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쓴 작품은 <계절에 뒤늦은>이라는 아주 간단한 단편이었는데, 나는 그 작품을 쓰면서 노인이 스스로 목을 매는 결말 부분을 의도적으로 생략했다. 그것은 나의 새로운 이론에 따른 결정이었다. 생략한 부분이 글의 내용을 더욱 강화하고, 그것을 계기로 독자가 단순한 이해 이상의 뭔가를 느낄 수있다면 어떤 부분이든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 - P86

그러나 나는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절대로 생계의 수단으로 소설을 써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을 때 나는 소설을 쓸 것이다. 따라서 나는 더많은 압박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동안은 우선 내가 잘 아는주제에 대해 긴 글을 써봐야 할 것이다. - P87

"선생은 마치 정글 속에 홀로 남은 분 같더군요." 그가 말했다.
"글쓸 때는 눈먼 돼지가 된답니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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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출장과 상관없이 플뢰뤼스 거리에 들를 때 나는 여사에게 문학 작품에 대해 생각을 들려 달라고 청하곤 했다. 나는 원고를 쓰는 중에는 하루 작업을 마치고 나면 내가 쓰는 글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기 위해 책을 읽었다.
작업 시간 외에도 쓰던 글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면, 다음 날 글쓰기를 시작할때 글의 실마리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 운동을 해서 몸을 피곤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고, 아내와 사랑을 나누는 것은 더 좋은방법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 P70

"요즘엔 뭘 읽고 있지?"
"D. H. 로렌스가 쓴 글을 읽고 있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분 단편 중에는 아주 좋은 작품이 더러 있더군요. <독일 장교>>같은 작품 말이에요."
"나도 그의 소설을 읽으려고 애써 봤어. 그런데 그 사람 참 난감하더군.
한심하고 말도 안 되는 글을 쓰고 있어. 마치 환자처럼 글을 쓰더라니까."
<아들과 연인>과 <하얀 공작>>같은 작품은 아주 좋던데요." 내가 말했다. "뒤의 작품은 앞의 것보다 좀 못한 것 같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들>은 아직 못 읽었습니다."
"형편없는 작품은 싫고, 재미있으면서도 괜찮은 작품을 읽고 싶다면, 마리 벨록 로운즈의 소설을 한번 읽어 봐." - P71

파리에서는 충분히 먹지 못하면 몹시 허기가 진다. 빵집 진열대에는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그득하고 거리에는 테라스에 차려진 식탁에서 식사하는사람이 많아서 늘 먹을 것이 눈에 보이고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특파원 일을 그만두고 나서 미국에서 아무도 사주지 않는 글만 쓰고 있을무렵, 누군가와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집에 말하고 나왔을 때 가기에 딱 좋은장소는 뤽상부르 공원이었다. 옵세르바투아르 광장PI. de l‘Observatoire에서 보지라르 거리에 이르는 길에는 음식이 전혀 전혀 눈에 띄지 않고, 냄새도 전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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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Emest Miller Hemingway, 1899-1961)

1899년 7월 21일 미국 시카고 교외 오크파크에서 출생했다. 고교 시절에 시와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졸업 후에 캔자스시티 《스타》의 기자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적십자 야전 병원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1919년 귀국했다. 이어서 캐나다《토론토 데일리 스타》의 특파원으로 유럽에 건너가 각지를 여행하며 기사를 썼다. 파리에서 G. 스타인, E. 파운드, S. 피츠제럴드  등과 어울리며 작가로 성장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를 시작으로 《우리 시대에》, 《봄의 격류》와 같은 단편에 이어 장편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1929년에는 전쟁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되는《무기여 잘 있거라》를 발표하여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헤밍웨이가 평생 천착했던 주제는 인간이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맞닥뜨리는 본질적 문제,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승리나 패배와 같은 철학적 문제였다. 그리고 그의 삶 또한 그런 상황에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극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스페인 내전과 터키 내전에 참전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쿠바 북부 해안 경계 근무에 자원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소설의 소재가 되어 《무기여 잘 있거라》, 《제5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작품이 탄생했다.
그는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통과 단절된 젊은 세대를 일컫는 ‘잃어버린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이 되었으며 전 세계인이 감동한 그의 작품들은 그를 20세기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그가 10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강 건너 숲 속으로》는 비록 좋은 평을 얻지 못했지만, 그 다음에 발표한 단편 《노인과바다》는 그에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안겨 주었다.

그 밖에 단편집으로 《남자들만의 세계》,  《승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등이 있고, 하드보일드풍의 걸작 《살인청부업자》,  《킬리만자로의 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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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Emest Miller Hemingway, 1899-1961)

1899년 7월 21일 미국 시카고 교외 오크파크에서 출생했다. 고교 시절에 시와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졸업 후에 캔자스시티 《스타》의 기자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적십자 야전 병원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1919년 귀국했다. 이어서 캐나다《토론토 데일리 스타》의 특파원으로 유럽에 건너가 각지를 여행하며 기사를 썼다. 파리에서 G. 스타인, E. 파운드, S. 피츠제럴드  등과 어울리며 작가로 성장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를 시작으로 《우리 시대에》, 《봄의 격류》와 같은 단편에 이어 장편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1929년에는 전쟁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되는《무기여 잘 있거라》를 발표하여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헤밍웨이가 평생 천착했던 주제는 인간이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맞닥뜨리는 본질적 문제,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승리나 패배와 같은 철학적 문제였다. 그리고 그의 삶 또한 그런 상황에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극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스페인 내전과 터키 내전에 참전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쿠바 북부 해안 경계 근무에 자원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소설의 소재가 되어《무기여 잘 있거라》, 《제5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등의 작품이 탄생했다.
그는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통과 단절된 젊은 세대를 일컫는 ‘잃어버린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이 되었으며 전 세계인이 감동한그의 작품들은 그를 20세기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그가 10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강 건너숲속으로》는 비록 좋은 평을 얻지 못했지만, 그 다음에 발표한 단편《노인과바다》는 그에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안겨 주었다.

그 밖에 단편집으로 《남자들만의 세계》,  《승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등이 있고, 하드보일드풍의 걸작 《살인청부업자》,  《킬리만자로의 눈》 등이 있다.

그럴 때면 카페 데자마퇴르Café des Amateurs는 사람들로 붐볐고, 유리창은 실내의 후끈한 열기와 담배 연기로 김이 뿌옇게서렸다. 동네 술꾼들이 모여드는 이 지저분하고 허름한 카페는 잘 씻지 않는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와 시큼한 술 냄새에 절어 있었다. - P9

나는 이 술집 단골은 아니었지만, 이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면 남자든 여자든 늘 취해 있었다. 아니, 그들은 이 카페에서는 일 리터 혹은 반 리터짜리 싸구려 와인을 마실 수 있었기에 늘 취했을 것이다. 벽에는 여러 가지 낯선 상표의 아페리티프광고전단이 붙어 있었지만, 만취 상태가 아니라면 그런 비싼 술을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곳에서는 여자 술꾼들을 ‘고주망태‘라는 뜻의 ‘푸아브로트poivrotte‘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 P9

겨울 들어 처음으로 찬비가 내리면서 도시의 온갖 서글픔이 느닷없이모습을 드러냈다. 거리를 산책하며 바라봐도 이제는 높고 산뜻한 건물의 지붕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비에 젖은 음울한 거리와작은 상점들, 약초 가게, 문구점, 신문판매점, 조산원, 그리고 베를렌이 숨을거둔 곳이며 내가 꼭대기 층에 방 하나를 빌려 작업실로 쓰고 있는 호텔의 굳게 닫힌 대문뿐이었다. - P11

한 여인이 카페로 들어와 창가의 테이블에 홀로 앉았다.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다. 빗물에 씻긴 듯 해맑은 피부에 얼굴은 방금 찍어낸 동전처럼 산뜻했고, 단정하게 자른 머리카락이 새까만 까마귀 날개처럼 뺨을 비스듬히 덮고 있었다. - P13

아름다운 여인이여, 그대는 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당신이 누구를기다리고 있든, 그리고 내가 당신을 다시는 보지 못한다 해도, 지금 이 순간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신은 내 것이고, 파리도 내 것이고, 나는 이 공책과 이 연필의 것입니다. - P13

"자네는 내 말의 요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구먼." 그녀가 말했다. "어떤 것이든 ‘전시할 수 없는‘ 것을 써서는 안 돼. 그건 아무 의미 없는 짓이야. 잘못된 것이고 바보 같은 짓이야." - P23

"당연하지. 피카소는 자네 수준이 아니야. 자네 또래 말하자면 군대에서 자네와 함께 복무했을 정도의 젊은 화가의 그림을 사라고 자네는 그런 화가들이 누구인지 곧 알게 될 거야. 거리에서 마주치게 될 테니까. 젊은 화가중에도 좋은 화가는 꼭 있게 마련이야. 하지만, 그림을 사는 데 문제가 되는건 자네 양복이 아니라 자네 부인의 옷이야 여자 옷은 비싸거든." - P24

"그래, 그래, 헤밍웨이. 그런데 자네는 살인범들과 성도착증 환자들 틈에 살고 있었구먼."
 그녀가 말했다.
나는 내가 하찮은 세상에서 살고 있고, 세상에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있으며, 나는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그중에는 절대로 호감을 품을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고, 심지어 몇몇은 아직도 증오하고 있었지만, 그 문제로 여사와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 P27

어쨌든, 그날 하루도 대단히 기분 좋게 시작되었다. 내일도 열심히 글을쓰리라. 글쓰기는 내게서 거의 모든 것을 치유해 주었고, 그것이야말로 내가당시에도 믿었고, 지금도 믿는 일이다. 스타인 여사는 내가 고쳐야 할 점이있다면, 나의 젊음과 내가 아내를사랑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파트에 도착할 즈음에는 처량한 기분이 완전히 사라졌기에 나는 쾌활하게• 그냥그날 새로 알게 된 성에 대한 지식을 아내에게 들려주었다. 그렇지만, 그날밤 우리 두 사람이 행복했던 것은 이미 전부터 알고 있던 지식과 알프스에서터득한 새로운 지식 덕분이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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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이타치(갑자기 피부에 낫으로 베인 듯한 상처가 나는 현상. 옛 일본에서는 족제비의 짓이라고 믿었다_역주) 비슷한 현상이 마을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마성의 존재란 말이다, 한두 번은 그 사람에게 아주 좋은 일이 생기게 해준단다. 그렇게 추어올려주다가 갑자기 밑바닥으로 뚝 떨어뜨려. 정말로 사악한 존재는 이것에 몇 년씩 시간을 들이지. 당사자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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