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아무튼, 디지몬 : "길고도 매우 짧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 천선란

이건 내가 디지몬과 영원히 이별하는 이야기다

"〈디지몬 어드벤처〉요."

〈디지몬 어드벤처〉는 정말로 SF 장르의 특성을 모두 충족시킨다. 결정적인 근거는 배경이 ‘디지털 세상’이라는 거다. 어떻게 SF가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주인공들은 디지털 세상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며, 그곳의 혼돈은 현실 세계에도 영향을 끼친다.

성인이 〈매트릭스〉의 가상현실에서 파란 약과 빨간 약의 혼돈에 갇혀 있을 때, 아이들은 디지털 세상에서 디지몬 친구를 만났다. ‘선택받은 아이’가 되어 디지털 세상으로 갈 날을 기다리며 모니터에 괜히 말을 걸어보거나, 상상 속의 디지바이스*를 열심히 흔들며 새로운 세기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와 다를 바 없이 살던 일곱 명의 아이들이 비가 오던 어느 날 디지털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버린 것이다.

찾아라 비밀의 열쇠*
* 한국판 〈디지몬 어드벤처〉 오프닝 곡 첫 가사.

〈디지몬 어드벤처〉는 7세 이용가로 분류된다. 다시 말해 당신이 7세 이상이라면 〈디지몬 어드벤처〉를 보호자 지도 없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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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비우면 누구나 꽃을 피워 올릴 수 있는 이치
지공 스님은 1993년부터 이곳에 혼자 있다. 신도라고 탈탈 털어봐야 절 밑의 등에 시작움것이다. 전기 요금 전화 요금 내기도버거운 절이다. 지공 스님이 큰절 마다하고 굳이 구암사로 자청해온까닭은 사명감 때문이다.

사명감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지공 스님은 배고픈 절인 구암사를지키고 있는 것일까? 지공 스님의 사명감이란 무엇일까? 그 안에는조선 후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학승이었던 백파 대사의 법맥脈을이어간다는 자존심이 깔려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자존심, 자존심은 이해타산을 떠나게 만든다. 시절 인연이 좋았을 때는그처럼 들끓었던 제자들이,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니 간데없이사라졌다. 세상사 이런 것인가! ‘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처럼 지공 스님 혼자 외로운 구암사를 지키고 있다. 외롭고 배고픈 절이 된 구암사, 구암사에는 지공 스님과 노랗게 핀 수선화 단 둘이다 외로움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까! 사찰 마당 화초밭의풀을 뽑고 있는 스님은 담담한 풍모를 지니고 있다. 묻는 말 외에는 일체 말이 없는 분이다.

"휴거헐거休去歇去면 철목개화鐵木開花라는 말이 있지요."
‘철목개화하는 데 몇 년 정도 걸립니까?"
"한 5년만 절 밖에 안 나가면 됩니다."

오랫동안 휴거헐거를 해서 그런 것일까. 지금 스님은 그저 담담하기만 하다. 나는 그 담담함이 참으로 부러웠다. 장광설은 피곤을 가져오고 담담함은 생기를 준다. 지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만 말해야 한다. 서론을 과감하게 생략하고결론으로 직행하는 것이 지혜가 아니던가.

먼저 돈이 없어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이 어찌 청산을 그리워하겠는가. 중생은 바야흐로 돈이 없어야 고독을 알고, 고독을 응시하기 시작할 때 청산이 부르는 소리가 귀에 들린다. 청산이 좋아지기시작하면 그때부터 돈 버는 일과는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역마살이다. 역마살이 있으면 이상하게도 돌아다닐일이 많이 생긴다. 이산 저산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집구석에붙어 있을 날이 없게 마련이고, 사주팔자에 역마살 많은 사람치고일요일 날 방바닥에 누워 텔레비전 보는 사람 못 보았다. 사주의 인신사해 역마살이다.

다음 조건은 염증이다. 도시 생활이 왠지 이유 없이 싫어야한다. 싫어야 산속의 소나무가 어머니 품 같고 고향 같다. 염세증 환자로 분류될 수 있는 기준 중의 하나는 ‘범종 소리를 좋아하는가?‘이다. 석양이 오렌지색으로 변해 넘어갈 무렵, 인적이 드문 절간에서산허리를 타고 돌며 사라져가는 범종 소리를 듣고, 감정이 복받쳤던경험이 있는 사람은 일단 염세증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이들에게는공통적으로 도연명의 「귀거래사」나 장 그르니에의 「섬』을 좋아하는취향이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식견을 지녀야 한다. 식견이라고 하는 것은 교과서적인 이론에다가 풍부한 현장 경험이 합쳐졌을 때 생겨난다. 식견을지녀야만 답사 현장에 섰을 때 단서를 찾아낼 수 있고, 이 단서를 매개로 해 추리가 가능해지고, 추리를 따라가면서 과거, 역사 그리고옛사람들과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식견은 세월과 어느 정도비례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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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복사 주위는 우리나라에서 쌀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김제·만경의 곡창지대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둠벙 파놓으면 개구리 뛰어든다‘는 옛날속담처럼 쌀이 있는 곳에는 문화가 발달하고 사람이 모이게 마련인가 보다.

화두...... 글자 그대로 말의 머리만 있지 꼬리는 감추고 없다. 머리만 힐끔 보고 몸통과 꼬리를 한눈에 파악해야 한다. 언어를 가지고 언어를 파괴하는 것이 화두이다. 비논리를 가지고 논리를 깨는것이 화두이다. 원효가 역작 『기신론소起信論』에서 제시한 의언진여依言眞如(언어에 의지해 진리를 표현함)의 세계에서, 이언진여難言眞如(언어를 떠남으로써 진리를 표현함)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 화두이다.

"달다.……………."
전강이 휘두른 이 한마디는 지혜 제일의 검객이 보여준 초식이다.
이렇게도 할 수 없고,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딜레마를 한칼에 해결해버린 것이다. 이 화두는 중생의 삶을 비유한 이야기이다. 가없이 너른 들녘은 태어나서 죽어가는 생사의 광야이니 그곳으로 사방에서 붙어오는 불길은 생로병사의 불이요, 우물은 황천이며,
미친 코끼리는 무상한 살귀鬼요, 나무는 사람의 몸이며, 칡넝쿨은사람의 목숨이고, 검은 쥐 흰 쥐는 해와 달이요, 세 마리의 이무기는탐·진·치 삼독심三毒心이며, 네 마리의 뱀은 지·수·화·풍 사대이다. 꿀은 오·욕·락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서산이 옳은 것인가, 진묵이 옳은 것인가? 동포가 왜놈의 칼날에 처참하게 살육당하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진묵은 저 혼자 살자고 산속에 숨어버린 도피주의자란 말인가? <미션>에서 평화의 십자가를 들고 행진하는 제레미 아이언스와 칼을 잡고 돌격하는로버트 드 니로.......

나의 머릿속에는 서산과 진묵의 극단적인 인생행로가 한꺼번에몰려들었다. 서산은 칼을 들고 산에서 내려온 셈이고, 진묵은 그냥청산에 머물렀다. 시뻘건 피를 튀게 하는 칼이 색이라면, 청산은 공이라고 할 수 있다. 색과 공이 이처럼 확연하게 구분되는 경우는 전쟁이 일어날 때이다. 피와 칼과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다. 눈앞에 칼이 들어오는데 과연 이것이 환상이고 공인가. 칼이 들어오는현실에서 초연해질 수 있는가, 아니면 도망갈 수밖에 없는가.

그래서 나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겹쳐보았다. 그리고 진묵의 행적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커다란 사건 하나를 접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3년 전, 그러니까 기축년(1589)에 김제 금구에서 발생한 ‘정여립 역모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정여립과 관련돼 걸려든 사람이 수천 명이고, 그들 중 사형되거나 고문으로 죽은 사람만 해도 대략 1천 명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다. 누구의 표현대로 ‘조선의 광주민주화운동‘이었던 것이다.

정치적 좌절은 종교적 천재를 낳았다. 진묵이라는 천재가 없었다면 상처받은 민초들은 어디로 가서 위안을 얻었을 것인가! 임금에게서 위안을 받을 것인가, 사또에게서 위안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미쳐 버려야 한단 말인가? ‘진묵 신앙‘은 상처 치유의 산물이었다. 한국의 승려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경상도는 정치인이 많이 나고,
전라도는 도인이 많이 나온다‘라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음미할 가치가 있다.

불교는 정해진 지역구가 따로 없다. 마음에 드는 도량이 있으면방방곡곡 전국 어디라도 찾아간다. 불교의 사상이 무주공산 사상이라 어디 따로 임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1980년대 중반 이후자동차가 많이 보급되면서 이 현상은 더욱 강해졌다. 전국 어디에있는 사찰이라도 가고 싶으면 간다.

나는 외롭고 힘들 때마다 『맹자』 「진심장」에 나오는 "궁색할때는 홀로 자신을 돌보는 데 힘쓰고 잘 풀릴 때는 세상에 나가 좋은 일을 한다" 를 마음속에서  새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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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 물리지 않으려면 목 있는 등산화의 착용은 물론이고 보신탕이라는 음식은 멀리할 일이다. 뱀은 보신탕 좋아하는사람을 잘 문다고 한다. 왜냐하면 뱀이 개고기 냄새를 좋아하니까.

그러기에 산에 갈 때는 개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개는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신명계를 볼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이걸 먹고 산에가면 산신령이 좋아하지 않는다. 아예 애초부터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이태가 쓴 남부군을 보면 회문산에서 내려오던 남부군의 일부가 변산으로 들어온 것으로 돼 있는데, 이때를 전후해 변산 일대는남부군과 군경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면서 청림사·실상사·의상암·청련암·묘암사·도솔사 등 근방의 유서 깊은 명찰들이 모조리불타버리는 참화를 겪었다.

남부군이 들어왔다면 상황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때 불사의방도 같이 불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에 한 젊은이가 불사의방에서 과거 공부를 하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인근 사람들의 구전으로 미뤄, 적어도 조선 후기까지는 있었다고봐야 하기 때문이다.

불사의방에서 변산 일대를 조망하면, 변산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들어온다. 그런가 하면 까마득한 절벽 아래의 풍경은 고만고만한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잘 다듬어놓은 녹색의 융단처럼 보여 황홀하다. 이 황홀함은 현실적인 이해타산을 마비시키고 만다. 여기에서는모든 걸 잊고 ‘한번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로 사람을취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느껴지기도 한다.

진표율사는 실제로 불사의방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경치의 아름다움에 매료돼서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는 불사의방을 찾아올 때 진리를 위해서목숨도 버리겠다는 위법망구爲法忘의 각오를 하고 왔음이 틀림없다.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가 되어준 어머니의 산
모악산으로 간다. 어머니의 산이다. 오갈 데 없는 민초들이 몰려들었던 산. 민초들의 산이면서도 우리 역사의 전환기 때마다 중요한역할을 담당했던 산. 어머니 품같이 포근한 모악산에는 금산사가 자리 잡고 있다. 금산사는 599년 창건되었다.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 있는가? 사찰 아니면 남아 있는 것이 없지 않은가? 해마다 중장비로 산을 허물어 길을 내고 아파트를 짓는다. 전국의 산수 좋은 곳은 여관이나 가든이 들어서 있다. 어떻게 하다가 우리는 이렇게 천해지고 박해졌는가. 선인들은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라고 읊었지만, 최근의 몇십 년 사이에 ‘산천도 박살 나고 인걸도 간데없네‘가 돼버렸다.

금산사의 키워드는 바로 ‘뿌리‘이다. 정신의 뿌리이다.

이李자를 분석하면 나무 목木에다 아들 자子이다. 나무가들어간다. 그러므로 이씨는 목木에 해당한다. 이씨 왕조는 목에 해당하는 왕조라서 목을 극剋하는 금을 신경질적으로 싫어했다. 오행의상생상극 이치로 볼 때 금이 많으면 목 기운을 받은 이씨 왕조가 다치게 된다. 조선이 들어서면서 금체 형국의 마이산을 ‘금을 묶어놓는다‘는 뜻의 속금산으로 바꾸어놓았다. 지명도 그렇다. 원래 ‘금포
‘라고 읽던 것을 ‘김포‘로, ‘금해‘를 ‘김해‘로, 김씨 성을 ‘금‘에서 ‘김‘으로 바꾸어 발음하게 한 것도 모두 같은 맥락에 속한다. 음양오행의 세계관에서 볼 때 이씨 왕조가 금을 싫어한 것은 당연했다.

차분하게 가라앉는다는 말은 품을 수 있음을 뜻한다. 인자한어머니처럼 잘난 자식뿐만 아니라 못난 자식도 가슴에 품는다. 품을수 있는 포용력이 오갈 데 없는 민초들을 받아들였다. 일제에 의해서 나라가 망했을 때도 전국의 민초들이 이 산에 모였다. 동학·증산교·원불교가 모두 모악산과 관련이 있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이 때문이다.

참회하라, 그러면 미륵을 볼 것이다! 회개하라, 그러면 주님을 영접할 것이다! 진표율사의 신령스런 권능이 어려 있는 곳이 금산사인 만큼, 이후로 금산사 미륵전은 한국에서 가장 영험한 미륵 도량으로 자리 잡는다. 미륵을 만나려면 금산사로 가야 한다.

도솔암 마애불의 배꼽에는 신비에 싸인 비결이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비결을 꺼내는 순간 벼락을 맞는다는 금기가 서려 있어 아무도 꺼내보지 못했다. 세월은 흘렀다.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1년 전 1893년 가을, 동화도 3백여 명이 도솔암 마애블의 비결을 꺼내기 위해 도솔암으로 몰려갔다. 그들은 절실했다. 미륵 마애불에서 천고의 비결을 꺼냈다는 소문은 전라도 지역을 휩쓸었다. 3개월 뒤, 전주 감영으로 몰려간 양인의 수는 1만여 명에 달했다.

출세란 속세를 떠나 산으로 들어간다는 뜻
‘출세‘라는 말의 본래 의미는 ‘세간을 떠난다‘는 뜻이다. 국회의원 되고 판사 되는 것이 출세가 아니고, 세속을 떠나는 것이 출세의 원래 의미이다. 출세는 ‘출세간의 한가함‘을 지향하던 불교에서 온 말인데, 조선 시대의 입신양명 제일주의를 거치면서 본래의뜻이 왜곡돼버린 것이다.

‘출‘ 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뫼산자 위에 또 뫼 산 자가 겹쳐있다. 산 위에 산이라는 뜻이다.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출세이다. 그러나 입산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산으로 들어갈 수있는 자격은 자의든 타의든 세간의 업장이 소멸해야 주어진다. 실직자들이 산으로 모여드는 이치도 타의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어찌 됐든지 직업이라고 하는 하나의 업이 소멸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검단 선사는 선운사 주변 민초들 사이에서칭송을 받았고, 그는 절벽에 미륵의 모습으로 새겨지게 되었다. 그런데 마애불의 배꼽에는 신비스런 비결이 하나 숨겨져 있다고 했다.

그 비결이 세상에 출현하는 날에는 한양이 망한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그 비결과 함께 벼락살을 밀봉해놓았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비결을 꺼내려고 손을 대면 벼락을 맞아 죽는다고 했다.

벼락살이 같이 봉해져 있다는 사실이 실제 드러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2백 년 전 전라 감사로 내려왔던 이서구가 그것을 꺼냈을 때였다.

이 비결이 출현하는 날 한양이 망한다고 함은 곧 조선이 망하는것을 의미하는데, 갑오농민전쟁 때 이 설화가 난무했다. 실제로 동학농민혁명은 바로 이 도솔암 미륵불의 배꼽에서 손화중孫華仲이  비결을 꺼냄으로써 촉발되었다.

오지영의 「동학사東學史』를 보면  도솔암 미륵불의 비결을 꺼내기위해서 손화중포包에 소속된 동학의 접주들은 참모 회의를 연다. 논의의 핵심은 벼락살이었다.

"이제 열어볼 때가 되었으니 아무 일 없을 것입니다."
때가 돼서 열어보는데 어떻게 벼락이 칠 수 있겠느냐는 비장한 시대 인식이었다. 여기서 ‘때‘는 비결을 꺼내서 한양이 망해도 좋을 만큼 당시 민중이 지배 체제의 폭정과 수탈에 극도로 시달리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1890년대를 살던 조선의 민중, 특히 전라도 민중은 지긋지긋한 세상을 그만 끝내고 좋은 세상이 오기를 고대하는 ‘개벽‘의 희망을 도솔암 미륵불에게 걸었다. 잘못된 사회를 엎어버리는혁명의 비결은 도솔암의 미륵불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화중에 소속된 수백의 동학도들이 배꼽 비결을 꺼내러 간 때는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893년 가을이었다. 비결을 꺼낼때 동학도들은 청죽수백 개와 새끼 수십 타래를 가져가 미륵불전면에 사다리를 설치했다. 미륵불이 절벽의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대나무로 만든 임시 가교가 필요했던 것이다.

기록에 보면 선운사승려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 수십 명의 승려를 새끼로 묶어놨다고 했으니, 비결을 꺼내는 과정에서 동학도 측과 선운사 측의 충돌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때 몰려간 동학도는 3백여 명이었다.

도끼로 배꼽을 부순 뒤 과연 고대하던 비결을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그 속에 있는 것을 꺼냈다고는 하나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손화중포에서미륵불에 감춰져 있던 천고의 비결을 꺼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주변을 휩쓸었다.

천지개벽의 비결을 동학도가 입수했다는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전해졌다. 일대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손화중포에는 수개월사이에 수만 명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갈 곳 없던 사람들이 희망을발견하고 그야말로 구름같이 몰려든 것이다. 그만큼 미륵 비결에 대한 민중의 기대는 대단했다.

위로와 치유의 기도처 도솔암 이야기
권력이 총구에서 나온다면 종교의 힘은 기도발에서 나온다. 기도에대한 하늘의 응답이 기도발이다. 사업 잘되고 승진하고 병 낫는 게기도발이다. 나는 기도발이 존재하는 한 종교는 유지될 수 있다고생각한다. 고등 종교이든 하등 종교이든 간에 모든 종교의 기초에는기도발이라는 게 깔려 있다. 마르크스가 과학적 사회주의로 무지몽매한 관념주의를 없애버리려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원인도기도발 때문이 아닌가 싶다.

『화엄경』은 "모든 것은 오직 마음에서 만든 것"으로 보고 이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 관념의 투사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죽어야 끝이 난다. 싫든 좋든 봐야만 한다. 스크린의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중생은 일희일비, 웃다가 울다가 병들면서 죽는다. 보다가 재미없다고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도 없다. 비상구마저없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눈앞에서 전개되는현실에 붙잡혀 살 수밖에 없다. 오로지 현실에 붙잡혀 있다. 꼼짝도못 한다. 쥐덫에 걸린 것처럼,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발광하는 고양이처럼. 그놈의 현실! 현실은 과연 진짜인가!

인생! 이것은 대몽大夢이다.  관념의 투사에서 비롯된 환상이라는것을 알아채기 전에는 말이다. 꿈을 깨고 난 뒤에는 꿈이 꿈에 지나지 않지만, 꿈을 깨기 전까지 꿈은 지독한 현실이다.

승려들이 자나 깨나 화두를 잡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신 집중의연습이다. 해인사 성철 스님이 생전에 
동정일여動靜一如 (움직이거나고요할 때를 막론하고 화두가 생각남),
오매일여悟昧一如 (깨어 있을 때나 잠잘 때나 화두가 생각남), 
몽중일여夢中一如
(꿈속에서도 화두가 생각남)를  항상 강조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만약 딴생각하면서천도재를 지낼 경우에는 귀신이 오히려 승려의 뺨을 때릴 수 있다.
조금만 방심해도 귀신이 그 틈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들어오는 것이다.

키워드는 용이었다. 그리고 이를 고대사회의 신앙과 관련지어보았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용을 숭배해왔다. 요즘 사람들에게야 용은 상상의 동물이지만, 고대인들에게 용은 분명히 실존하는 영물이었다. 용을 숭배한 이유는 용이물을 관장하기 때문이다.

고대 사회는 농경 사회이고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물이다.
가뭄이 들면 농사를 망치기에 비를 내려주는 용이야말로 농사짓는사람들에게 절대의 신일 테다. 비를 내려주지 않으면 농사가 안되고농사가 안되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을 판이니, 비와 물을 주재하는 용은 신으로 대접받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미륵사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하나는창건 당시부터 미륵사의 정문 앞에 연못을 조성해 용이 살 수 있는공간을 남겨놓은 점이고, 또 하나는 금당 밑으로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일부러 수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금당에는 미륵불을 대좌 위로 모셨고, 그 밑으로는 용이 출입할 수 있는 수로를 연결해놓은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용미륵卽용은즉 미륵이다)을 상징한 것이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용은인간이 수행해서 범인의 상태를 벗어나 사차원의 세계로 진입했을때 그때 비로소 맞닥뜨리게 되는 동물이라고 한다. 근래에 용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실감 나게 적은 것은, 현대에는 물질세계에만 급급해 정신세계에 들어간 고단자가 드물다는 방증이라고 생각된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용을 쫓아내기 위해서이다. 용과 숯은 서로상극 관계라고 한다. 닭과 지네, 새우젓과 돼지고기, 지푸라기와 해삼이 서로 상극 관계이듯이, 제아무리 용이라 한들 시커먼 숯을 만나면 꼼짝 못한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용은 물이 있어야 노는데, 숯은 물기를 스펀지처럼 흡수해버리는 작용을 하니 숯을 싫어할 수밖에.

꿈틀거리는 용이 바다를 향하고 있다. 선인들의 작명 솜씨에서 풍기는 미학과 경륜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나는 언제나 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자기‘라는 소아병에서 벗어난 사람은 대자연 속에 자신을 넣어 동화시킬 수 있고, 그 동화는 거대한 풍경을 다시 자신의 손바닥 안에 축소시켜 볼 수 있는 능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니,
대자연과 자신을 하나로 합일시킬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야만 이와같은 시적인 작명을 할 수 있으리라. 비룡망해의 용머리에 올라타고있는 유선사. 그 오른쪽 날개에는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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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게 도대체 왜 천지창조야? 천지창조 하는 데 사람이 저렇게 많이 필요했어?’

치유키가 딴지를 걸자,

‘저 정도면 사람 적은 거 아냐? 세상을 만드는 데 고작 저 정도로 되겠어? 저기도 업무 빡빡했겠다.’

"하지만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거의 없지. 이곳에서의 죽음은 더더욱. 도시의 유지를 위해 모두가 삶의 반을 노동에 쏟아. 삶을 위해 삶을 버리는 거야. 평생 쳇바퀴 속에서 달리는 거지. 쳇바퀴를 멈출 수 있는 수단은 죽음뿐이야. 원래는 지구의 유기체가 하던 일을 이제 인간이 하는 거란다. 불씨가 꺼지지 않게 계속 돌려야만 해. 그럼 죽음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니? 쳇바퀴를 벗어나 자유로 나가는 일. 어때? 좀 부러워지지 않니?"

사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강약 조절이 필요하지. 다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지낸다고 약속만 해주면 그만이야. 어때, 너그럽지?

그것이 망가질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거야. 어떤 이는 밤하늘과 숲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그런 인간들이 모여 또다시 끔찍한 일을 벌일 거라는 걸 짐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이 행성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 지하 도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출구를 지키던 문지기였을까.

소마, 나는 우리가 이끼였으면 좋겠어.

나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바위틈에도 살고, 보도블록 사이에도 살고 멸망한 도시에서도 살 수 있으면 좋잖아. 고귀할 필요 없이, 특별하고 우아할 필요 없이 겨우 제 몸만한 영역만을 쓰면서 지상 어디에서든 살기만 했으면 좋겠어. 햇빛을 많이 보기 위해 그림자를 만들지 않고, 물을 마시지 못해 메마를 일도 없게. 그렇게 가만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거야. 시시하겠지만 조금 시시해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그 애를 놓지 않는다.

절대로.

"우리 다시 다 함께 별을 볼 수 있는 거지?"

『이끼숲』을 통해 사실상 많은 것을 구했다. 「이끼숲」에서 그러했듯 유오와 소마를 구했다. 흩어질 사랑을 구하고, 슬픔에 잠길 한 사람을 구했다.

숙고를 거듭해 연작으로 이어 쓴 「바다눈」과 「우주늪」에서는 「이끼숲」에서 지하 도시에 남겨진 친구들을 구했다. .

같은 시간이 아님에도 그들이 나눈 어떤 행복한 순간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또한, 작가는 자신이 그려낸 세계 또한 위험에 빠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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