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에 대하여.
이렇게 좋은 책을 홍세화님께서 돌아가신 후 읽게 되다니 이 또한 미안(죄송)할 따름이다.

“내 안에는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이 있다”

홍세화(洪世和, 1947년 12월 10일~2024년 4월 18일)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 입학 후 자퇴,
다시 재수하여 외교학과에 입학, 졸업
1979년 무역회사 상사원으로 프랑스 파리 주재시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프랑스로 망명. 후일, 그는 망명생활의 술회를 기술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해졌고(나 또한 1995년 이 책을 감명깊게 읽고 그를 알게되었고, 남민전 사건의 또 다른 유형의 피해자임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똘레랑스(관용?)라는 프랑스 문화를 소개하였다.

2002년 귀국. 언론인, 작가로 활동, 진보신당 대표 역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1. 사형-신향식(1982년 형 집행, 전남 고흥 출생, 서울대), 이재문(대구, 고문 후유증으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1981년 사망)
2. 무기징역-안재구(수학교수, 사형 언도받았으나, 세계 수학교수들의 노력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 등 5명
3. 징역15년 김남주...... 등 다수
4. 징역5년 이재오...... 등 다수

MB 정부 실세이며,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도 남민전 사건으로 징역 5년.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극과 극을 오갈 수 있을지 놀라울 따름이다.

오! 놀라워라 그댈 향한 내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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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구절이 있다. 중국의 각급 학교에 붙어 있다는 글귀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이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 바로 우리 모습 아닌가! ‘배움’과 ‘생각하기’는 어우러져야 한다.

"노력은 실력이 아니라 계층이다!"

앞으로 ‘명문대 졸업장’, ‘좋은 일자리’, ‘비싼 주택’ 소유와 더불어 세습에 따른 계층화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지배계급의 재생산은 일정 부분 문화자본의 전달에 종속되는데, 문화자본은 병합된 자본이라는 고유성을 가지며, 따라서 십중팔구 타고나는 것"(피에르 부르디외)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제 계층 상승의 길은 막히고, 양극화는 심해지는 가운데 지난날의 낙수효과도 사라졌다. 대물림되는 이 땅의 가난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신자유주의가 발호하면서 너덜너덜해졌다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유럽의 사민주의 정책의 잔해가 한국 현실 정치에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인가.

두 전쟁 모두 미국이 개입했는데, 한국전쟁이 ‘승자 없는 전쟁’으로 분단 상태를 지속시켰다면 베트남은 통일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호찌민이라는 걸출한 지도자, 베트남 역사에 면면히 흐르는 항쟁 정신, 이념의 차이를 눅여준 마을 공동체 의식 등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베트남에는 밀림이 있는 대신 한반도에는 혹독한 겨울이 있다는 자연 조건의 차이가 가장 중요했을지도 모르겠다.

베트남 참전 최고의 수혜자는 박정희였다. 베트남이 통일된 날인 1975년 4월 30일보다 3주 앞서, 한국에서는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여덟 분이 처형당했다.

그렇게 일반 민중이 개와 돼지처럼 배만 채우면 되던 시절, 높으신 분들의 심성 안에는 추위와 배고픔이라는 비참함에 대해 서양에는 기독교의 ‘긍휼’, 동양에는 공맹사상의 ‘측은지심’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체 높은 분들 스스로는 추위와 배고픔을 겪지 않았어도 공감 능력은 갖고 있었던 것이다.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의 "온정, 시혜에 관해 사람들은 받는 쪽이 아닌 주는 쪽에서만 생각한다"는 말이나, 『주홍글씨』를 쓴 너새니얼 호손의 "온정과 오만은 쌍둥이"라는 말이 시사하듯, 온정과 시혜를 필요로 하는 사회보다는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라는 것은 분명하다.

남의 온정과 시혜가 필요한 상황, 그것 자체가 이미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당하게 요구하자. 인간답게 살 권리를. 어느 때보다도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가슴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던 누군가의 말이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가. 이번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에는 한국의 예술가와 활동가가 참여해 콘서트, 퍼포먼스, 캠페인 등을 펼치는 ‘기본소득 주간’ 행사도 함께 열린다.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의 많은 참여가 있기 바란다.

"다음 혁명에는 바지를"

"나는 공산주의에 찬성이오. 사회주의도 찬성이오. 그리고 자본주의도 찬성이오. 왜냐하면, 나는 기회주의자이므로." 프랑스 가수 자크 뒤트롱의 노래 <기회주의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뒤트롱의 노래 <기회주의자>는 이렇게 끝난다. "저고리를 너무 뒤집어 입어서 이젠 양쪽이 모두 해어졌다오. 다음 혁명에는 바지를 뒤집어 입을 거요." (혁명을 기대하기 어렵기에) 한국의 기회주의자는 바지를 뒤집어 입을 일은 없겠지만….

오늘날 박 정권과 박 정권을 떠받치는 수구 세력이 일본의 식민 체제 아래에서 조선 민중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공감한다면,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른 학살과 고문 행위에 대해서는 왜 그리 둔감할까. 아니, 둔감하다는 말은 가당치 않다. 그들이 바로 학살과 고문, 간첩 조작 등 국가 폭력 행위의 주체였거나 거기서 싹튼 세력이기 때문이다.

실상 아베 신조에게는 가소롭게 비칠지 모른다. 자국민을 학살하고 고문한 자들이 식민지 조선과 조선 사람을 유린했다고 일본을 손가락질할 수 있나? 더구나 일본의 식민 체제에 빌붙어 사적 안위와 영달을 추구했던 자들이?

샤를 드골의 발언 "과거를 잊지 않은 채 함께 미래를 바라보기로 했다"

프랑스에서 망명도생을 결심하기 전에 가장 두려웠던 것은 장기간의 징역살이보다 그에 앞서 치러야 할 고문에 대한 공포였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고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박 정권’이라는 말에 섬뜩 놀라고 꿈속인 듯이 허우적대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또한 나의 성정 탓이겠다.

장발장은행은 되도록 빨리 문을 닫아야 한다. 그러자면 범법 행위자에 대한 벌금액을 소득과 재산에 연동하여 부자에겐 많이, 가난한 사람에겐 적게 받아내야 한다. 즉 현행 총액벌금제를 일수벌금제로 바꿔야 한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내고, 돈 바꿔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서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리리라’ 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라고 말씀하셨다.

6월 항쟁 당시 경찰에 쫓겨 명동성당에 몸을 피한 청년 학생들을 체포하려는 정권에 김수환 추기경이 했던 말은 지금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성당 안으로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과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우리들을 다 넘어뜨린 후에야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

지난여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가장 낮은 자리를 찾았던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렇게 말했다. "조직의 안위에만 치중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말과 행동을 통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개입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신발에 거리의 진흙을 묻힐 수도 있어야 한다. 나는 교회가 좀 더 깨지고 상처 입고 더러워지기를 원한다." 사회의 변두리는 사제가 피할 곳이 아니라 찾아가야 할 곳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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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가 노예 해방의 세기, 20세기가 보통선거권과 여성 참정권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성소수자들의 해방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땅에 만연한 무지와 편견, 차별과 배제에 시달리는 성소수자에게 동시대인으로서 미안함이 앞서기 때문이다. 또한 ‘한 사람이라도 자유롭지 못한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선한 사람의 무관심이 악을 키운다"는 18세기 영국의 보수주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내 가슴에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법안 통과 직후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2019년 5월 17일 대만에서 사랑이 이겼다. 진정한 평등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디뎠고 대만을 좀 더 좋은 나라로 만들었다."

북한에 대한 공포 마케팅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해온 한국의 극우 세력은 공포의 대상을 이민자, 난민 등 외부자로 확장하여 혐오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질적 내부자인 성소수자로 확장하여 "피땀 흘려 세운 나라, 동성애로 무너진다"는 공포의 구호를 낳는다. 이런 모습은 개신교의 확장성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착한 방관자는 비겁한 위선자

"광주 사람은 소수민족인가, 이교도인가?"

1980년 5월의 일주일 동안, 프랑스 공영 티브이의 저녁 8시 뉴스는 광주 민주항쟁을 연일 톱으로 보도했다

뉴스를 접한 프랑스인의 반응 중 하나가 "광주 사람은 소수민족인가, 이교도인가?"였다. 그들의 눈에는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 두 손을 뒤로 묶여 굴비처럼 엮이고, 팬티 바람으로 트럭에 끌려가고, 마구 쏜 총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일반 시민일 수 없었다. 그보다는 한나 아렌트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자들"로 칭한 ‘파리아(pariah)’에 가까운 존재였다.

특히 혐오는, 전두환 무리가 그렇듯이, 탄압은 물론 살육까지 마다하지 않는 세력에게 양심의 짐을 없애준다.

9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아베 정권을 비롯하여 일본의 극우 세력이 과거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에 사죄할 뜻이 없는 것도 ‘혐한(嫌韓) 감정’으로 양심의 짐을 벗어던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혐오의 정치가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켜서 시민들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결과적으로 혐오스러운 정치인이 정치를 계속 독점하게 하는 부수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혐오는 가진 자, 힘센 자, 다수파가 없는 자, 약한 자, 소수파에 대한 차별, 억압, 지배를 관철시키는 감정기제로서 한쪽 방향으로만 작용한다.

"정치는 본디 고귀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회적 연대의 실현을 기본 소명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혐오 옆의 ‘착한 방관자’는 ‘비겁한 위선자’일 뿐이다. 많은 정치인들 사이에서 정치 지도자가 아쉽다.

오, 위대한 영이여! 내가 상대방의 모카신을 신고 1마일을 걷기 전에는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우리는 우리 각자의 눈으로 사물과 현상을 본다. 예멘 출신 난민을 향한 혐오감정은 그들에게 투사된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거기에 담겨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편에는 ‘지디피(GDP) 인종주의’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소수자이고 약자인 그들에게 잠시 편견과 혐오감정을 내려놓고 눈길 한번 주면 안 될까. 인간은 감성을 가진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소한 냉대와 불친절을 당해도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을 갖는 반면, 한순간의 눈길 교환만으로도 상대방이 겪은 삶의 층위를 느끼고, 그 깊이와 폭에 대한 공감, 아니 공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신뢰를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의 과거를 오늘날 보여주고 있는 당신들, 부디 꿋꿋하게 살아내시길…. 비록 소수지만, 제주도에서 "타자를 존중하고 타자와 윤리적 관계를 맺어야 ‘나’라는 존재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말을 실천하고 계신 분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다수와 소수의 관계가 서로 ‘다른’ 관계가 아닌 바름과 틀림, 정상과 비정상의 관계로 치환될 때, 다수는 다수에 속하는 것만으로도 바르고 정상인 자리에 서게 되고, 소수는 소수에 속하는 것만으로도 틀리고 비정상인 자리에 계속 머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본디 소란스러운 것이라서 사회적 갈등이 공론의 장에서 표출·토론되고 조정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더욱이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아닌가.

확증편향에서 벗어나기. 그것은 나부터 ‘회의하는 자아’가 되는 것 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다. 그런 전제 아래 어렵더라도 이웃을 설득하는 수밖에. 학교와 교실에서 생각하는 교육이 펼쳐지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회의하면서 전진하자!"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구호였다. 개인도 사회도 운동도 회의하지 않으면 변화하기 어려우며 변화하지 않으면 전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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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떠들 것이다
"그러면 60만이 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삼성 제품을 보이콧하지 않나요?"

나의 ‘삼성 보이콧’은 내 의지의 소산이라기보다는 20여 년의 유럽 생활에서 얻은 직관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를 무시하고 노동조합을 부정하는 재벌 기업을 용인한다는 것은 노동조합원에겐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본 없이 품을 팔아 생존해야 하는 노동자라도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 자존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한"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아닌가.

민주노총 조합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대기업 정규직들이 기득권층에 편입되면서 변혁적 노동운동의 동력까지 상실하게 되었다.

하 수상한 시절, 갈수록 희귀종이 되어가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그러면 지하철 2호선 강남역 8번 출구로 가라. 거기에 <또 하나의 약속>에서 화면 가득히 다가왔던 늠름한 황상기 씨가 있고, 반올림이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계속 떠들어댈 것이다. "한 놈만 패자!", "아픈 데를 때리자!"고.

2015. 10. 22.
결국 황상기 씨와 반올림은 승리했으나 반쪽 승리였다.

우리는 익숙함을 경계해야 한다. 나쁜 것에 익숙해지면 더 나쁜 것을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살아 있는 생명을 내 손으로 가꿀 때 나도 삶의 의지를 포기할 수 없었다"

차광호가 동료들을 떠올리면서 생명을 가꾸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회를 향해 ‘생명에 대한 예의’로 응답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조합원들의 소비와 소유 욕망에 밀려서 연대 정신을 팔아버린 결과가 아닐까 싶다.

법이란 "강자의 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하청 노동자들을 위한 법의 판결마저 외면하는 노동조합이라니! 노동이 노동을 무시하면서 자본의 횡포에 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조합원들의 소비와 소유 욕망에 밀려서 연대 정신을 팔아버린 결과가 아닐까 싶다.

법이란 "강자의 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하청 노동자들을 위한 법의 판결마저 외면하는 노동조합이라니! 노동이 노동을 무시하면서 자본의 횡포에 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노동자는 많지만 노동자 의식은 드문 곳에서 부당하고 억울한 일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노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기 어렵고, 연대 의식의 토대 또한 탄탄해지기 힘들다.

2015. 7. 21.
차광호 씨는 마침내 다시 땅을 밟았다.

나는 앨라이다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

볼테르는 광신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이 말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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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장발장은행의 은행장을 맡고 있다. 회사원, 관광안내원, 택시기사에 이어 신문기자와 소수파 진보정당의 대표를 거쳐, 급기야 은행장의 직함까지 갖게 되었다. 주식도 없고 스톡옵션도 없는, 틀림없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은행장일 것이다.

홍세화(洪世和, 1947년 12월 10일~2024년 4월 18일)는 대한민국의 작가,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두 가지 우연이 있었다. 하나는 프랑스 땅에 떨어진 것. 또 하나는 파리에서 빈대떡 장사를 할 자본이 없었다는 것.

실제로 나는 빈대떡을 아주 잘 부친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대신 ‘나는 빠리의 빈대떡장사’? 글쎄,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아무튼 두 가지 우연 과 몇 가지 필연, 그리고 서울대 출신이란 게 합쳐져서 지금의 내가 있게 되었다.

나는 『양철북』의 소년도 아니면서 나이 먹기를 거부한다. 나이 먹기를 거부한다는 게 주책없는 일임을 안다. 그렇다고 하릴없는 수작이라고까지는 생각지 않는다. 장교는 나이를 먹으면서 진급한다. 사병은 나이를 먹어봤자 사병으로 남는다.

전투는 왜 하는가? 살아야 하므로. 척박한 땅에서 사랑하고 참여하고 연대하고 싸워 작은 열매라도 맺게 하는 거름이고자 한다. 거름이고자 하는 데에는 자율 통제가 필요치 않다. 욕망이 춤춘다. 그렇다. 나는 살아서 즐거운 ‘아웃사이더’이고 싶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

돌아보니 어느 글에선가 20년 동안의 난민생활을 접고 귀국한 뒤 내 정서를 지배하는 것은 분노보다는 슬픔, 슬픔보다는 쓸쓸함이라고 쓴 적이 있다. 세월호는 거기에 미안함을 얹게 했다. 아니, 내 안에는 세월호 훨씬 이전부터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이 있었다.

남민전의 선후배와 동료들이 겪어야 했던 일이 나에겐 가위 눌리는 악몽에 머물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워낙 심약했기에 설령 목숨은 아직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나일 수 없을 만큼 무너졌을 것이다.

운 좋게 망명도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가난의 질곡이라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의 물질적 여유까지 허용했다.

이를테면 나의 미안함은, 요행으로 살아남은 내가 그 요행이 없었더라면 살아남지 못했을 나에게 느끼는 미안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가 대물림된다면 그 반대편에 가난의 대물림이 있는데, 가난이 죄인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발언할 수 없을 때, 부러움이든 시기든 부의 대물림만 바라보는 대신 대물림되는 가난을 바라보자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의 고통과 불행, 불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목소리를 안간힘처럼 내보는 것이다.

미국의 한 정치철학자는 확신에 차 있더라도 틀렸을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 한국사회는 어느 때보다도 진영논리, 확증편향의 늪에 빠져 있으므로 더욱 귀담아들어야 할 충고다.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 인간의 몸은 평등하지만, 기업의 이윤 앞에서 인간의 몸은 평등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길들여졌다.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라는 부제가 달린 『임계장 이야기』는 아파트 주민을 소수의 착한 사람, 다수의 무관심한 사람, 극소수의 나쁜 사람으로 분류한다.

18세기 영국의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는 "선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악을 키운다"고 했다.

20세기 말에 『경제적 공포』를 쓴 비비안 포레스테는 이렇게 말했다. "무관심은 잔인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매우 활동적이며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무관심은 무엇보다도 추악한 권력의 남용과 탈선을 허용해주기 때문이다."

2020. 5. 21.
2020년 5월 29일, 김용희 씨가 철탑 농성에 오른 지 355일 만에 땅에 내려왔다. 이렇게 모진 상황을 다시는 견디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우리가 김용균이다
"그런데 이상했어요. ‘김용균법’이 만들어진 다음에 현장 태안 분소에 갔는데 용균이 동료들이 다 술 먹고 힘 빠져 있고 화가 나 있었어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용균이법’ 안에 용균이가 안 들어 있다고,

공자는 "말은 항상 지나치고, 행동은 항상 미치지 못한다"면서 "군자는 말의 지나침을 부끄러워한다"고 했다.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1848년 2월 혁명이 루이 보나파르트의 지배 체제로 왜곡돼갔던 과정을 서술한 책이다)에서 말했듯이, "한 계급에게서 빼앗지 않고는 다른 계급에게 줄 수 없"는 것이라면, 영세업자들을 수탈하는 재벌 기업한테서 최저임금 인상분을 충당하거나 임대업자에게 매긴 세금으로 자영업자들의 버거운 임차료를 보전해주었어야 했다.

내 불온한 시선 탓인지, 이른바 문 대통령의 ‘복심’, ‘측근’, ‘실세’라 불리는 사람들이 모두 ‘민주 건달’로 보인다. 과거에 잠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완장을 차고 있는 그들. 하지만 사실은 그런 도덕적 우월감이 더 위험하다.

"서초동 집회가 부럽더라. 왜 노동자들이 죽는 문제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나오지 못할까. 우리도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이지 않나. 한 해에 몇천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죽는 거니까. 그리고 그게 매년 반복되니까. 만일 노동자가 죽는 일로 그만큼 사람들이 모이면 분명 사회가 달라질 것 같은데 말이다."(<오마이뉴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대표변호사의 안타까운 술회가 내 가슴을 적신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곧 잊힌다(Out of sight, out of mind)." 미디어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알려주고 우리가 봐야 할 것을 보여주고 있을까? 우리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는 대중매체와 관련하여 곱씹어야 할 격언이다.

"사랑을 하자! 연장 근로 말고!"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는 말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상적인 국가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욕망을 매개로 사회 구성원의 비판력과 정의감을 휘발시켜버린 ‘문화적 배경’이 바로 삼성을 그렇게까지 오만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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