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다시피 지금의 자본주의는 200년 전 맑스주의를 창시한 경제학자 카를 맑스가 원시사회, 노예사회, 봉건사회, 제국주의를 포함한 자본주의사회, 사회주의를 이전 단계로 하는 공산주의사회 등 사회발전 5단계론에서 제시한 네번째 단계로서의 고전적 자본주의를말한다.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으로 400여년 동안 유지되어온 자본주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러저러한 변화를 거듭해왔지만 기본적인 외양과 본질은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대표적 일례가 스웨덴이다.
흔히들 선도적 복지국가라고 하니 탈(脫)자본주의나 별종의 사회쯤으로 착각하는데, 사실은 노사 간 타협이나 협동 같은 일부 표피적인수정을 거친 자본주의에 불과한 것으로서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자본주의사회의 구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스웨덴 같은 고(高)복지국을 ‘복지지향적 국가‘로, 기타 자본주의 나라들은 ‘성장위주국‘으로 양분하는데, 전거가 부실하고 설득력이 미약하여 작위성이 다분한 구분이다. - P339

북유럽 국가들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복지제도를 비교해보면 스웨덴 복지제도만이 지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스웨덴 사람들 스스로가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다시피 이른바 빅뱅개혁과 옴부즈맨제도로대표되는 개혁성과 청렴성이다. 북유럽 4개국은 공히 글로벌 클린 국가로 정평이 나 있다. 그 가운데 스웨덴은 부패인식지수(CPI) 순위에서 지속적으로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스웨덴이 이렇게 잘살면서동시에 청렴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아니라 정부의 과감한 개혁 정책과 높은 시민정신이 바탕이 되었기때문이다. - P351

여기서 우리는 스웨덴이 복지 모범국으로서의 위상을 계속 이어가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시대의 소명과 변화에 부응하는 혁신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기 때문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부패를 척결하고 청렴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복지사회를 유지하는또다른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따라서 부단한 혁신, 청렴한 사회, 고도의 경제적 선진화(1인당 GDP 5만 달러 이상), 적어도 이 세가지 요인이 모두  갖춰졌을 때만이 명실상부한 복지국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P352

우리는 국내외 정세와 통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종래 체제통일에만 한정되었던 미완의 통일론을 민족공동체 전반에 걸친 완전통일론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즉 미시적으로 평화적 체제통일을 달성하는데 이어 의식통일과 사회통일, 문화통일까지를 포함한 명실공히 완전한 민족공동체로서의 재통일을 완성해야 한다. 이것이 필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진화통일론‘의 요체다. 이러한 ‘진화통일‘의 바탕에서거시적으로는 남북한 체제통일에서 비롯한 막대한 편익(便益)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선발 복지 모범국들을 따라잡아야 한다. 그래서 1인당 GDP 5만 달러의 문턱을 넘고, 서로가 상부상조의 미덕을계승, 발휘하며, 비리와 부패가 척결된 청렴한 복지사회를 실현해야할 것이다. - P357

이렇게 노벨은 성공한 과학자이자 실업가이지만 ‘사랑에 실패한인간‘이라는 양면교차적 삶을 살았다. 엄청난 발명과 세계적 기업 운영으로 명예와 부를 동시에 거머쥐었지만, 내성적이면서 괴팍한 성격과 고질화된 우울증 등 병약한 심신으로 가정도 이루어보지 못한 채한평생 고독하게 산, 어찌 보면 안타까운 인생이었다. 만년에는 심각한 협심증과 심장발작으로 병고에 시달리다가 1896년 12월 10일 새벽 2시, 향년 63 세로 이탈리아 산레모 자택에서 곡절 많은 세상을 하직했다. 시신은 그달 29일에 고향 스톡홀름으로 옮겨져 가족묘지에안장되었다. - P367

그의 사후에 업적을 기리는 여러 사업과 행사가 줄줄이 이어졌는데, 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의미 있는 행사는 단연 매해 노벨의사망일에 국왕이 직접 참석하여 스웨덴(5개 부문)과 노르웨이 (1개 부문)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노벨상 시상식이다. 다음으로는 노벨과 그의 가족, 노벨상과 수상자들에 관한 자료들을 상설 전시하는 스톡홀름의 노벨상박물관(2001년 건립)을 들 수 있다. 최근에는 2011년 6월8일에 발견된 원소기호 102번에 노벨을 기리기 위해 노벨륨(nobelium)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노벨상 시상식과 연회에 사용되는 흰 꽃과 노란 꽃은 반드시 노벨이 만년을 보내다 별세한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생화를 공수해 온다고 한다. 노벨에 대한 후세의 두터운 신망의표시인 것이다. - P368

노벨은 1895년 11월 27일 빠리에 있는 스웨덴-노르웨이 클럽에서 자신의 유산을 기금으로 상을 제정하겠다는 내용의 마지막 유언장에 서명했다. 그런데 당시는 전문(傳聞)에 의해서 유언장의 개략적인 내용만  알려졌기 때문에 그 구체적인 시행에 있어서는 적잖은 흔선이 빚어졌고 이러한 혼선은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 당초 유언장 원문 전체를 즉시 공표하지 못한 것은 노벨이 거액의 유산을 시상이라는 명목으로 자국민이 아닌 세계인들에게 분배하는 것은 비애국적이라는 비판적인 여론을 의식해서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 P369

유언 집행자는 유산을 안전한 유가증권으로 바꾸어 투자하고, 그것으로 기금을 마련해 그 이자로 매년 전해에 인류를 위해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들에게 상금 형식으로 분배해야 한다. 상금의 일부는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인물에게, 화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개랑을 한 사람에게, 생리학과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에게 각각 주도록 한다.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스웨덴 왕립과학원에서, 생리학·의학상은 스톡홀름의 카롤린스카연구소에서 각각 수여하도록 한다. 상을 수여함에 있어서 후보자의 국적을 일절 고려해서는 안 된다. 또한 남자건 여자건 조금도 차별하지 않고 가장 공로가 많은 사람에게 수여되도록 하는 것이 나의 확고한 소망이다. 나는 이것을특별히 당부한다. 그리고 나의 죽음을 확인하거든 화장해줄 것을 부탁한다. - P370

그런가 하면 대상 분야에서도 그 선정 과정과 시상 주체의 적격성과 공정성, 투명성에 관해 설왕설래가 그치지 않고 있다. 원래 유언장은 시상 분야를 물리학과 화학, 생리학·의학의 3개 분야로 한정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여기에 문학과 평화, 경제의 3개 분야가 추가되어 6개 분야로 늘어났다. 무슨 까닭인가? 어디에도 그 이유는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운영 권한을 가진 이들의 일방통행식 결정에 세인들의 묵과가 더해져 슬며시 6개 분야의 첫 시상식을 치렀고, 이후관행으로 굳어진 것이다. - P373

여기서 한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정작 추가된 3개분야(특히 문학과 평화 분야)의 시상 주체들은 추가된 원인에 관해 함구하거나 얼버무리고 있음에도 거의 모든 매체가 그것이 노벨의 유언에 따른 것이라는 허언(言)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보았듯 노벨 유언장 원문에는 기타 3개 분야에 관해서는 언급이 전혀없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언론 보도와 유언장 간에는 왜 이러한 괴리가 생겼을까?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P373

이렇게 추가 대상이 된 3개 부문 가운데 스웨덴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노벨문학상은 노벨상 6개 분야 중에서 가장 말썽 많은 상이다.
단 문학을 대상으로 정하고 보니 소설, 시, 희곡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데다 여타 분야들처럼 글로벌한 언어 표현과 내용, 장르 등을 종합해 선발하기는 당시의 격폐된 세상에서 여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급기야 울며 겨자 먹기로 제2회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독일 역사학자(로마사 전공) 크리스티안 몸젠(Christian Mommsen)을 간신히 선발했다. - P374

마찬가지 이유로 2차대전 이전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운데는 역사가나 철학자 등 인문학자들이 드물지 않았고, 그래서 ‘노벨문학상‘이라고 하기보다 ‘노벨인문학상‘ 이라고 하는 것이 명실상부하다는 비아냥거림이  일기도 했다. - P374

그러다가 1950년대 이후부터는 주로 소설가나 시인이 수상하기 시작했는데, 특징이라면 반정부 성향의 문인들이 다수를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의 부정적 결과로 수상자와 작품 선정에서 드물기는 하지만 숭고한 ‘문학정신‘에 위배되는 각종 무리와 비리, 비행이 공공연히 나타나 노벨문학상의 위신과 품격에 먹칠을 했을 뿐 아니라 시상 기준에 대한 의구심과 혼란을 낳았다. - P374

제1회 노벨문학상 수여 당시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러시아의 대문호 똘스또이는 역사적으로 스웨덴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러시아인들에게 기독교적 무정부주의를 주입했다는 이유로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그런가 하면 1920년 수상자인 노르웨이의 소설가 크누트 함순(Knut Hamsun)은 2차대전 당시 친나치 인사로 활동해 국제적 비난을 샀으며, 2019년 수상자인 오스트리아의 극작가 페터 한트케(PeterHandke)는 1990년대 유고 내전에서 인종청소를 저지른 독재자의 장례식에서 그를 두둔하는 조사를 읽은 행적으로 인해 그의 수상 취소를요구하며 노벨문학상은 최소한의 금도도 없는 ‘완전한 고무줄 상‘이라는 비분강개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 P374

평화상이 여타 상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논란이 많은 원인은 그 개념이나 기준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평화‘라는 애매모호한 주제때문으로, 상이한 다자의 이해관계가 얽힌 가운데 시상의 당위성이나수상 자격 등에 관해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상자가 정치적 수장이거나 사회 유력인사인 경우 논란은 더욱 치열하다. 따라서상의 주관 기관이 어떻게 불편부당하게 논란의 진위와 시비를 가려공정성을 기하는가가 항시 문제가 된다. - P377

하도 자격 미달자의 추천이 많아지자 2001년부터는 노르웨이 국회의원으로 추천자를제한했다.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된 것으로 알려진 대한민국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례가 바로 이런 경우라고 하겠다. 애당초 자격을 운운할 여지조차 없는 민주화운동 무력탄압의 수괴에게 평화의 철퇴를내려 수상에서 퇴출시킨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 P379

1948년 유력한 수상 후보였던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수상자 발표를 얼마 앞두고 암살당했다. 그런데 노벨상에는 사후 추서를 불허한다는 규정이 있어 아쉽게도 그의 수상은 무산되고 말았으며 결국 그해의 노벨평화상은 이례적으로 공석이 되었다. 그후 간디에 대한 평화상 추서를 여러모로 검토했지만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 P378

사실 이러한 모략의 진원지는 국내 보수세력이라고 추단할 수 있다. 당시 한나라당 모 의원을 필두로 한 한나라당 원외위원장들은 시상 현장인 노르웨이 오슬로까지 가서 ‘김대중 노벨상 저지 시위‘를하겠다는 계획까지 공공연히 밝혔다. 부끄러운 자중지란이다. 이것이하도 어처구니없는 짓이라서 그랬던지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나라의 위신이 깎일 수 있는 당내 일부의 모난 행동이 한나라당의공식 입장인 것처럼 외부에 비쳐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라면서 이 ‘모난 행동‘을 만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고려대 전총장 김준엽 선생이 쓴 경구, 집안(국내)에서는 아웅다웅하더라도 일단 바깥(국외)에 나가서만은 국격과 겨레의 존엄을 위해 서로 싸우거나 헐뜯지 말라는 발언이 가슴 저리게 떠오른다. - P381

"한국으로부터 로비가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정치적 반대자 등으로부터 상을 주면 안 된다는 로비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우리는 노벨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 P382

2년 후 국내의 어느 일간지가 이 문제에 관한 노벨위원회의 공식 입장을 묻자 답신에서 이 위원회의 사무총장 예이르 루네스타(Geir Lundestad)는 다음과 같은 보다 명확하고 단호한 입장을 전해왔다. 그는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에 노벨평화상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받았음을 암시하는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라며 "노벨위원회가 그에게 상을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무례하며, 위원회의심사 절차 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렇게 해서 한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놓고 시끌벅적 떠들어대던 모략극은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 P382

구태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수상의 편향성 내지 독식이다. 노벨상이 시행된 1901년부터 2021년까지 총 975 명의 수상자가 배출되었는데, 그중 미국이 398명으로 단연 1위이고, 2위는 137명의 영국,
3위는 111명의 독일, 4위는 70명의 프랑스, 5위는 32명의 스웨덴의 순이다. 이에 비해 세계 인구의 약 55%를 차지하는 아시아의 수상자는58명에 불과한데, 그중 일본이 29명으로 1위이고 그뒤를 인도(12명)와 중국(10명)이 쫓고 있다. 알다시피 한국의 경우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2000년 평화상) 한명뿐이다. - P385

이상에서 필자는 노벨의 생애와 그가 과학의 발달과 평화 수호를위해 가장 값진 유산으로 남겨놓은 노벨상의 이모저모, 상 운영에서나타나는 숱한 비과학적이고 불공정하며 진부한 구태 가운데 중요한몇가지를 선정해 살펴보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노벨상은 121 년 전에닻을 올린 제정 취지에 따라 응분의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시대의 급속한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는 폐쇄성 등으로 인해 그 이상과 기능이석양낙조(落照)를 방불케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이 기우에그쳤으면 하는 바람 속에 현장을 누빈 필자의 고언을 한마디로 줄이면 ‘노벨상, 이제 그 구태를 벗어나야 한다‘라는 것이다. - P393

이제 이 국제도시의 역할과 위상, 특징에 관한 세인들의 평가 몇가지를 모아 소개하고자 한다. ‘북방의 백야 도시‘ ‘해가 지지 않는 도시‘ ‘북방의 청결한 도시‘ ‘세계 유수의 과학기술의 도시‘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의 하나‘ ‘지구상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도시의 하나‘ ‘고전미와 현대문명을 하나로 융합시킨 도시‘ ‘도시의건축과 자연풍광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꽃의 도시‘ ‘활력이 넘치는 문화도시‘ ‘유럽의 9개 문화도시의 하나‘ ‘신구가 혼연일체된 도시‘ 등 헬싱키에 관한 평가는 구구하다. - P412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부패가 없는청렴한 나라, 세계 1위의 안전국, 유럽 최초(1906)로 모든 성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보통선거를 치른 나라, 명실상부한 양성평등 실현국, 인구 대비 대학이 가장 많은 나라(2019년 기준 35개), 인구 대비 올림픽 금메달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등 부문별로 다양하다. 근간에 핀란드의 양성평등과 관련해 특별히 회자되는 사항은 2019년 12월 35세의 사상 최연소 여성 총리 산나 마린 (Sanna Marin, 사회민주당 대표)의 탄생과 연정에 참여한 5당 대표가 모두 여성일 뿐만 아니라 그중 4명은30대의 젊은이라는 격세지감의 낭보다. - P417

핀란드인은 다른 사람에게 좀처럼 자기 속내를 보이지 않는 성격이흔하다. 핀란드에서 룸메이트로 핀란드인과 6개월간 살면 5개월 정도되어서 처음으로 말을 튼다고 할 정도다. (…) 이런 모습 때문에 핀란드인들은 고독한 늑대 같다는 편견이 있다. 핀란드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아키 카우리스마키가 만든 영화들은 이런 핀란드인들의 무뚝뚝한 감수성을 영화에 잘 녹여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감독 본인도 퉁명스럽고시니컬하게 인터뷰하기로 유명하다. - P421

다관의 작지만 강한 나라 핀란드가 벅차게 진화해온 역사를 잠시훑어보노라면 일상에서 통용되는 변증법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풀이가 안 되는 낯선 현상들이 많이 발견되어 놀라움에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살을 에는 한랭대의 습지에서 살아남았고, 무에서 유가 창조되며, 작음이 오히려 강함이 되고, 동상을 세워 식민 수괴를 기리며,
인구 5.2%와 0.04%만이 사용하는 스웨덴어와 사미어까지 국가 공용어로 인정하는 관용(87.3%가 핀란드어 사용), 사상 미증유의 700년 식민통치하에서도 꿋꿋이 지켜온 민족의 정체성과 정기, 칠전팔기로 기사회생하는 오뚜기…… - P423

아, 핀란드여, 보라, 이제 밤의 위협은 저 멀리 물러났다.
찬란한 아침에, 종달새는 다시 영광의 노래를 부르고,
천국의 대기가 충만하였다.
어둠의 힘은 사라지고 아침 햇살은 지금 승리했으니,
너의 날이 다가왔다, 오 조국이여.

아, 일어나라, 핀란드여, 높이 들어올려라.
너의 과거는 자랑스럽게 등극하였다.
아, 일어나라, 핀란드여, 노예의 흔적을 몰아내고새로운 세상 보여주어라.
억압에 굴복하지 않았으니,
자랑스러운 아침이 시작되리라, 조국이여. - P429

핀란드 부흥의 3대 정신적 지주의 세번째인 시수는 인내와 용기,
끈기와 극기, 회복탄력성 등의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는 단어로 핀란드 고유의 정신문화와 국민성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말을 정확하게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도시 불가능하다는 것이 어학자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예컨대 이말에 담긴 용기 하나만 보아도, 용기는 용기이되 암울하고 두려운 현실에 맞서 보기에 승산 없는 싸움을 할 때나타나는 그러한 용기를 가리킨다. 승산 없는 싸움을 하면서도 역경에 맞서 결연함을 내보일 수 있다는, 실패하고 또 실패하더라도 그 결정과 행로를 밀고 나갈 수 있다는 그러한 성격의 개념이다. - P429

일부 역사가들은 혹한과 조밀한 술 때문에 소련이 패전했다고 하는데,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압도적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버텨 소련의 완전 점령을 면한 데는 핀란드 국민의 시수 정신이크게 한몫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시수는 온갖 고난을 이겨내는 마법의 말이고,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며, 심원한 삶의 철학이라고 하겠다. - P431

대통령에 임명된 파시키비(Juho K. Paasikivi, 재임 1946~56)는 전시 소련과의 평화조약 협상을 주도했던 유능한 외교관 출신으로서, 핀란드가지리적 위치를 바꿀 수 없는 이상 동쪽의 이웃(러시아)과도 사이좋게지내야 한다"라며 서방과 소련 사이의 중립적 외교 노선을 천명했다.핀란드의 중립평화외교의 기틀을 마련한 그는 보수당 출신이지만 합리적 실용주의자였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라는 유명한 잠언을 남겼다. - P479

26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소극적 중립외교에서 적극적 중립외교로 전환의 틀을 마련한 케코넨은 자서전에서 핀란드 중립외교의 구도를 이렇게 개괄하고 있다. "핀란드 외교정책의 기본 과제는 핀란드의 지정학적 환경을 지배하는 이해관계에 핀란드의 실존을 맞추는 것이다. (・・・) 핀란드의 외교정책은 예방외교다. 위험이 코앞에 닥치기 전에 미리 감지해서 위험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 그야말로 노련한 정치가, 외교가의 충언이다. - P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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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소설 모아보기

김진명 1957년 부산출생, 보성고, 한국외대 법학과 졸업, 대한민국 소설가, 민족주의자?
1993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로 데뷔, 600만부 이상 팔리며 밀리언셀러 작가로 등극
제천에서 고구려 집필중

고구려는 고구려1권을 2011년3월1일 초판1쇄 발행후 11년 5개월 12일 지난 지금 고구려7 권이 간행됐다. 너무 느린 집필

우리 젊은이들이 삼국지를 읽기전에 고구려를 먼저 알기 바란다.

책이 나오기 기다리다 지쳐 죽을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https://naver.me/5JJUYOyh
고구려7권이 나온 후, 김진명 작가를 인터뷰한 뉴시스 기사를 보면 2023년 완간이 목표이며 고구려8~10권은 광개토태왕의 이야기이고 쾌도난마식으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고구려7권 초판 발행 2021년6월14일, 1년2월28일 지난 지금, 고구려8권이 간행된다는 소식은 요원하기만하다. 김진명 작가님을 응원합니다. 고구려 부탁드립니다.
🙇‍♂️🙇‍♀️🙇🙇🙇‍♀️🙇‍♂️🙇‍♂️🙇‍♂️🙇‍♀️🙇🙇‍♂️🙇‍♀️🙇🙇‍♂️🙇‍♀️

https://naver.me/5IlP9Nq0
고구려 집필하다 말고 낸 에세이, 인터뷰
내년 상반기 고구려8권 출간, 2024년 여름까지 완결할 계획, 8권부터는 아들이 공동저자로 올라간다나 뭐라나

유비, 조조 너머에 을불과 창조리가 있었다!

김진명 소설은 재밌다. 어려움이 없고 빨리 읽힌다. 읽으면 애국심이 솟아오른다.

📚 📖 읽은 책
1. 고구려1~7
2. 살수1~2
3. 하늘이여 땅이여1~2
4. 1026 <== 한반도1~2
5. 카지노 <== 도박사1~2
6. 신의 죽음 <== 신의 죽음1~2
7. 삼성컨스피러시 <== 바이 코리아1~2
8. 신 황태자비 납치사건 <== 황태자비 납치사건1~2
9. 최후의 경전 <== 코리아 닷컴1~2
10. 싸드
11. 제3의 시나리오1~2
13. 몽유도원1~2 <== 가즈오의 나라1~2
14.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1~2 <==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1~3
15. 미중전쟁1~2
16. 예언
17. 글자전쟁
18. 바이러스X
19. 천년의 금서
20. 직지1~2, 아모르 마네트

📚 📖 안 읽은 책
21. 나비야 청산가자1~2
22. 킹 메이커
23. 김진명의 한국사 X파일
24.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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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2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장정 2022-09-12 16:16   좋아요 1 | URL
ㅎㅎ 당연히 고구려죠. 젊은이들 뿐 아니라 老少를 불문허고 고구렵니다. 제 취향으로다요.

2022-09-13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장정 2022-09-13 14:48   좋아요 1 | URL
ㅎㅎ 별말씀을요.재미있구(저한테는)자간 행간 넓어서 금방 읽을수 있어요. 특히 행간이 이책보다 넓은책은 보지 못했습니다.
 

처음보는 사자성어가 자주 나온다.
뜻은 어렵지 않다. 한자와 문맥으로 알수 있다.

1. 📚 당황망조 唐慌罔措
황당할 당, 어리둥절할 황, 없을 망, 둘 조.
당황하여 어떤 행동이나 조치를 취하여야 할지 모름.

p.262
필자는 오슬로의 콘티키박물관을 찾아갈 때나 가서 직접 관련 자료를 접했을 때만 해도 헤위에르달이 ‘위대한 탐험가‘의 일원이라는데 대해서는 추호의 의문도 있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정작 그에 관한 글을 쓰느라 이것저것 뒤지는 과정에서 뜻밖에 이러한 기괴한 집단비행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당황망조(唐慌罔措)를  가까스로 가라앉히고 자초지종을 알아보려 하니,  요체는 그네들이 왜 그렇게했을까 하는 원인 규명이다. 그리고 이 글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순간까지도 신빙성 있는 답은 찾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민낯 감추기에 이골이 난 그네들이 오랫동안 작심하고 짜맞춘 공모를 필마단기(匹馬單騎)로 일거에 갈파한다는 것은 애당초  역부족일 수밖에 없기도 했다.

2. 📚 무주공처 無主空處
없을 무, 주인 주, 빌 공, 곳 처
임자 없는 빈 곳. 쓸쓸한 곳.
無主空山이야 알지민서도 無主空處는 처음

p.263
그저 짐작건대, 영국 같은 나라는 한때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방 해양민족(비크족)의 속국으로 시달림을 받았으며, 그 수모로 인해 콜럼버스에 앞서 이 해양민족 탐험가들이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했다는 역사적 사건을 무마하려 했거나, 아니면 역사의 상대적 승세(勝勢)나 선도에 대한 본능적인 시기에서가 아니겠는가. 혹여 그도 아니라면 무주공처(無主空處)의 탐험을 통한 식민지 쟁탈과 이익  추구에 이골이난 유아독존적이고 배타적이며  이기적인 악심(惡心)에 기인하는 것은아니겠는가.  그런가 하면, 학문적으로 중남미 인디언들의 태평양 이주설을 비롯한 문명전파론에서 야기된 심각한 논쟁과 갈등이 헤위에르달이 학계에서 버림받게 된 원인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요컨대 복합적인 원인이 작동했으리라는 짐작을 해본다. 최종적으로 제대로 된해명은 가려졌던 서구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는 그날, 당사자인 서구학계의 자성을 바탕으로 한 실사구시의 연구에 의해 판가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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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보는 사자성어, 무식한 吾
명수죽백(名垂竹帛)
이름명 드리울수 대나무죽 비단백

이름을 죽간과 비단에 드리우다.  이름이 역사에 길이 빛남.
‘죽백‘은 책 또는 역사를 뜻함. 옛날에는 역사를 죽간이나 비단에 기록했음. 
‘功名垂竹帛(공명수죽백)‘을보시오.

p.219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상 자의반 타의반 명수죽백할 탐험가로 이름을 올린 위인은 부지기수이며, 그들에 관한 전설 같은 기록은 가위 오거서(五車書)로도 남음이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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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우리나라에는 피오르가 없는데다가 세계적으로도 가기 어려운 몇몇 제한된 험지에만 있는 특이한 지리적 현상이라서 우리에겐자못 생소하다. 그래서 관광담에 앞서 피오르에 관한 개략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명칭부터 따져보면, 원래 이 말은 ‘내륙으로부터 깊이 들어간 만‘이라는 뜻의 노르웨이어 ‘fiord‘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 일부와 중국을 비롯한 한자문명권에서는 ‘협만(峽灣)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 P202

피오르란 특이한 지리적 현상으로서, 형성의 기본 요인은 빙하운동이다. 한랭지대에서 발생하는 빙하 이동으로 대륙의 침식이 일어나서 생긴 U자형의 좁고 긴 협곡에 바닷물이 들어차 피오르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랭한 고위도 지대의 빙하 이동과 해양의 병존이 피오르 형성의 2대 요인이 되며, 이러한 지형적 요인이 전제되지않은 곳에서 피오르를 만나기란 만부당한 일이다. 오늘날 세계에서이러한 요인을 충족해 피오르를 볼 수 있는 곳은 노르웨이 말고는 그린란드, 스코틀랜드, 알래스카 남부, 칠레, 뉴질랜드 사우스섬, 캐나다북극 연안 등 제한된 몇군데뿐이다. - P202

그런데 문제는 그 위인의 기준이며, 그에 관한 각이한 평가다. 이를테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에 이르렀는가 하는 문제에서 인류공동의 번영과 복지, 진보를 위한 개척을 본연으로 하는 탐험인가 아니면 그에반하여 사리 추구나헛된공명욕에 집착한 탐험인가에 따라 평가가판이하게 달라진다. 심지어 작위적 기준이나 편협한 판단에 따라 탐험의 성과가 영영 무시되거나 무위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리하여 미지의 세계에서 행해지는 탐험의 공과)와 허실을 가려내는 일은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으로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 P220

더욱이 넓은 의미에서 탐험의 손익은 탐험사에서 시종 논쟁이 분분한 문제로 남아 있다. 그 동기나 목적, 과정이나 후과에 관계없이탐험의 수익이나 혜택만을 일방적으로 과장, 미화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미지의 세계니 미개척지니 하는 구실하에 기존 세계나 토착지에 무자비한 탐험의 칼날을 들이댄 결과 발생하는 파괴나 병폐는그 무엇으로도 상쇄하거나 보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므로, 탐험은미화할 것이 아니라 그 대척점에서 도리어 배척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 P220

물론 편협하고 극단적인 ‘탐험배척론‘은 지양해야하지만, 그와 동시에 탐험에 대한 인간의 오만이나 맹목적 추종도 경계해야 한다. 부지기수의 탐험가들이 나서서 오거서의 기록을 남겨놓았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조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다. 거의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우주탐험을 놓고 봐도 그러하다. 이제 막 시작된 새로운 탐험의 시대 앞에서 여러 면을 다시 한번 면밀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 P220

독일의 문호 괴테는 "호기심이 모든 걸음에 날개를달아준다"라고 호기심의 잠재적 추동력을 극구 찬양했다. - P221

많은 연구자들은 이집트 파피루스의 내구성이라든가 부력(浮力)을의심한 나머지 그런 재료로 만든 배는 장거리  대양 항해를 할 수 없을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허무한 기우일 뿐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헤위에르달은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따라서 고대이집트와 중남미 간에는 이 항로를 따라 문명의 이동과 전파, 교류가이루어졌다고 추단해도 별 무리가 안 된다는 것이 라 2호가 남긴 귀중한 교훈이다. - P241

이때부터 그는 해양오염 문제를 인공재해로 크게 걱정하면서이를 유엔에 보고했다. 이 보고서는 1972년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유엔인간환경회의(UNCHE)에서 핵심 안건으로 채택되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직접 작성한 상황보고서를 미국 상하원을 포함 20여개 나라의 입법기관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가 이와 같이 환경보존을 위해 노력한 결과의 하나가 유엔에서 유조선의 해상방유(油)금지법을 채택한 것이다. 이에 동조해 노르웨이 선박주협회도 ‘토르 헤위에르달 장려상‘을 제정하고 2년에 한번씩 해양오염 방지에 크게 기여한 인물에게 이 상을 수여하고 있다. - P241

1937~2002년 65년간 근 반평생을 주로 원시적 뗏목을 타고 세계3 대양을 누비면서 오로지 문명전파설 탐구에 헌신한 희세의 대탐험가 헤위에르달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없어 이제 고난과 모험의 연속인 탐험항해를 계속하기는 어려웠다.
그가 평생 천착했던 목표, 즉 고대문명들 간의 전파성 규명에는 여러가지 미흡한 점과 허점을 남기기도 했다. 어쩌면 시대의 한계일 수도있는 이런 점에 관해서는 헤위에르달 자신도 인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생의 과제는 그 미흡한 점과 허점을 보완, 시정하는 작업임을자인한 그는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작업에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투자했다. - P244

헤위에르달은 당초 목적지를 이스터섬으로 잡고 진행한 콘티키호의 1차 탐험이 뗏목의 상륙 불가로 실패한 후에도 집요하게 2, 3차 탐험을 추진했다. 그 이유는 태평양상의 어느 지역보다도 이스터섬에서남미와 상관된 유물이 많이 발견되어 자신이 주장하는 남미 인디언의 폴리네시아 이주설(이하 ‘남미이주설‘)의 유물적 전거를 쉽게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탐험 내내 남미와의 상관 유물을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심혈을 기울였다. 급기야 그가 남미이주설의 전거로 찾아낸 상관 유물들은 다음과 같다. - P245

1)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스터섬 원주민들은 이미 원산지 남미에서 유입된 고구마를 재배하고 있었다. - P244

2) 섬 서남단에 자리한 오롱고(Orongo) 유적지에 있는 라노카우(RanoKau) 화산호(수심 약 10m, 섬 유일의 식수원)는 수면의 절반을 남미 볼리비아의 띠띠까까호가 원산지인 또또라(totora, 갈대)가 뒤덮고 있다. - P244

3) 섬 남쪽 해안가에 있는 아후비나푸(Ahu Vinapu) 제단의 아후(ahu,신성한 곳, 즉 제단이란 뜻) 축조법이 페루잉카문명의 성벽 축조법을 닮았다. 구체적으로 종이 한장 끼워넣을 수 없을 정도로 돌들이 빈틈없이 맞물려 있으며, 돌을 직각으로 맞물리고 끝 부분을 살짝 호형(形)으로 처리하는 축조법이 유사하다. - P245

4) 이스터섬과 남미의 일부 고대문명이 반인반조(半人半鳥, 사람과새가 절반씩 섞인 존재)의 새사람 (birdman, 鳥人) 전설을 공유하고 있다. - P245

5) 콘티키전설에 의하면 잉카제국을 세운 인디오의 태양신 콘티키가 전쟁에서 패하자 부족들을 이끌고 잉카의 이카다(Ikada)에서 이스터섬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 P245

6) 이스터섬에는 귓불을 인위적으로 길게 늘어뜨린 아나우에페(Anauepe)라는 부족이 있었는데, 남미 잉카의 지배계급인 온오네 (Onone)족도 이와 똑같은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 P245

이집토마니아(egyptomania)에서 ‘마니아‘는 그리스어로 광기라는 뜻으로, 한가지 일이나 분야에만 몰입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따라서 이집토마니아는 고대 이집트의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 열광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 P250

첫째, 헤위에르달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에만 일로매진한 철저한 탐험가의 표상이다. - P254

탐험사에서 우리는 사리사욕과 손익만 따지거나 ‘발견‘이라는 허영에 들뜬 현상들을 흔하게 목격한다. 콜럼버스는 대서양 횡단 항해에 나서기에 앞서 스페인 이사벨 여왕과 일종의 계약서인 이른바 ‘그라나다 각서‘를 체결했는데(1492), 이 문서는그가 해야 할 일을 ‘섬들과 본토‘를 찾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그에게다음과 같은 특권을 부여했다. 즉 ‘발견한 땅‘의 ‘대양제독에 봉하고
‘발견한 지역에서 국왕이 획득하는 금과 보석 및 기타 산물의 10분의 1을 차지할 권리를 가진다. 그런가 하면 포르투갈의 항해가이자 ‘인도 항로의 개척자‘인 바스쿠  다가마(Vasco da Gama)는 대포로 무장한 범선 4척을 이끌고 리스본을 떠나 아프리카 남단을 에돌아 1498년, 출항 10개월 만에 인도 서해안의 캘리컷(현 코지코드) 에도착한다. 이듬해에 그는 60배의 이익을 남겨줄 향료를 싣고 귀향한다. 역사상 서세동점의 효시라고 하는 이 해양 탐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동방에대한 서방의 식민지 약탈의 바닷길을 트는 데 있었다. - P255

이렇게 중세의 두가지 대표적인 탐험 사례만 봐도 자고로 이러저러한 미명하의 ‘탐험‘은 대부분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본연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헤위에르달의 탐험은 문자 그대로 철두철미한 탐험이었다. 오로지 해양을 통한 고대문명의 전파를탐구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었다. - P255

둘째, 헤위에르달은 평화적 글로벌리즘(globalism, 세계통합주의)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 P256

셋째, 헤위에르달의 탐험으로 문명전파론이 활성화되었다. - P257

헤위에르달은 문명 간의 상사성·공통성을교조주의적으로 전파의 근거로 삼고 그러한 상사성은 곧 전파의 결과라고 단정하면서 여러 이질 문명 간의 전파론을 고집했다. 이것은그의 전파론이 범한 편단으로서 결정적인 흠결이자 한계다. - P259

원래 수용에 의한 상사성이 전파의 근거가 되는 것은 그 전파 과정이 명명백백히 밝혀졌을 경우에 한한다. 전파 과정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상사성 일면만 보고 그것이 전파의 결과나 근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일종의 비과학적 속단에 불과하다. 헤위에르달 자신도 이러한 결점을 인지하고 그 극복에 여생을 바쳤지만, 전파를 아우르는문명교류가 학문적으로 정립되기는 고사하고 학계로부터 온갖 불가론과 비난, 조소가 쇄도함으로써 거의 고군분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시대적 제약과 난관을 뚫고 문명전파라는 초야를 개척하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 P259

넷째, 헤위에르달은 지구와 해양환경 보호의 선각자다. 그는 첫 마르키즈제도 탐험을 마치고 돌아와 쓴 탐험기 『녹색 안식일』에서 탐험내내 인간의 무자비한 자연생태계 파괴를 통탄하면서 "환경파괴로부터 지구를 지켜야겠다는 참된 열정을 불태웠다"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만년에 지술한 탐험기에서는 탐험가로서, 학자로서 "지구 보위의이념"이 그의 온 탐험생활의 저변을 관류한 "영혼"이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이처럼 헤위에르달은 지구 보호의 가치를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영혼‘으로 승화시키고 이를 몸소 실천한 참된 글로벌리스트였다. - P260

헤위에르달의 이러한 생각은 그만의 독특한 항해 원칙으로 표현되었다. 그의 3대 항해 원칙은 첫째, 탐험은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에 관한 탐구활동이기에 다국적 출신의 여러 분야 전문가들로 탐험대를 구성하고, 둘째, 배에 항상평화와 공조의 상징인 유엔 깃발을 달고 다니며, 셋째, 바다와 항해에관한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탐구를 위해 준비부터 항해의 전과정을일기 형식으로 기록한다는 것이다. - P261

이렇게 평화 이론의 황무지에서 허둥거릴 때 천우신조의 호기가찾아왔다. 평화 이론의 본산이자 개안(開眼地)인 노르웨이로의 행각이다. 평화에 관한 관심은 인간의 태생적 특성이며 갈구라는 것이일찍이 문화인류학에 의해 밝혀지면서부터 그 담론은 간단없이 이어져왔다. 급기야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94) 같은 희세의독일 철학자까지도 1795년에 발표한 『영구평화론』에서 국가 간 영구평화를 위한 3개 ‘확정 조항‘으로 1) 국가체제는 국민이 전쟁 여부를결정할 수 있는 공화제여야 하고, 2) 전쟁을 영원히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제 민족 간에 평화동맹을 결성해야 하며, 3) 영구평화에 대한 세계시민의 권리를 선언해야 한다는 유명한 주장을 피력했다. - P265

그로부터 10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대한제국의 안중근(安重根)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 이또오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후 사형을 언도받고 1910년 3월 감옥에서 미완의 원고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여기서 안중근 의사는 일본이 한국의 국권을 박탈하고 만주와 청나라에 대한 야욕을 가졌기때문에 동양평화가 깨지게 되었으니, 이제 동양평화를 실현하는 길은일본이 한국의 국권을 되돌려주고 만주와 청에 대한 침략 야욕을 버리는 것이라고 통찰했다. 그런 후에 독립한 한국과 청, 일본 등 동양3국이 일심협력해서 서양세력의 침략을 막아내며, 한걸음 더 나아가동양 3국이 서로 화합해 개화, 진보하면서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진력해야 한다고 평화수호의 원대한 구상까지 밝혔다. - P265

원래 「동양평화론」은 1) 서(序) 2) 전감(鑑) 3) 현상 4) 복선(伏線)5) 문답의 5개 장으로 구상되었다.  감옥측은 집필이 끝날 때까지 사형집행을 연기하기로 약속했으나 돌연 그 약속을 어기고 1)과 2)만 집필된 상태에서 1910년 3월 26일 형을 집행했다. 그리하여 이 글은 미완으로 남은 것이다. - P266

평화학에서는 폭력을 직접폭력과 구조(構造)폭력,  문화폭력의 세가지로 구분한다.  - P268

직접폭력은 일종의 유형적 폭력으로 인간에게 육체적고통을 강요하는 전쟁과 폭력적 충돌, 언어와 심리를 통한 학대 등이이에 속한다. - P268

구조폭력은 빈곤과 질병, 억압, 사회적 멸시 등을 통한고통과 재난으로서 주로 정치적 권리와 경제적 권리의 불공정한 배분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직접폭력이 유형적인 데 반해 구조폭력은무형의 폭력으로, 장기적인 과정을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 - P268

문화폭력은 종교, 법률, 이념과 의식형태, 언어, 예술 등에 온축되어 있는 폭력으로서 학교교육이나 매체를 통해 널리 전파된다. 문화폭력은 왕왕 사회적 증오와 공포, 의혹 등을 유발한다 - P269

다음으로 평화의 구분이다. 평화학은 평화를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로 구분함으로써 평화의 개념을 크게 확대했다.  - P269

소극적 평화란 체계화된 집단적 폭력이 없는 상태의 평화로서, 무력이 아닌 담판이나 조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며, 유엔 같은 국제적 협약이나 조직에 의지해 집단적 안전을 보장하는 평화다.  - P269

적극적 평화란 체계화된 집단적 폭력이 없을 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협력과 통합, 회복(rehabilitation), 정의가 실현된 상태의 평화로서, 기아와 폭력, 인권침해,
난민, 환경오염 등 인간에게 고통과 불안을 안겨주는 각종 요인이 없어졌을 때 비로소 실현된다. 그밖에 충돌과 평화, 비폭력과 화해 등일련의 문제에서 평화학은 고유한 이론과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 P269

1970년대부터 여러차례 남북한을 방문한 요한 갈퉁 박사는 자신의 평화 구상을 한반도문제 해결에 적용할 여러가지 합리적 주장을내놓았다. 2000년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이해 열린 ‘세계의 민주주의와 인권‘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데 이어 2016년 5월 25일 제주도에서 개최된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협력적 리더십‘이란 제하의 ‘제11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그는 한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평화적 관계를 가지며 협력해야 한다"라고 조언하면서,  - P269

"대북 제재가 계속될수록 북한에는 ‘한‘이 더 쌓일 것이다.핵을 개발한 다른 국가들에는 제재를 하지 않았는데 유독 북한에만 이러한 제재를 가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라며 "미국은 북한이 붕괴할것이라고 생각해 제재를 가해왔지만 이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저는 ‘붕괴론‘이라는 개념의 붕괴를 희망한다"라는 의미심장한 견해를 피력했다.  - P270

그러면서 그는 "우선 남북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통일을 위한 관계를 만들어야" 하고 "일단 관계를 가지게 되면 통일의 기반이 될 만한 단계를 구축할 수 있다"라고 통일의 방식과 전망까지를 제시했다. - P270

이 책에서 갈퉁은 미제국 붕괴의 요인을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요인은 총체적·종합적 사고에 대한 무지다. 미국의 세계적 위상이 급속하게 추락하는 것은 지금까지 지켜오던 사회적 전범을 점차적으로 비(非)전범화하다가 급기야는 반(反)전범화하여 타락시켰을 뿐 아니라,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단견으로 문제 해결에서 종합적 고려가 결핍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비유컨대 미국은 사족불구足不具)로서 대뇌가  더듬이(觸角)를 지휘할 수 없어 그냥 반신불수 상태로  내버려두는 형국이다. 경제, 국제관계, 정치, 종교가 각기 독립적인 학과로 병립함으로써 총체성을 지닐 수 없으며, 총체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각각의 문제마저도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결국에는 해결 능력마저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 P272

둘째 요인은 변증법적 사고의 부재다. 미국의 핵심 역량은 경제체제인데, 치명적인 약점은 경제에 미치는 정치적 후과를 신중히 계산하지 않고 무턱대고 밀어붙이는 독단적인 태도다. 예컨대, 이라크와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는 전쟁을 발동하는 것만 알았지 그 배후에이슬람세력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 P273

셋째 요인은 공평성에 대한 고려의 부재다. 어떤 문제의 해결에서다방면의 이해관계를 불편부당하게 살피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에만 편중하여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군사 문제에서 그러한데, 그렇게 되면 당연히 불공평성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 P273

책에서 갈퉁은 바야흐로 붕괴에 진입하고 있는 미국을 향해 다음과 같은 요지의 조언을 남긴다. 그것은 바로, 미국은 모든 나라가 저마다 경제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의 평범한 나라로남아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동시에 140여개 나라에 군사를 주둔시키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붕괴로의 진입‘을 재촉하고 있는미국에 대한 일갈이다. - P274

스웨덴 보건당국은 심야태양의 영향을 예방하는 대책으로 1) 일상에서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2) 침실에 어두운 커튼을 쳐 빛을 차단하며 3) 몸을 이완하는 운동을 하고 4)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고 5) 잠자리에 들기전에 수면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의 구체적인 수칙을 마련하고 그 준수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 국방부도 백야 지역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에게 유사한 예방 수칙을 지키도록 유도하고 있다. - P282

첫째, 백야는 인간에게 수면장애를 야기함으로써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낳는다. - P280

둘째, 백야는 과잉행동과 경조증(輕燥症,약한  흥분이 지속되는 경미한 조증), 충동성 같은 비정상적이며 부적절한 행동을 초래한다. - P280

셋째, 백야 때문에 정상적인 하루 주기 리듬(circadian rhythm) 이 방해를 받아 하루 동안 빛과 어둠에 반응하는 신체의 내부 순환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머리가 멍해지는 의식혼탁(mentalfog)이나 두통, 소화불량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 P281

넷째, 백야 기간을 포함해 전반적인 햇빛의 부족으로 여러가지 질병이 발생한다. - P281

차제에 한가지 특기할 사항은 이상과 같은 중세 해양사, 특히 해전방식과 조선술에서 한반도의 해양강국 고려가 누렸던 선진성에 비하면 유럽은 한참 뒤떨어졌었다는 사실(史實)이다. 고려는 발달된 우리식 조선술과  항해술을 개발해 선진 해양국의 위상을 만방에 떨쳤다.
1274 년 고려-몽골 연합군의 제1차 일본원정 때  하까따(博多) 해안에서 벌어진 해전에 관해 원나라측  정사인 원사(元史)』는 "원나라 전함은 모두 돌풍에  깨졌으나 고려 전함만은 대부분 무사했다"라고 고려전함의 견고성을 전한다. 이 해전에 투입된 고려군 대선 한척의 길이는 약 30m로 90명이 탈 수 있었으며, 적재량은 쌀 3천석을 거뜬히 실을 수 있는 250톤가량이나 되었다. 240여년 후에 마젤란이 세계를 일주할 때 끌고 간 5척 배 가운데서 가장 큰 배라야 130톤밖에 안 되었다고 하니 그 우열은 자명하다. 이 원정을 위해 고려는 ‘배 위에서 말을달릴 만하다‘는 대선 300척을 포함해 모두 900척의 선박을 불과 4개월 만에 건조했다고 하니 그 출중한 조선술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 P302

그러나 고려의 최무선(崔茂宣)이 20여년의 노력 끝에  1373년경에 드디어 화약을 개발했고 화포인 주화를배에 설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화포를 배에 설치한 것은 고려가 세계에서 처음이다. 앞에서 보다시피 유럽은 고려보다 100년 뒤에야 가까스로 포를 전함에 장착해 해전에 임할 수 있었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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