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빛내면서 장래의 포부를 이야기하는 E씨의 모습을 보고 오자와 군은 속이 순박한 친구가 도회지 인간에게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금세 간파했습니다. - P-1

거액의 회원비를 뜯길 우려가 있다는 점, 다단계 사기 집단에 연루돼 파산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지만, E씨는 도무지 듣지를 않았습니다. - P-1

오자와 군에게는 E씨를 말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오자와 군은 E씨가 그 동아리에서 착실히 활동하기를 빌면서 E씨와 거리를 두기로 했습니다. - P-1

오자와 군이 거리를 둘 필요도 없이, 이후 반년쯤 대학에서 E씨를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수업도 거의 출석하지 않았나 봅니다. - P-1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무서운 이야기란 거요. 그게 진짜라면 체험한 사람한테는 정말로 불행한 일 아니겠어요? 그런데 뭘 만드는 쪽에 있는 사람은 어딘가 점점 마비되는 부분이 있나 싶고….

저도 당사자가 된 이후에는 호러 관련 콘텐츠와는 부쩍 멀어져 버렸네요.

"살아 있는 걸 기르세요. 하지만 그게 좋은 방법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후 어떻게 할지는 댁이 정하세요."

그리고 점원은 함께 키우라며 새우도 권했습니다. 아세요? 새뱅이라는 민물 새우는 송사리와 함께 키우면 송사리가 먹고 남긴 걸 먹어서 수질을 정화해 주니 공생 상대로 좋다고 합니다.

딱히 제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멀리서 저를 물끄러미 보기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못 본 척하기로 했습니다.
졸업 연구를 하며 들은, 영감이 있는 사람이 말했던 ‘눈치채지 못한 척하는 게 제일 낫다’라는 말을 실천한 거죠.

지금은 개를 키우고 있습니다. 골든리트리버 강아지예요.
남자애요? 예, 지금도 보입니다. 거기 창에서 보이는 큰길 맞은편에요. 이쪽을 보고 있네요. 안 보이세요? 그렇군요. 하하.

일본에서 미확인 생물이 UMA냐 요괴냐 하는 논쟁은 히로스에 료코가 배우냐 아이돌이냐 하는 논쟁만큼이나 무의미하다.

갓파가 자신을 UMA로 부르건 요괴로 부르건 신경 쓸 리 없지 않은가? 우리 같은 매스컴이 어떻게 소개하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의가 내려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매스컴이란 어지간히 죄가 깊은 장사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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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고 자라길 도쿄 토박이여서 지방을 동경하는 마음이 강했어요. 프리랜서가 된 것도 사는 곳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어서라는 게 컸죠." - P-1

I-turn.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현상. 특히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시골로 이주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 P-1

「찾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순간 당황해 종이를 구겨서 주머니에 쑤셔 넣은 A씨는 그날 간신히 업무를 마쳤다. - P-1

"그런 건 눈치 못 챈 척하는 게 제일이에요. 이쪽이 눈치챈 걸 상대가 알아차리면 성가신 일이 벌어지니까요. 함부로 재미 삼아 찔러대지 않는 게 좋아요." - P-1

그렇다고는 해도 4월부터 다닐 회사에 맞춰 이사할 예정인 새집까지 그 여자가 따라올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나 봅니다. A씨는 지인인 오컬트 작가에게 매달려 울었습니다. 그 지인이 A씨를 제게 소개해 준 F씨고요. F씨에게 상담을 요청받고 저는 액막이를 할 수 있는 절을 소개하는 대가로 A씨를 인터뷰할 수 있었지요. - P-1

"변함없이 분위기가 어둡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혼자서 무사히 생활하고 계시니 안심했죠. 친구도 몇 분 생긴 것 같았고요."
다만 어머니의 상태가 약간 이상했다. - P-1

이미 두 사람이 뛰어내렸다고 했다.
A씨는 그 대답을 듣고 확신했다.
어머니는 누군가 뛰어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 P-1

"이 기사 말인데요, 편집 관계상 페이지가 4P에서 2P로 변경되었습니다. 자질구레한 묘사는 생략하고 투신자살에 초점을 맞춘 괴담으로 다시 써주세요!" - P-1

어째선지 A씨는 그 웃는 얼굴 깊숙한 곳에서 아무도 없는 아파트를 보았을 때와 같은 ‘어둠’을 느꼈다. A씨가 그 점을 지적해도 어머니는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 P-1

"왜 바깥만 보고 있어? 희귀한 새라도 날아와?"
어머니는 변함없이 바깥에 시선을 두면서 대답했다.
"기다리는 거야." - P-1

창 너머 아래에는 사지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린 사람이 피 웅덩이 안에서 잘게 경련하고 있었다.
A씨의 어머니는 늘 생글생글 웃는 온화한 여성이었다. - P-1

그 순간을 A씨는 잊을 수 없다.
창 너머 아래의 참상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는 생글생글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 P-1

A씨는 그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확신했다.
어머니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창가에 앉아서 누군가가 뛰어내리기를. - P-1

현재 나가노에서 A씨와 함께 사는 어머니는 치매에 걸린 듯 종일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 P-1

그러고 나서 얼마 후 R씨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자살이었다고 해요.
휴일에 느닷없이 "●●●●●에 다녀올게요"라며 혼자 나갔다나 봐요. 그러고는 댐에서 뛰어내렸다는데….
- P-1

네 사람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스티커에는 어떤 주술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확산 방법도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힘이 쓰이고 있을 가능성도 있겠다. 만약 독자 여러분이 거리에서 발견하더라도 쉽사리 다가가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드린다. - P-1

"어쩐지 어수선해졌네요…."
모니터에 비치는 오자와 군의 얼굴은 중얼거림과는 반대로 기뻐 보였습니다. - P-1

"다소 복잡하게 얽혀야 독자를 즐겁게 해줄 수 있죠. 저도 수수께끼 풀이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어쩐지 어수선해졌다던 그가 웃으며 덧붙였습니다. - P-1

"화자의 모친은 이 창으로 매일 산을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그 사건만 잘라내면 기다리고 있었던 건 ‘사람이 자살하는 순간’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죠. 다만 우리는 그 산이 예사 산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모친이 기다리고 있던 것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생겨나는 거죠."
- P-1

솔직히 저는 이 건을 더는 파고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엮일수록 제게도 위험이 닥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러나 그에게 일감을 받은 이상은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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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겠습니다. 세스지라고 합니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한 괴담을 수집하면서 무시무시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함께 괴담을 수집하던 동료가 긴키 지방 ㅇㅇㅇ  (실제 지명이므로 가림)에서 실종됐습니다.
저는 그를 찾고 있습니다.
정보가 있으신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 P-1

최근 몇 년 사이에 아파트 투신 자살을 목격하신 분,
정체 모를 스티커를 받으신 분,
SNS를 통해 사교 집단에 초대되신 분,
빨간 옷 입은 여자를 소개받으신 분,
ㅇㅇㅇ에 대해 혹은 잘 알고 계신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 P-1

처음 뵙겠습니다. 세스지라고 합니다.
이 책에 수록된 다양한 형식의 글은 오컬트 잡지의 특집 기사를 위해 작가인 저와 편집자인 오자와 군이 함께 수집한 것입니다. 저희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한 괴담을 수집하면서 무시무시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전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로 취재를 간 오자와 군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저는 그를 찾고 있습니다.
모쪼록 여러분, 이 책을 읽으시고 정보가 있으신 분은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 P-1

‘이 호러가 대단하다‘ 1위 등극!
일본의 호러 붐을 이끌고 있는 세스지 작가의 모큐멘터리 데뷔작 - P-1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무서운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는 게 사상 최고 수준이다.
오모리 노조미(번역가)
픽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악몽이 현실을 잠식해 가는 듯한착각에 빠지고 만다. 그만큼 생생하다.
도사 아리아케(작가)
두 번은 볼 수 없을 정도로 무섭다.
_독자리뷰 - P-1

도쿄에 거주하는 24세 회사원 A씨는 대학 졸업 후 한 시스템 회사에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회사 업무에도 슬슬 익숙해져 자극 없는 하루하루가 답답하던 차였다. - P-1

"그런 부류의 사이트는 거의 다 법의 회색지대에서 굴리는 거라 언제 닫혀도 안 이상하거든요? 그래선지 사이트 자체를 공들여 만드는 편은 아니에요. 말하자면 다른 사이트 구조를 많이들 훔쳐 쓰죠. 일일이 안 만들어도 되니 훨씬 간편하고요. 그 사이트의 댓글 창도 운영자가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마침 베껴온 곳에 그런 게 있었겠구나, 싶었죠. 무단으로 올린 야동을 보고 댓글로 교류하려 드는 이상한 사람도 없을 테고요." - P-1

"댓글이 달린 동영상은 즐겨 보는 회사에서 한창 밀고 있는 신인 여자애의 데뷔작이었어요. 찾아냈을 땐 땡잡았다고 생각했죠. 다 보고 무심코 스크롤을 내렸는데 댓글 창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귀엽네요. 우리 집에 오지 않겠습니까?」 - P-1

「우리 집에 오지 않겠습니까? 감도 있답니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중에서
"Would you like to come to my house? He has a sense."
Among places in the Kinki region, - P-1

「산에 오지 않겠습니까? 감도 있습니다.」
「늘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출연 배우의 이름)이에요. 댁이 어디신가요?」
「●●●●●-●●-●●●(실제 주소이므로 가림)」
"번지까지 전부 적혀 있었어요. 깜짝 놀랐죠. 진심이라는 거잖아요. 진짜 위험한 사람한테 답글을 써버렸구나, 싶었습니다." - P-1

몇 년 만에 긴키 지방에 눈이 내린 그날, 소녀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 P-1

집안사람이 저지른 범행으로 추리하는 취재 경쟁을 견디다 못해 K양의 친족이 사건 발생 두 달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사건을 더욱 인상 깊게 만들었다. - P-1

"안타깝지만 K양은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시 대상이 죽었다면 사진 속 인물이 희미하게 보여야 하는데, K양은 희미하게 흐려지지도 않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어서 놀랍네요. K양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 P-1

처음 뵙겠습니다. 세스지라고 합니다. 이 작품—이라고 불러도 될지 의문입니다만, 아무튼 여기에 모은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P-1

저는 도쿄에서 글을 써 먹고사는 사람입니다. 세스지는 이 작품을 위해 편의상 붙인 필명이고, 본업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P-1

제 친구가 소식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이 일과 관련해 정보를 구하고 있습니다.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만, 이 작품에 수록된 문장을 쓴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실종된 제 친구 오자와 군도 아닙니다. - P-1

후술하겠지만 모종의 이유로 독자 여러분에게는 장소를 말씀드리고 싶지 않으므로 문장 중 ‘어느 장소’의 범위에 해당하는 지명을 나타내는 고유명사는 모두 ●●●●●라는 형태로 가렸습니다.

"어—이—."
도움을 요청하는 느낌이 아니라 누군가를 부르는 것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소리가 들렸어요. 아마 남자 목소리였을 거예요.

그런데 좀 나대는 성미의 다른 반 남자애가 까분답시고 "어—이, 어—이!" 대꾸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또 그쪽에서 똑같이 "어—이", 대답하고요. 거기다 대고 그 남자애는 계속 어—이, 어—이, 외치면서 친구들이랑 낄낄 웃더라니까요.

그게 몇 번 이어지는 동안 누가 그러는 거예요. "어쩐지 가까이 온 것 같지 않아?"

"이리 오렴— 여기로 와— 감이 있단다— 이리 오렴— 여기로 와— 감이 있단다— 이리 오렴— 여기로 와— 감이 있단다— 이리 오렴— 여기로 와— 감이 있단다—."

이건 아마 우리 학교 애들밖에 모를 텐데,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반장 여자애가 조금 이상해졌어요.
수업 중에 갑자기 일어나서 산에 가고 싶다고 막 소리를 질렀다나요. 그러다 학교도 점점 안 나오게 되었고. 몇 달 지나 죽고 말았어요.

자살했다나 봐요. 빈소에 갔다 온 걔네 반 애 말로는 관이 완전히 닫혀 있어서 얼굴도 못 봤다고 해요.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슬퍼하더라고요.

현재 일본에는 크고 작은 곳 모두 합쳐서 500개가 넘는 심령 스폿이 있다는데, 잡지 같은 매체에서 다룰 만큼 지명도가 높은 곳은 사실 한정돼 있습니다.

그 아파트에 사는 아이는 이상해진다고 한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사하고 몇 개월이 지나고서였다.
딸이 조금 이상해졌다.

나비를 붙잡아서는 날개를 쥐어뜯고 모래에 묻는다, 위층에서 화분을 떨어뜨린다, 갓난애가 탄 유아차가 지나가면 걷어찬다…. 이사 오기 전에는 하지 않았던 악질적인 장난이 늘었다고 했다.

그 놀이는 ‘맛시로상5’이라고 한다.
‘맛시로’는 일본어로 ‘새하얗다’라는 뜻이고, ‘상’은 인명, 직명 등의 뒤에 붙어 가벼운 경의를 나타내는 말이다

무심코 마주 오는 차를 보았는데, 운전하던 남자가 저희 쪽을 보고 무슨 말인가 하는 것 같았습니다. 소리는 당연히 들리지가 않아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운전하던 남자 친구가 아니라 저를 보는 듯해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 남자였습니다.
얼마나 무섭던지요. 곧장 친구가 보러 갔지만,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친구가 "닮은 사람 보고 착각했겠지"라고 해서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서둘러 지나가려고 발을 내딛는 순간, 닫혀 있던 문이 천천히 열리고 남자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저를 쳐다보던 남자의 얼굴이 히죽 웃음을 띠었습니다.

"또 오세요."

무서운 것은 꿈속에서 제가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기분이 그저 편안합니다.

저는 저주를 받아버린 걸까요.
그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살려주세요.

"유령이나 귀신에게 인간이 정한 현의 경계나 구획 같은 건 상관없다는 걸까요…. 다만 지금 해주신 설명을 듣고 저는 새롭게 마음먹었습니다. 이번 별책의 특집은 이 일대 심령 현상의 발단이 산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과월호와 취재 자료에서 모아보는 걸로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주지 못했던 깨달음을 독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야 새내기 편집자로서 기쁜 일이죠."

그가 제시한 원고료는 도저히 그 수고에 걸맞다고 할 수 없는 금액이었지만, 그의 열의와 호러 애호가로서 제 흥미를 이기지 못해 정식으로 일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적은 그림으로만 구성되는 것은 거의 없고, 신앙 대상이 되는 신의 이름이나 신사의 이름, 또는 경전이 문자로 적혀 있습니다.

「찾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에게 널리 퍼뜨려주시면 멋진 친구가 생깁니다. 귀여운 아입니다.」

기분 나쁘죠. 모두 장난으로 서로에게 보내곤 했지만, 반에 영감이 있다는 애 하나가 이건 진짜 위험하다고, 바로 삭제하는 게 낫다고 해서 메일 수신함에서 지워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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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다 도시후미는 살인으로, 구스모토 게이타로는 공범으로 함께 기소되었다. 특히 요네다는 위장 공작 건도 있어서 매우 무거운 형이 언도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요네다의 조부와 정치인의 연줄은 이제 힘을 발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후원회를 비롯하여 모든 주변 관계가 끊겼다고 한다. 물론 그 정치인과 야쿠모는 이 건으로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아니…… 기억이 났을 뿐이야.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거, 정말 기쁜 일이라는 말."

"정말이지, 당신이란 분은…… 그러다 또 따님한테 왕따 당합니다."

구라오카가 "시끄러" 하며 쓴웃음을 짓고 무대 앞으로 걸어간다. 요다와 다테하나도 무대 쪽으로 다가가고 시바와 다마키도 뒤를 따랐다. 가을 하늘 아래 경쾌한 힙합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라 전체, 사회 전체에 면면히 이어져 온 남녀차별…… 그리고 차별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어도 오랜 세월 상식이나 관행으로 치부되어 온 관습, 암묵적 양해에 따른 성 역할, ‘남성다움’ ‘여성다움’이라는 행동거지와 이를 수용하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어휘는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의 양상을 속박하기도 하고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힘을 갖고 있다.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호칭 하나의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제 외국어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국어 실력과 비슷한 수준이었거든요. 택시기사가 시비조로 무슨 얘기인가를 지껄이더군요. "나 바빠, 얼른 돈 내고 내려"라는 뜻인 듯했습니다.

이런 게 인종차별이구나. 그 뒤로 백인 (어른) 남자와 맞닥뜨리면 덜컥 겁부터 났어요. 캐나다에서 밤늦게 돌아다니면 폭행을 당할지도 모르겠구나. 실컷 두드려 맞아도 어디 가서 하소연조차 못하겠구나. 급기야 ‘캐나다는 무서운 나라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자신이 남자라는 이유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당연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누리지 못했다 여겼을 때 여성을 때리고 죽였습니다. 좌절하거나 분노한 남자들의 막무가내식 보복은 마치 천부적 권리를 행사하듯 약하고 만만한 여성을 상대로 너무도 쉽게 자행되었지요.

음. 오랫동안 "가정에는 폭력이 없을 것이라는, 가정은 휴식처라는 이데올로기"와 맞서며 "결국 여성이나 아이처럼 가족 안에서도 입장이 약한 사람에게 괴로움만 강요해 가는 꼴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라 주장해 왔던 작가 덴도 아라타가 이 소설 『젠더 크라임』을 쓴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적혀 있지 않은 소견이란 게 뭐지?"
"강간 말입니다."
"강간, 이라니, 이건 남자인데?"(『젠더 크라임』 중)

구라오카와 함께 스스로의 관점도 바뀌었다는 작가 덴도 아라타는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공고한 벽에 부딪쳤지만, 그때마다 세계는 한 번에 바뀌지 않으니까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꾸자(일단은 호칭부터)고 다짐했다더군요.

세계를 바꾸기는커녕 제 앞가림하기에 바쁜 저도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다짐해 봅니다. 어떤 경우에도 동의 없이 타인의 몸을 만지지 말고 성적인 말로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말자. 그리고, 죽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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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닮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페이크 영상도 쉽게 만들 수 있고요. 대체로 그런 영상을 보고 물어보는 상대에게도 켕키는 구석이 있는 거 아닙니까. 다른 사람이거나 페이크 영상이라고 완전히 부정하고 상대하지 않는 겁니다. 실제로 당신의 뜻에 반한 영상이라면 그것은 당신이 아닌 겁니다." - P-1

피해자를 저항할 수 없는 상태, 혹은 의식을 잃은 상태로 만들어 놓고 성교나 외설적 행위를 저지르는 범죄는 비친고죄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체포하고 기소할 수 있다.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하고 피해자가 재판에서 증언하지 않으면 검찰로서도 기소를 망설이게 된다. - P-1

"정말이지 구역질 나네요."
옆에 있던 시바가 실내에 다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P-1

"늘 이런 식이잖아요. 결국 훌륭하신 어른들이 모여서 한다는 일이 피해 여성을 더 두드려 패는 거나 다를 게 없는 일입니까." - P-1

"글쎄. 어디 섬으로 단신부임하라고 쫓아낼 수도 있겠지."

구라오카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차피 지금도 집에서는 단신부임 상태랑 별반 다를 것도 없지만." - P-1

"한 마디 하지. 자기가 하는 언어가 어느새 자신을 묶어버리게 마련이야…… 남편夫을 주인主人이라고 부르는 건 그만두는 게 좋아."

놀란 얼굴을 하는 히로에를 격려하듯 기운 있는 말투로 덧붙였따. "당신 주인은 어디까지나 당신이야."

사이타마 현까지 전차로 이동했다. 도쿄와 사이타마는 관할 경찰서가 달라 수사 정보가 원활하게 공유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드라마인지 만화인지에서 본 기억이 있다.

이틀 후, 그는 렌트한 차를 반납하지 못했다.

일본의 국가공무원은 한국의 행정고등고시에 상당하는 국가공무원 1종 시험을 통해 임명되며, 지방공무원에 비해 요직에 임명되고 승진도 빠르다.

구라오카는 제 가슴을 쳤다. "우리의, 죄입니다."

말이 지나쳤다는 자각은 있었다. 겨우 그만한 알코올에 취할 리도 없다. 내내 쌓아두었던 말이 튀어나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가슴 속에는 여전히 뭔가가 남아 있다.

사격 성적은 늘 형편없었다. 뛰어난 유도와 체포술로 보완해 관대하게도 합격 판정을 받았을 뿐. 총 따위 없이도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다고 자신을 과신해왔다. 이만 한 거리에서 손이나 어깨를 맞추기는 불가능하다. 몸통을 겨냥해도 빗나갈 수 있고, 히로에가 맞을지도 몰라 두려웠다.

"당신, 행복한 사람이네……."
구라오카는 그녀가 말하는 상대가 자신이 아닌 것 같아서 고개를 들었다.
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무의 그늘을 벗어난 곳에 시바가 흠뻑 젖은 채 서 있었다.

이 세계에 같이 있을 수 있다는, 다만 그것만으로도 기쁨이 넘쳐난다.

어, 하고 구라오카가 불쑥 외치며 벤치에서 일어섰다.

"내가…… 증거를 봤었군. 자네도 봤고 말이야. 하지만 내가 더 결정적인 증거를 보고 있었어. 그래…… 동기도 알고 있어. 그런데, 이게 뭐야…… 도대체……."

"내가 믿어. 나를 살리려고 한 너를 믿는다. 네가 한 짓은 용서하지 않아. 용서하지 않지만…… 네가 하는 말은 믿는다. 그러니까, 내려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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