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보고] 김홍신의 『대발해』 1~10권 통합 – 건국의 기상, 중흥의 위용, 그리고 중앙 통제력 붕괴로 무너진 대발해 228년의 흥망

1. 전체 개요

가. 목적
ㅇ (건국과 흥망분석) 『대발해』 1~10권 전편의 흐름을 통합적으로 분석함.
ㅇ (국가운영원리고찰) 고구려 멸망 이후 재건, 발해 건국, 성장과 중흥, 후기 붕괴와 멸망의 과정을 국가 운영의 측면에서 고찰함.
ㅇ (역사적 함의 도출) 대발해의 멸망이 단순한 외침의 결과가 아니라, 내부 질서가 장기적으로 붕괴한 끝에 도달한 구조적 비극이었음을 규명함.

나. 시대적 및 공간적 배경
ㅇ (시대적 배경) 668년 고구려 멸망 이후 유민의 재기와 발해 건국, 성장과 중흥, 그리고 926년 대인선의 항복에 이르기까지의 동북아 격변기를 포괄함.
ㅇ (공간적 배경) 당나라의 억류지 영주(營州)에서 출발해 요하와 천문령을 거쳐, 고구려의 옛 땅인 만주 벌판과 상경용천부(홀한성), 등주 원정로, 일본 교역로 및 고려 망명로에 이르는 동북아시아 전역이 주요 무대로 작용함.

다. 핵심 요지
ㅇ (건국과 전성기) 대발해는 고구려 계승 의식과 말갈 연합을 바탕으로 건국되었고, 대조영·대무예·대흠무·대인수를 거치며 동북아의 강국으로 성장함.
ㅇ (중기 혼란의 누적) 그러나 대흠무 이후 대원의·대화여·대숭린·대원유·대언의·대명충으로 이어지는 잦은 권력 변동은 황실 질서와 통치 안정성을 점차 약화시킴.
ㅇ (후기의 붕괴) 대인수의 중흥 이후에도 대이진·대건황·대현석·대위해·대인선으로 이어지는 후기 황실은 중앙 통제력을 잃고, 끝내 거란의 총공세가 마지막 타격을 가하며 발해는 멸망함.

2. 건국기: 망국의 잿더미에서 발해를 세우기까지
ㅇ (대중상의 재건 구상) 고구려 멸망 직후 대중상은 유민과 말갈 세력을 규합하며 재건의 사상적·조직적 기틀을 다짐.
ㅇ (대조영의 부상) 대조영은 고구려 계승 의식을 체현한 지도자로 부상하며, 공동체의 생존과 재건을 동시에 이끄는 중심 인물로 형상화됨.
ㅇ (천문령의 대전환) 대조영은 천문령의 험준한 지형을 활용해 당의 대군 추격을 꺾고, 건국의 군사적 조건을 마련함.
ㅇ (신승의 전략과 건국의 완성) 천문령의 승리는 태사 신승의 전략적 설계와 대조영의 실행력이 결합된 결과로 분석됨. 이후 대조영은 동모산에서 국호를 발해라 정하고 연호를 천통으로 선포하며 국가 체제를 완성함.

3. 성장기: 대무예·대흠무 시기 강국 대발해의 확립
ㅇ (대무예의 공세적 기상) 대무예 시기 발해는 선제적 대응과 공세적 기세를 앞세우며 동북아 강국의 면모를 드러냄.
ㅇ (장문휴와 등주 공격) 장문휴와 양소화의 활약은 발해가 필요할 경우 당의 본토까지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강한 나라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줌.
ㅇ (대흠무의 문치와 수성) 대흠무 시기 발해는 정복국가를 넘어 수성국가이자 문명국가로 성숙함.
ㅇ (흑수정벌과 국가운영의 고도화) 장문휴의 활약과 흑수 정벌, 제도 정비, 불교 권위와 천도 구상은 발해가 군사국가를 넘어 안정된 문명국가로 발전했음을 보여 줌.
ㅇ (신씨 가문의 국가 반석) 태사 신승을 비롯한 신씨 가문의 태사 전통은, 발해가 강한 군주만이 아니라 충신 전통과 관료 질서 위에 세워진 나라였음을 드러냄.

4. 중기 혼란기: 대흠무 이후 황실 혼란과 권력 변동
ㅇ (대원의의 찬탈) 대원의는 정당한 계승이라기보다 찬탈에 가까운 방식으로 권력을 장악하며 문왕 이후 황실 질서를 흔듦.
ㅇ (잦은 왕위 교체) 대화여, 대숭린, 대원유, 대언의, 대명충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짧은 재위와 불안정한 권력 교체가 반복되는 혼란기적 성격을 드러냄.
ㅇ (찬탈의 귀결) 대원의가 끝내 황자들에게 피살되는 대목은, 황실 내부 권력 질서가 얼마나 거칠고 불안정하게 무너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줌.
ㅇ (과도기의 의미) 이 시기는 단순한 왕명 교체가 아니라, 대인수의 중흥이 왜 필요했는지를 설명하는 장기 혼란의 과도기로 분석됨.

5. 중흥기: 대인수의 반전과 대발해의 최대 판도
ㅇ (중흥 군주의 등장) 대인수는 누적된 혼란을 수습하고 다시 국운을 일으킨 군주로 형상화됨.
ㅇ (최대 판도의 구축) 대인수 시기 대발해는 철리·흑수 정벌과 북방 질서 장악을 통해 최대 판도를 이룩하며, 군사적 위용과 제국적 자신감을 가장 강하게 드러냄.
ㅇ (문자, 제도, 자존의 강화) 문자와 제도의 정비, 대외 자존 의식의 강화는 대인수 시기가 단순한 군사적 팽창을 넘어 대발해의 문명적 자신감을 드러낸 전성기였음을 보여 줌.
ㅇ (중흥의 한계) 그러나 이 성취는 강한 군주 개인의 역량에 크게 기대고 있었고, 후대 황실이 이를 안정적으로 계승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남김.

6. 붕괴기: 대이진, 대건황, 대현석, 대위해, 대인선과 대발해의 최후
ㅇ (중흥 이후의 혼란) 대이진과 대건황 시기 황실은 다시 흔들리고, 왕권의 안정적 복원보다 내부 취약성이 더 선명하게 드러남.
ㅇ (대현석의 마지막 재건 시도) 대현석은 대건진의 전횡을 제압한 뒤 사면과 관용, 탕평과 군비 증강으로 나라를 다시 세워 보려 하였으나, 중풍과 장기 투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함.
ㅇ (대위해의 타락) 대위해는 13년 재위 동안 주색과 불로장생술, 측근 정치에 빠져 통치 기강과 자정 기능을 허무는 실정 군주로 전락함.
ㅇ (대인선의 자멸) 대인선은 황음과 폭정, 의심에 기울며 중앙 통제력을 스스로 와해시킴. 충신을 숙청하고 스스로 방어벽을 허무는 자멸적 지도자의 전형을 보임.
ㅇ (거란의 총공세와 멸망) 야율아보기가 서북방의 실위와 당항 등을 꺾고 발해를 먼저 깨뜨려야 한다고 판단하는 반면, 발해는 흑수말갈 등의 이반과 내부 반란, 황실의 자중지란으로 중앙 통제력을 상실한 끝에 925~926년 거란의 총공세 앞에 붕괴함.
ㅇ (해동청과 대광현) 멸망의 순간 해동청의 마지막 일격은 발해가 군사적으로는 패망하였으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음을 상징함. 대광현의 고려 망명은 계승의 마지막 불씨를 남김.

7. 종합 결론 및 역사적 소회

가. 주요 인물 평가
ㅇ (건국과 성장의 축) 대중상·대조영·대무예·대흠무·대인수는 각각 재건, 건국, 공세적 성장, 문치와 수성, 중흥을 이끈 핵심 군주로 평가됨.
ㅇ (충신과 관료 전통) 태사 신승과 신씨 가문, 장문휴와 양소화는 대발해의 국가 운영과 군사력, 충신 전통을 상징하는 인물들로 평가됨.
ㅇ (혼란과 붕괴의 축) 대원의는 찬탈의 상징으로, 대위해와 대인선은 말기 황실 붕괴와 자멸을 보여 주는 군주로 평가됨.
ㅇ (계승의 여운) 대광현은 멸망 뒤에도 남은 유민 의식과 계승의 마지막 불씨를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됨.

나. 거시적 고찰
ㅇ (건국동력과 연합체제) 발해의 성장은 고구려 계승 의식과 말갈 세력의 연합이라는 이중 동력 위에서 가능했으며, 이 결합이 초기 국가 성장의 핵심 기반으로 분석됨.
ㅇ (강한 군주와 충신의 결합) 대조영·대무예·대흠무·대인수 같은 군주들의 역량과 태사 신승, 장문휴 같은 충신의 결합이 대발해를 강국으로 세운 실질적 원동력으로 평가됨.
ㅇ (과도기 혼란의 중요성) 대흠무 이후 대원의부터 대명충에 이르는 잦은 황위 교체는 대발해의 중기 구조를 크게 흔든 핵심 변수로 분석되며, 대인수의 중흥을 이해하는 전제가 됨.
ㅇ (내부 붕괴와 외침) 대발해는 외침 한 번에 갑자기 사라진 나라가 아니라, 장기적인 황실 불안과 중앙 통제력 붕괴가 먼저 진행된 뒤 거란의 총공세가 마지막 타격을 가한 경우로 분석됨.

다. 최종 판단
ㅇ (구조적 자멸) 대발해의 멸망은 외부의 군사력에 의한 우발적 패배가 아니라, 지도층의 타락과 안보 무능, 민심 이반과 핵심 지지 세력의 이탈이 임계점에 달해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린 필연적 붕괴로 분석됨.
ㅇ (문학적 완결) 작품은 멸망의 순간 야율아보기의 풍지혈을 공격한 해동청의 일격을 통해, 군사적 패망 속에서도 제국의 불굴 기상과 자존을 끝내 지워지지 않는 상징으로 완성함.
ㅇ (역사적 교훈) 건국의 기상과 중흥의 위용에도 불구하고 228년 대발해가 허망하게 무너진 과정은, 오늘날의 국가 운영에 있어서도 지도층의 도덕적 각성과 시스템 정비, 그리고 끊임없는 내부 혁신과 민심 통합이 생존의 절대 조건임을 엄중히 경고함.

존명(尊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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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의 대발해 10 - 발해여 발해여 김홍신의 대발해 10
김홍신 지음 / 아리샘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독서보고] 김홍신의 『대발해』 10권, 발해여 발해여 – 중앙 통제력의 와해와 내분의 극치, 그리고 대발해의 허망한 최후

1. 대발해 10권 전체 개요

가. 목적
ㅇ (자멸과정분석) 대현석 이후 대위해와 대인선 치세에 극에 달한 황실의 폭정과 방탕, 간신 정치와 자정 능력 상실의 과정을 분석함.
ㅇ (외교안보실패) 야율아보기가 서북방의 실위와 당항을 꺾고 거란을 대제국으로 성장시킨 반면, 발해는 핵심 지지 세력인 흑수말갈 등의 이반을 막지 못하고 고립되어 거란의 총공세를 자초함.
ㅇ (멸망원인규명) 대제국 발해가 외부의 침공 이전에 내부의 기강 해이와 민심 이반으로 완벽하게 자멸해 간 구조적 원인을 고찰함.

나. 시대적 및 공간적 배경
ㅇ (시대적배경) 881년(대현석의 대건진 척살 및 중흥 시도)부터 926년 1월(거란의 침공으로 인한 대인선의 항복)까지 약 45년간의 시기임. 당나라 멸망과 거란의 통일 등 대외 격변 속에서 발해 내부의 통치력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228년 사직이 종막을 고하는 최종 몰락기임.
ㅇ (공간적배경) 중흥의 의지와 피비린내 나는 폭정이 교차하는 발해 황궁, 반란이 끊이지 않는 비사성과 말갈 지경, 그리고 최후의 항복이 이루어지는 홀한성 일대임.

다. 핵심 요지
ㅇ (중앙 통제력의 와해) 대현석 이후 황제권은 급속히 허약해지고, 대위해와 대인선은 국정 안정보다 방탕과 향락, 의심과 폭정으로 국가의 근간을 스스로 허물어뜨림.
ㅇ (외교안보실패) 북방 압박이 오래 누적되었음에도 발해는 이를 일관되게 수습하지 못하고, 내부 반란과 분열 속에서 거란의 총공세를 맞음.
ㅇ (내전과분열의극치) 외적이 심장부로 다가오는 와중에도 황실과 조정, 지방 세력은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각자 갈라져 움직이며 국가를 끝내 지켜 내지 못함.

2. 주요 내용 전개

가. 대현석의 중흥 시도와 비극적 좌절
ㅇ (반정진압과 관용) 대현석은 권지국사 대건진의 찬탈 기도를 제압한 후, 대규모 숙청 대신 사면과 관용을 베풀어 국가의 기상을 다시 세우려 노력함.
ㅇ (탕평과 인재중용) 적손과 방계, 문무 간의 갈등을 탕평책으로 다독이고, 창검 앞에서도 직언을 멈추지 않았던 배정과 ‘운칠현‘ 같은 강직한 인재들을 중용함.
ㅇ (강성대국구상) 주변국의 내란을 틈타 군사 조련과 군비 증강에 힘쓰며 발해를 다시 강성대국으로 도약시키려 정진함.
ㅇ (발병과 붕괴의 시작) 친히 군사 훈련을 지휘하다 중풍으로 쓰러져 7년간 투병하면서 통치 질서가 급격히 사분오열되고 권신들이 발호하는 비극의 전초가 됨.

나. 사방에서 조여오는 멸망의 올가미와 외교적 고립
ㅇ (거란의 패권장악) 야율아보기가 916년 스스로 황제에 올라 돌궐과 당항 등 북방 제부족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며 제국화에 성공하고, 발해를 반드시 정리해야 할 배후의 핵심 적수로 인식함.
ㅇ (말갈연합의 와해) 발해 지배층의 차별과 통합 실패에 한계가 온 흑수말갈 등 핵심 부족들이 거란의 회유와 압박에 흔들리며 이반하고, 국가를 지탱하던 북방 방어벽이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림.
ㅇ (외교적 완충지 소멸) 907년 당나라가 멸망하고 신라마저 후삼국 내전으로 쇠락하며, 발해를 지탱하던 국제 질서와 외교적 방패막이는 사실상 사라짐.

다. 대위해의 폭정과 충신의 몰락
ㅇ (치세의 타락) 대위해는 13년의 재위 기간 동안 선대 대현석이 되살리려 했던 중흥의 흐름을 이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주색과 불로장생술에 광적으로 집착하여 국고를 탕진하고 기강을 무너뜨림.
ㅇ (자정기능상실) 황제의 난행을 비판한 배구와 사관들을 숙청하고 측근 정치에 의존하여 국가의 통치 기강과 자정 기능을 파괴함.
ㅇ (권위추락과 최후) 사사로운 총애에 휘둘려 황제권이 극도로 허약해진 끝에 측근들에게 살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으며 말기 발해의 붕괴를 노골적으로 노출함.

라. 대인선 즉위와 반복되는 우행
ㅇ (초기수습과 한계) 태자 출신인 대인선은 즉위 초반 일정 부분 국정 수습을 시도하나, 점차 정사보다 사욕에 기울고 위기 국면에서 결단을 미루며 사태를 악화시킴.
ㅇ (황음무도) 후반으로 갈수록 호계주에 취해 고명회, 고명지, 달시화, 왕수량 등 여러 여인에게 둘러싸여 향락에 빠지고, 말기 황제의 극심한 궁중 문란을 드러냄.
ㅇ (혼군의 완성) 의심과 광증 속에 고문과 숙청을 자행하고 충신을 배척함으로써, 외적 침입 이전에 통치 중심부부터 무너뜨리는 발해 멸망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함.

마. 민란과 반란의 확산
ㅇ (민란의 도미노) 황실의 폭정과 수탈에 분노한 백성들이 비사성, 속말수, 태백산 등지에서 봉기하고, 말갈 세력까지 이탈하여 반란에 대거 가담함.
ㅇ (국가시스템붕괴) 반란이 지역 소요를 넘어 도성과 국정 운영 자체를 위협하고, 지방이 중앙 통제를 벗어나면서 황실·조정·지방·군대가 분열하여 통일된 국가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함.

바. 충신의 간언과 받아들여지지 못한 현실
ㅇ (현실인식) 배구는 거란 및 반란의 위협, 민심 수습, 군제 정비의 필요성을 가장 정확히 짚어낸 충신으로 묘사됨.
ㅇ (충언무력화) 그러나 대인선은 충언을 제때 실행하지 못하고, 간신과 측근의 감언이설에 흔들리며 위기 대응에 실패함.
ㅇ (언로차단) 충신들이 하옥, 유배, 숙청되며 언로가 막힌 것은,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폭주할 때 이를 제어할 최소한의 브레이크를 상실했음을 보여줌.

사. 거란의 총공세와 발해 멸망
ㅇ (전격적 침공) 925년 12월 거란이 대군을 동원하여 발해 정벌을 결행했으며, 발해는 이미 내부 반란과 분열로 국력이 심각하게 소모된 상태였음.
ㅇ (방어선 붕괴) 부여성과 홀한성 등 핵심 요충지가 급속히 함락되고, 다수의 지휘관과 지방 세력은 끝까지 항전하지 못한 채 와해됨.
ㅇ (충신의 최후) 장사진, 배구 등 충신들이 끝까지 항전하며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나, 구조적으로 붕괴된 국가를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음.
ㅇ (자중지란) 외적이 도성으로 진격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황실과 귀족 간의 권력 다툼이 지속되며 최후의 방어선마저 안팎으로 무너짐.
ㅇ (비참한 항복) 결국 대인선이 항복함으로써 도성과 황궁이 거란에 넘어가며 228년 사직이 마감되었고, 참매의 죽음이 이 비극적 멸망의 상징으로 제시됨.

아. 대광현의 망명과 마지막 불씨
ㅇ (대인선의아들) 대광현은 대인선의 아들인 태자로, 발해 황실의 마지막 계승 축에 놓인 인물임.
ㅇ (고려망명) 발해 멸망 직전 대광현은 도성을 빠져나가 고려로 망명함으로써, 발해가 완전히 소멸한 것이 아니라 유민과 계승의 여운을 남겼음을 실증적으로 보여 줌.
ㅇ (보국의상징) 대광현은 멸망의 잿더미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마지막 불씨이며, 10권의 결말을 단순한 파국이 아닌 새로운 역사의 시작으로 열어놓는 핵심 인물임.

자. 참매(해동청)의 일격과 불멸의 발해 정신
ㅇ (해동청의일격) 멸망의 순간 대인선의 해동청이 야율아보기의 치명소로 여겨지는 풍지혈(風池穴)을 모질게 쪼고 창공으로 날아오르며, 마지막까지 꺾이지 않는 발해의 기개를 상징적으로 보여 줌.
ㅇ (인과응보의서사화) 작품은 풍지혈을 다치면 오래 살지 못한다는 복선을 깔아 두고, 실제 역사상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멸망시킨 그해인 926년 9월 급사한 사실과 겹쳐 인과응보의 서사적 울림을 만들어 냄.
ㅇ (정신적승리와불멸성) 이는 발해가 군사적으로는 패망하였으나, 침략자의 수괴에게 마지막 치명적 일격을 가함으로써 제국의 자존심과 불굴의 기상을 끝내 잃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해석됨.

3. 인물 및 통치 평가
ㅇ (대현석) 대건진 제거 뒤 친정에 나서 사면과 탕평, 인재 중용과 군비 증강으로 나라를 다시 세워 보려 한 군주로 10권에서 비교적 명군에 가까우나, 중풍과 장기 투병 끝에 뜻을 이루지 못함.
ㅇ (대위해) 13년 재위 동안 국정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주색과 불로장생술에 빠져 말기 발해 혼란을 심화시킨 군주이며, 끝내 측근에게 살해당한 사실이 그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 줌.
ㅇ (대인선) 초반의 수습 가능성을 스스로 허비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황음무도와 폭정, 의심과 무능에 빠져 발해 멸망의 직접 책임이 가장 큰 혼군임.
ㅇ (고정균, 고정웅 등 간신세력) 간신 정치와 권력 농단, 뇌물 수수와 궁중 문란을 통해 국정을 더욱 어지럽힌 간신 세력임.
ㅇ (배구와 장사진 등 충신세력) 끝까지 충정을 다하며 항전하였으나, 이미 구조적으로 붕괴한 국가를 되살리지는 못한 비운의 충신들임.
ㅇ (대광현) 대인선의 아들인 태자로, 발해 멸망 뒤 고려로 망명하여 마지막 계승의 여운과 유민 의식의 불씨를 남긴 인물임.
ㅇ (야율아보기) 거란을 통합하고 발해를 멸망시킨 영걸로, 동북아 질서를 다시 짠 외부 주체라 할 수 있음.

4. 거시적 고찰 및 역사적 함의
ㅇ (자정장치파괴) 군주를 견제하고 바로잡아야 할 간쟁과 감찰 기능이 황제의 방탕과 폭력 앞에 무너지면서, 발해가 잘못된 방향으로 질주할 때 제동을 걸 브레이크를 잃음.
ㅇ (안보시스템붕괴) 국제정세는 빠르게 변하고 북방 압박은 누적되었으나, 발해는 군비 강화와 국방력 정비에 실패하고 내부 반란까지 겹치며 스스로 방어선을 허물어뜨림.
ㅇ (국민통합실패) 황실의 폭정과 간신 전횡, 지배층의 사적 탐욕은 백성과 말갈 세력의 이반을 불렀고, 국가를 지탱할 핵심 동력을 스스로 잃게 만듦.
ㅇ (내부붕괴와외침결합) 발해는 내부 붕괴로 이미 멸망이 예견된 나라였고, 거란의 침공은 그 위에 가해진 최종적 타격이었음.
ㅇ (계승의마지막여운) 그럼에도 대광현의 고려 망명은 발해의 멸망이 완전한 소멸만은 아니었음을 보여 주며, 유민과 계승 의식이 이후까지 이어졌음을 드러냄.

5. 종합 결론 및 역사적 소회
가. 멸망의 본질
ㅇ (구조적자멸) 발해의 멸망은 외부의 군사력에 의한 우발적 패배가 아니라, 지도층의 타락과 안보 무능, 민심 이반이 임계점에 달해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린 필연적 붕괴임.
나. 역사적 교훈
ㅇ (자정기능상실) 아무리 강대한 국가일지라도 내부의 비판적 언로를 차단하고 지도층이 도덕적으로 파탄 날 때, 외적이 침노하기 전에 이미 생명력을 잃는다는 사실을 증명함.
다. 총평 및 제언
ㅇ (내부혁신과통합) 228년 대발해의 허망한 최후는, 오늘날의 국가 운영에 있어서도 지도층의 뼈를 깎는 도덕적 각성과 시스템 정비, 그리고 끊임없는 내부 혁신과 민심 통합만이 생존을 담보하는 절대적 전제 조건임을 엄중히 경고함.

존명(尊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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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은 은밀히 황친 대성진, 대아명을 설득하고, 보국대장군 최감천, 태복경 대현사와 신득원을 비롯한 무장들을 포섭했다. 이제 하늘에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어가행렬은 경계가 삼엄해서 백성들은 모두 숨을죽였다. 기르는 개가 어가행렬을 보고 짖었다가 참변을 당한 전례가 있기에 백성들은짐승 단속까지 해야 했다.

잠자리에 들었던 오윤문은 방문을 걷어차고 들어온 군사들에게 도륙되었다. 황제를 배행했던 태자 대한상은 도끼날에 목이달아났다.
침궁으로 밀입한 박자갑은 벌거벗은 황제에게 어의를 내밀었다.

"폐하, 천명을 받으시옵소서. 천하를 농단했으니 자진하여 죄를 씻으시옵소서!"
박자갑은 날선 칼 한자루를 황제 앞에놓았다. 대위해가 엉겹결에 칼을 받았다.
"좌우를 물려라!"
박자갑이 명하자 무기 든 군사들이 물러섰다. 황제가 스스로 자진하는 걸 볼 수 없게 하려는 배려였다.
대위해는 두 손으로 칼을 부여잡았지만끝내 목에 칼을 박지는 못했다. 대위해가칼을 던지는 순간 박자갑의 칼날이 대위해의 목덜미를 향해 내리꽂혔다.

날이 밝자 황친과 대신들은 대세를 거역할 수 없음을 알고 마침내 황자 대인선을옹립했다.   
황위에 오른 대인선은 진신들의 주품을받아들여 선제 대위해의 폭정을 들어 폐위하고 연호를 파했다. 또한 백성들의 원성을들어 시호와 묘호를 추증하지 않기로 했다.천심을 거역한 황제였기에 황위에 올랐던대위해의 치세를 파하기로 했다.

대인선은 좌우를 물리고 배정을 회유하려고 했다. 그러나 배정은 한사코 거절했다.
배정은 도성을 떠나기 전, 매를 좋아하는대인선에게 참매 한 마리를 바쳤다. 아직새끼의 때깔을 벗지 않았으나 눈매가 유난히 날카로운 매였다. 예부터 고구려는 매를해동청이라 부르며 영물로 여겼다. 대인선은 배정이 참매를 바치는 뜻을 알 것 같았다. 참매와 같은 강력함과, 번뜩이는 눈매 같은 예지로 장차 정사를 올바르게 펼치라는 충정이었다.

금사미단 계안상신.’
금실은 끊어지지 않았고, 닭의 눈은 새롭기만 하다는 뜻이었다. 대인선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이 글을 풀어보면 금사(음막,처녀막)가 찢어지지 않았고, 계안(음핵)은아직 해말간 색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낭자는 교접한 적이 없는 진녀임이 분명하다는 뜻이었다

예부터 음부에 털이 없는 백, 치구가 불룩한 고, 살결이 부드러운 연, 음문이 붉은 홍, 교접 때죄는 긴, 이렇게 다섯 가지를 갖춘 여인을존귀하게 여겼다. 특히 계안이 해맑고 붉어야 했다. 곡실이라고도 불리는 계안은 작을수록 정숙하다고 했는데, 흔히 수척한 여인이 풍만한 여인보다 큰 편이었다. 그래서예부터 수척한 여인이 색을 밝힌다는 말도있었다. 그런 까닭에 대인선의 배필은 풍만한 여인으로 정해졌다.

"폐하, 옛일을 상기해야 하옵니다. 고구려가 멸망할 때 당나라는 거란과 말갈을 꾀어 선봉에 서게 했사옵니다. 지금도 강성해진 거란이 말갈부를 꾀면 삽시에 준동할 수있사옵니다. 선제께서 그들을 박대하고 조세와 부역을 무겁게 했으며 변방으로 쫓았사옵니다. 그 서러움이 분노가 되었으니 지금 진무해야 하옵니다. 통촉하옵소서."

나라가 안돈하자 사라졌던 승려 담오가법화사로 돌아와 불사를 일으켰다. 무너진채 방치됐던 석탑을 다시 쌓기로 했는데,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서였다. 오윤문이 대위해에게 바쳐올린 진신사리는 진품이 아니었다. 진신사리를 지키기 위해 모조품을 만들어 사탑 밑에 두었다고 했다.
이에 황궁에 모셨던 가짜 진신사리는 폐기했다.

당나라 멸망의 가장 큰 근원이 민심 이반이었고, 발해도 그런 조짐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대인선도 알고 있기에 가슴이 무거웠다.

"어쩌다가 사직이 피폐해지고 백성이 곤궁해졌는고?"
"곤궁한 백성들은 의명선사가 살해당한뒤부터 불도를 버리고 도교를 찾게 되었사옵니다. 이것은 조서를 내려 막을 수 없고군사로도 막을 수 없사옵니다."
"짐도 선제의 명을 받아 도교 경전인 도장을 익혔도다."
백성들이 먼저 난세를 알아본다고 했다.예부터 난세에는 점복이 횡행하고 주술로가산을 탕진하며, 사술 부리는 자들이 기승했다.

"도사 자양과 여도사 백화고가 정말 귀신을 부리는고?"
대인선은 세상이 어지러운 틈에 백성들을 현혹하는 무리를 척결하지 않고는 국기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신이 생각하기로는 사술이 분명하옵니다."
"그러면 당장 척결하라."

"지금은 때가 아니옵니다. 자양과 백화고를 따르는 무리가 너무 많아 때를 기다려야 하옵니다. 두 도사를 따르는 자들은 사물에 현혹되고, 현세에 분노한 무리들이어서 극력 저항할 것이옵니다."

달시화는 발해 여인들과 다른 눈빛 때문에 환몽 같은 신비감을 자아냈다. 무엇인지알 수 없는 게 온몸 가득 숨겨져 있는 듯했다.
대인선을 맞아 방술을 펼칠 때는 물들인비단을 비비대서 빛깔을 빨아내듯 정염을불태웠다. 대인선은 황홀경에 취하며 비로소 선제들이 여색에 빠진 까닭을 알았다.

거란의 군국사를 총괄하던 야율아보기가 8개 부족의 가한에 올랐다는 소식은 또 한번 발해 조정을 놀라게 했다. 거란의 8부는 연합하여 3년마다 한 번씩 질립제(선거제도)로 8부를 통치하는 가한을 선출했다.
야율아보기의 야심은 거대한 중원 땅을경략하는 것이었으니, 발해로선 콧등에 호랑이가 앉은 꼴이었다. 대인선은 오소도의주청을 받아들여, 담대하고 해박한 문적원소감 배구를 북서쪽 거란 땅으로 밀입케했다.

"중원 땅은 넓고 백성 또한 많사옵니다.중원을 평정하려면 반드시 발해를 먼저 짓쳐들 수밖에 없사옵니다. 중원을 공격할 때 배후의 발해가 저들의 근심이옵니다."

"군사를 길러 강병을 만드는 게 첫째요,재정을 견실히 하여 민심을 붙잡는 게 둘째이고, 말갈의 이탈을 막는 게 세 번째 현책이옵니다. 신라와 화친을 도모하고, 일본과교역을 증대하며, 주전충의 양나라와 친선하고, 아보기의 거란과도 화친해야 하옵니다. 그러나 황친국척, 백관, 사족들의 호사를 막지 못하면 결코 민심이 돌아올 수없사옵니다. 폐하, 수라상에 일곱 찬을 넘지 않게 하시고, 황후를 비롯하여 황자와공주는 물론 태후까지도 비단과 보석 치장을 금하옵소서."

해를 넘겨 무진(908)년 정월에 당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이축이 기어이 주전충에게죽임을 당했다. 주전충과 쌍벽을 이루던 사타족 출신 이극용도 천수를 다해 이승을 하직했다.

애제 이축이 붕어했다는 소식을 접한 대인선은 재상 오소도와 대성악, 황친 대진해의 주품을 받아들여 검소령을 내렸다.
배구가 예견한 대로 이축이 살해됐고, 거란은 남진을 거듭하며 위세를 높였기에 용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백성들은 검소령을 거역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무섭게 치죄하겠다는 황제의 조서를 잊지 않았다.
 
대인선은 며칠이 지나도 대진례를 치죄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지엄한 조서가 무용지물이 되는 걸 보면서 은근히 황제를 원망했다.

문적원 소감 배구가두 차례나 상소했으나 대인선은 대진례를문죄하지 않았다. 배구가 알현을 청했지만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재상 오소도와 대성악은 황제가 한 번 내린 조서를 황제 스스로 거스르면 국기가 문란해진다고 간쟁했다.

"사람이 귀신과 교접하는 것으로, 한번그 환몽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고들었사옵니다."
"가엾게도 대공주는 도사가 준 단약을먹고 환몽을 헤매다 귀교하게 되었도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얼마 살지 못할 텐데……."
대인선은 말을 잇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췄다. 배구는 그제야 대진례에게그런 아픈 사연이 있어 징치하지 못했음을알았다.

모든 정기를 귀신에게 빼앗기며 혼비의무아경에 빠지고, 한 방울 진액마저 모두빨려 백산의 황홀경에 빠지는 동안 처참할정도로 탈기되어 죽는다.
"대공주는 환몽에 시달리다 비단옷에 치장을 하고 춤추고 노래했도다. 짐이 어찌대공주를 징치하겠는가?"
대진례를 문죄할 수도, 그렇다고 공주가귀교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황제의 심정이느껴졌다.

"마마를 출궁하여 징치하고, 통력을 가진 도사에게 치병을 명하시면 국기도 바로잡고 마마를 구원할 수 있사옵니다. 궁 밖에서는 마음 놓고 무의를 펼치고 약도 쓸수 있사옵니다."
대인선은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연을 품고 있었다. 대진례의 침방에서 여러 개의쇄양으로 만든 방이 나왔다.

방이란, 물가에 배를 대거나 물이 얕은곳을 밀어갈 때 쓰는 상앗대를 뜻하지만,실제는 남자의 옥근처럼 만든 물건을 말했다. 물속을 찌르는 상앗대를 남자의 옥근으로 비유해서 쓰는 말이었다

거란의 야율아보기는 남진하여 진동에장성을 쌓으면서 요동의 남쪽으로 진출할태세를 갖추었다. 발해와 양나라 사이의 통로를 차단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다.

"아보기 곁에는 유능한 책사와 병법에능한 장수들이 매우 많사옵니다. 기습하여우리의 전력을 탐지할 테니 칙지를 내리시어 적이 기습하면 반드시 추격하여 섬멸하라 명하옵소서. 발해를 침노하면 반드시 보복당하는 전례를 남겨 적을 방비하옵소서."

야율아보기는 전술에만 능한 게 아니라정세 판단에도 뛰어났다. 사람에게 절실한소금을 조달하기 위해 염전을 수중에 넣어백성에게 소금을 싼 값에 공급하고, 중원에서 온 당인들을 농경과 길쌈에 진력하게 하여 백성들의 삶을 풍족하게 했다.
그들에게 철을 다루는 법을 익혀 무기를만들고, 중원의 강역을 상세히 그리게 하여중원을 공격할 때 이용했다. 그들을 길잡이로 삼아 중원을 기습하여 전과를 올리기도했다.

"지난날에 패군이 나라를 다스려 백성이곤궁하고 나라가 어지러웠지만, 지금은 현군을 만나 군사를 증강하고 변방의 경계를엄중히 하여 민심을 수습했나이다. 우리가발해를 정복하려면 적어도 10년을 기다려야 하나이다."

진나라에도 각저라고 불리는 씨름이 있었지만, 기상이 넘치는 고구려 씨름만 못했다. 주몽이 즉위하기 전 계루부의 족장일때 고추가들과 씨름을 겨루었듯, 고구려 씨름은 그 시절부터 기개가 넘치고 독특해서각별히 요교라고 불렸다. 이런 씨름이 전승되어 지금 발해 벌을 달구고 있었다. 이를두고 상하가 한마음이 되어 큰마당을 펼치기 때문에 쾌어심이라 했다.

야율할저는 조아린 채 뛰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저런 기개와 웅혼함 때문에사방에서 고구려를 두려워했고, 발해를 범하지 못했음을 알았다. 야율아보기도 강병을 길렀지만 저 기개를 당할 수는 없으리라.
야율할저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온몸이굳어지는 걸 느꼈다. 그는 내친 김에 황제에게 주청하여 수군의 위용을 살펴보겠다고 했다. 대인선은 기꺼이 수락하고 홀한해에 다녀오라고 명했다.

"이 길로 가면 하루를 벌 수 있습니다.발해 군사들은 늘 이 길로 다닙니다."
이강국은 굳이 먼 길을 돌아가지 말고지름길로 가자고 우겼다.
"나는 황명을 받은 몸으로 상세히 표문을 올리기 위해서 천하를 살펴야 한다. 말머리를 돌려라!"
야율할저가 명했다. 황제의 명을 받아 발해 군사의 동태를 감찰하는 감군관이 아닌가. 그의 명을 거역하기 어려웠다.
"말머리를 돌려라!"

"누구든지 할저를 주살하면 천금을 내리겠다. 사력을 다하라!"
미사건이 소리 질렀다. 두 식경도 채 되지 않아 감군관 일행을 추격한 군사들이 무섭게 공격했다. 감군관 일행도 맞서 싸웠으며, 야율할저도 칼을 빼들었다. 군사 수효가 열세인데도 야율할저는 두려워하지않았다. 그러나 호위 군사들이 쓰러지고 큰아들 야율무정의 목이 달아나자 도망치기시작했다.
이강국은 기다렸다는 듯 용맹한 수하 몇명을 앞세우고 추격했다. 야율할저를 태운말은 대인선이 하사한 명마 중의 명마가 아닌가. 맹렬한 속도로 나는 듯 내달렸다. 흑사령 계곡으로 들어섰다면 어김없이 주살했으련만, 야율할저는 무슨 낌새를 챘는지길을 에돌았고, 명마를 휘몰아 멀리 도주했다.

그러나 변고는 엉뚱하게 번졌다. 고경단이 밝힌 전모는 놀라웠다. 호위 장수 이강국을 문초하여 캐낸 내용은 태복경 겸 보국대장군 양금당이 배후에 있고, 양금당과 공모한 자는 재상 오소도와 대성악이라고했다. 대인선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양금당과 이강국을 즉시 참수하고, 두 재상은 차마 죽일 수 없어 유배했다.

대인선은 유배된 오소도와 대성악을 참하고, 배구를 비롯한 강직한 신하들을 모두삭탈하여 하옥했다. 조정 중신들은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바른 정사에 후덕했던 황제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이해할 수없었다.

거란군은 국경을 넘어 부여성으로 진격했다. 수자리를 서며 국경을 지키던군사들은 물밀 듯 짓쳐드는 거란군을 막지못하고 도주했다.

그해 9월 초사흘, 거란의 영걸 야율아보기는 서방 정복을 마치고 환궁했다. 공신들에게 훈공을 내리고 장졸들을 호궤한 야율아보기는 황태자 야율배, 둘째아들이자 대원수인 야율요골을 비롯하여 황후 술율, 동생 야율질라와 발해를 공격할 때 선봉으로삼을 장수 척은안단, 소아고지를 불러들였다.

정월 병자(19)일에 야율아보기는 근시 강말달을 비롯한 13명을홀한성으로 보내 모든 병장기를 수습하게 했다. 분개한 발해의 패망 군사들이 일어나 이들을 모두 살해했다.

적의 공격이 사나워지자, 양지각과 이변성이 즉시 주모자를 잡아 성 밖으로 던져 항복을 알리고 성문을 열었다.

눈발이 굵어지기 시작하는데, 허공에서 해동청 두 마리가 바람과눈발을 가르며 야율아보기를 향해 내리꽂혔다.

그러나 참매 한 마리는 야율아보기의 뒷머리 쪽 오목한 풍지혈을 모지게 쪼고 창공으로 한껏 날아올

대인선은 바등거리다가 사지를 쪽 뻗은 해동청을 쓰다듬었다. 참매는 숨이 멎었다.
마치 발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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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탄일을 맞아 어화원에는 푸짐한연석이 차려졌다. 권지국사를 비롯한 만조백관이 모였고 황친국척과 구신은 물론, 변방의 도독과 자사들도 참여했다. 겉보기에는 황제의 탄신을 하례하러 온 듯했지만 사실은 내일 아침 등극하는 대건진을 경하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때 진단대장군 장복사가 썩 앞으로나섰다.
"폐하, 지금 칙계하시면 진신들이 엎드려 받들겠사옵니다."
대현석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천하를 농단한 권지국사를 어찌하여 치죄하지 않으시옵니까?"

"진신들은 모두 국사의 명을 따르라."
"신이 설사 죽더라도 폐하의 뜻을 따를수 없사옵니다."
그리고는 표정이 일그러진 대건진을 향해 소리쳤다.
"진단대장군 장복사는 칙지를 받들어 권지국사 대건진을 대역죄로 포박한다."

그때 대건진의심복이었던 금군대총관 임천중이 칼을 높이 들고 외쳤다.
"황상을 받들지 않으면 누구든 처단하겠다."
임천중의 목소리가 살을 벨 듯 살벌했다.

"황상께 맹약의 삼배를 올리시오!"
경기군대총관 김진문이 목청을 갈았다.한두 사람씩 일어나 황제를 향해 절을 올렸다. 진신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에게예를 갖추었다.
그렇게 살벌한데도 황제를 등지고 당당히 걸어나가는 사람이 일곱명이나 되었다.

"참으로 순려하도다. 저것이 발해의 기상이거늘……."
무혈반정을 일으켜 황휘를 찬탈하려던대건진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를 옹립하려 했던 측근들은 죄의 경중에 따라 정배되거나 삭탈당했지만, 피비린내 나는 참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라를 다스리는 치자라면 사무치는 자비심을 가져야 하오. 관용과 용서는 강자의덕목이오. 보살심이 없으면 군자가 아니니치자가 되어서는 아니 되오."
양아림은 공신들에게 자비심을 잊지 말라고 했다.

"구신과 공신들을 함께 중용하는 게 어떠한고?"
"폐하, 대국을 다스림에 있어 친근하다고 해서 가까이해도 아니 되고, 소원하다고멀리해도 아니 되옵니다. 이익이 된다고 추구하거나 손해가 된다고 해서 버려도 아니되옵니다. 사람도 너무 귀중히 여겨도, 너무 천하게 여겨도 아니 되옵니다. 무릇 벼슬에 있는 자들은 모두 불안하여 밤잠을 설치고 있으니, 지난날의 죄업을 모두 사면하옵소서. 오히려 창검 앞에서 굴하지 않고폐하를 논힐한 운칠현에게 관작을 높여주는 게 발해의 기상을 살리는 길이옵니다.그러면 천하가 모두 엎드려 폐하를 숭상할것이옵니다."

"경은 어찌하여 마음이 하해와 같은고?"
"폐하, 신의 마음은 비온 뒤 생긴 소발자국에 괸 물처럼 흐리고 얕사옵니다.다만……."
장복사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마는 눈치였다.
"듣고 싶도다."
대현석이 채근했다.
"신은 은밀히 의명선사의 가르침을 받고있사옵니다."
"의명선사는 입적하지 않았는고?"
대현석은 의명선사가 스스로 법화사 대웅전에 불을 질러 혜진옹주와 함께 산화했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덕산대사와 의명선사만을 노린 게아니라 모든 절을 폐하고 승려들을 환속시키는 폐불을 단행하려 했기에, 덕산대사는스스로 대웅전에 불을 지르고 홀로 몸을 살라 소신공양을 했다. 그 덕분에 폐불이 단행되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성각사와 법화사가 중건되었다.

역신 대건진의 반정을 부추겼던 대소신료들의 지난 죄를 모두 사면하고 부화뇌동했던 황친과 구신들의 죄도 묻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반정을제압한 공신들조차 훈공하거나 초천하지않아 더욱 의아해했다.
대현석의 성덕은 널리 퍼져나갔다. 황제를 흠경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대현석의 탄신일에어화원의 살벌한 눈초리에도 굴하지 않고큰소리로 황제를 나무랐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배정을 따라 함께 걸어나갔던 일곱 명을가리켜 사람들은 운칠현이라고 불렀다. 배정을 비롯한 다섯 남자들은 벼슬이 높지 않았으나, 그 기개가 널리 알려져 청5현이라불렀다. 또한 홍2현은 문관 이정심과 무관고서운을 가리키는데, 청5현 못지않은 기개와 시문을 뽐내는 인재였다.

불안한 정정의 당나라에 변화가 왔다. 임인(882)년에는 승승장구하던 제국의 황제황소가 쇠하기 시작했다. 황소의 측근 심복이었던 주온이 반란을 일으켜 당나라에 투항했기 때문이다. 황소가 파견한 감군의 간섭과 압력을 견디지 못한 주온은 감군의 목을 베고 투항했는데, 당제 이현은 크게 환대하여 그에게 주전충이란 이름을 하사했다.

대현석은 크게 기뻐한 나머지 배정을 문적원 원감으로 삼고, 후하게 사급하여 그의공을 기렸다.
당나라는 쉽게 원기를 회복하지 못했다.3백 년 가까이 지탱해온 당조는 화북의 번진들을 회유하여 전세를 조금 역전시켰다.주온이 투항한 게 그 계기였다.

요충지 변주를 근거지로 삼은 주전충과,산서의 태원을 본거지로 삼은 이극용은 수많은 군사를 거느린 군벌로, 천하를 호령하면서 상호 견제했다. 주전충이 베푼 성대한위로연에서 술에 취한 이극용이 주전충에게 모욕적인 말을 내뱉은 게 화근이었다.분노한 주전충은 성문을 닫아걸고 이극용의 군사들을 무차별 도륙했다. 이극용은 겨우 탈출했지만 거느렸던 군사는 거개가 화를 면치 못했다.

"당나라는 해와 달이 보이지 않을 만큼어두워졌지만 군벌들이 녹록지 않도다. 거느린 군사도 수십만이니 어찌 우리가 군사를 길러 대비하지 않겠는고? 당나라가 내란에 휩싸인 틈을 타 북방에서 거란이 흥성하고 있도다. 국고는 채울 수 있지만 사직이 무너지면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도다."

"당나라는 해와 달이 보이지 않을 만큼어두워졌지만 군벌들이 녹록지 않도다. 거느린 군사도 수십만이니 어찌 우리가 군사를 길러 대비하지 않겠는고? 당나라가 내란에 휩싸인 틈을 타 북방에서 거란이 흥성하고 있도다. 국고는 채울 수 있지만 사직이 무너지면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도다."

이 무렵, 발해 황제 대현석이 군사들을이끌고 행궁으로 나가 사냥과 군사 조련을하다 쓰러졌다. 중풍으로 쓰러진 대현석은반신불수가 되어 자리에 누웠다. 군사를 길러 강성대국을 만들어 내란으로 쇠락한 당나라를 치고, 북방의 거란도 평정하겠다던대현석은 혼자서 수라를 들거나 옥음을 내릴 수조차 없었다.

은밀히천하를 평정하여 강성대국을 꿈꾸던 무장들은 통곡했다.
발해 조정은 황자 대위해를 태자로 봉하라 주청했다. 대현석은 자신의 붕어를 예견했는지 서둘러 장자 대위해를 태자로 책봉했다.

여왕은 진골의 반란으로 어지러워진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진력하던 터였는데, 남편이자 황룡사 9층 목탑을 중수한 상대등위홍이 죽자 정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왕의 숙부이기도 한 위홍은 대구화상과 함께 향가를 수집하여 삼대목을 편찬할 만큼학문이 깊었다.

신라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뭄이 들어 많은 고을에서 공물을 바치지 못했다.이렇게 나라가 어지러워진 틈에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농민 봉기를 일으켰고, 견훤과 양길이 각기 무리를 모아 반란의 싹을키웠다.

당나라에서는 이극용이 또 반란을 일으켜 중원을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주변 국가들이 쇠락하고 있을 때 발해는 겉으로 평온해 보였지만 속은곪아가고 있었다.

황제 대현석이 중풍으로 쓰러져 병석에누우면서 발해 조정은 사분오열되었다. 대현석이 치세하는 동안 탕평책으로 지그시눌러놓았던 적손과 방계손의 대립이 극에달했고, 황제의 근신과 태자를 받드는 신하들 간에 갈등이 첨예해졌다. 더구나 군세를업은 무신들과 오랫동안 권세를 누려온 문신들 사이의 암투는 목불인견이었다.
태풍을 예고한 것은 황후 양아림의 급서였다.

참기 어려운 신고의 세월을양아림이 곁에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황후의 죽음으로 대현석은 한쪽 날개가 꺾여버렸다.
황후의 급서에 대현석은 눈물 흘리며 힘들여 입술을 들먹였다.
"홀로 어찌 살라고 먼저 가셨는가……."

"황상께서는 병석에 계시고, 당나라와신라는 내란에 휩싸여 있다. 이럴 때 준동하면 하늘이 노한다."
장복사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장졸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릅니다. 분노하는 군심을 가라앉힐 묘책이 달리 없습니다."
김진문도 군심이 심상찮음을 걱정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은 당나라와북방의 거란이지, 적손이나 문신들이 아니다. 경거하고 망동하지 말라."
장복사가 군심의 동요를 알면서도 무장들을 다독거리는 이유는 한번 준동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이었다.
크게 나누어보면 적손과 문신들이 한패를 이루었고, 방계손과 무신들이 또 한패가되어 서로 다투었다.

계위하게 될 대위해는 황제가병석에 누워 신음하는데도 미소년을 불러들여 남색에 취했다. 대위해는 황후가 서거하자 마치 천하를 수중에 넣은 양 위세를부렸다.
‘붓다시여! 정의의 칼을 들어야 하나이까?’

태자는 성정이 용렬하고 포악하여 흉금이 좁으니, 대국을 다스릴 만한 그릇이 아님을 어찌 감출 수 있으리오."
장복사를 은밀히 부른 까닭을 짐작할 수있었다.
"신에게는 현책이 없사옵니다."
"천신만고 끝에 천재일우라고 하더이다.황상이 혼암하면 만백성이 신고를 겪게되니……."

이미 그 세가 만만치 않은데, 태자를 폐하고 작은아들 대봉예를 책봉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비록 대위해가 남색에 빠져 호화방탕하며 포악하지만, 조정을 장악하고 있으니 태자를 폐하려면 한바탕 회오리가 불어야 했다.
"황상께서는 천추를 다하신 듯하니 서두르시오."
"명심하여 거행하겠사옵니다."
"이것은 나라를 흥하게 하고 백성을 살리는 길이니 성심을 다해주시오."

"새벽녘에 기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공께서 관복을 벗고 삭발한 채 산사의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흉몽이 분명한 까닭은 대장부인 공께서 비구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심복을 먼저 궁궐에 보내 정황을 알아본 뒤입궐하십시오. 아녀자의 어리석은 생각도때로는 명약이 될 수 있습니다. 공의 어깨에 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밤늦게 입궐하는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는 아내의 간청을 귓전으로 흘린 장복사는서둘러 입궐했다.

장복사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금관조복을 뚫은 창검이 수십 개나 되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군 장복사는 즉시 들것에 실렸다.
그날 밤, 장복사를 따르는 임선중과 김진문을 비롯한 맹장들도 비슷한 시각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궁궐 안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이렇게 참화가 들끓는데도침궁에 누워 있는 황제는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대위해는 태자를 폐하고 대봉예를 책봉하려는 황후의 계책을 미리 알았다. 만약아우 대봉예가 태자위에 오르면 그는 천하에 낯을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황후와 장복사의 밀약을 알아낸 사람은태의 임선도였다. 황제 곁에서 치병하는 임선도를 황후는 철석같이 믿었는데, 임선도는 이미 대세의 흐름을 간파하고 대위해의심복을 자청했다.

남쪽 신라의 정세도 당나라 못지않았다.신해(891)년에는 양길의 부하 궁예가 신라의 여러 군현을 공격하여 천하를 어지럽혔고, 이듬해 임자(892)년에는 견훤이 무진주를 치고 스스로 왕이라 칭했다.

갑인(894)년, 발해 황제 침소인 침궁에곡소리가 처량하게 울려 퍼졌다. 황제 대현석은 참으로 질긴 목숨이었다. 병석에 누운지 7년 동안 초인처럼 버텼지만 하늘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승하했다.

장복사와 그 추종 세력을 처단하고문관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군사 수효를 줄이고, 태복경 대현사에게 명해 군부를 손질했다.

대위해의 침궁에는 얼굴과 몸매가 고운미소년들이 항시 대기했다. 황제에게는 이미 정궁인 고승지가 낳은 장자 대인선과 대소순이 있고, 후궁이 낳은 대우모와, 오미랑이 은밀히 낳아 기른 대한상을 비롯하여여러 공주가 있었다.

누구 한 사람 대위해의 단수를 논힐하는 자가 없었다. 세간의 수군거림을 걱정해 은밀히 총애하라고 간했던 신하가 삭탈당했다. 그러면서 벼슬아치와 사족들은 운칠현 일곱 사람이 뭔가를 도모해주길 은근히 기대했다.

"백성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죽음 앞에 나약한 자요, 막강지권 앞에 용렬한 자요, 백성들 앞에 비겁한 자라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고서운의 심정은 비통했다. 그들은 새벽까지 격론을 벌여 옳은 일에 목숨을 바치는게 도리라는 결론을 내리고 상소문을 닦기로 했다. 그리고 배정의 집으로 달려가 가족에게 피신하라고 종용했다.

또 한번 격론이 벌어지고 있는데 소식을듣고 열네 살 난 배구가 말했다.
"옛날 우왕은 바른말 하는 사람을 보면그 자리에서 절을 했다고 했습니다. 비록제 나이가 어리고 천단하나 부모님 가르침대로 바른길을 가려는데 어찌 현자들께서말리겠습니까?"

배구가 붓을 내려놓자 운칠현은 일필휘지한 상소문을 읽어보았다. 담대한 필치요,거침이 없는 문장이요, 글자 사이에서 천둥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하늘이 있으면 별이 있고, 땅이 있으면초목이 있듯 나라가 있으니 이런 인재가 있구나. 설사 우리가 죽는다 해도 후세에 또의로운 자가 줄을 잇겠구나!"

운칠현이 연명으로 올린 상소를 어람한대위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궁궐의 폐단을 바로잡으라고 간한 자는 북방흑수지경으로 유배되고, 교화를 밝게 해달라고 상소한 자는 물감옥에서 초죽음을 당했다.

"어린것은 돌려보내라!"
황제의 명을 받은 형졸들이 다가서자 배구가 소리질렀다.
"남색과 천첩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 폐하께 말로써 굳게 간하여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왔으니 썩 물러서시오."
대위해가 어이가 없는지 소리 내어 웃었다. 겨우 열네 살밖에 안 된 어린것이 황제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대위해도 문적원감 배정에게 영민한 자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린것은 돌려보내라!"
황제의 명을 받은 형졸들이 다가서자 배구가 소리질렀다.
"남색과 천첩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 폐하께 말로써 굳게 간하여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왔으니 썩 물러서시오."
대위해가 어이가 없는지 소리 내어 웃었다. 겨우 열네 살밖에 안 된 어린것이 황제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대위해도 문적원감 배정에게 영민한 자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대저 형벌이 가혹하면 가뭄과기근이 들고, 병란이 일며, 민심이 흉흉해진다고 고금의 사필에도 실려 있사옵니다.폐하의 너그러운 성덕이 샘물 같다고 기록될 것이옵니다. 샘물은 눌러서 막을 수 없고 오로지 퍼올려야만 하옵니다

배구가 닦아 쓰고, 운칠현이 연명한 상소문을 백성들이 통쾌해하는 걸 대위해도 알고 있었다. 이럴 때 그들을 척살하면 민심이 등을 돌리고 일곱 사람을 군웅처럼 떠받들게 될 것이다.

고서운이 가볍게 던진 옥가락지는 술병의 홀쭉한 주둥이를 영락없이 깨뜨렸다.
"이 비천한 몸으로 감히 황상을 받들어모실 수 없는 연유는 제 몸속에 흐르는 이예기가 술사들 말로는 척살기라 하여, 지아비를 섬기면 지아비가 살을 맞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혼기가 넘도록 부모님께 불효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데려가신다면 기꺼이 입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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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의 대발해 9 - 모반의 수레바퀴 김홍신의 대발해 9
김홍신 지음 / 아리샘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독서보고] 김홍신의 『대발해』 9권 심층 비평

1. 중흥의 신기루와 대인수의 유통기한
ㅇ (외형적 성장) 영토 확장과 문자 제정 등 선왕 대인수 치세의 성과(해동성국)는 근본적 체제 개혁이 수반되지 않은 모래성에 불과함
ㅇ (권력의 사유화) 국가 시스템의 혁신 없이 개인 역량에 의존한 중흥은 군주 사후 해씨 일가의 국정 농단으로 직결되었으며, 선대의 업적이 권신들의 수탈 대상을 비축해 준 역설적 결과를 초래함

2. 해태후 체제; 발해의 골수를 빨아먹은 기생충
ㅇ (국가탈취) 해태후의 섭정은 국가의 보전이 아닌 사적 권력의 유지 및 국가 강탈 행위로 규정됨
ㅇ (공권력 붕괴) 국가를 해지량, 해무량 등 친정 세력의 축재 수단으로 전락시켰으며, 특히 무지한 권신 해무량이 감찰어사를 살해한 사태는 공권력이 조폭 수준의 사병으로 전락하여 자정 능력을 상실했음을 증명함

3. 작가의 모순; 악녀를 성녀로 둔갑시키려는 무리수
ㅇ (서사적 모순) 무고한 자를 물감옥에 가두고 고문을 자행하는 잔혹한 독재자 해태후를 도량 넓은 인물로 묘사하려는 작가의 온정주의적 접근은 팩트를 훼손하고 서사의 내적 논리를 스스로 파괴하는 중대한 구멍임

4. 신작의 선비질이 부른 대참사
ㅇ (정치적 실기) 태사 신작은 상황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지녔으나, 이상적인 선비적 명분론에 집착하여 결단하지 못하고 실기함
ㅇ (명분론의 폐해) 민란 국면에서 동족 상잔을 피하겠다는 감상적인 논리로 해태후 체제를 전복할 결정적 기회를 상실하였고, 결과적으로 부패 권력의 수명을 연장시켜 백성의 고통을 가중시킴

5. 대건진과 폐불; 양심의 실종과 멸망의 전주곡
ㅇ (도덕성 상실) 대건진이 황제를 무력화하고 덕산대사와 의명대사를 분사(焚死)시키며 폐불을 단행한 사건은 국가의 도덕적 통제 장치(브레이크)가 완전히 소멸했음을 의미하며, 거란의 침공 이전에 이미 발해가 내부적 탐욕으로 멸망의 전조를 완성했음을 시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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