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우스 성벽,
공화국 경계를 허물고 대외로 진출하다 - P32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의든 타의든 독립을 해야 할때가 온다. 홀로서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고통이 따르며 시행착오로 인한숙고의 시간도 필요하다. 자신을 보호하고 있던 성벽을 허물어야 새로운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로마도 용기를 가지고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스스로 허물어 버리자 더 넓은 세계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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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독자는 열 개의 길을 통해 서유럽이라는 매력적인 숲을 만나러떠난다. 이 길은 네 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이탈리아를 관통하는 네 길이다. 문명의 횃불을 들어 유럽에 어둠을 밝혔던 로마가 그 시작점이다. 이어 신 중심의 사회였던 중세를 지나 다시 인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피렌체로 연결된다. 길은 새롭게 자각한 인간의 잠재력이최고조로 발현되었던 베네치아를 돌아 모든 이탈리아의 길을 하나로 통일하고자 했던 밀라노까지 연결된다. 이 모든 길이 비로소 하나로 연결되어 살아 숨 쉬는 이탈리아의 대동맥이 된다.
- P7

두 번째는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를 통과하는 세 길이다. 알프스의 웅장함을 조망하는 최고의 장소로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던 루체른에서 길은 시작된다. 이어 거친 자연환경을 개척하고자 고군분투했던 인터라켄을 지나, 관용의 정신으로 인도주의를 실천했던 제네바까지 길은 연결된다. - P7

세 번째는 고대부터 로마의 문화를 착실히 받아들였던 프랑스를 통과하는 두 길이다. 문화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베르사유에서 길은 시작되어 프랑스 대혁명으로 근대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던 혁명의 심장 파리에 다다른다 - P7

마지막은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을 통과하는 길이다. 영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에 성공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성장했다. 그중심에 있었던 도전과 혁신으로 가득 찼던 런던에서 길은 끝난다. - P8

로마에서 시작해 런던에서 끝나는 열 개의 길은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거대한 역사의 축이 된다.
이로써 유럽은 새로운 생명을 얻어 살아 숨 쉰다. 길의 끝에서 맥박이 요동치는 역동적인 숲을 꼭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숲 너머 아스라이 보이는 곳까지 시야를 넓히고, 세상을 이해하는 경계를 더욱 확장하길 기원한다. 그런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썼다.
가을의 길목에서 이상엽 - P8

첫 번째 길
로마, 문명의 길 - P19

"로마인이여, 너는 명심하라.
권위로써 여러 민족을 다스리고,
평화를 관습하고,
패배한 자들에게는 관대하고,
교만한 자들은 전쟁으로 분쇄하도록 하라"
- 『아이네이스」, 베르길리우스 - P21

V 포룸 로마, 로마 시대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이자 복합문화공간이었다. - P29

우선 타르퀴니우스는 시민들을 위한 대규모 오락 시설을 기획한다.
팔라티누스 언덕과 아벤티누스Aventinus 언덕 사이의 늪지대 물을 빼고그곳에 원형 대전차 경기장인 키르쿠스 막시무스 Circus Maximits 를 만들었다. 영화 <벤허>에서 선보인 박진감 넘치던 전차 경주가 이곳에서 펼쳐졌다. 일상에 지친 로마 시민들은 이곳에서 사두마차 경주를 보며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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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철은 그때에 반쯤 마신 정종 잔을 들어 최달영의 얼굴에 뿌리면서 외쳤다.
"그래, 잘해 처먹어라, 앞잡이 놈아!"
일철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최달영은 손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닦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어리석게 굴지 마라. 나중에 후회할 거야."
결국 나중에 이일철이 후회한 것은 자기가 감정을 쉽게 드러냈다는 것뿐이었다. - P555

"내일 공장으루 찾아갈 거예요."
대답 없이 일철이 대문 밖으로 횡하니 사라졌고, 그날을 마지막으로 그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
이튿날 폭력배들은 용산철도국 영등포공작창으로 몰려왔다. 이때에는 농성하던 노동자들도 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 P557

전투가 오래 걸리지 않은 것은 그만큼 사상자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이전에 일제와 싸우던 때에도 이렇듯 과감한살상 진압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매우 놀라고 당황했다. - P558

모든 권력을 인민위원회로 - P559

철도노동자들은 용산과 영등포를 망라하여 천칠백여명이 검거되었다. 그러나 항쟁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고, 전국으로 번져나가게 된 도화선은 대구에서 시작된다. - P559

경상도의 전지역이 항쟁에 휩싸였고 서울과 경기도는 물론이고충청도 대전, 전라도 광주 화순 목포 등 전국적으로 번져갔다. 미군은 경찰, 그즈음 갓 창설한 국방경비대, 우익 청년단과 깡패들 등을총동원하여 진압작전에 나섰고, 과거와 다른 것은 거침없이 양민학살을 마다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마산에서는 시위 중인 육천여군중을 향하여 무차별 발포를 감행했다. 전국 각지에서 이만 팔천여명이 살상을 당했으며 무려 일만 오천여명이 체포 연행당했다. - P562

진오는 국민학교 시절에 할머니 신금이에게 되물은 적이 있었다.
"일제시대에는 그랬다 치고, 왜 우리 식구들은 힘센 쪽에 붙지못하고 맨날 지는 쪽에만 편들었어요?"
"왜, 약한 쪽 편드는 게 싫으냐?"
"물론이지요. 너무 손해잖아요?"
그러면 할머니는 감실감실 주름살 잡힌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웃으면서 말했다.
"그때에는 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있다. 너무 느려서 답답하긴 했지만."
그리고 신금이는 덧붙였다.
"오래 살다보면 알 수 있단다. 서로 겉으로 내색을 안 할 뿐이지속으론 다들 알구 있거든." - P564

그는 곧 경계를 풀고 걷는데 앞에서 국민복 차림의 남자가신문을 둘둘 말아 쥐고 다가왔다. 최달영은 그를 보면서 ‘내가 저자를 어디서 보았던가 하면서 매우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그때에방금 지나갔던 두 청년이 뒤에서 달려들며 그의 양팔과 어깨를 붙잡았다. 최달영은 개의 목줄을 놓쳤고 소리를 지를 틈도 없었다. 앞에서 다가온 자가 신문지에 쌌던 칼을 그의 배에 재빨리 찔러넣었던 것이다. 뒤에서 최를 붙잡은 자들도 한 팔로는 그의 상반신을잡은 채 다른 손으로 칼을 뽑아 양 옆구리를 수차례 쑤셨다. 터진논고랑의 물처럼 피가 쏟아져나왔고 최달영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렸다. 그가 땅바닥에 드러누워 위를 향하여 눈을 치뜨고 올려다보자 앞에서 맨 처음에 칼질을 했던 사내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야마시타! 나 조영춘이다. 방우창 이이철 열사가 저승에서 기다리구 있을 거다." - P569

최달영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목을 떨구면서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 P569

"정말 삼팔선을 넘어가야 할까봐."
신금이의 말에 선옥이 중얼거렸다.
"우리는 그럴 수 없어. 삼백만 당원이 있는데 나만 살자고 도망칠 수는 없잖아. 당 중앙도 아직 지하에서 활동 중이고, 정 피치 못할 경우에만 넘어가고 있다구."
북에서 내려오는 월남민들도 점점 늘어가구 있잖아."
"저쪽은 진작 토지개혁 하구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했으니까.
혁명에 적응 못하는 사람들두 많겠지." - P573

"참 그지때기 같은 세월이구나!"
신금이가 훌쩍이면서 중얼거렸다. - P575

"형사나 끄나풀 중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다는 건 맞기두하구 틀리기두 하지. 역할을 저희끼리 정하기두 하지만, 이런 경우는 보험 들어두자는 게야. 세상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던 시절이었으니까." - P578

"그런데 가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은 우리가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진 않고 늘 미흡하거나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게아닌가. 그것도 시간이 무척 오래 지나서야 그러더군요. 장구한 세월에 비하면 우리는 먼지 같은 흔적에 지나지 않아요." - P585

미국의영향 아래에서 갓 창설된 유엔에 한반도 문제가 상정되었고 분단정부의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한 대한민국 수립을 선포했다. 넉달 뒤에 북에서도 최고인민회의가 구성되고 김일성을 수상으로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남과북의 국방경비대와 인민보안대는 각각 국방군과 인민군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적대적인 정규군이 되었다. 제주도의 폭동 진압차 출동 명령을 받은 국방군 일부가 여수 순천에서 항명 거사하고 이 지방에서는 좌우가 엇갈리면서 양민학살이 자행된다. 이후 한라산지리산을 비롯한 남쪽의 거의 모든 산악지대는 유격대의 활동 근거지가 되었고 삼팔선에서는 남북 양 군대의 전투가 일상적인 사건이 되었다.
- P590

"얼른 돌아와서 엄마하구 같이 살자!" - P595

내가 오래전부터 언급해왔듯이 『철도원 삼대』에 대한 구상은1989년 방북 때 평양에서 만난 어느 노인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북한 당국의 안내로 평양백화점을 방문했고 여성 총지배인과인사를 나눈 뒤에 현장 안내를 맡은 부지배인을 만났다. 총지배인이 전쟁 당시에 한 지역의 생필품을 공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후문이 있었으니, 부지배인 노인도 물류의 유통이나 수송에 역량을 보인 사람으로 노년에까지 책임 부서를 맡고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 P613

이 소설의 제목이 ‘채널예스‘의 지면을 빌려 연재할 때에는 ‘마터2-10‘ 이었는데, 그것은 산악형 기관차로서 지금은 통일공원에분단의 화석처럼 놓여 있는 기관차의 제작번호였다. 그러나 독자들에게는 어쩌면 낯설 수도 있다는 편집진의 의견이 있었고, 보다쉽고 대중적인 ‘철도원 삼대‘를 제목으로 결정했다. 이 제목은 오랫동안 내가 가제로 붙여두었던 것으로, 처음의 제목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 P617

"다시 올라가자. 이번엔 내가 올라가겠어."
막내 차군도 말했다.
"저두요. 김선배, 저두 올라가겠어요."
거기서 대화가 끊기고 더이상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 P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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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을 빠져나온 이금순은 박헌영을 호위하여 충청도 지방을 향하고 있었으며, 충청북도 시골에 숨었다가 경성콤 사건이 잦아든지 일년 뒤에야 광주로 내려가게 된다. 박헌영은 그후 해방이 될때까지 김성삼이라는 가명으로 벽돌공장에 인부로 숨어 있었고 이금순이 유일한 외부와의 레포 역을 맡았다. 이것이 일제강점기 국내에서 벌어진 사회주의 조직의 마지막 운동이었다. 경성콤이 와해된 1941년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국내 운동은 물론 해외 조선인의 항일 무장투쟁도 퇴조기에 접어들었다. - P500

"저저 놀란 눈 좀 보라지. 정말 하늘도 땅도 뒤집힐 놀랄 일이 터져버렸소."
조는 박선옥을 손가락질하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박선옥은 그가갑자기 미친 줄 알고는 더욱 겁을 먹었다.
"조, 조선이 해방되었소!"
"쉬잇, 안으루 들어가요."
박선옥이 그의 소매를 당기자 조영춘은 대뜸 뿌리치고는 연신웃어댔다.
"일본이 항복했다구, 공장마다 방송을 들었대요. 오늘은 일두 때려치구 다들 집으루 돌아갔어." - P514

조선 해방의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 뜬금없이꿈같은 소리를 믿지 못했고, 방송을 들은 사람들도 직직대는 라디오의 잡음 속에서 가냘프게 들리는 일왕 히로히토의 일본말을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 P514

그러자 누군가가 기계를 멈추며 만세를 불렀다.
"조선 독립 만세!"
멍하니 섰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고 온 공장이 떠나가게 만세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 P515

일왕 히로히토의 공개방송 내용에는 침략에 대한 반성이며 패전에 대한 항복의 의미는 한 글자도 들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영국 등으로부터 동아시아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불가피한 일이었으며 주권 배격과 침략이 그의 뜻이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그 내용은 연합군 수뇌의 포츠담선언을 수락한다는 내용으로얼버무려져 있었다. 해방된 조선의 식자층과 당시의 어느 논객은뒤에 이렇게 회고했다.
‘조선에서 해방은 1945년 8월 16일 하루뿐이었다." - P520

항복 방송이 아니라 종전 방송이었다. 8·15에 일제가 무조건 항복했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었다. 일제는 1945년 9월 2일 오전 아홉시 동경만에 정박해 있던 미해군 전함 미주리호 함상에서항복문서에 조인할 때까지 항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제는 어째서 8월 15일에 항복하지 않고 계속 버티다가 9월 2일에 항복하였는가. 그것은 미군이 일본에 상륙하기를 기다렸다가 미국에게 항복하려고 작정했기 때문이다. - P521

조선반도의 삼십팔도선 분할은 1945년 8월 9일에 대일전쟁을 개시한 소련군이 만주를 거쳐 조선에 진격하자 8월 11일 미국 전략정책단이 소련군의 남진을 저지하려는 긴급대책으로 삼팔선을 그어한반도를 서둘러 분할했다는 것이 공식적 견해였다. 조선반도의분할은 미국이 즉흥적으로 주도하고 소련이 아무것도 모르고 동의해준 것이라는 견해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고,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진 미국의 전략이었다. 미국 측 전략가들은 세개의 주요 항구를주목했고 이중 두개의 항구인 부산과 인천을 자기들 쪽에 포함시켜야 하며, 서울 바로 북쪽에 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삼팔선을 따라 긋는 것이 가장 좋은 위치라고 판단했다.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은 이미 포츠담회의에서 비공식적으로 조선반도의분할을 안건으로 내놓았던 것이다. - P521

1945년 9월 9일 오후 세시 사십오분, 승전국 미국과 패전국 일제가 공동의 적인 소련과 대결하고 조선반도의 통일독립을 저지하기위해 남조선점령군 미군사령관이 조선총독의 식민지통치권을 넘겨받는 조인식을 진행했다. 그것은 항복문서 조인식이 아니라 일제의 조선식민통치권을 미국이 넘겨받는 통치권 이양식이었다. 조선총독과 미군 남조선점령군 사령관은 통치권 이양 문서에 나란히서명했다. 통치권 이양식을 마친 미군 남조선점령군과 일제 조선총독부 측은 당일 오후 네시 삼십오분 조선총독부에서 국기 교체식을 진행했다. 부근에 조선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 P525

서울 시내 열개 경찰서장과 경기도 내 이십일개 경찰서의 서장이 미군정 당국에 의해 임명되었으며 이들은 모두가 일제의 경찰이었거나 관리의 경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최달영은 발령받은 용산서로 출두했다. 조선인 신임 서장은 역시 이전에 일제 경찰 경시였고 정식으로 순사 시험을 치르고 간부직에 오른 사람이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고위직에 오르려면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체포하고 투옥시켜야 했을 것이다. 그는 그의 이력이 적힌 서류를 들고 잠시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P534

"한국은 하도 우여곡절이 많아서 여기 일년이 다른 나라의 십년이라구 하지 않더냐, 여기 십년은 바깥의 백년 세월과도 같을 게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들 수백살씩 먹은 게지." - P537

해방되고 육개월이 못 되어 전국에 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노동조합 전국평의회와 전국농민조합총연맹을 조직한 민중은 짧은기간이었지만 자신들의 열망에 기초한 자주독립국가와 민주사회건설에 성큼 다가서는 경험을 갖게 되었다. 해방 초기부터 미군의진주로 인하여 이러한 모든 희망이 좌절되어가는 과정은 인민들에게 역사와 사회발전 법칙에 대한 풍부한 교육적 효과를 안겨주었다. - P545

누군가가 단상에나서서 지난 이월에 결성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위원장, 부위원장인 김일성, 김두봉 등과 남측 좌익진영의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위원장, 부위원장인 여운형 허헌 박헌영 등에게 보내는 성명 서한을 낭독하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며칠 간격으로 남한 우익진영은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결성하고 총재와 부총재에 각각 이승만과 김구를 추대하고 있었다. - P546

초여름에 군정 당국은조선정판사위폐사건을 조작하여 악성 인플레의 책임을 조선공산당에 전가하려고 했다. 같은 시기에 이승만은 정읍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한다. 북에서는 북조선노동당이 결성되었고 김일성, 김두봉 등이 위원장, 부위원장을 맡았다. 미군정은 조공 지도부박헌영 등에 체포령을 내렸고 이후 남한의 사회주의 조직은 완전히 지하로 들어갔다. 몇몇 전설적인 항일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인인사들이 체포되었다. 가을에 접어들자마자 전평의 총파업과 함께시월인민항쟁이 벌어지고 피의 진압 속에서 남조선노동당이 결성되었으며 위원장에 허헌, 부위원장에 박헌영을 선출한다.
- P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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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몰고 와서 마당의 기둥에다 목줄을 당겨 바짝 붙들어맨다.
이때에는 돼지도 벌써 저 죽을 줄을 알고 똥을 부직부직 싸면서 뒷발을 구르고 꽥꽥거리며 요동을 친다. 주먹만 한 쇳덩이가 달린 채석장 해머를 몸 뒤에다 감추고 침착하게 돼지의 대가리를 겨누기맞춤한 거리까지 다가선다. 길게 사이를 두지 않고 한 호흡에 들이마셨다가 내쉬면서 해머로 돼지 이마를 딱 내려친다. 이마 뼈가 주 저앉은 돼지가 졸지에 기절하면 즉시 잘 갈아놓은 칼로 목을 딴다.
그러면 조수를 맡은 맏누이가 바가지와 양동이를 들고 와서 돼지피를 받는다. - P293

피가 거의 빠졌다 싶으면 죽은 돼지를 배가 하늘로 가도록 뒤집어놓고 머리를 자르고 목덜미에서 항문까지 베어 내장을 수습한다. 그러고는 끓인 물을 부어가며 잘 갈아놓은 칼로 뻣뻣한 털을 밀어낸다.
돼지 잡는 일뿐 아니라 기르는 일도 고되고 험했으니 무엇보다도 양돈의 성공 여부는 사료를 어떻게 얻느냐 하는 데 달려 있었다. - P294

뒤에 알았지만 주재소의 조선인 순사 보조원들은 정식 순사보로 발령받은 자들이 아니었고, 최달영처럼 끄나풀이 되어 활동하며 나이가 들어서 순사 보조원이라고 부를 뿐이지 자기와 똑같은 임시 고용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진짜 순사보다도시정에 나가면 조선인들에게 권세가 막강하였다. 이러한 자들을조선인들은 앞잡이나 끄나풀, 또는 여우라고 불렀고 친일 사회단체의 공개적인 장을 맡아 앞잡이들을 총괄하는 각 기관의 조선인촉탁들을 꿩이라고 불렀다. - P305

이들은 공안기관 용어로 정탐 또는 밀정이라고 칭했다. 한일합병 직후에 헌병 삼천여명, 경찰 이천육백여명, 그리고 헌병 보조원 사천팔백여명에 순사보 삼천여명, 정탐삼천명이었다. 헌병 보조원과 순사보도 밀정 역할이 위주였으니정탐과 합치면 일만 팔백여명이고, 헌병과 경찰 한 사람당 두명의개인밀정을 합치면 전국적으로 그 수는 어림잡아서 이만 오천여명이 되었다. 이러한 직임이라도 얻어보려고 해마다 이십 대 일의 경쟁을 통과했으니 들지 못한 자들까지 잠재적인 앞잡이로 본다면그 숫자는 수십만이 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가산과 가족까지 버리고 목숨을 바쳐 일제와 싸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적의 앞잡이가되어 몇푼의 생활비와 작은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그렇게나 많았던 것이다. - P306

밀정의 종류는 대개 네가지로 분류가 되었다. - P306

첫째는 최달영의경우처럼 고용밀정이라 하는데 월급이나 상여금에 혹해서 직업적으로 개인이나 기관의 정보원 노릇을 한다. 그와 같은 자들은 경찰서 헌병대 특무기관 등에 고용된 밀정과 순사나 헌병의 정보원 노릇을 하는 개인밀정으로 구분된다. - P306

둘째는 어느 사건이나 정보를위해서 필요한 기간만큼만 밀정질을 하는 임시적인 촉탁밀정이 있었다. 이 경우에도 상여금을 탐내서 하는 예가 대부분이었다. - P306

셋째는 밀고자인데 말하자면 준밀정이다. 이해관계나 원한 때문에 자발적, 능동적으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제보자와 구별된다. 제보자는 물으니까 대답한다는 식으로 피동적인 경우가 많으므로 정보 제공의 행의에 이해관계가 없기 마련이다. - P306

넷째는순사나 헌병이 수사나 탐문의 필요에 따라 직책으로 밀정질을 하는 경우이다. 민간인 또는 활동가로 변장해서 직접 침투하거나 또는 자기의 개인밀정을 사용해서 간접으로 정보를 입수하기도 한다. 기관에서는 밀정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 밀정을 정탐하는경우도 있었다. - P307

이러한 유형 중에서 중심은 어쨌든 고용밀정과 촉탁밀정이었다. 그중에서도 밀정업자라고 부를 만한 거물들이 있었다. 이런 부류는 일진회 같은 친일단체의 간부를 역임하거나 독립운동가 중에서 변절한 자들이 총독부 경무국 촉탁이니 일본 외무성 촉탁 따위의 직함까지 받아서 유지나 권력자로 행세했다. - P307

기샤가 재빠른 솜씨로 화투장을 바꾸거나 숨기고 상대방에게 맞춤한 패를 주어 판돈을 과감히 걸게여 싹쓸이를 했다. 어수룩한 도박꾼인 것처럼 판에 끼어서 부추기며 기샤의 속임수를 돕는 자를 조슈라 하고, 장소를 마련하고 밑천을 대는 자를 슈진이라 하며, 돈 많고 도박을 즐기는 고객들을 모아 오는 자를 오야라고 하였다. 이들은 대개 서너명에서 많으면 칠팔명씩 한 구미를 이루었다. 이러한 조직과 방법도 대개는 개화기를 지나고 조선의 갑오잡기나 투전에서 화투로 변하면서 일본 도박꾼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 P308

남대문역이 즉 경성역이었는데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는 예전에 부르던 이름으로 그냥 그렇게 불렀다. 더구나 서울역이라는 역 이름은 해방이 되어서야 부르게 될 이름이었다. - P319

"일본인 조선인 한인 만주인 몽골인 등이 서로 화합하여 평화로운 나라를 만든다는 뜻이다. 또한 정착을 원하는 어느 나라 어느종족의 누구든지 함께 살 수 있다. 물론 앞장서서 끌고 나가는 것은 첫 단계에서 일본이 하고 있는 셈이다."
그때에 하야시가 껄껄 웃으면서 일철에게 말했다.
"들었나? 대일본제국의 관동군이 평화의 만주를 만든다. 철도가그 선발대라구." - P325

다.그러나 항일 무장투쟁을 하는 중국과 조선의 젊은이들은 항일연군을 조직하여 함께 싸웠다. - P326

때리고 차고 물을 먹이고 달아매고 하다가 나중에는 쇠꼬챙이를 불에 달구어 넓적다리를 지지고 하였다. 죽음으로써 자기의신념을 지키고 그 운동을 지키려는 숭고한 정신에서 이재유 동무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초조해진 경찰은 음식도 잘 못 먹고 보행도 못하는 이동무를 자기들이 업고 부축하여 취조실로 끌어내어 전기고문까지 하였다. 이재유 동무는 나중에 그의 동무들에게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을 각오하였다‘라고 회상했다. - P336

"벚꽃 동산에 피어 있는 꽃, 바랜 꽃도 있고, 피는 꽃도 있네."
모리다는 일본 노래의 곡조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던 조선인 정치범들은 잘 지었다고 칭찬해주었고, 모리다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쓸쓸히 웃기만할 뿐이었다. 이 일로 엄한 추궁을 받은 모리다 순사는 경성에서멀리 떨어진 함경도의 산골 오지 주재소로 좌천되었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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