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나는 지금 낯선 마을에 와 있다. 마을의 이름은 ‘쿠리‘이다. 북인도 라자스탄 사막의 끝자락에 위치한 곳, 몇 안 되는 흙벽돌 집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엎드려 있다. - P19

나는 눈을 감고 지도 위에 한 점을 찍어 그 장소까지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 P19

그러나 남에게 한 약속도 아니고 스스로 내린 결정을 시도조차하지 않고 포기할 순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캘커타에서 비행기를내리자마자, 마치 인도를 점령하기 위해 떠난 희랍의 알렉산더 대왕처럼 전속력으로 인도 대륙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 P20

모두 걸린 시간은 8일 반나절하고도 세 시간이었다. 쿠리까지가는 데만 무려 2백 시간이 넘게 걸린 셈이었다. 도중에 기차를 갈아탄 것이 일곱 번이었으며, 4일은 기차역에서 잤고, 나머지 3일은 기차 안에서 배낭을 끌어안고 잤다. 더구나 쿠리로 가는 시외버스는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아서 배낭을 깔고 앉아 하루 온종일기다려야만 했다. - P20

여행 가이드북에 40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적힌 거리가 왜 그토록 오래 걸렸는가를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곳은 인도이니까!" - P20

마을에는 뜻밖에도 호텔이 하나 있었다. 집이 열 채 정도밖에없는 곳에 호텔이 있다는 건 정말 뜻밖이었다. 누구를 위해 그 호텔이 거기 존재하는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인도는역시 수수께끼의 나라였다. - P22

내가 바냔나무 아래 가서 앉자 개 두마리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개들은 어디서 배웠는지 한껏 애처로운 표정으로 먹을 걸 달라고 나를 쳐다보았다. 한 마리는 허기가 져서 죽겠다는 듯 아예옆으로 픽 쓰러졌다. - P25

세상은 결국 주관적으로 해석하기 나름 아닌가.  - P25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먼여행을 온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내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은 사막 지방에선 자살 행위와도 같다는 것이었다. - P29

가진 게 없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은 따뜻한 사람들의 토담집 위로 별똥별이 하나둘 빗금을 그으며 떨어져내렸다.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역시 저 하늘 호수로부터 먼 여행을 떠나온 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때까지 별을 구경할 수 있는 구멍 뚫린 방이 나는 너무 좋았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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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아름답다.

내 앞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내 뒤의 모든 것이 아름답다.

내 아래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내 둘레의 모든 것이 아름답다.

인디언 노래_나바호 족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류시화 편

옳은 것을 틀리다고 말하고 틀린 것을 옳다고 말할 수 있으니, 얼굴 흰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에는 얼마나 기름칠이 잘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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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지도와 돈과 신발을 빌려준 이들에게,
그리고 나의 여행에 대해 "그만 말하고
이제 글로 쓰라"고 충고해준 아내에게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여행자를 위한 서시
1997년 여름 류시화

빈자의 행복

차루는 허풍쟁이였다. 걸핏하면 허풍을 떨었다. 그리고 말끝마다 "노 프라블럼!"을 외쳤다. - P11

"모든 것은 당신 자신의 업이에요. 이미 수천년전부터 정해져있는 일인 걸 내가 어쩌란 말인가요. 어쨌든 현실의 결과를 받아들여야지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차루는 한낱 릭샤 운전사가 아니었다. 인생의 문제를 초월한 성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인도 사회의가장 밑바닥 계층에서 어느덧 깨달음을 얻은 힌두 명상가로 변신해 있었다. - P16

희랍의 철학자 제이 상인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그의 집에는특별한 노예가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제논이 화가 나서 노예의 뺨을 때리자 노예는 평온한 목소리로 제논에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이 순간에 주인님에게 뺨을 맞도록되어 있었고, 주인님은 또 제 뺨을 때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두 사람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 충실히 제 역할을 수행했을 뿐입니다." - P17

제논은 훗날 스토아 학파의 대철학자가 되었는데, 인도인으로짐작되는 이 노예에게 영향을 받은 듯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에흔들림 없는 현실 수용‘이 그의 주된 사상이었다. - P17

한편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갖고 있는 것이 당신에게 불만스럽게 생각된다면, 세계를 소유하더라도 당신은 불행할 것이다." - P17

세네카, 제논의 노예든, 또는 차루든, 이들이 한결같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너의 소원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삶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여라. 
그러면 넌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 P17

"노프라블럼!"
그러면서 차루는 당당하게 덧붙였다. 1루피만 줘서 내가 행복하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자기의 친구이니까, 자기한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내 행복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잠시만의 행복이 아니라 돈을 준 내자신이 오래도록 행복할 수있을 만큼 돈을 달라고 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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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 P108

거울때문에 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든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오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P110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P112

모든 것이 희미하고 아름다웠다
달리는 시간도 열렸다 닫히는 유리창도
무성하게 돋아난 마른 잡초들은
마을과 더불어 있고
시간을 통과해온 얼굴들은 투명하고
나무 아래 별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저마다의 슬픔으로
사물이 빛을 발하고 이별이 드넓어지고
세석에 눈이 내렸다
살아 있으므로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 P114

소중한것들은 언제나 저렇듯 무겁게
내린다고, 어느 날 말할 때가 올 것이다
눈이 떨면서 내릴 것이다.
등불이 눈을 비출 것이다
등불이 사랑을 비출 것이다
내가 울고 있을 것이다 - P116


정지용

눈 머금은 구름 새로
힌달이 흐르고,

처마에 서린 탱자나무가 흐르고,

외로운 촉불이, 물새의 보금자리가 흐르고…

표범 껍질에 호젓하이 쌓이여
나는 이밤, ‘적막한 홍수‘를 누어 건늬다. - P118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 P120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P120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P122

기도실
강현덕

울려고 갔다가
울지 못한 날 있었다
앞서 온 슬픔에
내 슬픔은 밀려나고
그 여자
들썩이던 어깨에
내 눈물까지 주고 온 날 - P124

팬케이크를 반죽해요
크리스티나 로제티

팬케이크를 반죽해요.
부지런히 저어요.
팬 위에 올리고는한쪽 면을 익혀요.
재빨리 뒤집어요.
할수만있다면!
세상도 뒤집어보고 싶어요. - P134

이제 나는 할 말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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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말하는 지팡이를 잡은 사람은 그의 손안에 신성한 말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있는 동안은 오직 그 사람만이 말을 할 수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침묵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에게 진실되고 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기 위해 말하는 지팡이에 독수리 깃털을 매달기도 했다.

그들 사회에서는 ‘버린다’와 ‘잃어버린다’는 단어가 같다. 어떤 것을 마구 버린다면 그것을 사용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이 동의어인 세상이 원주민들의 세상이었다.

얼굴 흰 사람들은 인간이 인쇄한 종이에 너무 많이 의존한다. 나는 위대한 정령의 책에 더 눈길을 돌린다. 위대한 정령의 책이란 바로 그가 창조한 이 세상이다. 자연을 잘 공부해 보면 그 책의 많은 부분을 읽은 것이 된다. 당신이 갖고 있는 책들을 태양 아래 내다 놓고 눈과 비와 곤충들에게 잠시 동안만 맡겨 둬 보라. 그러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정령은 당신과 나에게 자연계 속의 우주, 숲과 강물, 산,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 동물들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늘 제공해 주고 있다.

수천 년이 흘러도 나이아가라 폭포는 변함없이 나이아가라 폭포일 것이다. 그 이마에 드리워진 무지개 화관은 태양이 떠오르고 강물이 흐르는 한 영원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하게 보호하고 보관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예술 작품은 빛이 바래 곧 먼지로 돌아가 버린다.

검은 옷을 입은 당신 프랑스 인이여, 이토록 고생을 무릅쓰고 우리를 찾아와 줘서 고맙다.

알게 해 주세요.

이것이 진정한 것인지.

알게 해 주세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진정한 것인지.

모든 곳에 계시는 위대한 정령이시여,

알게 해 주세요.

이것이 진정한 것인지.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파우니 족 기도문

얼굴 흰 사람들은 자유와 정의를 이야기한다. 인디언은 자유와 정의를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몰살당한 것이다. 얼굴 흰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와 정의는 바람에 불려 가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어느 다코타 족 인디언

우리는 자연 속 모든 존재들과 조화롭게 살 줄 안다. 자연 속의 존재들은 우리 안에 있고, 우리 모두는 자연의 일부분이다.

흰 구름(마하스카) 라코타 족 추장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왔을 때 당신들은 자신들이 믿는 하느님의 아들마저 죽였다. 못으로 박아 죽였다. 그를 살해한 다음에야 비로소 믿기 시작했으며, 이번에는 그를 믿지 않는다고 우리를 죽이고 있다. 도대체 그런 종류의 인간들을 우리더러 어떻게 신뢰하란 말인가?

‘포로로 붙잡은 얼굴 흰 자들을 고문해선 안 된다. 우리가 자신을 다스릴 줄도 모르는 야생동물이나 다를 바 없는 그런 사람들인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들의 땅을 위해 싸우는 자랑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러니 남자답게 싸우자. 우리를 죽이고 땅을 빼앗으러 오는 이 얼굴 흰 자들을 물리치자. 하지만 나는 그대들에게 말한다. 포로로 잡힌 사람을 고문하지 말라!’

너의 가슴속에 죽음이 들어올 수 없는 삶을 살라. 다른 사람의 종교에 대해 논쟁하지 말고, 그들의 시각을 존중하라. 그리고 그들 역시 너의 시각을 존중하게 하라. 너의 삶을 사랑하고, 그 삶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고, 너의 삶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만들라.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인디언들을 원시 상태의 순수함을 지닌 사람들로 묘사하면서, 야만인으로 부르는 편견에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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