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장발장은행의 은행장을 맡고 있다. 회사원, 관광안내원, 택시기사에 이어 신문기자와 소수파 진보정당의 대표를 거쳐, 급기야 은행장의 직함까지 갖게 되었다. 주식도 없고 스톡옵션도 없는, 틀림없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은행장일 것이다.

홍세화(洪世和, 1947년 12월 10일~2024년 4월 18일)는 대한민국의 작가,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두 가지 우연이 있었다. 하나는 프랑스 땅에 떨어진 것. 또 하나는 파리에서 빈대떡 장사를 할 자본이 없었다는 것.

실제로 나는 빈대떡을 아주 잘 부친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대신 ‘나는 빠리의 빈대떡장사’? 글쎄,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아무튼 두 가지 우연 과 몇 가지 필연, 그리고 서울대 출신이란 게 합쳐져서 지금의 내가 있게 되었다.

나는 『양철북』의 소년도 아니면서 나이 먹기를 거부한다. 나이 먹기를 거부한다는 게 주책없는 일임을 안다. 그렇다고 하릴없는 수작이라고까지는 생각지 않는다. 장교는 나이를 먹으면서 진급한다. 사병은 나이를 먹어봤자 사병으로 남는다.

전투는 왜 하는가? 살아야 하므로. 척박한 땅에서 사랑하고 참여하고 연대하고 싸워 작은 열매라도 맺게 하는 거름이고자 한다. 거름이고자 하는 데에는 자율 통제가 필요치 않다. 욕망이 춤춘다. 그렇다. 나는 살아서 즐거운 ‘아웃사이더’이고 싶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

돌아보니 어느 글에선가 20년 동안의 난민생활을 접고 귀국한 뒤 내 정서를 지배하는 것은 분노보다는 슬픔, 슬픔보다는 쓸쓸함이라고 쓴 적이 있다. 세월호는 거기에 미안함을 얹게 했다. 아니, 내 안에는 세월호 훨씬 이전부터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이 있었다.

남민전의 선후배와 동료들이 겪어야 했던 일이 나에겐 가위 눌리는 악몽에 머물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워낙 심약했기에 설령 목숨은 아직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나일 수 없을 만큼 무너졌을 것이다.

운 좋게 망명도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가난의 질곡이라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의 물질적 여유까지 허용했다.

이를테면 나의 미안함은, 요행으로 살아남은 내가 그 요행이 없었더라면 살아남지 못했을 나에게 느끼는 미안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가 대물림된다면 그 반대편에 가난의 대물림이 있는데, 가난이 죄인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발언할 수 없을 때, 부러움이든 시기든 부의 대물림만 바라보는 대신 대물림되는 가난을 바라보자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의 고통과 불행, 불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목소리를 안간힘처럼 내보는 것이다.

미국의 한 정치철학자는 확신에 차 있더라도 틀렸을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 한국사회는 어느 때보다도 진영논리, 확증편향의 늪에 빠져 있으므로 더욱 귀담아들어야 할 충고다.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 인간의 몸은 평등하지만, 기업의 이윤 앞에서 인간의 몸은 평등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길들여졌다.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라는 부제가 달린 『임계장 이야기』는 아파트 주민을 소수의 착한 사람, 다수의 무관심한 사람, 극소수의 나쁜 사람으로 분류한다.

18세기 영국의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는 "선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악을 키운다"고 했다.

20세기 말에 『경제적 공포』를 쓴 비비안 포레스테는 이렇게 말했다. "무관심은 잔인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매우 활동적이며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무관심은 무엇보다도 추악한 권력의 남용과 탈선을 허용해주기 때문이다."

2020. 5. 21.
2020년 5월 29일, 김용희 씨가 철탑 농성에 오른 지 355일 만에 땅에 내려왔다. 이렇게 모진 상황을 다시는 견디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우리가 김용균이다
"그런데 이상했어요. ‘김용균법’이 만들어진 다음에 현장 태안 분소에 갔는데 용균이 동료들이 다 술 먹고 힘 빠져 있고 화가 나 있었어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용균이법’ 안에 용균이가 안 들어 있다고,

공자는 "말은 항상 지나치고, 행동은 항상 미치지 못한다"면서 "군자는 말의 지나침을 부끄러워한다"고 했다.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1848년 2월 혁명이 루이 보나파르트의 지배 체제로 왜곡돼갔던 과정을 서술한 책이다)에서 말했듯이, "한 계급에게서 빼앗지 않고는 다른 계급에게 줄 수 없"는 것이라면, 영세업자들을 수탈하는 재벌 기업한테서 최저임금 인상분을 충당하거나 임대업자에게 매긴 세금으로 자영업자들의 버거운 임차료를 보전해주었어야 했다.

내 불온한 시선 탓인지, 이른바 문 대통령의 ‘복심’, ‘측근’, ‘실세’라 불리는 사람들이 모두 ‘민주 건달’로 보인다. 과거에 잠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완장을 차고 있는 그들. 하지만 사실은 그런 도덕적 우월감이 더 위험하다.

"서초동 집회가 부럽더라. 왜 노동자들이 죽는 문제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나오지 못할까. 우리도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이지 않나. 한 해에 몇천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죽는 거니까. 그리고 그게 매년 반복되니까. 만일 노동자가 죽는 일로 그만큼 사람들이 모이면 분명 사회가 달라질 것 같은데 말이다."(<오마이뉴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대표변호사의 안타까운 술회가 내 가슴을 적신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곧 잊힌다(Out of sight, out of mind)." 미디어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알려주고 우리가 봐야 할 것을 보여주고 있을까? 우리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는 대중매체와 관련하여 곱씹어야 할 격언이다.

"사랑을 하자! 연장 근로 말고!"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는 말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상적인 국가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욕망을 매개로 사회 구성원의 비판력과 정의감을 휘발시켜버린 ‘문화적 배경’이 바로 삼성을 그렇게까지 오만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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