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저게 도대체 왜 천지창조야? 천지창조 하는 데 사람이 저렇게 많이 필요했어?’

치유키가 딴지를 걸자,

‘저 정도면 사람 적은 거 아냐? 세상을 만드는 데 고작 저 정도로 되겠어? 저기도 업무 빡빡했겠다.’

"하지만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거의 없지. 이곳에서의 죽음은 더더욱. 도시의 유지를 위해 모두가 삶의 반을 노동에 쏟아. 삶을 위해 삶을 버리는 거야. 평생 쳇바퀴 속에서 달리는 거지. 쳇바퀴를 멈출 수 있는 수단은 죽음뿐이야. 원래는 지구의 유기체가 하던 일을 이제 인간이 하는 거란다. 불씨가 꺼지지 않게 계속 돌려야만 해. 그럼 죽음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니? 쳇바퀴를 벗어나 자유로 나가는 일. 어때? 좀 부러워지지 않니?"

사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강약 조절이 필요하지. 다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지낸다고 약속만 해주면 그만이야. 어때, 너그럽지?

그것이 망가질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거야. 어떤 이는 밤하늘과 숲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그런 인간들이 모여 또다시 끔찍한 일을 벌일 거라는 걸 짐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이 행성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 지하 도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출구를 지키던 문지기였을까.

소마, 나는 우리가 이끼였으면 좋겠어.

나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바위틈에도 살고, 보도블록 사이에도 살고 멸망한 도시에서도 살 수 있으면 좋잖아. 고귀할 필요 없이, 특별하고 우아할 필요 없이 겨우 제 몸만한 영역만을 쓰면서 지상 어디에서든 살기만 했으면 좋겠어. 햇빛을 많이 보기 위해 그림자를 만들지 않고, 물을 마시지 못해 메마를 일도 없게. 그렇게 가만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거야. 시시하겠지만 조금 시시해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그 애를 놓지 않는다.

절대로.

"우리 다시 다 함께 별을 볼 수 있는 거지?"

『이끼숲』을 통해 사실상 많은 것을 구했다. 「이끼숲」에서 그러했듯 유오와 소마를 구했다. 흩어질 사랑을 구하고, 슬픔에 잠길 한 사람을 구했다.

숙고를 거듭해 연작으로 이어 쓴 「바다눈」과 「우주늪」에서는 「이끼숲」에서 지하 도시에 남겨진 친구들을 구했다. .

같은 시간이 아님에도 그들이 나눈 어떤 행복한 순간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또한, 작가는 자신이 그려낸 세계 또한 위험에 빠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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