 새겨겨 있는 거야. 판권은 책의 엔딩 크레딧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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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프다."

그렇게 말하고 유카리는 가스레인지에 오뎅을 데웠다. 유카리는 곤약을 몹시 좋아해서 한여름에도 오뎅을 먹는다. - P-1

"농담이 아니라 확실히 일하지 못하면 월드 쪽에 다 빼앗겨요."

오쿠다이라가 소리 죽여 말했다. 마냥 협박은 아닐 것이다. 사실 지난달에도 단행본 일감을 월드인쇄에 빼앗겼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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