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좌안의 평지 페스트지구로 세력을 확장했다. 세체니다리를 시작으로 교량을 여럿 만든 이후에야 그 세 지구를 통합한 오늘의 부다페스트가 탄생했는데 주택 · 산업 · 행정은 페스트지구가 담당하고 부다지구는 문화관광사업으로 기울었다. 부다페스트 인구는170만 명 정도 되는데 소수의 독일계와 집시를 제외하면 모두가 머저르족이고 국민 절반이 가톨릭 신도이다. - P128

1956년의 헝가리 국민은 반혁명을 일으켰다. 무력으로 혁명을 진압한 소련 정부는 헝가리 국민의 마음을 달래려고 몇몇 분야에서 자율권을 주었다. 헝가리 정부는 정치적으로는 소련을 따르면서경제 분야에는 시장경제 요소를 조금씩 도입했다. 이윤추구활동을일부 허용하고 소비재 생산 기업을 지원했으며,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서구 문화 유입을 용인했고 국제통화기금(IMF)에도 가입했다. - P129

언드라시 (Andrássy Gyula, 1823-1890)는 오늘날 슬로바키아공화국에속하는 곳에서 태어났다. 자유주의 성향을 가진 백작의 아들이었던그는 소년 시절부터 민족주의 정치운동에 참여했고 세체니 이슈트반의 눈에 들어 스물세 살에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848년 귀족의회의원으로 선출되었고 크로아티아 영토전쟁에 종군했으며 헝가리혁명 정부의 명에 따라 이스탄불로 파견되어 오스만제국 정부의 협력을 끌어내려고 했다. 혁명을 진압한 합스부르크제국은 그를 반역자의 두목으로 지목했다. - P135

상업지구 초입 길모퉁이 자투리 공원에 얕게 물을 담은 인조대리석 수반이 있었고, 그 위에 설치한 좁은 아치형 다리에 등신대 동상이 보였다. 청소년 열댓 명이 다리 초입에 옹기종기 앉은 채 중년 여성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수학여행을 온 학생과 교사임이 분명했다.
동상의 주인공을 검색했다. 그윽한 미소를 띤 채 안경 너머로 국회의사당을 바라보고 있는 그 남자는 너지 임레였다. 그렇게 따뜻한 느낌을 주는 동상은 처음이었다. 다리에 올라가 조심스럽게 그를 안아보았다. - P138

다뉴브강의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쏘련제 탄환은/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순간/바숴진 네 두부는 소스라쳐 30 보상공으로 튀었다./ 두부를 잃은 목통에서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 놓아 울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은 감시의 1만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강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 P141

김춘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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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체니 다리는 수도를 통합함으로써국가적 자부심의 상징이 되었고 지금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명소가되었다. 길지 않은 현수교여서 걷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밤에 조명이들어오면 거대한 설치예술 작품으로 바뀌었다. - P126

왕궁지구 초입에 청동으로 만든 커다란 새가 있었다. 헝가리 건국 설화에서 머저르 일곱 부족 연합체 지도자 아르파드를 부다페스트로 인도했다는 ‘투룰(Turnul)‘이다. 사방에 슬라브족과 게르만족이 포진한 지역으로 머저르 민족을 인도했지만 헝가리 사람들이 투룰을원망하는 것 같지 않았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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쇤브룬 궁전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내게 말했다. "리더십을 형성하려면 지적·정신적·정서적 능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학습과 경험을 해야 한다.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그런 기회를 얻는다면 누구라도 탁월한 리더가 될 수 있다. 나를 보라." - P74

벨베데레는 ‘전망 좋은 테라스‘를 가리키는건축 용어인데, 상부와 하부로 이루어진 이 궁전은 이탈리아 출신 ‘사보이 왕자 오이겐(Eugen von Savoyen)‘이 18세기 초반에 지었다. 사보이왕가는 1권 로마 편에서 소개했던 통일 이탈리아왕국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가문이다. 오이겐 왕자는 넓은 부지를 구입해 공원을조성한 다음 하부와 상부 두 저택을 차례로 지었는데, 그 저택을 마리아 테레지아가 구입해 벨베데레라는 이름을 붙이고 왕실의 예술품을 보관 전시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벨베데레를 거처로 사용한 마지막 인물은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한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었다. 제국이 해체된 후 벨베데레는 다른 궁전들처럼 박물관으로바뀌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 크게 부서졌지만 완벽하게 복구했다. - P74

상궁 전시장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 그곳의 슈퍼스타는 클림트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키스>였다. 나도 이 그림이 아니었다면 굳이 벨베데레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P75

훈데르트바서하우스는 시정부가 지은 공영 임대주택이다. 외벽에 3원색을 칠한 이 집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바르셀로나의 ‘까사 밀라‘처럼 직선이 없었다. 그가 설계한 교회와 호텔 등 다른 건물의 디자인도 다 그랬다. 그러나 두 사람이 지은 집은 용도가 달랐다.
가우디는 돈 많은 부동산업자의 의뢰를 받고 호화 연립주택을 지었고 훈데르트바서는 공영 임대주택을 설계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까사 밀라‘라고 할 수 있을까? 뿌리를 2층 발코니 안에 두고 밖으로 몸을 내민 나무들은 이 집에 사람만 사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 P89

훈데르트바서는 집만 잘 지은 게 아니라 말도 멋지게 했다. "직선에는 신이 없다" "진짜 문맹은 창조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것" "나는집을 고치는 의사"라는 말로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표현했다. - P90

그는 이렇게 믿었다. ‘인간은 자연에 기생하는 생물이다. 얇은 피부를 옷으로 덮고 집에서산다.그집은 사회의 보호를 받으며 사회는 지구 행성의 자연환경 안에 존재한다. 따라서 집을 지으면서 자연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자연과 소통하고 교감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 P91

하지만 빈이라고 상처가 없는 건 아니다. 수많은 역사의 상흔을덮어버리는 데 완벽하게 성공해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합스부르크제국의 정치적 후진성은 시씨 황후의 아름다움과 바로크 궁전의 화려함으로 가렸다. 독일과 합병해자의반 타의반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서도 나치 잔재 청산 작업은 하지 않은 채 영세중립국으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았다. 유엔 사무총장을 연임한 쿠르트 발트하임은 나치 돌격대 가입과 독일군 중위 복무 사실이 드러나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지만 무난히 대통령에 뽑혔다. 독일은 모든 도시모든 장소에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되새기는 공간과 시설을 만들어두었지만 빈에서는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으면 볼 수 없다. 그라벤의삼위일체상도 페스트의 참극을 모르는 여행자에게는 그저 멋지게 금박을 두른 종교적 조형물일 따름이다. - P93

중앙역에서 부다페스트행 기차를 기다리면서 빈에 대한 기억을 정리했다. 가장 뚜렷한 기억의 대상은 사람이었다. 요제프 황제, 시씨 황후, 모차르트, 클림트,
훈데르트바서………… 그리고 그들의 인생이 묻은 문화유산이었다. - P93

빈 중앙역에서 부다페스트 동역까지 기차로 세 시간이 채 걸리지않았다. 비행기보다 빠르고 간편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의미가 깊은길이라서 일부러 기차를 탔다. 완만한 구릉이 이어지는 차창밖풍경을 보면서 세계사의 변곡점이었던 1989년을 생각했다. 그해여름, 늘그랬던 것처럼 많은 동독 시민이 헝가리로 가족 휴가를 떠났다. 가을이 되자 동독의 공장과 학교와 병원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엔지니어 · 교수·교사·의사·간호사를 비롯한 전문직 종사자 수십만 명이 휴가에서 복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99

그들은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에 들어갔다.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동유럽 사회주의국가의 내정에 간섭하지않겠다고 하자 헝가리 정부가 오스트리아 쪽 국경의 철조망을 걷어냈다. 친지방문과 방송교류를 통해 서독이 풍요롭고 자유로운 사회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동독 시민들은 열차와 자동차를 타거나걸어서 국경을 넘었고 오스트리아 정부는 그들의 입국을 허락했다. - P99

길 위에 삶이 있다. - P100

며칠 동안 비가 내린 탓인지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나우강은 거센탁류였다. ‘다뉴브강의 잔물결‘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도 존재하지않았다. 다뉴브(Danube), 도나우(Donau), 두너(Duna)는 모두 같은 강을.
가리키는 영어 · 독일어·헝가리어 이름이다. ‘푸르고 잔잔한 도나우의 물결‘이라는 나의 관념은 아마도 음악 때문에 생긴 것이었으리라. - P100

19세기 루마니아 작곡가 이바노비치의 왈츠곡 ‘다뉴브강의 잔물결‘과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같은 것이다. 특히 이바노비치의 곡은 1926년 현해탄에 몸을 던진 조선 최초 소프라노 윤심덕의 <사의 찬미> 원곡이어서 한국에 널리 알려졌다. - P101

바실리카 입구에는 요한복음 14 장을 라틴어로 새겨 놓았다.
"EGO SUM VIA VERITAS ET VITA(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어지는 성서 문구는 다들 들어보았지 싶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하느님에게 갈 자가 없느니라." - P105

헝가리왕국은 슬라브족의 바다에 뜬 머저르족의 배였다. 이슈트반이 헝가리왕국을 세웠을 때 게르만족은 로마 가톨릭, 슬라브족은콘스탄티노플에 본부를 둔 그리스정교회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역사·언어·문화 등 모든 면에서 딴판인 머저르족이 종교마저 다른 상태로 살았다면 더 혹독한 시련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역사의시간 속에서 민족이 흩어지고 사라져 버렸을 수도 있다. 이슈트반은국가의 통치자로서 민족의 문화적 고립을 완화하는 방책으로 로마가톨릭을 받아들인 게 아니었을까?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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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소매 옷을 입고 후드를 눌러쓴 사람들이 이어폰을 꽂은 채 서성이면서 이따금 앞이나 옆으로 스마트폰 쥔 손을 쭉 뻗곤 했다. ‘좀비플래쉬몹이라도 하는 건가?‘ 알고 보니 그들은 휴대전화로 증강현실(AR)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슈테판 광장은 원래 놀이터였다. 중세에는 거기서 부활절 행사를 비롯한 갖가지 축제를 열었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우리는 놀이를 즐기는 종이다. 뭘 가지고 어떻게 노는지만 달라질 뿐, 그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 P22

오스트리아 국민은 대부분 독일어를 쓰고 가톨릭을 믿는다. 고대독일어에서 ‘동쪽 땅‘을 의미했던 국명 외스터라이히 (Österreich, 오스트리아는 이 단어의 라틴어 표기법에서 유래)는 이 지역이 옛날부터 독일어사용권의 동쪽 변방이었음을 시사한다. 켈트족, 라틴족, 슬라브족 등이 순차적으로 들어와 뒤섞였는데 9세기에 프랑크왕국의 단일 행정구역이 됨으로써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와는 다른 국가로 발전하게되었다. 빈은 철기시대 켈트족이 들어와 요새를 만들었을 때 ‘빈도보나(Vindobona)‘라는 지명이 생겼고 B.C.1 세기 로마군이 점령하면서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했으며 로마군의 성채 일대가 최초의 도심이 되었다. 12세기 들어 상업이 발전하고 십자군의 집결지가 되면서 국제도시로 발돋움했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터를 잡고 신성로마제국 황제직위를 차지한 16세기 이후 중요한 도시로 떠올랐다. 오스만제국 군대의 포위 공격을 두 번 물리친 이후 유럽 기독교인들은 빈을 이슬람의 서진을 막는 종교적 군사적 요충으로 받아들였다. - P24

링은 워낙 넓은 길이라 슈테플 전망대에서 보아야 그 모양과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링을 따라 가상의 성벽을 세우고 바깥쪽의 건물들을 지우자 중세 도시 빈이 보였다. 그 큰 제국의 수도가 그토록작았다니, 믿기지 않았다. 서울 남산 전망대에서본 한양도성이 떠올랐다. 숭례문-서대문-인왕산-북악산을 돌아 낙산-동대문을 거쳐 남산으로 다시 이어지는 한양도성의 길이는 18.6 킬로미터다. 그것이 조선의 수도 한양의 크기였다. 링은 북쪽 도나우 운하 구간까지 다 합쳐도 5.4킬로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 P26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넓힌 제국의 수도라면 그렇게 작을 수 없었을 것이다. 높고 두꺼웠던 빈의 대성벽은 합스부르크의 권력자들을 지배했던 두려움을 드러낸 건축물이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그런 감정을 이겨냈기에 그 성벽을 길로 바꾸는 결단을 할 수 있었다. - P27

성벽을 더 튼튼하게 쌓아 1683 년 오스만제국의 두 번째포위 공격도 물리쳤다. 알프스의 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해 철수한 적군의 요새에서 청동 대포를 3백개 넘게 노획한 빈 사람들은 그것을녹여 18톤짜리 종을 만들었다. 그게 빈의 대표 볼거리 가운데 하나인품메린(Pummerin)이다. 슈테플하단에 매달아 두었던 품메린이 제2차세계대전 막바지 러시아군의 폭격에 맞아 크게 부서지자 오스트리아정부는 전쟁이 끝난 후 무게가 4톤이나 늘어난 두 번째 품메린을 만들어 슈테판 성당의 북탑인 ‘독수리탑‘에 걸었다. - P27

기도의 힘이 모자라서 신의 가호가 내리지않은 게 아니었다. 세균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없어서 비극을 막지못했다. 30여년 후 페스트가 또다시 덮쳤을 때 빈의 방역 담당 관리들과 의사들은 첫 번째 대유행 때 저질렀던 오류를 되새기면서 적극대처해 피해 규모를 크게 줄였다. 비를 맞고 선 페스트조일레를 보면서 그들을 생각했다. 인간은 얼마나 무지하며 무력한가. 그러면서도또 얼마나 지혜로우며 용감한가. 삶은 때로 얼마나 허망하며 또 얼마나 질긴 것인가. - P32

링 주변은 공공건물뿐 아니라 민간주택도 엄청나게 크다. 도대체갑부가 얼마나 많았기에 저택을 이리도 많이 지었을까 의아했는데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 집들은 대부분 다세대주택이었다. 링 주변의 택지를 매각할 때 필지를 크게 잘랐기 때문에 주택도 크게 지을수밖에 없었다. 택지를 매입한 빈의 귀족과 신흥 부자들은 자본주의적 해법을 찾았다. 여러 가구가 살 집을 지어 자기네가 살 공간을 뺀나머지를 임대한 것이다. 이런 집을 ‘친스하우스(Zinshaus, 셋집)‘라고한다. 나중 구도심을 재개발할 때도 낡은 주택을 헐고 친스하우스를지었다. 결국 구도심의 오래된 주택과 좁은 골목이 다 사라져, 빈은도로를 따라 규모가 큰 공공건물과 다세대주택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도시가 되었다. - P41

예술사 박물관이 더러 오아시스를 만날 수 있는 광활한 사막이었다면 제체시온은 풀과 나무가 제 성정대로 자란 오솔길 같았다. 예술사 박물관에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공간이었지만, 어느 작품도다른 것과 같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느낀 감정은 훨씬 더 풍성했다.
예술사 박물관에서 수백년동안 빈을 지배했던 낡은 문화를 보았고,
제체시온에서는 19세기 후반 등장한 새로운 예술과 사상을 만났다. - P53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프리스>, 제체시온의 슈퍼스타. - P54

 ‘비더마이어 시대‘
‘비더(bieder)‘는 우직하다는 뜻인데 조롱하는 느낌이 살짝 얹혀 있다. 비더마이어라는 인물은 여러 독일 작가들의 다양한 문학 작품을통해 만들어졌다. 직업은 시골 학교 교사이고 성격은 우직한데 생활태도는 성실 근면하고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가족의 행복을 최고의가치로 여기는 그는 소박한 가구를 갖춘 작은 집에 살면서 텃밭을 가꾼다. 일상의 작은 일에 정성을 기울이며 조용하게 사는, 요즘 말로하자면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시민 이다. - P58

비더마이어 시대 전시실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퇴행과 압제의어둠 속에도 빛이 완전히 꺼지는 법은 없다. 그렇게 믿으며 삶을 이어가면 새로운 시대를 볼 수 있다.‘ 내가 거기서 본 것은 좌절과 도피가 아니었다. 질긴 희망과 포기하지 않는 기다림이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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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6
이문구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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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개

발음[모개]「명사」죄다 한데 묶은 수효

((주로 ‘모개로’ 꼴로 쓰여))

이것 모개로 사 가십시오.
모개로 사면 싸다.

** 모개-흥정

발음 [모개흥정]
부표제어 모개흥정-하다

「명사」모개로 하는 흥정.

.집과 전답을 모개흥정으로 처분하였다.
.되도록이면 장안의 후한 도가를 만나거나, 전번처럼  모개흥정 붙일 만한 곳을 수소문했으면 싶은 계제인 것이다.≪서기원, 조선백자 마리아상≫


서울,대전에 다니며 가게터를 속아 계약하여  계약금이나 떼이고, 개인택시를 샀다가 한 번의  교통사고로 가진 것을 모개흥정한 사람들이 늘어만 갔던 것은.....


** 부개비-잡히다

발음 [부개비자피다]
활용 부개비잡히어[부개비자피어/부개비자피여](부개비잡혀[부개비자펴]), 부개비잡히니[부개비자피니]

「동사」하도 졸라서 본의 아니게 억지로 하게 되다

섣불리 들어둔 시늉했다가는 자칫 부개비잡혀 뒤탈을  부를 것 같았으므로, 장은 얼른 자리를 피해 나왔다.

그러는 동안 들먹은 여편네와 소갈머리없는 자식들의 들음들음에 줏대없이 돈을 축낸 집도 한둘이 아니었다. 돈놀이를 하다가남 좋은 일만 시키고 두 손 털었다는 소문이 그치지 않고, 서울,
대전에 다니며 가게터를 속아 계약하여 계약금이나 떼이고, 개인택시를 샀다가 한 번의 교통사고로 가진 것을 모개흥정한 사람들이 늘어만 갔던 것은, 비육우를 비롯한 양돈, 양계, 고등 소채 등의 부업마저, 농협의 농축산물 수입과 계통판매로 외래품에 치여버려 밑천도 못 추린 악몽에 넌더리가 나면서, 가장 믿을 수 없는직업이 농업이란 사실을 그들이 터득한 까닭이었다.

장은 기가 막혀 할 말이 없었다. 그녀가 너스레를 떨었다.
"못 입어 잘난 늠 읎구 잘 입어 못난 늠 읎단 말이 냄으 얘기가 아닙디다. 당신두 집 보러 서울 댕길라면 잠바때기는 벗으야 헐 것 아뉴."
섣불리 들어둔 시늉했다가는 자칫 부개비잡혀뒤탈을 부를 것 같았으므로, 장은 얼른 자리를 피해 나왔다. 그는 자리를 뜨면서
"구름이 많으면 해가 멀어 뵈는 법이여. 양반쌍늠 찾던 예전에두 고을살이 가는 늠더러 농사꾼은 생선 삶듯 살살 다스리라구 했다는디, 사뭇 사골뼈 제기듯 잡도리허는 지가 원제버텀이여.

"내년 총회서 시방 허구 있는 사람들을 밀어주겠다는겨. 헌디이 말 들으면 조합장은 펄쩍 뛸 게거든. 이 남면(南面)이 워딘디황선주가 미는 늠이 당선을 허여. 황이 뛰면 아마 총대표 떨어져나가는 소리가 우술우술헐걸."
하고 나서, 황선주 형제가 합자하는 형제상회에서 금년에도 웅천독쟁이와 광천독배로 들어오는 새우젓을 몽땅 매점매석했다더라고 덧거리를 했다. 이장은 듣다 말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진저리를 쳤다. 그 물건은 단위조합을 끼고이장들에게 억지로 떠넘겨부락 사람들에게 강매시킬 속셈으로 모아놓은 게 분명한 까닭이었다. 그것은 지난 몇 해 동안 봄, 가을로 한 해에 두 차례씩 해먹은 형제상회의 상투적인 장사수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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