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몰고 와서 마당의 기둥에다 목줄을 당겨 바짝 붙들어맨다. 이때에는 돼지도 벌써 저 죽을 줄을 알고 똥을 부직부직 싸면서 뒷발을 구르고 꽥꽥거리며 요동을 친다. 주먹만 한 쇳덩이가 달린 채석장 해머를 몸 뒤에다 감추고 침착하게 돼지의 대가리를 겨누기맞춤한 거리까지 다가선다. 길게 사이를 두지 않고 한 호흡에 들이마셨다가 내쉬면서 해머로 돼지 이마를 딱 내려친다. 이마 뼈가 주 저앉은 돼지가 졸지에 기절하면 즉시 잘 갈아놓은 칼로 목을 딴다. 그러면 조수를 맡은 맏누이가 바가지와 양동이를 들고 와서 돼지피를 받는다. - P293
피가 거의 빠졌다 싶으면 죽은 돼지를 배가 하늘로 가도록 뒤집어놓고 머리를 자르고 목덜미에서 항문까지 베어 내장을 수습한다. 그러고는 끓인 물을 부어가며 잘 갈아놓은 칼로 뻣뻣한 털을 밀어낸다. 돼지 잡는 일뿐 아니라 기르는 일도 고되고 험했으니 무엇보다도 양돈의 성공 여부는 사료를 어떻게 얻느냐 하는 데 달려 있었다. - P294
뒤에 알았지만 주재소의 조선인 순사 보조원들은 정식 순사보로 발령받은 자들이 아니었고, 최달영처럼 끄나풀이 되어 활동하며 나이가 들어서 순사 보조원이라고 부를 뿐이지 자기와 똑같은 임시 고용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진짜 순사보다도시정에 나가면 조선인들에게 권세가 막강하였다. 이러한 자들을조선인들은 앞잡이나 끄나풀, 또는 여우라고 불렀고 친일 사회단체의 공개적인 장을 맡아 앞잡이들을 총괄하는 각 기관의 조선인촉탁들을 꿩이라고 불렀다. - P305
이들은 공안기관 용어로 정탐 또는 밀정이라고 칭했다. 한일합병 직후에 헌병 삼천여명, 경찰 이천육백여명, 그리고 헌병 보조원 사천팔백여명에 순사보 삼천여명, 정탐삼천명이었다. 헌병 보조원과 순사보도 밀정 역할이 위주였으니정탐과 합치면 일만 팔백여명이고, 헌병과 경찰 한 사람당 두명의개인밀정을 합치면 전국적으로 그 수는 어림잡아서 이만 오천여명이 되었다. 이러한 직임이라도 얻어보려고 해마다 이십 대 일의 경쟁을 통과했으니 들지 못한 자들까지 잠재적인 앞잡이로 본다면그 숫자는 수십만이 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가산과 가족까지 버리고 목숨을 바쳐 일제와 싸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적의 앞잡이가되어 몇푼의 생활비와 작은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그렇게나 많았던 것이다. - P306
밀정의 종류는 대개 네가지로 분류가 되었다. - P306
첫째는 최달영의경우처럼 고용밀정이라 하는데 월급이나 상여금에 혹해서 직업적으로 개인이나 기관의 정보원 노릇을 한다. 그와 같은 자들은 경찰서 헌병대 특무기관 등에 고용된 밀정과 순사나 헌병의 정보원 노릇을 하는 개인밀정으로 구분된다. - P306
둘째는 어느 사건이나 정보를위해서 필요한 기간만큼만 밀정질을 하는 임시적인 촉탁밀정이 있었다. 이 경우에도 상여금을 탐내서 하는 예가 대부분이었다. - P306
셋째는 밀고자인데 말하자면 준밀정이다. 이해관계나 원한 때문에 자발적, 능동적으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제보자와 구별된다. 제보자는 물으니까 대답한다는 식으로 피동적인 경우가 많으므로 정보 제공의 행의에 이해관계가 없기 마련이다. - P306
넷째는순사나 헌병이 수사나 탐문의 필요에 따라 직책으로 밀정질을 하는 경우이다. 민간인 또는 활동가로 변장해서 직접 침투하거나 또는 자기의 개인밀정을 사용해서 간접으로 정보를 입수하기도 한다. 기관에서는 밀정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 밀정을 정탐하는경우도 있었다. - P307
이러한 유형 중에서 중심은 어쨌든 고용밀정과 촉탁밀정이었다. 그중에서도 밀정업자라고 부를 만한 거물들이 있었다. 이런 부류는 일진회 같은 친일단체의 간부를 역임하거나 독립운동가 중에서 변절한 자들이 총독부 경무국 촉탁이니 일본 외무성 촉탁 따위의 직함까지 받아서 유지나 권력자로 행세했다. - P307
기샤가 재빠른 솜씨로 화투장을 바꾸거나 숨기고 상대방에게 맞춤한 패를 주어 판돈을 과감히 걸게여 싹쓸이를 했다. 어수룩한 도박꾼인 것처럼 판에 끼어서 부추기며 기샤의 속임수를 돕는 자를 조슈라 하고, 장소를 마련하고 밑천을 대는 자를 슈진이라 하며, 돈 많고 도박을 즐기는 고객들을 모아 오는 자를 오야라고 하였다. 이들은 대개 서너명에서 많으면 칠팔명씩 한 구미를 이루었다. 이러한 조직과 방법도 대개는 개화기를 지나고 조선의 갑오잡기나 투전에서 화투로 변하면서 일본 도박꾼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 P308
남대문역이 즉 경성역이었는데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는 예전에 부르던 이름으로 그냥 그렇게 불렀다. 더구나 서울역이라는 역 이름은 해방이 되어서야 부르게 될 이름이었다. - P319
"일본인 조선인 한인 만주인 몽골인 등이 서로 화합하여 평화로운 나라를 만든다는 뜻이다. 또한 정착을 원하는 어느 나라 어느종족의 누구든지 함께 살 수 있다. 물론 앞장서서 끌고 나가는 것은 첫 단계에서 일본이 하고 있는 셈이다." 그때에 하야시가 껄껄 웃으면서 일철에게 말했다. "들었나? 대일본제국의 관동군이 평화의 만주를 만든다. 철도가그 선발대라구." - P325
다.그러나 항일 무장투쟁을 하는 중국과 조선의 젊은이들은 항일연군을 조직하여 함께 싸웠다. - P326
때리고 차고 물을 먹이고 달아매고 하다가 나중에는 쇠꼬챙이를 불에 달구어 넓적다리를 지지고 하였다. 죽음으로써 자기의신념을 지키고 그 운동을 지키려는 숭고한 정신에서 이재유 동무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초조해진 경찰은 음식도 잘 못 먹고 보행도 못하는 이동무를 자기들이 업고 부축하여 취조실로 끌어내어 전기고문까지 하였다. 이재유 동무는 나중에 그의 동무들에게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을 각오하였다‘라고 회상했다. - P336
"벚꽃 동산에 피어 있는 꽃, 바랜 꽃도 있고, 피는 꽃도 있네." 모리다는 일본 노래의 곡조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던 조선인 정치범들은 잘 지었다고 칭찬해주었고, 모리다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쓸쓸히 웃기만할 뿐이었다. 이 일로 엄한 추궁을 받은 모리다 순사는 경성에서멀리 떨어진 함경도의 산골 오지 주재소로 좌천되었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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