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6세기에도 대부분의 유럽 사람은 과학  지식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어요. 자연과학이나 의학이 발전하면서 물리적인 자연 현상과 인체에 대한 지식이 많이 늘어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설화나 전설, 때론 민간신앙에 의지했죠. - P260

이렇게 이성과 감성이 부조화를 이룬 이 시대를 가리켜 ‘몸은 어른인데 머리는 아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상업이나  도시 생활이 발달한 이탈리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예요. 이처럼 유럽의 이성과 감성의 부조화 상태는 당시에 유행하는 종말론과 맞물려 절정에 다다르게 됩니다. - P260

그는 늙은 뱀이며 악마이며 사탄인 그 용을 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끝없이 깊은 구렁에 던져 가둔 다음 그 위에다 봉인을 하여 천년이 끝나기까지는 나라들을 현혹시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탄은그 뒤에 잠시 동안 풀려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2~3절에는 이처럼 봉인 당한 악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서기 1000년을 이 악마가 풀려나는 날이라고 생각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서기 1000년이 지나고도 종말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15세기 무렵, 이 종말론이 다시 한번 유럽 사회에 퍼지기 시작해요. - P261

여기서 15세기나 16세기 유럽을 설명하는 가장 강렬한 서술 체계를 살펴보려 합니다. 이 시대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해석은 크게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JacobBurckhardt의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의 해석입니다. - P268

먼저 부르크하르트 해석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1860년에『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출간하는데요. 이 책은 지금까지도 르네상스 시기를 정의내리는 데 큰 영향을 끼칩니다.
부르크하르트는 이 책에서 1500년도 전후를  인간의 대발견 시기라고 얘기해요. 일반적으로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이 시기를 근대의 여명이자 새로운 이성이 폭발하는 시대로 본 거죠. 그는 르네상스를 인간과 세계를 발견하고  개성 넘치는 인간이 등장한 시기로 정의합니다. 부르크하르트가 제시한 키워드들은 대체로 오늘날까지 르네상스에 대한 주류적인 해석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 P269

하위징아의 생각은 확연히 다릅니다. 하위징아는 1919년에 펴낸『중세의 가을』에서 르네상스가 중세의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네덜란드 출신 연구자답게 알프스 이북  지역인 네덜란드·독일·프랑스를 중심으로 르네상스 시대를 해석해요. 주 무대를 이탈리아로 한정한 부르크하르트와 큰 차이를 보이죠.  하위징아는 르네상스를 어둠, 맹목적 신앙, 마법 등 중세적 상상력이 남아 있는 시기로 정의합니다. 우리가 보스의 그림을 통해 느낀 북유럽 감성과비슷하지요. - P269

참고로 최근에 나온 연구들을 보면 후자, 즉 중세의 연장이라는 해석이 조금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경우 죽기 직전까지 중세에 대한 거대한 연구들을 엮어냈는데 여기서 그는 르네상스를 중세의 틀 안에서 바라봅니다. 움베르토 에코 같은 현대 이탈리아 학자조차도 르네상스를 중세의 연장으로 본다는 사실은 주목할만 하지요. 사실 대개 16세기를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인해 빛과 이성을 향해 나아가는 희망의 시대로 이야기하지만, 실상 이 시기는 마녀사냥이 벌어진 무시무시한 암흑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 P270

심지어 레오 10세 시기독일 지역의 면벌부 판매 책임자인 수도자 테첼은 "당신이 돈을 궤짝에 넣는 순간, 당신은 천국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집니다"라는 말을 퍼뜨리고 다녔습니다. 어찌 보면 얄팍한 이야기인데 신앙심 강한 북유럽 사람들은 이 말에 넘어가고 맙니다. 실제로  구름처럼 몰려들어 면벌부를 사 갔으니까요.
더욱이 독일 게르만 민족에게는 돈으로 자신의 잘못을 보상하는 법적 전통도 있던 터라 이러한 면벌부 구매가 마냥 낯선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 P279

카톨릭 교회의 권위에 눌려 있을 때, 시골 작은 마을의 수도사 한 명이 대범하게 반기를 듭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점으로 유럽에 종교개혁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이와  관련된 미술 이야기는 곧 바로 다음장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P280

16세기 북유럽은 로마와 달리 여전히 중세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독실한 종교적 믿음이면에는 종말과 죽음에 대한 공포와 설화 혹은 미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이는 미술에서도 기괴하고 신비스러운 특성으로 나타났다. - P281

죄를 인식하는 것이 구원의 시작이다.
마르틴 루터- - P282

루터가 쓴 글의 원래 제목은
 <대사능력 천명에 대한 반박 Disputatio pro declaratione virtutis indulgentiarum> 입니다. - P285

루터는 바로 이성경 말씀을 근거로 가톨릭을 
비판했습니다. 성경만이 믿음과 실천에 있어서 오류가 없는 유일한 규칙이라고 내세웠지요. 그걸 라틴어로는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라고 합니다. ‘오직 성경‘이란뜻으로 성경만이 유일한 근거일 뿐 성경에 없는 관습은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루터의 초상에서도 성경을 강조하고 있는거죠. 이런 루터의 판화가 그의 글과 함께 전 유럽에 퍼졌습니다. - P290

아래의 그림은 페테르 플뢰트너Peter Flötner라는 판화가의 작품입니다. 판화 속에 등장하는 이 용병은 원래 조각가였다고 하는데요. 판화 안에는 ‘이 사람은 원래 아주 성공한 조각가였는데 주문이 없어서 조각을 포기하고 용병이 되었다‘라는 글이 쓰여 있습니다. 교회가 더는 미술을 요구하지 않게 되자 작품 수요가 급격히 감소해 화가들이 새로운 생계를 찾은 것이죠. - P299

그렇습니다. 여기서 큐피드가 안대를 벗어버리면서 눈을 뜨고 있는 점을 눈여겨봐야 해요.  아래 보티첼리가 그린 큐피드와 비교해 보세요. 사실 15세기까지만 해도 이렇게 큐피드는 늘 안대로 눈을 가린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눈을 가린 큐피드는 사랑의 맹목적성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운명을 예측불허의 세계로 그립니다. - P327

그러나 크라나흐의 그림 속 큐피드는 자기 손으로 안대를 벗고 있습니다. 이는 몽매함을 벗어나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이제는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스스로 이끌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거죠. - P327

가톨릭교회에 정면으로 맞선 종교개혁은 미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기존 가톨릭교회의 종교미술은 우상숭배라며 위축되었지만, 신교에서는 교리 전파를 위해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면서 새로운 미술의 역할이 부각됐다. - P329

로마는 불에 탔고 교황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황량한 폐허 위에서 로마는 다시 꿈을 꾼다.
영원한 가톨릭 제국의 꿈을!
완벽한 이성을 추구하던 시대에서 불안하고 격정적인 감성의 시대로.
16세기 이탈리아반도에서 펼쳐지는다양한 미술의 풍경들은 새로운 시대를예고한다.
- 카피톨리노광장, 이탈리아 로마- - P334

번갯불을 일으키려는 자는
반드시 구름에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 P336

종교개혁, 로마의 약탈이 가져온 여파로 인해  교황과 가톨릭교회는 위기에 빠진다.
그에 따른 혼란과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신교에 대항하는 가톨릭교회의 반종교개혁으로 종교미술은 검열의 대상이 된다. - P388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다.
- 알랭 드 보통, 「불안」 중 - P391

매너라고하면 예의범절을 이야기하지만, 대문자 M을 사용한 매너리즘은 격식에 너무 빠지게 된다는 뜻이죠. 신선한 것 없이 같은 요소를반복할 때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하잖아요.
미술에서도 매너리즘은 이와 비슷한 의미로 뭔가 새롭게 창작하기보다 기존 미술을 흉내 내거나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결국  앞 세대의 혁신을반복하고 있는 거죠. - P421

여기서 앞 세대는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가 활동한 시대를 말합니다. 1510년을 전후로 이들이 이룩한 하이 르네상스 시대의 업적을 후대 미술가들이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나오는 미술 경향을 매너리즘이라고 하죠. 이런 의미의 매너리즘은 1520년부터 1600년까지 최대 80년의 시기를 가리키는 미술 용어가 됩니다. - P421

16세기 피렌체 미술은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  영향을 받아 변화한다. 특히 메디치가문이 절대 권력을 쥐면서 피렌체 공화국이 폐지되고  공국으로 전환된다. 일련의 혼란 속에서, 하이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중간 과도기인 매너리즘  미술이 등장한다. - P463

베네치아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잊지 말기를. 모든 축제의 기쁨, 대지의 향연이여!
-바이런 - P464

인생은 연극이다, 테아트로 올림피코  - P534

16세기의 베네치아는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도 피렌체나 로마와는 또 다른 형식으로 르네상스 미술의 흐름을 이어간다. 베네치아의 후기 르네상스 미술은 티치아노의 회화부터 팔라디오의 건축물까지 다양하게 전개된다. - P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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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전21권, 본권 20, 조조록 1
구입한지 10년만에 꺼내본다.
원래 아이들용으로 구입.
만화지만 20권의 대장정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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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8-11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가 읽고싶어서 구입했는데, 그래도 애들도 같이 읽어야지 했지요. 하지만 애들은 안 읽더라구요. ㅎㅎ

대장정 2023-08-11 10:02   좋아요 1 | URL
ㅎㅎ 우리집은 저도 안일고 애들도 안실고ㅠㅠ.권수가 너무 많은지 애들이 잘 안읽더라구요. 근데 7권짜리인가 실톡은 몇번씩 읽더라구요.
 

입추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름 햇살의
영향력을 완전히 던져버리지 못하고
있을 때, 처서는 가을의 산들바람을
선물해줌으로써 우리가 비로소 본격적인
가을을 맞는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157p

입추入秋
태양의 황도(黃道)상의 위치로 정한 24절기 중 열세 번째 절기. 양력으로는 8월 8일 무렵이고, 음력으로는 7월인데, 태양의 황경(黃經)이 135도에 있을 때이다.
대서(大暑)와 처서(處暑)의 사이에 들어 있으며,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이다.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입추 무렵의 마음 풍경
당唐나라 이익李益, 
<입추 하루 전날 거울을 보며
立秋前一日覽鏡>

온갖 일 몸 밖에서 사라지니
생애는 거울 속에 있다.
오직 눈처럼 흰 귀밑머리로
내일이면 가을바람 마주하리니.
萬事銷身外
生涯在鏡中
唯將滿髮雪
明日對秋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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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의 회복을 꿈꿨던 운동이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중세가 신과 종교의 세계라면, 르네상스는 인간, 그리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현실적인 세계를 꿈꿨다고 할 수 있습니다. - P71

 출판이 세계를 바꾸다 
여기서 또 하나, 유럽지성사의 대변혁이 일어납니다. 바로 15세기중엽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한 것이지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인쇄업이 번영을 누리게 되면서 책의 시대가 열리거든요. - P75

그리고 바로 이 시점에 종교개혁의 불길이 타오르게 됩니다. 1517 년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게 되거든요. 이때부터 유럽 역사의 바퀴는 한층 더 빠르게 돌게 됩니다. - P76

16세기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최고 권위자로 족벌정치를 기반으로 가문의 세력을 확장했고
교황을 배출한 가문들은 로마 도심에 재건축
사업을 추진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강력한 힘을 기반으로 교황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한편 16세기 유럽은 인쇄 혁명과 인문주의자들의 활동으로 큰 변화를 맞는다. 미술에서도 사색하는 인간상이 나타나고 신플라톤주의 철학이 반영된 작품이 제작된다. - P93

인간의 몸에서 신의 은총을 볼 수 있다.
신은 바로 이 속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P94

로마는 미켈란젤로의 도시라고 칭할 수 있을만큼 도시 곳곳에서 그의 대표작을 만날수 있다. 이중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는 미켈란젤로의 대표작이다. 미켈란젤로의 예술세계는 그리스·로마 예술의 영향을 받았고 인문주의 사상이 반영됐다. - P139

이제 그가 죽었으니
그와 함께 자연 또한 죽을까 두려워 하노라
-추기경 벰보가 남긴 라파엘로 묘비명 - P140

브라만테는 재능있고 성격도 좋은 라파엘로를 교황 율리오 2세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했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교황을 중심에 놓고미켈란젤로와 브라만테, 그리고 라파엘로까지 3명의 작가가 경쟁구도를 형성하게 된 거죠. - P147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비슷비슷한 법이죠. 바티칸에 세기의 명작이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어쩌면 율리오 2세의 노련한 조직 경영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대결 구도는 결국율리오 2세의 용인술을 바탕으로 나왔기 때문이죠. - P147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는 교황의 취향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를 바라보는 교회의 시각도 담겼다고 볼 수있어요. 이는 그리스·로마 철학자들을 이교도로 배척할 대상이 아니라, 이들 역시 기독교의 영광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본다는 뜻이죠. - P173

기독교 세계는 그리스·로마의 철학도 아우를  수 있을 만큼 위대하며, 이런 관용적 인식 아래 고전 철학의 존재를 용인한다는 것이지요.결국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인문주의적 취향을 가진 교황의 그림이면서 동시에 당시 로마 교황청이 인문주의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174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의 경쟁자로 동시대 거장들의 화법을 모방하고 융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그는 교황의 신임을 받아 교황궁 4개의 방에 벽화를 도맡아그렸다. 그중 아테네 학당은 그리스·로마 철학을 포용하고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수용하는 가톨릭교회의 자신감을 보여준다. - P197

라파엘로의 죽음. → 하이 르네상스의 종말로 불릴 만큼 미술사의 분기점이 됨. - P197

현재가 과거와 다르길 바란다면 과거를 공부하라. -스피노자 - P198

16세기 하이 르네상스 시기에 로마에서 대작들이 나오자, 이제 르네상스인들은 고대로마의 문화유산을 재발견하고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한다. 고전 건축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발전시킨 과정에서 고전을 뛰어넘으려는 르네상스인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 P233

팔라초 이탈리아어로 궁전을 의미. 왕족이나 귀족 등이 사는 저택을 지칭. - P233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신부 마르틴 루터는 당시 로마 교황청의 면벌부 판매 등을 지적한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 교회 대문에 게시한다. 이 반박문은 유럽 전역에 들불처럼 빠르게 번졌고 알프스 너머의 교황청을  진노케 한다. 루터가 불을 지핀 종교개혁의 거대한 물살은 유럽을 두 조각 내놓고 근세의 막을 걷어 올린다. 그로부터 500여 년이 지난 지금 비텐베르크는 폭풍이 지나간 후의 바다처럼 잔잔하기만 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 성 교회, 독일 비텐베르크 - P238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로서 나이를 한 살씩 더 먹는 것뿐이다.
-탈무드 중 - P240

미술의 역사는 500년 전 이탈리아에서 크게  변화했습니다. 정확하게는 1510년경 로마가 
주무대였어요. 여기서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같은 재능 넘치는 작가들이 놀라운 미술을 선 보였고 덕분에 미술은 새로운 활력을 얻었죠.
그런데 같은 시기 북유럽의 미술은 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어요. 뭔가 명확하기보다는  내성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어찌 보면 여전히 중세의 상상력이 지배하는 세계였습니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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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대성당, 1506~1626년, 바티칸 시국 
1506년에 시작한 대성당의 재건축은 120년이걸렸다. 지금 우리가 아는 성 베드로대성당과 바티칸의 모습은 1667년 베르니니가 성 베드로 대성당에 이어진 광장을 만들면서 완성되었다. - P33

로마는 고대 로마제국의 수도이자 기독교 세계의 중심지로 세계사에 큰 영향을 끼친도시이다. 하지만 중세 유럽인들은 고대 로마의 유적들을 방치했고, 14세기부터 교황이 로마를 비우면서 로마는 수도 기능을 잃고 황폐해진다. 15세기 초반 로마로 다시돌아온 교황은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로마를 최첨단 도시로 재건축한다. - P37

내가 발견한 로마는 진흙으로 되어 있었지만
내가 남기는 로마는 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리라
- 아우구스투스 - P38

권위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아서 그럴 텐데요.  이런 교황의 권위를 잘 보여주는 상징 중 하나가 바로 위에 있는 삼중관입니다. 지금은 공식적으로 삼중관을 쓰지 않지만 삼중관에 겹쳐 있는 세 개의 관은 모두 권한을 뜻합니다.  하나는 한 지역을 다스리는 군주로서의 세속권, 또 하나는 교회의 수장, 세 번째는 천국의  권리를 나타내는 천상권을 상징합니다. - P40

피에트로 페루지노,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주는 그리스도, 1481~1482년, 시스티나  예배당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천국의열쇠를 건네주고 있다. 그리스도 주변으로 12제자의 모습이보인다. 베드로는 예수가 지어준 이름으로 반석이라는 뜻이다. - P43

이 사죄권을 받은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 되었고, 베드로의 후계자인 지금의 교황까지 그 권한이 전해집니다. 그래서 교황의 문장에 사죄권을 상징하는 열쇠가 꼭 들어가는 것이죠. - P43

교황이 되려면 먼저 추기경이 돼야 합니다.  교황이 황제라면 추기경은 그 바로 아래의왕, 또는 왕자라고 이야기할 만큼 높은 지위이죠. 이 추기경단이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고 있으니 추기경단 중 한 명이 차기 교황이 되는 겁니다. - P45

15세기까지 추기경 수는 20~30명 정도로 많지 않아서 교회에서 추기경의 권위는 어마어마했죠. 16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수가 70명으로 늘어났고,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2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숫자가 늘었다 해도 한 나라의 추기경이라고 하면 웬만한 정치 지도자만큼 무게감이 있죠. - P45

교황은 일단 즉위하면 추기경단을 자기가 잘  아는 측근으로 많이 채웁니다. 자식이 없어서 후계자가 없다보니 조카들을 자신을 지지할 추기경으로 만들어 자신의 권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요. 이렇게 해서 교황은 주변에 우호적인 추기경을 많이 만들었죠. 여기에서 나온 말이 바로 네포티즘 nepotism, 즉 친족주의입니다.
조카를 뜻하는 영어 네퓨nephew와 어원이 같습니다. - P48

교황이 선종하면 추기경들이 모여서 콘클라베를 진행합니다. 콘클라베는 ‘열쇠로 잠근 방‘이라는 뜻으로, 추기경만 모여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의례인데요. 이때 선출 장소인 시스티나 예배당의 문을 걸어 잠그고, 추기경들은 차기 교황을 선출할때까지 밖으로 못 나오게 됩니다. - P51

에두아르트 슈보이저, 카노사의 하인리히,  1862년, 막시밀리아네움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파문한 교황에게 용서를 청하기 위해 맨발로 성문 앞에 서 있다. 뒤쪽 성 안에서 교황이 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황제권이 교황권에 패배했음을 상징하는 이 사건은 카노사의 굴욕이라 불린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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