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실에 들어간 그는 우선 컵라면의 봉지를떼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부었다. 그리고는 큰 유리잔에 소주를 붓고 한숨에 마셨다. - P14

물론, 내가 이 꽃들을 사랑하게 된 약간의 이유는 있다. 스물두세살의 가을날, 나는 도보 여행중이었다. 그때 나는 알베르 카뮈의 수상집을 배낭에 넣어두고 있었다. <티파사에서의 혼례>라는 글이 그첫머리에 실려 있었다. ‘티파사‘는 카뮈가 찾은 이 지상‘이라는말의 대유적 표현이었으며 ‘혼례‘는 ‘가장 빛나는 삶이란 뜻의 은유였다. 어느 황혼녘 강둑에서 나는 그 글을 읽었다. - P16

‘티파사‘를살일, 증언할 일.
예술 작품은 그 뒤에 따라올 것이다.
여기에만이 ‘자유‘ 가 있다. - P16

우리나라의 대부분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성복의 두 번째 시집은 첫 번째 시집보다 그 문학적 열정 및 영혼의 감응력이 떨어졌다.
삶이 그를 일찍 노숙케 한 때문일까. 돌아간 김현 같은 이가 이성복의 시 세계에 대하여 ‘치욕의 시적 변용‘이란 상당히 매력적인 지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테마는 두 번째 시집보다는 첫 번째 시집에 어울릴 것이었다. 첫번째 시집에서 떨어진 빛의 가루들이 두 번째 시집의 책갈피를 잠깐씩 반짝이게 하는 격이었다. - P20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이성복 <남해 금산>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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