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다 도시후미는 살인으로, 구스모토 게이타로는 공범으로 함께 기소되었다. 특히 요네다는 위장 공작 건도 있어서 매우 무거운 형이 언도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요네다의 조부와 정치인의 연줄은 이제 힘을 발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후원회를 비롯하여 모든 주변 관계가 끊겼다고 한다. 물론 그 정치인과 야쿠모는 이 건으로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아니…… 기억이 났을 뿐이야.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거, 정말 기쁜 일이라는 말."
"정말이지, 당신이란 분은…… 그러다 또 따님한테 왕따 당합니다."
구라오카가 "시끄러" 하며 쓴웃음을 짓고 무대 앞으로 걸어간다. 요다와 다테하나도 무대 쪽으로 다가가고 시바와 다마키도 뒤를 따랐다. 가을 하늘 아래 경쾌한 힙합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라 전체, 사회 전체에 면면히 이어져 온 남녀차별…… 그리고 차별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어도 오랜 세월 상식이나 관행으로 치부되어 온 관습, 암묵적 양해에 따른 성 역할, ‘남성다움’ ‘여성다움’이라는 행동거지와 이를 수용하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어휘는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의 양상을 속박하기도 하고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힘을 갖고 있다.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호칭 하나의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제 외국어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국어 실력과 비슷한 수준이었거든요. 택시기사가 시비조로 무슨 얘기인가를 지껄이더군요. "나 바빠, 얼른 돈 내고 내려"라는 뜻인 듯했습니다.
이런 게 인종차별이구나. 그 뒤로 백인 (어른) 남자와 맞닥뜨리면 덜컥 겁부터 났어요. 캐나다에서 밤늦게 돌아다니면 폭행을 당할지도 모르겠구나. 실컷 두드려 맞아도 어디 가서 하소연조차 못하겠구나. 급기야 ‘캐나다는 무서운 나라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자신이 남자라는 이유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당연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누리지 못했다 여겼을 때 여성을 때리고 죽였습니다. 좌절하거나 분노한 남자들의 막무가내식 보복은 마치 천부적 권리를 행사하듯 약하고 만만한 여성을 상대로 너무도 쉽게 자행되었지요.
음. 오랫동안 "가정에는 폭력이 없을 것이라는, 가정은 휴식처라는 이데올로기"와 맞서며 "결국 여성이나 아이처럼 가족 안에서도 입장이 약한 사람에게 괴로움만 강요해 가는 꼴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라 주장해 왔던 작가 덴도 아라타가 이 소설 『젠더 크라임』을 쓴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적혀 있지 않은 소견이란 게 뭐지?" "강간 말입니다." "강간, 이라니, 이건 남자인데?"(『젠더 크라임』 중)
구라오카와 함께 스스로의 관점도 바뀌었다는 작가 덴도 아라타는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공고한 벽에 부딪쳤지만, 그때마다 세계는 한 번에 바뀌지 않으니까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꾸자(일단은 호칭부터)고 다짐했다더군요.
세계를 바꾸기는커녕 제 앞가림하기에 바쁜 저도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다짐해 봅니다. 어떤 경우에도 동의 없이 타인의 몸을 만지지 말고 성적인 말로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말자. 그리고, 죽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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