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의자왕은 위에 오르자마자 휘하의 대장군 윤충(允忠)에게 군사를 일으킬 것을  명령 하였다. 무왕이 재위 42년 동안 줄곧 신라를 공격하고, 번번이 치명적인 손상을 가하면서도 마침내는 패하고, 뚜렷한 소득을 얻지 못하고 회군함으로써 한을 품고 눈을 감은지라, 일찍이 어버이 섬기기를 효도로써 하고 형제간의 우애가 각별한 것으로 해동증자(海東曾子)라고  일컬어지던 의자왕은 상중(喪中)에 피울음을 토하여  부왕에게 다음과 같이 맹세하였다. - P53

‘내 마땅히 신라를 쳐서 이겨 선대(先代)로부터의  고토(故土)를 백제국으로 회복하지 않으면 눈을  감지 않겠나이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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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만려, 그는 누구인가.
이제야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는 백제에서 건너간 백제인이었던 것이다. - P5

제1장 태안만려 太安萬侶
제2장 풍운 風雲
제3장 연개소문 淵蓋蘇文
제4장 암운 暗雲
제5장 피의 요하 遼河
제6장 복수의 시작 - P7

"차는 손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가꾸는 거야"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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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검이다."
그는 넋이 나간 사람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검이다. 신검이다."
그러자 의복을 갖추고 서 있던 신관들은 모두가 일제히 선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그 궤를 향해 배를 올렸다.
신검이다.
신검이다.
기다리고 있던 신관 하나가 북을 두드렸다.
둥둥둥둥둥둥둥둥둥두두둥. - P287

사전(傳)에 의하면 이 물건은 칼로 육지모(六)‘ 라고 불려오던 물건이었다. 말하자면 여섯 개의 가지를 가진 칼이라는 이름의 신체(神體)였다. - P293

병오정양조조백련 칠지도
(丙午正陽造百練七枝刀)…
순간 간은 손에 들었던 칼을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었다.
‘칠지도(七枝刀)‘ - P295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창 밖을 내다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제부터 먼 길을 떠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이다. 먼 천축의 나라로 불경을 구하기 위해서 떠나는 삼장법사처럼. 그의 일을 돕기위해서 여의봉을 들고 함께 떠나는 손오공처럼.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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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코오는 그 벽돌 두께 부분에 새겨진 명문을 읽어보았다.
원태왕릉안여산고여악
(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
한자의 훼손도 없는 완벽한 명문이었다. 순간 사코오의 가슴에는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 P173

삼가 생각컨대 옛적 추모왕(鄒牟王)께서 국기(國基)를 창사하시다.
북부여에서 나섰으며, 천제의 아들이시며, 어머니는 하백여랑(伯)이시다. 알을 깨뜨리고 아들을 낳으시니 성덕이 있으시다. - P182

수레를 타고 남쪽으로 내리실 때에 부여의 엄리대수(俺利大水)에다다르시다. 왕이 나루터에서 외쳐 가로되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여랑이시다. 나를 위해서 나룻배를 발(發)할지어다‘하시니, 말이 떨어지자마자 곧 거북(浮龜)이 떠올라 연(連)해졌으므로 왕이 건너서비류국(治國) 홀본(忽本) 서성산상(西城山上)에이르러 도읍하시다. 불락세위(병고)하셨으며, 천제황룡(天帝黃龍)을보내시어 왕을 맞이하시니 왕이 홀본 속강(束昰)에서 황룡에 업히어하늘에 오르시다. - P182

후사를 세자 유류왕에게 부탁하였으매 도(道)로 나라를 다스리시다.
대주류왕(大朱留王)이 기업(基業)을 이어받아 전하여 17세손 국가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에 이르다.
29세에 등조하셨으며 호를 영락대왕이라 하였다.
은택(恩澤)을 황천(黃泉)에 받으시어 위무(威武)가 4해에 떨치시다. □□ 을 소제(掃際)하니 서민(庶民)이 그 업에 평안하며 나라가 - P183

부강하고, 백성이 은성하며 오곡(五穀)이 풍숙(豊)하다.
호천이 불조하시와 39세에 평안히 수레에 오르셔서 나라를 버리시다. 갑인년 9월29일 산릉에 모시고 비를 세워 공훈과 업적을 명기하여 후세에 전하니 그 사詞)에 가로되………. - P184

영락 5년(395년) 을미왕이 비(碑麗,契丹)가 □□을 침범하므로 사(師)를 거느리시고 거부산(巨富山) 부산(負山)을 토벌(討伐)한다음 염수상(鹽水上)에 이르러 그 삼부락(三部落) 600~700을 파(破)하고 노획(鹵獲)한우, 마, 양이 부지기수라.
이에 어가개(御駕凱) 선(旋)하매 평도를 지나 동으로 와 ㅁㅁ력성(力城)과 북으로 풍오비유(豊五備猶)를 거쳐 변방을 순찰하고 유럽(遊獵)하면서 귀국(歸國)하시다. - P184

백잔(百殘)과 신라는 옛적부터 우리의 속민으로 조공해 왔다. 그러하던 바 왜(倭)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잔과 □□□라(羅)를 파하고 신민으로 만들었다. ……….. - P185

6년 병신(丙申) 왕이 친히 수군을 이끌고 과잔국(百濟)을 토벌하여 군(軍)□□ 먼저 일팔성(壹八城)을 공취하고 ……………(중략)·····….
......
적(賊)이 □기(氣)치 아니하고 감연(敢然)히 나와 백전하는지라 왕이 크게 노하여 아리수(한강)를 건너 정병(精兵)을 척박성(刺迫城)에 보내어 횡□□□□ 그 국성(國城)에 다다르니 백제왕(百濟王)이 곤핍(困逼)하여 남녀주(男女主) 1000인과 세포 1000필을 헌납하고 왕에게 귀순(歸順)하여 스스로 맹세(盟誓)하되 자금이후(自今以後) 영원히 노객(奴客)이 되겠습니다‘ 하였으므로 용서하고 태왕이 미지어(迷之御)로 하여금 항복문을 받게 하다…. - P185

약오만년지후, 안수묘자
(若吾萬年之後 安守墓者)…..
사코오는 소리를 내어 그 문장의 뜻을 중얼거려 보았다.
・・・・・・ 나의 만 년 후까지 어찌 묘(墓)를 편안히 지킬 수 있으리오."
아마도 장대한 비문의 거의 끝부분인 모양이었다. 만 년 후일지라도 자신의 무덤이 타인에 의해서 도굴되지 않고 편안히 지켜지기를 바랐던 왕의 바람이 적혀 있는 단 한 줄의 문장이었다. - P190

이고 육군 포병 대위종6위, 혼5등 사코오 가게노부의 유적명치 27, 28년의 전역(戰役, 청일전쟁을 가리킴)에 이바지한 바 적지 않으므로 금 5백 엔을 하사함.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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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map 2023-11-15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로 해석한 일본학자가 영(永) => 불(不)로 우기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어느 후손이 조상 비문에 그렇게 쓰겠습니까? 영락세위 : 永樂世位 불락세위 : 不樂世位 초덕균 저본을 첨부합니다 일본학자가 임나일본부 주장하던 부분도 저본에는 동녁동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진 첨부가 안되네요. 초덕균 저본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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