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제도에서 약탈을 통해 얻은 부는 다음탐험의 비용으로 충당되었다. 에스파냐 탐험가들은 곧 대륙 본토로 공격해 들어갔다. 섬과 달리대륙 내부에는 상당히 발전한 문명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만 다른 대륙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화한 아스테카, 마야, 잉카 같은 문명들은서구 문명에 비해 무력이나 행정 조직, 생태 환경요소 등 여러 면에서 취약성을 안고 있었으므로어이없이 무너져버렸다(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이것을 해명하는 책이다). (다이아몬드 1998) - P761
아메리카대륙에서는 소수의 정복자들이 어이없을 정도로 손쉽게 제국을 와해시키는 일이 반복되었다. 1532년에는 피사로가겨우 180명의 군인과 27마리의 말을 가지고 군인 수만 명이지키는 잉카제국을 멸망시켰다.(Bertrand 20196, 187) 11월15일 카하마르카(Cajamarca)에서 피사로의 공격은 30분만에완료되었다. 이곳에 모인 주민 3만명 대부분이 사망했다. - P761
"신은 하늘에, 국왕은 먼 곳에있으므로 여기에서는 내가 명령을 내린다(Dios está en elcielo, el rey está lejes, y yo mando aqui)"는 것이 현실이었다.(Subrahmanyam 1993, 108~109) - P764
아메리카 문명의 정복은 ‘영혼의 정복‘, 곧 기독교화로 완성된다.(주경철 2008, 8장)‘전도국가‘를 자처하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입장에서 볼 때멕시코와 페루의 기독교 개종은 핵심 과제이다. - P767
"인디오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악마를 함께 숭배한다. 양자는 서로 조화를 이룰수 있고 서로 친척이라는 것이다.......그들은 삼위일체의 신비, 신과의 합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성모의 무염수태(無染受胎), 미사, 부활 같은 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의심을 품는다." - P769
아메리카는 어떤 상품을 수출했을까? 주요 수출 상품으로는가축과 수지(獸脂), 설탕, 인디고, 코치닐, 목재(재목용과 염색용) 등이 있다. 이 목록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축과 수지의 수출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아메리카대륙에말과 소가 늘었음을 말해준다. 유럽인의 도래 이전에는 없었던말과 소가 남북 아메리카의 넓은 평원의 주인공이 되고 카우보이 문화 혹은 가우초 문화가 이 지역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이는 원주민 인구가 크게 줄고 그 빈자리를 동물들이 차지하는비극적 사태를 증언한다. - P774
기관실에 들어간 그는 우선 컵라면의 봉지를떼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부었다. 그리고는 큰 유리잔에 소주를 붓고 한숨에 마셨다. - P14
물론, 내가 이 꽃들을 사랑하게 된 약간의 이유는 있다. 스물두세살의 가을날, 나는 도보 여행중이었다. 그때 나는 알베르 카뮈의 수상집을 배낭에 넣어두고 있었다. <티파사에서의 혼례>라는 글이 그첫머리에 실려 있었다. ‘티파사‘는 카뮈가 찾은 이 지상‘이라는말의 대유적 표현이었으며 ‘혼례‘는 ‘가장 빛나는 삶이란 뜻의 은유였다. 어느 황혼녘 강둑에서 나는 그 글을 읽었다. - P16
‘티파사‘를살일, 증언할 일.예술 작품은 그 뒤에 따라올 것이다.여기에만이 ‘자유‘ 가 있다. - P16
우리나라의 대부분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성복의 두 번째 시집은 첫 번째 시집보다 그 문학적 열정 및 영혼의 감응력이 떨어졌다.삶이 그를 일찍 노숙케 한 때문일까. 돌아간 김현 같은 이가 이성복의 시 세계에 대하여 ‘치욕의 시적 변용‘이란 상당히 매력적인 지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테마는 두 번째 시집보다는 첫 번째 시집에 어울릴 것이었다. 첫번째 시집에서 떨어진 빛의 가루들이 두 번째 시집의 책갈피를 잠깐씩 반짝이게 하는 격이었다. - P20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 <남해 금산> - P21
<5페이지>책이 세상 모든 책들이그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아하지만 가만히 알려주지그대 자신 속으로 돌아가는 길그대에게 필요한 건 모두 거기에 있지해와 달과 별그대가 찾던 빛은그대 자신 속에 깃들어 있으니그대가 오랫동안 책 속에 파묻혀구하던 지혜펼치는 곳마다 환히 빛나니이제는 그대의 것이리-- 헤르만 헤세
1580년 펠리페는 ‘물려받았노라, 샀노라, 정복했노라‘ 라는 말과 함께 포르투갈왕이 되었다. - P720
1519년 9월 20일, 마젤란은 트리니다드호를 비롯한 5척의 배에 2년치 보급을 싣고 237명의 선원을 데리고 산룩카르 데 바라메다에서 출항했다. - P724
남은 사람들은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Juan SebastiánElcano)의 지휘하에 귀국 항해를 했다. 인도네시아의 티토레섬에 도착하여 출항 후 처음으로 환대를 받고 상품을 교환하여향신료를 실었다. 1522년 9월 6일 18명의 유럽인과 3명의 말레이인이 마침내 산루카르 데 바라메다에 도착했다. 2년 11개월 2주 걸려 세계를 주항한 것이다. 세계는 바닷길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밝혀졌다. - P727
태평양 항로 열기마젤란의 항해로 아메리카가 미지의 남방대륙(TerraAustralis Incognita)에 붙어 있지 않으며, 태평양도 항해가가능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그러자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간 영역 구분선이 어디인지를 놓고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1524년부터 양측 전문가들이 모여서 논의한 끝에 1529년 사라고사(Zaragoza)조약을 체결했다. 그 내용은 몰루카제도 동쪽 300리그를 구분선으로 삼는 것이다. 이 조약에 따라 동남아시아의많은 섬은 포르투갈 관할이 되고, 에스파냐는 태평양의 섬들을관할하게 되었다. 양국은 이번에도 성실하게 회의를 하여 구분선을 획정한 다음 곧 조약 내용을 위반하는 일을 반복했다. 필리핀은 구분선 서쪽에 있으므로 포르투갈 관할이었지만, 에스파냐는 13년 후 필리핀(‘펠리페의 땅‘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발견 당시 에스파냐의 왕세자이고 나중에 국왕이 되는 펠리페에서 온 이름이다)을 식민화하고 멕시코-필리핀 항로를 개척하고자 했다.1 - P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