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이 직접 <월광>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아니다. 그의 사후 시인 루트비히 렐슈타프가 이 곡을 두고 "스위스의 루체른 호수에 뜬 조각배가 달빛의 파도에 흔들리는 듯하다"라고 평했다는 점에서 이런 제목이 붙었지만, 미사키의 연주는 그런 선입견과 별개로 내게 호수 위에 걸린 달을 연상시켰다.

1801년에 작곡한 이 소나타는 베토벤이 당시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줄리에타 귀차르디에게 바친 곡이다. 베토벤에게 이 사랑은 절대 이룰 수 없는 슬픈 사랑이었다. 열네 살이라는 나이 차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백작 딸과의 신분차이가 베토벤에게 절망을 안긴 것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은 만국 공통의 감정이다. 비단 나이나 신분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답답함, 털어놓아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의 고통. 곡 주제의 셋잇단음표는 그런 감정을연상시켰다.

<월광>의 작품 번호는 27-2. 베토벤의 작곡 이력 안에서는 중기, 즉 난청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에 쓰인 곡이다. 이전 곡과 형식과 내용이 바뀌었고 희로애락을 더 절실히 표현하게 되었다.

이 3악장의 격렬함은 베토벤의 심정 그 자체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절망, 미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연인을향한 애정이 노도처럼 밀려든다.

오른손의 멜로디가 왼손의 리듬을 덮친다.
왼손의 리듬이 오른손의 멜로디를 잘게 새긴다.
선율이 미친 듯이 꿈틀거리고 몸부림치며 포효한다.
소리가 작렬한다. 리듬이 시간을 절단한다.

남의 일이지만 화가 치밀었다. 다자이오사무의 <달려라메로스>는 아니지만, 지금은 미사키의 사명감을 믿고 대신 반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정과 사람 간의 신뢰를 소재로 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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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가 무사히 2학년에 올라갔을 때 음악과에 전학생이 한명 들어왔다.
"미사키 요스케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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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충장로와 금남로 교차로에 있는 이곳 ‘충금다방에서 광주와의 첫 만남을 적는다.
(1988) - P172

기형도 (1960~1989) 시인 경기도 연평 출생. 연세대 정외과 졸업.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안개> 당선 신문사 기자로 근무하다가 1989년 3월 요절함. 사후에 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9),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1990), 추모 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1994), 10주기에 기형도 전집(1999), 20주기에 정거장에서의 충고: 기형도의 삶과 문학(2009), 30주기에「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기형도 시전집(2019)가 출간됨 2016년 경기도 광명시에 기형도문학관이 건립됨. - P172

동학사에서 견성하였던 경허는 천장암에서 확철대오하였고, 그 후로는 수덕사를 비롯하여 개심사, 부석사, 정혜사와 같은 암자들을 돌아다니시다 말년에는 해인사의 방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그후에는 행방을 감추어 함경도의 작은 한촌에서 신분을 감추고 아이들을가르치다가 64세의 나이로 열반에 드신 큰스님이시다. - P162

그 무렵 나는 정말 스님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출가를 하기 위해 아내를 떠나 가정을 버리고 아이들과 헤어질 그런 용기는 없었다. 우리들의 인생이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잘 모르지만, 사내의 몸을 받은 대장부로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중노릇한번은 해볼 만하다는 절실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나는 차마 머리를 삭발하고 내 있던 자리를 벌떡 일어나 박차고 가출할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 P163

해인삼매는 부처가 《화엄경》을 설법하면서 도달한 삼매의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 풍랑과 같은 모든 번뇌가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삼라만상모든 업이 도장 찍히듯 그대로 바닷물에 비쳐 보여 일체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아무튼 나는 해인이라는 말의 의미가 너무 좋아서 언젠가 무심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새로 짓는 집의 이름을 해인당이라고 부르고 싶다.‘ - P164

世與靑山何者是세여청산하자시
春光無處不開花춘광무처불개화

이 구절은 경허 스님이 천장암에서 읊은 노래로, 그 노래를 본 순간 내마음은 마치 불을 지핀 듯 불기운으로 환히 타오르고 있었다.

세상과 청산은 어느것이 옳은가.
봄볕이 있는 곳에 꽃 피지 않는 곳이 없구나. - P164

내가 찾아갈 곳이 청산이냐, 세상이냐 어느 것이 옳을까하며 시비를거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비록 내가 세속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내마음이 봄볕을 비추는 곳을 찾아가고 있다면 그곳이 어디건 꽃이 필 것이 아니겠는가. 내 몸이 비록 청산을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마음이 봄볕을 향한다면 그곳에는 반드시 꽃이 피어날 것이 아니겠는가. - P165

최인호 (1945~2013) 소설가.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고교 2학년 때 단편<벽구멍으로>(1963)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였으며, 1967년에 단편 <견습환자>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됨. 주요 작품으로 <모범동화>(1970), <타인의 방>(1971), <전람회의 그림>(1971), <무서운 복수>(1972), <기묘한 직업>(1975) 등의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1972), 바보들의 행진(1973) 천국의 계단(1978) 불새(1979), 겨울 나그네(1984) 잃어버린왕국(1984), 왕도의 비밀(제왕의 문)(1991), 상도(1997), 해신」(2001), 유림」(2005) 등의 작품을 발표함. 송산상 문화부문, 연문인상, 동리문학상, 아름다운예술인상 대상 등을 수상함. - P165

전혜린 (1934~1965) 수필가 번역문학가 평안남도 순천 출생.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다가 3학년 재학 중 전공을 독문학으로 바꾸어 독일로 유학하여, 독일 뮌헨대학 독문학과를 졸업 1959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화여자대학교의 강사를 거쳐 1964년 성균관대학교 조교수 및펜클럽한국본부 번역분과위원으로 위촉되어 일하기도 함. 1965년 1월 31세로 요절함. 사강의 어떤 미소』(1956), 슈나벨의 『안네 프랑크-한 소녀의 걸어온 길(1958),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1959), 케스트너의 화비안」(1960),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 (1961),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964) 등 10여 편의 번역 작품을 남겼음.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6)와 미래완료의 시간 속에(1966)가 있고,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제명으로 1967년동아PR연구소 출판부에서 일기가 유작으로 출간되기도 하였음. - P178

요즘도 가끔 유럽을 여행할 기회가 있다. 입국 심사대를 통과할 때마다 감개무량하다. 과거에 그렇게 천대받던 한국 여권, 요즘은 내밀면 질문 하나 하지 않고 즉시 도장을 쾅 찍어 돌려주지 않는가? 나라가 강해지면 국민이 이렇게 대우를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감사한 마음이그지없다. 외국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나같이 약소국의 여권으로 고생하고 자존심이 상해본 사람에게는 특별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라도 국격을 떨어트리는 사람은 밉고 쉽게 용서되지 않는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포함한 한국인 모두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라가 강해야 국민이 대접받고,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도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다. - P185

손봉호 (1938~) 기독교 철학자. 경북 포항 출생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음.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와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를 지내고,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공동대표, 한국철학회 회장, 동덕여자대학교총장, 세종문화회관 이사장을 역임함. 현재 서울대학교명예교수,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기아대책 이사장, 교회개혁실천연대 고문으로 활동 중임. 저서에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1978) 사도신경 강해설교(1982), 「윗물은 더러워도 (1983), 「별 수 없는 인간(1984) 나는 누구인가 : 현대인과 기독교의 만남을 위하여』(1986), 오늘은 위한 철학(1986), 그리고 에세이집 꼬집어 본 세상(1990) 외 다수가 있음. 한국수필문학진흥회 현대수필상을 수상함.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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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1908~1937) 소설가 강원도 춘천 출생. 휘문고보를 마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했으나 중퇴함 1935년 단편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에,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 구인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며 왕성한 창작의욕을 보였으나 30세 나이로 요절함. 2002년 8월 고향 실레마을에 김유정문학촌이 조성되었고 2004년 12월 고향 근처를 지나는 경춘선에 김유정역도 생겼음. 주요 작품으로 <금따는 콩밭>, <산골>, <봄봄>, <동백꽃> 등과작품집으로 동백꽃(1938)이, 사후에 김유정전집』(1968), 원본 김유정전집(1987), 원본 김유정전집(1997), 김유정전집』(2003), 김유정 한국근대문학전집(2013)이 출간됨. - P52

강경애 (1906~1943) 소설가 황해도 송화 출생 1931년 《조선일보>에 단편소설 <파금>을,
같은 해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을 《혜성>(1931)과 《제일선>(1932)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함.
단편소설 <부자>(1933), <채전>(1933), <지하촌>(1936) 등과 장편소설 『소금(1934) 인간문제』(1934) 등으로 1930년대 문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 그밖에 주요 작품으로는 단편 <축구전>(1933), <유무>(1934), <모자>(1935), <원고료 이백 원>(1935), <해고>(1935), <산남>(1936),
<어둠>(1937) 등이 있음. 사후에 강경애전집』(1999)이 나옴. - P56

담요를 사들고 집에 들어서니 어미 무릎에 앉아서
"엄마, 아파! 여기 아파!"
하고 머리를 가리키면서 울던 딸년은 허둥허둥 와서 담요를 끌어안았다.
"엄마, 해해, 엄마, 곱다."
하면서 뚝뚝 뛸 듯이 좋아라고 웃는다. 그것을 보고 웃는 우리 셋 - 어머니, 아내, 나은 소리 없는 눈물을 씻으면서 서로 나를 쳐다보고 돌렸다.
아, 그때 찢기던 그 가슴! 지금도 그렇게 찢긴다. - P62

‘추운 겨울을 어찌 지내느냐? 담요를 보내니 덮고 자거라,ㅇㅇ(딸년) 가 담요를 밤낮 이쁘다고 남은 만지게도 못하더니,‘아버지께 보낸다‘고 하니, "할머니 이거 아버지 덮니?"하면서 소리 없이 내어놓는다. 어서 뜻을 이뤄서 돌아오기를 바란다.‘ - P63

최서해 (1901~1932) 시인 소설가. 함경북도 성진 출생. 본명은 학송 아호는 서해 · 설봉 또는 풍년 유년시절 한문을 배우고 성진보통학교에 3년 정도 재학한 것 외에 이렇다 할 학교교육은 받지 못하였음. 소년시절 빈궁 속에 지내면서 《청춘》, 《학지광》 등을 사다가 읽으면서 문학에눈을 뜸. 1918년 간도로 건너가 방랑과 노동을 하면서 문학 공부를 계속함. 1924년 상경하여 이광수를 찾아가 그의 주선으로 양주 봉선사에서 승려 생활을 하다가 상경하여 조선문단사에 입사함. 1927년 현대평론사 기자(1927년), 중외일보 기자(1929년), 매일신보 학예부장(1931년)으로 근무하다 1932년 요절함. 1924년 1월 <동아일보>에 단편소설 <토혈>을 발표하고, 같은 해 10월 《조선문단》에 <고국>이 추천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함. 주요 작품으로 <탈출기>(1925), <기아와살육>(1925), <박돌의 죽음>(1925), <큰물 진 뒤>(1925), <그믐밤>(1926), <팔개월>(1926),
<홍염>(1927), <전아사>(1927), <낙백불우>(1927), <인정>(1929), <전기>(1929)가 있음. 작품집으로 『혈흔」(1926), 『홍염(1931)이 있고, 사후에 장편소설 「호외시대(1994), 문학전집으로 최서해전집1-2」(1987) 등이 출간됨. - P63

형을 받게 된다는 것과 같이, 나도 칠십을 살는지 팔십을 살는지 살아 있는 그 동안에 모든 것을 훌륭히 단념해 버리고 될 수 있으면 평안하게 허둥지둥 추태를 피우지 말고 임종을 하게 되었으면 한다. 하나 그것도 또한 누가 알아 꼭 기필할 수 있으랴. - P65

이렇게 생각해보니 너무나 허무상을 느끼는 한낱 불안이 없지도 않다. 모처럼 어렵게 받아 가진 이 몸인데 그 자기의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그것은 아무라도 크나큰 손실이니까 그것처럼 서운하고 섭섭하고안타깝고 구슬픈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는 수 없는 일이다. 암만 딱해도 어쩔 수 없는 무상이고 아무라도 기어코 면할 수 없는 현실이니까. - P65

그렇다면 그 무상을 어떻게 하면 뉘우침이 없이 고이 받을 수 있을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그 죽음이라는 화두보다도 우리가 어떻게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그것이 도리어 먼저 끽긴한[매우 중요한 일] 일대문제인 듯싶다. - P65

이 몸뚱아리도 본래는 ‘공‘이었던 것이 틀리지 않는다. ‘공‘에서 생겨나왔다가 ‘공‘으로 다시 돌아가 버리는 것이 이 인생이라. 죽음이란 본디 떠나온 것으로 다시 찾아 돌아간다는 말이다. 본래가 밑천 없는 장사라서아무러한손도 없거니와 또한 득도 없는 것이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로  그저 아무것도 아닌 그대로의 한 ‘공‘이다. - P66

궂은비나마 실컷 맞아 좀 보자. 낡은 벼 두루마기가 다 ㅡ 무젖도록 하염없는 인생을 조상하는 눈물로 삼아서 - - P67

홍사용 (1900~1947) 시인 희곡작가 경기도 용인 출생. 호는 노작, 소아, 백우,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한 후 휘문의숙을 졸업 기미독립운동 당시 학생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체포됨. 문단 활동으로는 박종화, 정백 등 휘문교우와 함께 유인물 《피는 꽃》(1918)과 《문의》를 창간한 것을 비롯하여, 문예지 《백조》를 3호까지 출간함. 그의 시작 활동은 1922년 1월 <백조> 창간과 함께 본격화되어 창간호에 권두시 <백조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1922)를 비롯하여 <나는 왕이로소이다>(1923) 등 20여 편과 민요시 <각시풀>(1938), <붉은 시름>(1938) 등 여러 편이 있음. 1923년 극단 토월회에 참여하였음. 소설로 <저승길>(1923), <봉화가 켜질 때>(1925), <정총대>(1939), 희곡<할미꽃>(1928), <출가>(1928), <제석>(1929) 외에도 수필 및 평문이 있음. 사후에 1976년 유족들이 시와 산문을 모아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간행함. 그리고 홍사용전집(1985), 홍사용전집(2000), 홍사용 : 근대한국문학전집(2014) 등이 있음. 2010년 3월 유년시절을 보낸 경기도화성시에 노작홍사용문학관이 건립됨. - P67

"아버지 저 물 속에도 달이 있어요."
"참 그렇군…………."
"왜 물 속에도 달이 있어요?"
"그건 하늘 옛 달이 물속에 비친 탓이지."
"그럼 왜 달이 물에만 비쳐요…………."
"왜 물에만 비치나 땅에도 비치지"
"
"그러나 땅에는 달이 뵈잖는데………..
나는 어린애의 이 말에 갑자기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과연 달은물속에만 비쳐서 옥 덩이나 잠긴 듯이 물속이 환하다. - P69

말을 마치지 못하고 히히 웃는다. 우리집 뒤에는 부엉새가 날아온다.
밤나무 잎이 기름져 반들거리고 잣나무 위에도 으스름 달빛이 흐리어 그세엽이 마치 은침같이 번들거린다. 고요한 밤이다. - P70

노자영 (1898~1940) 시인, 수필가 소설가 황해도 장연 출생으로 전해지고 있음. 호는 춘성.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경 도일하여 니혼대학에서 수학하고 귀국하여 1934년 《신인문학》을 간행함. 작품 활동은 1919년 8월 <매일신보》에 시 <월하의 몽>, 11월에 <파몽>,<낙목>등이 계속 2등으로 당선됨. 1921년 《장미촌》, 1922년 <백조> 창간 동인으로 가담하여 시를 발표함. 시집 『처녀의 화환(1924), 내 혼이 불탈 때 (1928)과 소설집 (1923) 무한의 금상」(1925) 등을 간행하고, 기타 저서로 『사랑의 불꽃 연애간(1931) 나의 화환-문예미문서간집(1939) 수필집 『인생안내(1938) 등이 있음. - P70

가을 햇볕이 얇게 거리에 떨어지는 오전 그 책방에 들러 산 책 몇 권이며칠째 책꽂이에 그대로 놓여 있다. 가난하던 문학청년 시절 그렇게도사고 싶었는데 만지작거리다 놓고 온 많은 책들, 단돈 몇 백 원이 모자라세권 중에 두 권만 사 갖고 와 며칠씩 몇 번씩 읽고 또 읽었는데 이제는마음껏 얼마든지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살 수 있게 되었건만 책이 그냥 책상 위에 쌓였다가 책꽂이로 넘어간다. 많은 분들이 보내 주시는 책들, 사놓고는 다 못 읽은 책들을 보름이나 한 달에 한 번 꼴로 책꽂이로 옮긴다. - P74

오늘 쓰지 못하고마음에 담아두기만 한 편지는 끝내 부치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이 지금우리들의 삶이다. 오늘 하지 못한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그 한마디는 결국 시간에 밀려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다가 그것도 시간 속에 묻혀버리고 마는 게 우리네 삶이다.  - P74

읽지 못한 책, 그토록 소중하게 가지고 싶던 책, 그런 책에게로 달려가 책에 묻혀 지낼 수 있는 날이 언제쯤 다시 내게 돌아오게 될까 - P74

도종환 (1955~ ) 시인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과 및 충남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수료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와 1985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함. 100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 시집인 접시꽃 당신』(1986)은 영화로 만들어짐.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다.
가 1998년 복직하여 교사로 근무하였음. 2008년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2012~2020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당선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1985), 접시꽃 당신 1,2』(1986-1988),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1989), 슬픔의 뿌리(2002), 『사월바다(2016) 등11권과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1990) 등 10여 권의 산문집이 있음. 신동엽창작기금, 민족예술상, 거창평화인권문학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부문 예술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백석문학상, 신석정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함. - P75

그냥 내버려 둬 옥수수들이다 알아서 일어나
함민복 (시인) - P76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사방이 조용하다. 동네 민박집에 손님이 들지 않았나 보다 - P76

귀뚜라미들은 온도에 따라 다른 속도로 날개를 비벼대며 소리를 낸다고 한다. 십삼 초 동안에 우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센 다음 그 수에 더하기 사십을 하면 화씨 온도가 된다는 글을 보았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제일 아름답게 들리는 온도가 몇 도씨라는 신문기사도 보았었는데몇 도씨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밤 기온이 내려가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쓸쓸함이 제법 묻어난다. - P76

"그냥 내버려 둬 옥수수들이 다 알아서 일어나, 괜히 강제로 일으켜세우면 옥수수통 끝 알이 잘 여물지 않고 쭉정이가 돼, 주접이 든다구." - P77

옥수수들이, 지게꾼이 지게 작대기로 땅을 짚고 일어서듯 곁뿌리를 뻗어 땅을 짚고 일어섰다. - P77

자리를 툭툭 털고 곧게 일어섰다. 옥수수들이 대견스럽다 못해 생명에대한 경외심마저 들었다. - P77

옛날에 온도에 따라 울음소리를 달리 울던 귀뚜라미라는 곤충이 있었지, 바람에 쓰러지면 곁뿌리를 내짚고 일어서는 옥수수도 있었고 ・・・・ 가장바닷가에 말랑말랑한 흙도 있었지. 뻘이라고 부르던 ・・・・・… 나는 그 흙을아버지와 같이 죽여 보았던 추억이 있지. - P79

함민복 (1962~) 시인 충북 중원군 노은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 <성선설> 등을 발표하며 등단 1996년부터 강화도 주민이 되어 강화도의 자연과역사와 물고기를 공부하며 생활과 창작을 병행하고 있음 <21세기 전망> 동인, 펴낸 책으로는 시집 「우울씨의 일일」(1990), 자본주의의 약속(1993),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6), 말랑말랑한 힘』(2005),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2013)과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2003), 미안한 마음(2006),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2009),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2009) 시그림책 꽃봇대(2011), 『흔들린다 (2017)가 있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애지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제비꽃서민시인상 등을 수상함. - P79

이병률 (1967~) 시인 충북 제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험> 동인 MBC 라디오의 여러 프로그램 방송작가로 오랫동안 활동함. 시집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2003), 바람의 사생활(2006), 찬란(2010), 눈사람 여관(2013),
「바다는잘있습니다(2017)과 산문집으로 끌림」(2005),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2012), 어떤날』(2013), 『내 옆에 있는 사람(2015), 혼자가 혼자에게」(2019)가 있음.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 P85

이문재 (1959~ ) 시인 경기 김포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1988), 산책시편』(1993), 마음의 오지」(1999), 제국호텔」(2004), 지금 여기가 맨 앞』(2014), 산문집으로 『이문재 산문집』(2006),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2006), 인터뷰 내가 만난시와 시인』(2003) 등이 있음. 김달진 문학상,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 등을 받음. - P93

1) 조춘점묘(早春點描):  조춘(春) 이란 ‘이른 봄‘이란 뜻이고, 점묘(猫)란 붓으로 점을 찍어서 그린 그림‘ 또는 ‘사물의 전체를 그리지 아니하고 어느 작은 부분만을 따로 떼어서 그림‘을 뜻하는 것이니, ‘이른 봄의 도회지 풍경을 내려다보며 생각한 것을 그림처럼 표현한 것‘을 의미함.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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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동안 언어들을 어루만졌습니다.
누구는 이런 모습을 보고 ‘활자중독자‘라는 별명으로 불러주었는데, 이제는 별명 하나 더 듣게 되었습니다.
문/장/수/집/가/ - P4

나는 적이 질투를 느낀다.
그가 나에게 속삭여주려던 아름다운 긴 이야기를 다른  사나이에게 먼저 해버리려 가기때문이다.
이태준 〈책〉 중- - P4

문득 내 어머님께서 뚝 꺾어주시던 그 솔가지, 달콤한 물이 쪼르르 흐르던 그 가지가 이것이 아니었던가 싶어지면서내 입속이 환해진다.
-강경애 <내가 좋아하는 솔> 중- - P4

세상에 죽음을 제도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곧 삶을 인도하는 종교가 될 것이다.
- 홍사용 <궂은비> 중 - - P4

봄이 왔다. 가난한 방 안에 왜꼬아리 분盆 하나가 철을 찾아서 요리조리 싹이 른다. 그 닷곱 한 되도 안 되는 흙 위에다가 늘 잉크병을 올려놓고 하다가 싹트는 것을 보고 잉크병을치우고 겨우내 그대로 두었던 낙엽을 거두고 맑은 물을 한 주발 주었다. 그리고 천하에 공지라곤 요 분盆 안에 놓인 땅 한군데밖에는 없다고 좋아하였다.
- 이상 <조춘점묘〉 중- - P5

모든 욕망 버리고 눈 쌓인 히말라야의 설산으로 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수도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그런 은수자隱修子가 되고싶다.
- 최인호 <나는 스님이 되고 싶다〉 중 - - P5

그곳에 배치된 관리관은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한국인은 비자 없이 프랑스에 입국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한참 후에야 겨우 한국인은비자가 필요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관리관이 "네가 북한 Corée du Nord 에서 왔는지 남한Corée du Sud에서 왔는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물고 늘어졌다.
손봉호 <약소국민의 여권〉 중 - - P5

여행의 무게를 재기 위해서는 다시 돌아온 우리에서 처음출발할 때의 우리를 빼면 되는 것일까? 여행이 무엇인지 잘모르겠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하기엔 난 여행이 무엇인지를 너무 모른다.
- 김중혁 <여행의 무게〉 중 - - P6

쏟아지는 비 때문에 기타의 플랫을 계속 수건으로 닦아가며 연주했고, 드러머가 심벌을 때릴 때마다 화려한 조명을 받은 물방울이 마치 폭발하듯 휘날렸다. 그 장관이 펼쳐질 때마다 관객들은 하늘이 떠나갈 듯 환호성을 질렀다.
- 하종강 <딥 퍼플을 만나다> 중 - - P6

그건 그렇다 치고, 공책은 또 뭔가. 설날 저녁에 그날 하루종일 찾아온 세배객을 차례대로 한 사람 한 사람 기억에서 떠올려 이름을 적었다는 것이 아닌가. 누구나 권해 올리는 술잔을 마다하지 않고 다 드시고서.
- 손영목 <세배객 인명록> 중- - P6

교문 앞을 통과하는데 기척이 있어 돌아보니 한 여학생이교문에서 막 한 발을 빼고 있었다. 나의 가슴은 금강 상류로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평소 내가 그토록 흠모해마지않던 소녀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재무 <혼자서만 꺼내 보던 내 마음벽장 속의 이야기〉 중- - P7

일 년 전보다 나는 깨끗해져 있었다. 시간과 술의 힘이었다. 하지만 자목련을 바라보는 나의 호주머니에는 입영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입대까지는 석 달이 남아 있었다. 내가 왜하얀 목련이 피고 짐을 몰랐겠는가. 너와 함께 이 세상을 건너가겠다고 말하자마자 입영통지서를 디밀어야 하는 내 자신이 싫었기 때문에, 목련이 피는 것을 애써 외면한 것이었다.
- 이정록 <반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구른다〉 중 - - P7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 때문이다. - P12

물질 이상인 것이 책이다. 한 표정 고운 소녀와 같이, 한 그윽한 눈매를 보이는 젊은 미망인처럼 매력은 가지가지다. 신간란에서 새로 뽑을수 있는 잉크 냄새 새로운 것은, 소녀라고 해서 어찌 다 그다지 신선하고상냥스러우랴! 고서점에서 먼지를 털고 겨드랑 땀내 같은 것을 풍기는것들은 자못 미망인다운 함축미인 것이다. - P12

서점에서는 나는 늘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 정류장에 나와 포장지를 끄르고 전차에 올라 첫 페이지를 읽어 보는 맛, 전찻길이 멀수록복되다. 집에 갖다 한번 그들 사이에 던져 버리는 날은 그제는 잠이나 오지 않는 날 밤에야 그의 존재를 깨닫는 심히 박정한 주인이 된다. - P13

이러는 나도 남의 책을 가끔 빌려 온다. 약속한 기간을 넘긴 것도 몇권 있다. 그러기에 책은 빌리는 사람도 도적이요 빌려주는 사람도 도적이란 서적 윤리가 따로 있는 것이다. 일생에 천권을 빌려 보고 구백구십구권을 돌려보내고 죽는다면 그는 최우등의 성적이다. 그러나 남은 한권 때문에 도적은 도적이다.  - P13

책을 남에게 빌려만 주고 저는 남의 것을 한권도 빌리지 않기란 천권에서 구백구십구권을 돌려보내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 P13

이태준 (1904~?) 소설가 강원도 철원 출생. 호는 상허 1926년 일본 도쿄에 있는 조오치대학 문과에서 수학하다 중퇴하고 귀국함. 1933년 구인회에 참가 1939년 순수문예지 《문장》을 주재하여 역량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여 문단에 크게 기여함. 광복 후 1946년에 월북함. 단편소설<오몽녀>(1925)를 《시대일보》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아무일도 없소>(1931),
<불우선생>(1932), <달밤>(1933), <손거부>(1935), <가마귀>(1936), <복덕방>(1937), <패강냉>(1938), <농군>(1939), <밤길>(1940), <돌다리>(1943) 등과 중편 「해방전후」(1946), 장편 상의 월야 (1946), 수필집 『무서록」(1944)과 문장론 문장강화(1946) 등과 사후에 이태준전집1-9』(1988), 이태준단편전집1-2」(2016) 등이 나옴. - P14

"왜 나비는 안 그려주는기요."
한다. 나는 갑자기 하하 웃고
"그러면 진작 말하지 무엇이 부끄러워."
하며 다시 옥양목 쪽을 받아 들었다.
그러나 그린 그림이 모두 나비를 그리지 못할 매화와 연화이니 처녀맘을 만족시킬 수 없어 다시 돌려주며
"이 애야, 매와 연에는 나비를 그리면 격이 아니다. 이다음 다른 꽃을 그리거든 나비를 네 소원대로 그려주마."
하고 달래었다. - P16

"그러면 그려주마. 다른 사람보고 내가 그렸다고 하지 마라."
하고 매화에다 나비 두 마리를 그려주었더니 처녀는 기쁨을 금치 못해하며 돌아갔다. 처녀가 돌아간 후 벼루를 치우며 생각하니 옥양목에라도자수만 하면 꽃 주머니라고 귀하게 여길 그들에게 격을 찾는 내가 고소되어 한참 웃었다. - P17

백신애 (1908~1939) 소설가 경상북도 영천 출생. 아명은 무잠. 호적명은 백무동, 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영천 자인 공립보통학교 교원을 하다가 1930년 도일하여 니혼대학 예술과를 다님, 1932년 귀국하여 창작에 매진하다가 위장병 등의 악화로 32세에 요절함. 1929년 《조선일보》에 박계화라는 필명으로 <나의 어머니>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함. 주요 작품으로 <꺼래이>(1934), <적빈>(1934) 등 10여 편이 있음. 2007년 고향 영천에서 백신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백신애 문학제를 개최함. 사후에 (원본) 백신애전집(2015), 백신애: 한국근대문학전집』(2013), 혼명에서 백신애 중단편선(2019) 등이 나옴. - P17

‘냉면‘이란 말에 ‘평양‘이 붙어서 ‘평양냉면‘이라야 비로소 어울리는 격에 맞는 말이 되듯이 냉면은 평양에 있어 대표적인 음식이다. 언제부터이 냉면이 평양에 들어왔으며 언제부터 냉면이 평안도 사람의 입에 가장많이 기호에 맞는 음식물이 되었는지는 나 같은 무식쟁이에게는 알 수도없고 또 알려고도 아니한다. - P18

잔칫날 - 그러므로 약혼하고 편지부치는 날에서부터  예물 보내는 날, 장가가는 날, 며느리 데려오는 날, 시집가는 날, 보내는 날, 장가와서 묵는 날, 가는 날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이국수가 출동한다. 이 밖에 환갑날, 생일날, 제삿날, 장례날, 길사, 경사, 흉사를 물론하고 이 국수를 때로는 냉면으로 때로는 온면으로 먹어 왔다. - P19

심지어는 정월 십사일 작은 보름날 이닦기엿, 귀밝이술과 함께 수명이 국수 오리처럼 길어야 한다고 ‘명길이국수‘라 이름 지어서까지 이 냉면 먹을 기회를 만들어 놓았다. 지금 생각해 보매 평안도 사람의 단순하고 담백한 식도락을 추상할 수 있어 흥미가 새롭다.
- P19

속이 클클한 때라든가 화가 치밀어 오를 때 화풀이로 담배를 피운다든가 술을 마신다든가 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런 때에 국수를먹는 사람의 심리는 평안도 태생이 아니고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도박에 져서 실패한 김에 국수 한양푼을 먹었다는 말이 우리 시골에 있다. 이렇게 될 때에 이 국수는 확실히 술의 대신이다. 나같이 술잔이나 다소 할 줄 아는 사람도 속이 클클한 채 멍하니 방안에 처박혀있다간 불현듯이 냉면 생각이 나서 관철동이나 모교 다리 옆을 찾아갈때가 드물지 않다. - P19

김남천 (1911~1953) 소설가 문학비평가 평안남도 성천 출생. 아명은 김효식, 1929년 일본호세이대학에 재학 중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 동경지회에 가입 이후 국내에서 카프맹원으로 활동하다가 월북하여 1949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까지 올랐으나 1953년 휴전직후 숙청당함. 문단 활동은 1931년 희곡 <파업조정안(罷業調停案)>과 소설 <공장신문(工場新聞)>(1931), <공우회(工友會)>(1932> 등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작품을 썼고, 주요 작품으로 <남매>(1937), <처를 때리고>(1937), <소년행>(1938), <경영>(1940), 장편소설 「대학」(1939), 창작집「맥」(1947) 등이 있음. 영화와 소설관련 비평집이 다수 있음. 사후에 김남천전집 1~2(2000) 등이나옴. - P21

나의 해석은 그와 다르다. 나락이라는 것은 우리가 얼른 보기에나 생각하기에 그리 신기할 것이 없다. 한길에 금싸라기 한 개가 떨어졌다 하면그것은 집을망정 나락 한 알이 떨어졌다 하면 그것을 누가 집을 터이냐. - P24

그러나 우리가 배가 고플 때 나락은 우리를 살릴지라도 금은 우리를 살리지 못할 것이다. 나락이란 그렇게 평범하고 우스꽝스럽지마는 또는 우리에게 가장 귀하고 고마운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항상 우스꽝스럽고 대수롭지 않은 것이 가장 귀하고 고마운 것이 되는 것이다. - P24

또는 단순하고 평범한 것에 항구불변의 진리가 있다. 나는 이 점에 들어서 평범하고 대수롭지 않은 데서 향내를 맡는다는 의미로 도향이라고 한다.  - P24

내가 만일 나락을 먹지 않고 서양사람 모양으로 밀가루로 만든 것을많이 먹는 나라에 났더라면 ‘밀 향기‘로 별호를 지었을는지도 모르지마는 조선에 난 까닭에 도향이요, 평범 단순한 것 중에 가장 인생의 절실히필요하고 또는 우리가 먹어야 산다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진리가 가장영원성이 있는 까닭에 내 별호가 도향이다. 이만하면 대개 의미가 통하여질 것 같다. - P24

나도향 (1902~1926) 소설가 서울 출생. 호는 도향 본명은 나경손 필명은 나빈 배재학당 졸업 후 경성의전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도쿄에서 고학함, 그러나 다시 중단하고 귀국함. 1922년동인지 <백조>>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으나 질병으로 25세의 나이에 요절함. 주요 작품으로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 등과, 장편 환희(1922), 소설집 『진정』(1923), 『청춘」 (1927)이, 사후에 나도향전집1-2」(1988), 나도향 : 한국 근대문학전집』(2014) 등이 있음. - P25

나는 조그만 범선 한 척을 바다 위에 띄웠다. 붉은 돛을 달고 바다 한복판까지 와서는 노도 젓지 않고 키도 끊지 않았다. 다만 바람에 맡겨떠내려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 P26

나는 뱃전에 턱을 괴고 앉아서 부유하루살이와 같은 인생의 운명을 생각하였다. 까닭 모르고 살아가는 내 몸에도 조만간 닥쳐올 죽음의 허무를 미리 다가 탄식하였다. - P26

서녘하늘로부터는 비를 머금은 구름이 몰려 들어온다. 그 검은 구름장은 시름없이 떨어뜨린 내 머리 위를 덮어 누르려 한다. - P26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홀로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 P27

‘그 어린애가 잘 자라는가?‘
‘그들은 그저 그 섬 속에서 사는가?"
그 뒤로 나는 바람 부는 아침, 눈 오는 밤에 몇 번이나 베갯머리에서이름도 모르는 그 어린아이가 병 없이 자라기를 빌어 주었다. - P30

그날은 바다 위에 일점풍도 없었다. 성자의 임종과 같이 수평선 너머로 고요히 넘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는 석조에 타는 붉은물결을 멀리 보며 느꼈다. 이 외로운 섬 속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 속에서도 우리의 조그만 생명이 자라나고 있지 않은가. 그 어린 생명이 교목과 상록수와 같이 장성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한없이 쓸쓸한 우리의 등뒤가 든든해지는 것같이 느껴지지 않는가! - P31

심훈 (1901~1936) 시인 소설가. 영화인 서울 출생. 본명은 심대섭, 호는 해풍. 아명은 삼준또는 삼보 경성제일고 다니던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 · 퇴학당함.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1년 항저우 치장대학에서 공부함. 1923년 귀국하여 동아일보사에 입사하고 1925년 영화 <장한몽>에서 이수일역으로 출연. 우리나라 최초 영화소설 「탈춤」(1926)을 《동아일보》에연재하기도 함. 1927년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집필·각색·감독으로 제작하여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큰 성공을 거둠. 신문사에(1928년), 경성방송국에서(1931년) 근무하다가 사상 문제로 바로퇴직함, 1932년 고향인 충남 당진으로 낙향하여 집필에 전념하다가 이듬해 상경하여 조선중앙일보사에 입사하였으나 다시 낙향함. 1936년 장티푸스로 요절함.
장편소설 「동방의 애인(1930)과 불사조 (1930)를 신문에 연재하다가 일제 검열로 중단을 당함.
1932년 향리에서 시집 「그날이 오면』을 출간하려다 검열로 인하여 무산됨 장편소설 영원의 미소(1933)와 직녀성(1934)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고 1935년 장편 상록수가 《동아일보》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 사후에 심훈전집1~3」(1953), 심훈문학전집(3권)』(1966), 심훈: 한국근대문학전집(2013), 심훈전집 우리가 알아야할 해풍의 모든 것(2016) 등이출간되었음. - P32

일제시대에 내가 시니 산문이니 죄그만치 썼다면 그것은 내가 최소한도의 조선인을 유지하기 위하였던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해방 덕에 이제는 최대한도로 조선인 노릇을 해야만 하는 것이겠는데어떻게 8·15 이전같이 왜소구축한 문학을 고집할 수 있는 것이냐?
- P35

자연과 인사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 문학에 간여하여 본 적이 없다.
오늘날 조선 문학에 있어서 자연은 국토로 인사는 인민으로 규정된 것이다.
국토와 인민에 흥미가 없는 문학을 순수하다고 하는 것이냐? - P35

시가 걸작이던지 태작이던지 옳은 시던지 그른 시던 지로 결정되는것이지 괴테를 순수시인이라고 추존한다면 막심 고리키 오탁소설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냐? 이 양 거장에 필적할 문학자가 조선에 난다면괴테는 단연코 나오지 않는다. 조선적 토양에서는 막심 고리키에 필적할만한 사람만이 위대한 것이요 또 가능성이 분명하다. - P36

시와 문학에 생활이 있고 근로가 있고 비판이 있고 투쟁과 적발이있는 것이 그것이 옳은 예술이다. - P36

"나와 골육을 논은 처나 자식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돌 지나 넉 달도못 된 계집애도 내가 자유로 조종할 자신이 없는데 어찌 인민 전체의 생활과 복리를 좌우하고 농락까지 하는 정치에 생각이 미치겠습니까. 가정생활도 수습 못한다고 한 말도 이런 경제적이 아닌 정신적인 관점에서우러난 말입니다."
‘인민 전체의 생활과 복리를 좌우하고 농락하는 정치‘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R교수는 확실히 겸손한 선비다. - P42

정지용 (1902~1950) 시인 충청북도 옥천출생. 휘문고보와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 광복 후 이화여자대학교 문학부 교수, 경향신문사의 주간을 역임함. 6·25때 납북되어 동두천부근에서 비행기 폭격에 의해 사망함. 문학활동은 휘문고보 학생 시절에 《요람》 동인으로 활동한것을 비롯하여 김영랑과 박용철을 만나 《시문학》 동인을 결성하였고 유학 시절 《학조》, 《조선지광》, 《문예시대> 등과 도시샤대학 내 동인지에 여러 작품을 발표함. 1940년대 이태준과 함께 《문장지의 시부문 심사위원이 되어 많은 역량 있는 신인을 배출하기도 하는데, 박두진·조지훈·박목월 등 청록파와 이한직·박남수 등이 그들임. 저서로 정지용시집(1935), 백록담(1941) 등 두 권의시집과 시선집 『지선(1946) 그리고 문학독본(1948), 산문」(1949) 등 두 권의 산문집이 있음, 사후 정지용시전집』(1987), 정지용전집1-2(1988), 정지용전집1-3(2015) 등이 간행되었음.
정지용문학을 기리는 행사로, 1988년 5월부터 시작한 지용제라는 문학 축제와 1989년부터 시작한 정지용문학상 시상식, 그리고 옥천 생가 옆에 건립한 정지용문학관은 2005년 5월 15일 생일에 맞추어 개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 P44

가을의 누이, 김기림 (시인)
누이야 너는 오늘은 무엇을 하고 있니? 강가의 수수밭에서 까마귀들이 수까마귀처럼 흩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니? 겨울이 허둥지둥강면으로 썰매를 타고 오기 전에 그들의 기름진 슬픔을 묻을 데를 찾아서 산 모록 수풀로 날아가는 것을 바래 보내고 있니? 까마귀의 검은 얼굴은 겨울을 부끄러워한다더라. - P45

김기림 (1908~?) 시인 문학평론가 함경북도 학생 출생. 본명 김인손, 호는 편석촌, 1933년구인회에 참가. 일본 유학 후 신문사 기자, 영어 교사로 근무함. 1945년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에가담하였으나 월남하여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즈음에 탈퇴 전향함. 서울대학교 조교수로 강의하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생사를 모름. 1930년 시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 및 주지주의에 관한평론발표함. 시집으로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등과 몇 편의 소설이 있음. 저서로 시론」(1947), 문장론(1949), 시의 이해(1950) 등과 사후에 김기림전집1-6(1988), (원본)김기림시전집(2014) 등이 나옴. - P46

효조(曉鳥), 계용묵 (소설가)
이런 이야기를 누가 한다.
명필 추사의 선생 조광진이 하루는 새벽에 일어나니, 잠자리에서 갓 깨어 일어난 참새들이 뜰 앞 나뭇가지에서 재재거리는 소리에그만 필흥이 일어나, 저도 모르게 필묵을 베풀어 새벽 새라고 ‘효조‘ 이자를 제물에 써버렸다. - P47

그것이 자기의 글씨인데 조자의 치킴이 되지를 않아서 내어버렸던것으로 지금 보아도 그게 마음에 거슬리어 붓을 좀 넣어 본 것이라고 하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주인은 어성을 높이어 하는 말이, 당신은 글씨를쓸 줄만 알고 볼 줄은 모른다고 하면서, 효조라면 새벽 새일 테니 잠자리에서 갓 깨어 나온 새가 무슨 흥이 있어서 꼬리가 올라가랴 언제나보아도 새벽 새는 꼬리를 처뜨리고 우는 법이라, 자기가 이 글씨에 고가를 주고 사다가 머리맡에 걸고 사랑하는 것도 그 ‘효조‘라는 데 있어 조자의 치킴을 용하게 처뜨린 데 가치를 찾았던 것으로 인제 아까운 글씨를 버렸다고 하면서 떼어 던지더라는 것이다. - P48

계용묵 (1904~1961) 소설가. 평안북도 선천 출생. 일본 도요대학에서 수학하다가 중퇴하고조선일보사 등에서 근무함. 1925년 5월 《조선문단》 제8호에 단편 <상환>으로 등단한 이래 40여편의 단편을 남겼음. 1935년 《조선문단>에 <백치아다다>를 발표하였고, 작품집으로 병풍에 그린 닭이(1944), 『백치아다다」(1945) 별을헨다」(1950) 외에 수필집 상아탑(1955) 등과 사후에계용묵전집1-2」(2004) 이 있음. - P50

작년 봄 내가 한 달포를 두고 몹시 앓았을 때 의사를 찾아가니 그 말이돌아오는 가을을 넘기기가 어렵다 했다. 말하자면 요양을 잘한대도 위험하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술을 맘껏 먹었다. 연일 철야로 원고와 다투었다. 이러고도 그 가을을 무사히 넘기고 그 다음 가을, 즉 올 가을을 앞에두고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과학도 얼마만치 농담임을 알았다. 가만히 생각하면 나의 몸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이라야 다만 나는 온순히 그 앞에 머리를 숙일 것이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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